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같은 장소, 다른 감성
동종업계 종사자들과 관련자들이 모이는 파티. 그런 파티에 간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굳이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없는 녀석들도, 여기에서 근황이 어떤지 보게 되니까…….’
더 헌터스 데이의 테이블은 배치부터 1부, 2부, 3부의 구역이 잘 눈에 띄지 않게 나뉘어져 있었으니……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같이 더 헌터스 제네레이션에 참가했었던 녀석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 중엔 의외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높이 올라온 녀석들도 있었고, 반면 성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3부에 머무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무리 성장성이 있는 능력과 잠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지도자와 팀원을 만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니까…….’
이런 걸 보면, 종종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자력으로 쉽사리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니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이번에도 너 빼고 다 술 마셔서 그런 거야?”
“……뭔 소리야. 한결이도 있고, 유현이도 술 안 마시는데.”
또 틈이 나니 약 올리려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김도준이 보였다.
따지고 보면, 이 테이블에 있는 녀석들도 그렇다.
적게 잡아 봐도 몇 명은 이 팀에 들어옴으로써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능력 키워 줘. 맞춤형 훈련 시켜 줘. 미국까지 데려가서 한국 선수들은 꿈도 못 꿀 경험까지 시켜 줘.
이쯤 되면, 팀에 있는데 성장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더 이상한 것이리라.
그래서 각설하고 좋은 녀석들을 데리고 오려면 이 녀석들을 내가 잘 이끌었고, 우승을 넘어 국제 리그에 나가도 좋은 모습을 보일 거라는 비전을 보여 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대다수의 헌터가 모여 있을 때 딱 보여 줘야 효과가 일품인데, 그렇다고 해서 뜬금없이 나가서 차력쇼를 보여 줄 수도 없고.
그렇게 무언가 이번 파티가 끝나기 전.
인재 선수들에게 보여 줄 만한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하던 때에, 갑작스레 파티회장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 파티홀 앞쪽에 설치된 무대. 그곳에 불이 들어오며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직접 어필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
한국 헌터스 리그 1부는 2부나 3부에 비해서는 훨씬 팽팽한 양상이었다. LTD가 1황이라고는 하지만, 승리 경기 수는 2등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2등부터 8등까지의 승수도 거의 비슷했다.
이른바 잘 비벼진 비빔밥처럼, 마지막 시즌까지도 쉽사리 등수가 바뀔 수 있는 리그.
그게 한국 헌터스 리그였다.
그렇기에 국제 랭킹으로 보면 밀리는 부분이 많다고는 하나, 한국 내부에서는 치열하고 꿀잼인 리그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그만큼 명경기라고 생각할 만한 경기가 많기도 했고.
그런 한국 헌터스 리그에서 시즌이 종료되고 동시에 [더 헌터스 데이]에 발표되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
이건 분명히 큰 명예였다.
‘그리고 작년만 하더라도, 넛튜브 조회수 차이로 아슬하게 밀렸을 뿐이고…… 이번엔 분명히 수상 가능성이 높아.’
1부 리그, YYG의 이사랑은 올해야말로 시상대에 오르는 명예를 거머쥘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애초에 시상대에 오를 걸 생각하고 화려한 드레스와 헤어 메이크업까지 하고 나왔기도 하고.
최근 챙겨본 한국 헌터스리그 넛튜브 영상중에서도 이사랑의 활약 영상은 손에 꼽혔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기다리던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진행자의 별로 궁금하지 않은, 상투적인 서두. 한 귀로 흘리는 듯 시간을 보내니 어느샌가 벌써 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상의 경우는 보통 ‘신인상’. 작년엔 3부 선수가 받아서 꽤나 화제였지만, 보통은 2부 선수가 받는다.
뭐, 사실 2부 선수던 3부 선수던 이사랑에게 신인상은 큰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진행자] : 그럼 이번 시즌 대망의 신인상은……! PER 소속이자 아카데미 팀에 속한 이정훈 선수입니다!
‘아카데미 팀이라…… 3부인데 신인상을 받았다고? 제법인걸.’
어려 보이는데 꽤 싹수가 좋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거고,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신인상이야 2부나 3부 선수에게 던져주는 거의 유일한 상이고, 이제 나머지 상들은 화제성과 실력이 출중한 1부 선수들이 거의 채가니까.
이제 곧 이사랑의 이름이 호명될 수도 있으니, 긴장하고 귀를 기울였다.
[진행자] : 이번에는 새로 신설된 상. 1대1 베스트 플레이어 상입니다.
헌터스 리그 1대1 랭킹전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상입니다.
팀 PER의 윤한결 선수!
박수갈채가 쏟아지는데 이사랑은 어안이 벙벙했다.
1대1 베스트 플레이어 상?
지금까지 없던 상이었기도 하고…… 더군다나 1부 선수라면 전부 알고 있는 이사랑이 모르는 사람이 탄 상이라 더 그랬다.
그래도 뭐……
‘하긴. 1부 선수인데 랭킹전에 시간을 많이 쓰는 선수들은 없으니까…… 헌터스 리그 정규 7대7보다 1대1 랭킹전 방송으로 돈 버는 헌터인가 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서야 진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진행 대본을 읽고 있던 진행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허허 웃고 있었다.
그러곤 하는 말이.
[진행자] : 허허……이거 어쩔 수 없군요. 1부의 새로운 슈퍼 루키 팀이 생성을 알리는 걸까요?
‘올해의 미디어 상’. 그리고 ‘올해의 하이라이트 상’ 동시 수상자!
‘동시 수상이라고…….’
이사랑이 의아해할 무렵. 전혀 알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진행자] : PER의 이창현 선수! 축하드립니다!
‘……??? 이창현?’
순간적으로 너무 어이가 없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
1부 정규 리그와 포스트시즌 넛튜브 조회수까지 비교해 가면서 미리 찾아봤던 미디어 상 경쟁자에는 저런 녀석은 없었을 텐데……
그것도 못해서 ‘올해의 하이라이트 상’이라고?
1부에서 경기하며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녀석이 튀어나왔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지금껏, 그런 상들은 당연히 관중이 많고 화제성이 큰 1부 팀들과 그 선수들이 가져갈 수밖에 없는데……
의아해하던 찰나, 수상소감을 듣기 전. 진행자 뒤에 있는 화면에서 ‘올해의 하이라이트’로 뽑힌 장면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사랑이 본 적 없는 경기.
그러나, 어찌 보면 1부의 경기라고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1부 승강전의 경기였다.
그곳에서 그 녀석은 무기 하나로 1대 7을. 빛이 스며들어오는 성스러운, 하지만 낡은 신전에서 마치 빛의 실을 자아내는 탄환으로 상대해 내고 있었다.
헌터스 리그 종사자로서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왜 이렇게 늦게 봤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같은 상을 둘러싸고 경쟁하던 관계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거기에 홀려 아무 생각도 이사랑에게서 떠오르지 않고 있던 순간.
녀석이 마이크를 건네 받았다.
[이창현] : ‘올해의 하이라이트 상’은 받을 거라 예상하긴 했는데…… ‘미디어 상’은 의외네요. 보니까 넛튜버 분이 편집해 주셨는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걸로 저희 PER이 올해 시상식에 받은 상이 네 개군요. 정훈이의 신인상, 그리고 한결이의 1대1 베스트 플레이어 상. 그리고 미디어 상과 하이라이트 상……
‘그러고 보니 저 진짜로 한 팀이 상을 네 개나…….’
상을 네 개나 받는 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보통 그런 경우는 1부에서 다른 모든 팀을 압도한 팀이나 그랬던 것 같은데.
겨우 2부에서 이제 1부로 올라오는 팀이 저렇게 몰아받는다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사랑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없이, 이창현은 계속 소감을 말해 나갔다.
[이창현] : 작년에 제가 받은 신인상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모든 상을 휩쓸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뭐, 솔직히 받을 만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리고 재작년. 오디션프로그램으로 심사위원이나 선생으로 나오셨던 분들이랑 이제 대등한 높이에 서서 경쟁을 이번 시즌부터 하게 될 텐데, 재미있는 경기가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무대를 내려갔다.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듯, 정적이 흐르는 파티 홀.
압도적인 하이라이트 영상이 비치는 모습을 배경으로, 2부. 3부가 위치한 테이블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와…… 2년 만에, 3부에서 1부로 올라간 것도 모자라서 상을 저렇게나 한 팀에서 많이 탈 수가 있나?”
“PER 저기. 구단주 겸, 감독 겸, 선수잖아 쟤가.”
“아…… 그게 저 녀석이구나. 당장 저렇게 시작할 땐 말도 안 된다고 말 많았는데 저게 저렇게 되나?”
“1부 생각보다 별거 아닌 거 아니야?”
충격적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한국 헌터스 리그에는 지금 무언가 이사랑이 모르고 있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2, 3부 선수들은 희망을 꿈꾸고, 1부 선수들은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는 건가.’
이창현이 무대 위에서 본 광경은 꽤나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1대1 베스트플레이어상을 윤한결이 받는 것과 이정훈의 신인상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덕분에 한국 헌터스 리그 선수 전원의 뇌리에 PER이라는 세 글자를 강하게 박은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나만 뛰어난 게 아니라, 우리 팀 자체를 다르게 볼 테니까.’
심지어 이젠 남은 상을 모조리 다른 팀이 휩쓸어가도, 상 개수만 따졌을 때 밀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후로 진행된 시상식은 대부분 예상대로의 순서였다.
몇 개는 LTD가. 그 외에는 또 다른 팀이. 적당히 상을 나눠 가져갔다.
그중에서도 이번 파티의 마지막 시상은 MVP 시상이었는데……
수상자는 작년과 다를 바는 없었다.
똑같이 강준혁 선수였으니까.
다만, 좋은 상을 받는 것에 비해 별로 안색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작년에도 수상소감을 굳은 표정으로, 국제 리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자리를 가시방석처럼 느끼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반대급부로 부상하는 우리 팀을 보고 더 초조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고.’
회귀 전에는 이맘때즈음, 이미 강준혁은 해외리그로 떠서 본 적이 없었는데.
[마나전개]까지 사용할 수 있는 선수가 저리 굳어 있으니 그리 보기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강준혁] : 국제 리그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도,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점…… 다른 선수들, 한국 리그의 모든 선수들의 이름을 걸고 나간 자리에서 또 참패를 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국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MVP를 받은 것에, 감격이다. 좋다. 감사하다. 그런 이야기는 일체 없는 담담하면서도 씁쓸해 보이는 소감.
그 모습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강준혁이 해내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을, 이번엔 우리 팀이 한국 리그를 제패하고 해내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