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맞춰진 눈높이
장소는 PER의 감독실. 몇 명의 코치가 앞에 앉아있는 가운데, 나는 한 손으로 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도공학무기변환]으로 계속해서 형태가 변환되는 무기.
그중엔 지금껏 상식에 얽매여 별로 상상해 보지 못한 무기도 섞여 있었다.
미국에 다녀온 후로, 상식과 습관의 틀을 깨기 위해 소설까지 찾아 읽어 가며 다양한 형태의 공격 방법과 무기를 공부하고 있었으니까.
‘뭐……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마도공학무기변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회귀 전에 주로 근거리에서 사용했었던 ‘그것’같지만…….’
어찌 되었든 헌터스 리그는 변수와 그에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한 스포츠. 보다 다양한 무기를 익히는 것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레만님이 들으셨으면 아마 크게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말은 거칠고 투덜거리면서 하시더라도, 누구보다 헌터의 뜨거운 모습을 보시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아시겠지만 한국 팀의 국제 리그 예선탈락으로 [헌터스 데이] 일자와 향후 리그 일정까지 잡힌 모양이더군요.”
김성준이 내 앞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거기엔 빼곡하게 1부 리그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가깝게는 2부 때도 했던 [헌터스 데이] 뿐만 아니라, [1부 오프닝 영상 제작]이라던가, [팀별 사전 인터뷰] 라던가. 하위 리그와는 달리 잡혀 있는 경기 외 일정이 많았다.
‘이런 게 있었지. 굉장히 오랜만이네.’
헌터스 리그는 헌터끼리의 전쟁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스포츠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만큼,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1부 리그부터는 슬슬 경기력 외에도 각 팀들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일종의 트랜드였다.
승리한 날, 돌아가면서 팬들과 소통하는 라이브를 켠다던지. 이벤트전에 참가해 아마추어 팬들과 한 판 승부를 해 준다던지. 오프닝 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어쨌거나, 일 년만에 다시 [더 헌터스 데이]인가…….’
강준혁을 앞에 두고, 1년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게 그대로 이루어진 셈이라, 꽤나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LTD랑 한 연습경기에서 소기의 성과까지 거두었으니 그 이상으로 봐야 할 수도.
“[더 헌터스 데이]…… 이번엔 되도록이면 화려하게 가죠? 어차피 레만이 돈을 아끼고 그러는 스타일도 아니신 것 같으니. 애들한테도 잘 이야기해 주시구요.”
저번 파티에서는 2부에 막 올라선 신삥 팀이었는데, 이번에는 파죽지세로 파란을 몰고 오는 1부 팀이다.
이번 파티는 어떨지. 조금 기대가 가기 시작했다.
***
한국 헌터스 리그 1부가 시작되기 전, 가장 중요한 일정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선수 충원이었다.
과거 3부나, 2부에 있을 때는 액수가 커도, 장래성 있는 선수들은 거절했지만……
‘이젠 1부니까.’
어느 정도 좋은 선수를 꼬실 체급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1부에 팀이 승급한다고 해서, 다소 페이를 높게 준다고 해서 선수들은 쉽게 오지 않았으니까.
보통 헌터스 리그의 1부 헌터쯤 되면, 금전적인 문제로부터는 대부분 자유로운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뛰어난 선수일수록, 돈보다는 우승. 팀의 비전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생각하면 이번 헌터스 데이 때는 물색해 둔 선수들을 직접 만나 보는 게 좋으려나…….’
아무리 파죽지세로 1부까지 올라왔다고 한들, 반신반의하는 녀석들이 많을 텐데.
뭐라도 직접 어필해 보는 게 좋으리라.
‘되도록이면 LTD의 아현 같은 녀석을 한 명 영입하고 싶은데…… 녀석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영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비슷한 포지션의 다른 녀석은 없나.’
근거리와 중거리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딜러 겸 탱커.
그런 포지셔닝의 선수가 한 명 있으면 경기의 안정감이 아무래도 달라지니까.
회귀 전 기억을 뒤지며 그런 선수가 누가 있었나 생각하는 나날 동안, 어느덧 [더 헌터스 데이]의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성준에게 1부와 2부의 유망 선수들의 프로파일을 정리해 달라고 한 채였다.
***
이윽고 [더 헌터스 데이] 당일.
이제 막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 중인 PER의 홈은 활기에 차 있었다.
다만 파티 당일에 허둥대면서 준비했었던, 부산스러웠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약간은 숙련된 것처럼 다소 침착하고 익숙하게 준비하는 느낌.
다들 어느 정도 슬슬 어엿한 헌터스 리그 선수가 되었다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약간 수수하고 눈에 띄지 않게. 무난한 복장으로 갔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엔 다들 꽤나 한껏 멋을 낸 모습이었다.
“저번에 한 번 다녀왔다고 꾸미는 거야?”
“뭐래~. 원래 상 받을 사람은 꾸미고 나가야지 안 어색하거든?”
저번에 미디어 상이었나? 뭔 상을 받았었는데. 그걸 이번에도 기대하는지, 머리에 무스를 바르던 김도준이 말도 안 되는 말로 대꾸해 왔다.
이번에도 김도준이 상 받으면 말세라고 욕해야지.
“그나저나 너 미국에 있을 때 어째 얼굴을 많이 못 본 것 같은데. 레논 만나러 갔을 때, 어딜 돌아다녔었던 거야?”
“그건 이번 시즌 연습이 시작되면 알…….”
김도준이 대답하려던 찰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후,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오스틴이랑 뭔가 열심히 대화하는 것 같던데. 또 요상한 거라도 만지작거리다가 왔겠지.
안 봐도 대충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듣다 말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생각치 못했던 의외의 풍경이었다.
평소와 달리 머리를 묶지 않아, 연한 핑크빛을 내는 머리칼이 휘날리고 있었다.
“와…… 염색하고 온 거야? 색 완전 이쁜데?”
“내가 저번 파티 다녀오고 난 뒤에 연주한테 말했었거든. 그때 다들 화려하게 하고 오기도 했고, 이제 상위리그는 헌터 이미지나 꾸미는 거 하나하나도 중요한데 머리라도 좀 해보는 게 어떻냐고…….”
과거 이연주와 함께 기존 PER의 팀원이었던 이길한이 말했다.
뭐,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특히 1부리그쯤 되면 선수들도 각개 아이돌처럼 개성을 많이 신경 쓰니까.
1부 리그에서 아마 검은 머리인 사람이 더 적으니, 새로운 일도 아니긴 했다.
저기 뒤에 폼 잡고 있는 류재준 녀석도 어두운 파랑색에 가까운 남색 계열의 염색을 하고 있었기도 하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좀 의외이긴 했다.
평소엔 꾸미는 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보이던 이연주의 변신이었기에 그랬던 걸까.
그걸 보고 한 마디 하려던 찰나,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좀…… 예쁘달까. 아니, 그렇게 말해 줄 수도…….”
약간은 놀란 듯, 평소와 달리 자신감 없고 더듬거리는 듯한 내 말투에, 그 말을 같이 들은 PER선수 중 몇몇은 질색했다.
물론 그에 비해 이연주의 반응은 꽤나 볼만했는데, 수줍어하면서도 좀 보람을 느꼈는지 좋아하는 듯했지만……
내가 이 말을 하고서 씨익 웃는 것에서 눈치챘던 것일까?
“너…… 너어…….”
이연주가 좋아하다 말고, 분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억해 낸 모양이네.’
저번 파티 때, 정장을 입었을 때 이연주가 내게 했던 말.
‘좀…… 멋지달까. 아니, 그렇게 말해 줄 수도…….’
라고 했던 말을 따라한 것을.
꽤나 기억력이 비상하네.
그럼 아무래도 이것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을 더듬는 척. 자신감 없는 척. 말했던 것을 깜빡 잊어버린 것처럼 능청스럽게 말했다.
“뭐라고~ 말 더듬는 찐따라서 안 들리는데~? 크게 좀 말해 봐~”
그 말에 이연주의 반응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 극렬했다. 평소엔 소극적이기도 하고, 별로 극적인 변화가 없었는데. 이 말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끝내 폭발한 것인지, 이연주가 [속박]을 사용하려는 듯 마나가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기껏 파티를 위해 빳빳하게 연미복을 다려입었는데, 구겨질 수야 없지.
나는 빠르게 현관을 벗어나며, 몇 마디를 내뱉으며 바깥으로 나갔다.
“그래도 그렇게 하니까 훨씬 낫네. 머리 색도 이쁘고.”
처음 만났을 시절, 3부 PER에 있던 이연주와는 꽤나 달라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시절, 3부 PER에 있던 이연주와는 꽤나 달라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도. 그리고 이 팀도. 팀원도. 모두 달라지고 있었다.
***
숙소에서의 이런저런 헤프닝도 잠시.
이전과 다르게 이미 [더 헌터스 데이]를 한 번 겪어 보았기에, 이번에는 준비하는 것도. 파티장에 입장하는 것도 전처럼 어색한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전과 다르게 체감되는 것은 역시나 인원이 늘었다는 점이었다.
“저번이랑 다르게 이번은 좀 침착한 느낌이네?”
“헌터한테 한 번 겪어 본 일은 숙련되었다고 봐야지. 그나저나 정훈이도 따라왔네. 괜찮은 거야?”
“당연하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팀과 별개로, 소속은 우리 팀으로 되어 있으니까.”
새삼 이번에는 식구가 전에 왔을 때보다 불어난 것이 체감되고 있었다.
저번에 이 파티에 참가할 땐, 김유현이나 이정훈이 없었을 뿐더러 류재준도 우리 팀이 아니었는데.
물론 그래도 아직까진 팀의 규모가 작긴 했다.
다른 1부 팀들은 대부분 최소 14명 이상의 선수를 데리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어찌 되었건, 팀의 체급이 늘어서일지. 혹은 인원이 늘어서일지.
……그것도 아니면 계속 우리 팀이 계속해서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서일지.
‘지켜보고 있는 헌터들이 꽤 많네…….’
지나가든 말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작년의 파티와는 달리 시선이 느껴졌다.
전에는 우리가 다른 팀을 보면서 놀라고 좋아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 와서는 그 입장이 반대가 된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 팀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헌터들도 대부분이 익히 아는 녀석들이라 더 재미있기도 했다.
‘저 녀석은…… 헌터스 -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 때의 강사로 초빙되었던 녀석 같은데. 이성진 이랬었나?”
그 중엔 회귀 후 막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나를 평가했던 강사도 있었고.
‘조아라 저 사람도, 이쯤 되니 저 사람도 정겨워질라고 그러네.’
왜인지는 몰라도, 한참 오래 전부터 나를 끈질기게 주시하고 있는 헌터도.
‘이민석 헌터랑 이근택 회장님…….’
그리고 마지막으론 아직 닿지 못한. 국제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헌터이자, 나에게 꾸준히 호의를 보내 온 헌터도 있었다.
파티회장 안쪽의 PER 팻말이 적혀 있는 테이블까지 걸어가는 동안, 시선을 보내오는 수많은 헌터들.
몇몇 팀원은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눈길을 피하거나 머쓱해 했지만……
‘앞으론 익숙해져야 할 거야.’
저번 파티 때는 신경도 안 썼던 저들이, 이번을 시작으로 점점 더 우리를 경계하게 될 테니까.
전에는 그들의 평가를 한마디 한마디 신경 써야 하는 심사위원과 지원자의 관계였다면.
지금.
PER의 팀원들과 나는 드디어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 서 있었다.
‘참 오래도 걸렸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