179화 허풍? 진실?
시상식이 끝난 후에도, 파티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먹을 음식도.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눌 사람도 많았으므로.
오히려 시상식이라는 것이 끝났기에, 선수들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며 궁금했던 선수에게 말을 걸거나 친분을 쌓고 있었다.
PER의 경우 시상식에 집중하느라, 아직 식사를 다 마치지 못해, 대화하면서 식사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거 진짜 말도 안 되네. 세상이 날 억까한다.”
“뭘 억까야~. 저번 1부 승강전 영상 보면 누구라도 창현이를 뽑지. 네가 휘두른 검 막고 소음공해로 귀에서 피 흘리면서 쓰러지는 장면을 뽑냐?”
“아 아무튼 억까임~”
억울해하는 사람도 한 명 있는 것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저건 저것대로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네.’
미디어 상에 나 대신 김도준의 명장면이 꼽혔다면, 그 영상의 소음공해가 여과 없이 나와 시상식에서 다들 귀를 부여잡지 않았을까.
그럼 그것대로 엄청난 인상을 남기긴 했으리라.
그러던 도중, 이미 식사를 마친 테이블들 중심으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퍼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던, 얼마나 시끄럽든 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녀석들이 저 상을 받은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천만에. 레만에게 내 직접 들었는데, 국제 리그를 탑에서 직관한 후에 미국 헌터들과 함께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혼쭐을 내 줬다더군.”
“창현이가요? 미국 현지에서 싸우는 거라면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이야기만 들어보면 아주 재미있어. 아직도 탑 일선에서 일하는 순수한 헌터를 ‘답파훈련’에서 압도적으로 차이를 벌려 줬다더군. 레만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침을 튀기던데,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다름이 아니라, PER이자 내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이근택 회장님과 이민석 선배였다.
게다가 그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각성자. 귀가 좋기 때문에, 이근택 회장님과 이민석 선배의 대화를 듣고 흥미로워 보이자 벌 떼처럼 모여든 것이었다.
“와…… 회장님. 그래서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됐대요?”
심지어는 이근택 회장에게 직접 질문까지 던져 가며, 그 이야기를 더 물어보기도 했다.
[더 헌터스 데이]의 특유의 격 없고 자유로운 분위기였기에 그럴 수 있었다.
“아. 그거뿐이 아니지. 자네도 이리 와 여기 한 번 앉아보게. 글쎄. 그 후에는 유물을 이용해 훈련하는 헌터 훈련장에 갔는데, 그 유물에 재현된 게 뭐였는지 아는가?”
“음…… 글쎄요. 쉽사리 떠오르는 게 없어서…….”
“자그마치 유물을 사용하는 훈련 장치. 훈련자가 상대해본 사람 중 맞추기 제일 어려운 상대가 재현되어 표적으로 나와, 맞추는 훈련이었다고 하더군.”
“오…….”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나? 거기에서 이창현의 표적으로 나온 게, 중국의 웨이. 유럽의 아나 같은 유명 선수들이었다는 점이지.”
이근택이 마치 자신의 영웅담을 푸는 듯, 씨익 웃으며 강약을 조절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다.
물론 좋아하는 건 이근택뿐이 아니었다. 듣는 선수들 또한, 아무리 한국의 1부 헌터라고 하더라도 들어보지 못했을 신기하고 다양한 이야기들.
그렇기에 다들 삼삼오오 모여 이근택의 이야기를 들으며 환호하고 있었다.
‘저 영감님이 아주 신이 났구만.’
“창현아. 저거 말씀하시도록 둬도 괜찮은 거야? 나름 전략이 노출된다거나,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평소에 약간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한지수답게, 나에게 물어왔다.
뭐.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한데……
“됐어. 그냥 하시고 싶으신 대로 놔두지 뭐. 할아버지가 손주 자랑을 하는데 막는 건 아니지.”
어차피 몇 마디 듣는다고 경기의 향방이 달라질 정도로 중요한 정보도 없다.
게다가, 곧 1부에서 영입 시즌을 맞이하는데 저렇게 직접 홍보해주면서 면을 세워준다니.
이만한 도움이 또 따로 없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정훈 또한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요. 여유라는 건 강자의 특권이죠.”
쪼끄만 게. 팔짱을 끼면서 악동같이 씨익 웃으니,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번엔 대화의 공이 이정훈으로 넘어갔다.
이길한이 아까 시상식에 신인상으로 뽑힌 이정훈의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정훈아. 왜 지금까지 경기 나간다고 이야기도 안 했어? 아니 아까 신인상 나오는데 너 이름 불러서 깜짝 놀랐잖아.”
“아…… 그거요? 그냥 좀…… 창현이 형한테는 이야기 했었는데.”
내 이야기를 할 때는 그렇게나 기세등등하더니. 막상 자기 이야기가 나오니까 꽤나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이정훈이 부끄러운 듯 눈을 피하며 뒷머리를 긁었다.
“아니, 맨날 어디 나갔다 와서, 홈에서 훈련만 하길래. 밖에서 뭘 하고 지내는 건가…… 싶었는데. 3부 리그에서 뛰고 있었다니.”
“뭐. 그래도 이 정돈 아직 아무것도 아니죠. 창현이 형은 신인상만 탄 게 아니라, 이번에 이제 미디어 상과 하이라이트 상까지 받으셨으니. 저도 이제, 다음은 그걸 목표로…….”
팀원들이 연습할 때 종종 함께 연습하기도 하고, 따로 연습을 종종 봐주기도 했으니 느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새삼 이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네.’
애를 키운다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치는 것만큼 잘 따라오고 재능도 쭉쭉 성장하는 게 보여 가르치는 재미가 있기도 했고.
물론 그렇다고는 하나, 신인상까지 탈 줄은 몰랐는데.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실력으로 하이라이트 상은 좀 멀었지.”
하지만 심술을 부리는 건 앞서 간 사람의 특권이다. 나는 이정훈을 보며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걸 보곤 이정훈은 나름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노력…… 하겠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에 진지하게 대답해버려 오히려 벙 쪄버린 것은 나였다.
얄궂은 농담을 쳤지만 오히려 굳어버린 나를 보고 팀원들이 낄낄거려,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훈이 녀석…… 고지식하긴.’
재미없게 말이야.
그렇게 팀원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 파티도 이제 꽤나 무르익었던 걸까.
팀PER. 우리 팀의 테이블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
[더 헌터스 데이]. 사실 시상식이나 각종 볼거리. 아이돌 초청 공연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만, 선수들에게 있어 가장 큰 의미는 아니다.
그곳에서의 가장 큰 의미. 그건 바로, 한국 선수라면 그 누구든 그 파티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만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거지.’
선수 대 선수로. 같은 길을 나아가는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건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사실 [더 헌터스 게임]의 본편은 바로 이것. 적당히 식순이 끝나고 만나보고 싶은 선수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창현 선수시죠?”
찾아온 것은 두 명의 1부 선수. 김종하와 이성태였다.
회귀 전, 1부에서 그럭저럭 몇 번 얼굴을 마주쳤던 선수였기에 기억이 났다.
“네. 맞습니다. 김종하 선수.”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김종하는 진심으로 감격한 듯, 양 손으로 내 손을 부담스럽게 잡아오면서 눈을 반짝였다.
“실은…… 이번 PER의 승강전. 거기에 제 친구가 몸담고 있어 보러 갔었거든요. 거기에서 도탄사격을 할 때. 그거 진짜 어떻게 하신 건가요? 진짜 믿을 수가 없던데…… 친구도 져서 침울해하긴 했지만, 진 상대가 PER이라 그런지. 어쩔 수 없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 이야기만 와다다다 하는 타입인가.’
솔직히 별로 관심 있는 선수는 아니었기에, 적당히만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뭐, 그날 플레이 중 우연히 한 플레이가 없는 건 맞죠.”
“오…… 역시. 플레이가 빈틈없다는 이야기가 자자하시던데. 혹시 그날의 경기는 미리 다 예상해서 짜…….”
“아, 그런데 혹시 옆에 분은 누구시죠?”
내가 관심이 있는 건, 김종하 옆의 이성태 쪽이었다.
“아……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했군요. 제 옆에 있는 애는 성태라고 하는데, 같이 1부 뛰는 친한 친구에요. 제가 같이 가자고 졸라서 왔는데, 컨디션이 영 안 좋은지 뚱한 상태네요. 창현 선수가 안 좋아서 그런 거는 아니라 너무 부담은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뚱한 상태…… 컨디션이 안 좋다라.’
김종하가 필사의 쉴드를 펼쳤지만, 나는 사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까 이근택 회장 주변에서 PER 이야기가 시작되어, 온갖 이야기가 퍼져나오던 무렵. 그때에 표정이 돌변했으니까.
‘아마 그 때에, 뭔가 걸리는 이야기가 있었던 거겠지.’
회귀 전의 이성태와 개인적으로 교류한 적도 있었기에. 대충 왜 저런 표정으로 뚱하게 서 있는 것인지 예상은 갔다.
이성태는 이야기를 부풀려 하거나, 없는 사실로 누군가를 올려치기 하거나 내려치기 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아마, 이근택의 이야기라고 한 들 거기에 허풍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거나, 그런 거겠지.
‘하긴…… 막 1부 올라온 신삥 한국 선수가 미국 헌터들 사이에서 두각을 보였다는 말을 하면, 한국 선수로선 의심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두각을 보인 분야가, 사격 같은 특기분야가 아니라 던전 돌파라는 특이한 것까지 섞여있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는, 이성태는 지금 내가 꽤 탐내고 있는 선수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직설적인 방법으로, 이성태의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불편하신 것 같은데…… 하고 싶으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약간. 약간이면 된다. 이성태는 아마 이근택이 했던 말 중 이상했던 말을 하고 싶어 근질근질할 테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녀석은 미끼를 물었다.
“하…… 나 참. 제가 이창현 선수한테 악의가 있거나 선수를 나쁘게 보거나 그런 건 아닌데…….”
***
이번 [더 헌터스 데이]의 시상식은 꽤나 이변이 많았다. 결국 헌터스 데이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식순은 후에, 선수들끼리 만남을 가지는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 만남에서 가장 큰 대화의 화제를 가져가는 것은 역시 수상자들이니까.
그렇기에 보통 수상은 가장 멋진 선수. 뛰어난 플레이어에게 집중되어 있을 텐데……
‘막 1부에 승급한 선수랑 팀이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간다고?’
처음엔 그것만으로도 조금 의아했지만…… 후에 나온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니 납득은 갔다.
저런 기교적으로 압살하는 장면을 포착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이성태 자신이 보기에도 꽤나 멋진 광경이었으니까.
그건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이근택 회장이 푸는 썰을 들었을 때는 그럴 수 없었다.
뭐? 미국 1부 헌터 홈에 가서 거기 헌터랑 시비가 붙었는데, “그쪽이 가장 자신있는 걸로 뜨죠?” 라고 했다고?
후…… 그래. 그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런데 거기서 헌터스 리그의 원거리 딜러가 자신의 주 종목이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던전 답파]미션에서 탑의 일선에서 활약하는 헌터를 이겼다고?
이것부터가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근택 회장님은 아마 녀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였겠지만, 한 술을 더 떠버렸다.
‘상대해본 것 중 가장 강한 상’를 재현하는 유물에, 중국의 웨이, 유럽리그의 여제. 아나같은 사람이 나왔다고?
거기에선 이제 더 이상 반박할 힘도 없이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저 말에 웃으면서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 동조하는 녀석들까지. 모두 모질이로 보였다.
심지어는 별 상관이 없을 이창현까지, 조금은 부정적으로 보게 될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사실상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창현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버렸다.
“이창현 선수. 도는 소문에 허풍이 너무 많더라구요. 이근택 회장님이 양념을 과하게 치시는 것 같던데. 그런 건 선수 당사자한테도 안 좋은 거 아닐까요.”
약간은 무례할 수 있지만, 그래. 그렇게 과하면 선수한테도 별로 안 좋을 수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부 사실이라면요?”
녀석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