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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75화 (175/270)

175화 발상의 전환

공격하는 쪽 대 방어하는 쪽. 어느 쪽이 유리한가.

그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다.

종목에 따라, 수준에 따라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극명하게 다른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헌터끼리의 싸움의 경우도 그랬다.

근접 딜러인가 원거리 딜러인가. 수준 높은 헌터끼리의 싸움인가, 평범한 헌터끼리의 싸움인가에 따라 어느 쪽이 유리한지 갈렸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굳이 말한다면.

‘톱급 헌터들끼리, 그것도 공격 측이 원거리 딜러라면 보고 피할 수 없는 광선 따위를 쏘지 않는 이상…… 공격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그것이 내 결론이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아직 헌터로서는 톱급이 아니지만 적어도 사격 기술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가까울 텐데. 내 탄알이 하나도 닿지 않는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저것들’은 예측해서 피하는 것도 있겠지만, 예측하지 못하는 도탄사격마저도 모두 피해 냈다.

그건 즉, 각성자인 헌터들 중에서도 초인적인 동체시력과 집중력, 반사신경으로 보고 피했다는 것.

탄의 수가 적지도 않았고, 페이크까지 섞여 있었는데도 그렇다는 건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방증이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선 것은 워낙 오랜만이었기에 그랬던 걸까.

되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내가 그냥 약자는 아니지만.’

무한잔상이라는 밈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미국의 유명 헌터 노아.

나는 회귀 전에 그와 마주해서 싸우게 되었을 때, 피할 수 없는 공간으로 유도해 결국은 머리에 탄을 꽂아 넣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소문이 있는 중국의 웨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아무리 빠르게 이동한다고 한들, 모든 순간을 그런 속도로 움직이며 활동할 수는 없는 법. 심리를 읽어 허점을 완벽하게 파악한 순간, 그의 관자놀이에는 내 탄환이 섞여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보낸다는 유럽의 여제 아나. 그의 눈에는 그 어떤 탄환도 멈춘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녀 역시도 이겨 냈다.

‘아…… 그땐 혼자가 아니었긴 하네.’

피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류재준이 도와줬었기에 가능했었던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핵심은 하나였다.

아무리 내 눈앞에, 내가 약해진 상태에서 강적이 나타났다고 한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잃지 않은 채였다.

그건 바로 승리의 경험이었다.

도탄 사격에 집중하느라, 머리에 흥건한 땀을 한 번 닦아 내고. 나는 다시금 또렷하게 표적을 바라보았다.

***

이창현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 대기실은 아까 전보다도 훨씬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야, 어제에 이어서 이곳에서도 보기 힘든 볼거리였으니까.

“그러니까, 유물의 능력이 알려진 대로가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이야기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아나 선수에, 노아 헌터님. 그리고 웨이까지 나오겠어. 저 사람들이 아무하고나 상대해 주는 줄 아는 건가?”

“그래도 어제 보면 저 꼬맹이, 꽤 했잖아?”

“그런 의미가 아닌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는 그 사람이 상대해 본 사람 중 맞히기 제일 어려웠던 사람만 표적으로 등장했기에, 이창현의 상대로 웨이와 노아. 아나가 나온 것에 대해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실은 저 녀석이 그 헌터들과 싸웠다는 이야기부터, 어쩌면 공동제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헛소리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흠…… 근데 역시 제가 보기엔, 저 말들은 다 틀린 것 같은데. 창현이는 처음 헌터가 된 것도 한국에서 검사 받아서 된 거고, 각성자 판정받자마자 헌터 한국 오디션에 나온 게 첫 행보라고 알아서.”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PER 팀원들을 향해 물어오는 말에 윤한결이 답했다.

그 말에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유물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딴 게 뭐가 중요한가? 결국 한낱 훈련시설일 뿐인데. 저런 건 어차피 다 허상이야. 중요한 건 과녁을 맞추냐 못 맞추냐. 그것뿐이지.”

언제 나타났었던 것일까.

혹은 어제의 사투에서 꼴사납게 패배했었던 이미지를 회복할 기회라고 여겼던 걸까.

공포에 벌벌 떨며 도망가다가 사냥당했던 저스틴이 어느샌가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저스틴. 저 녀석의 사격을 봤잖아. 그걸 다 피했다고? 그것도 각 표적들이. 아니 선수들이 자신들의 시그니처 능력들을 사용하면서.”

“헹. 아직도 모르겠나. 그래 봤자 결국 표적. 저것들은 공격을 하지도 않고, 피하기만 하는데, 그걸 못 맞추면 병신 아니겠어? 낄낄낄.

저것들이 어떻게 피하든 간에, 얼마나 잘 쏘든 간에 못 맞히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을.”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말하는 저스틴을 두고 도저히 계속 볼 수 없었는지.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헹. 미국 헌터라더니…… 자기는 털려 놓고…… 또 이렇게 말하면…… 발끈해서 ……양아치나 다름없게 화 정도나 내겠지.”

그런 저스틴을 보고 비아냥거린 사람은 놀랍게도 다른 누구도 아닌 이연주였다.

평소라면 소극적으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었던 걸까.

그 말에, 저스틴을 잘 아는 미국 헌터들은 불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고 긴장했지만……전혀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저스틴은 비꼬는 이연주를 보곤 오히려 되레 비웃은 것이었다.

“너야말로 헌터들을 우습게 보는군. 뭐, 국제 리그 예선에서나 탈락할 수준의 리그의 팀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

“방금 저 녀석이 쏘아 낸 탄환. 그래. 그 도탄으로 모든 게 결정된 거다. 아직도 모르겠나?

수준 높은 헌터들은 탄환을 보고 피할 정도의 반사신경과 동체시력이 있기 때문에, 도탄으로 변칙을 줬었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없었지.

그럼 남은 것들이라고 해 봐야…… 심리전을 이용해 허점을 노리거나, 공간의 이동에 제약을 걸어 피할 곳을 없게 만드는 것, 그마저도 안 되면 협공하는 것이 정공법일 텐데.

녀석이 이중에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지?”

그 말에 이연주가 정곡을 찔린 듯 표정을 찡그렸다.

생각해 보니, 저스틴의 말대로였다.

지금까지, 이창현이 맞추기 어려운 상대를 어떻게 상대했나 생각해 보면 결국은 저것들이었으니까.

이근택 회장을, 강준혁 선수를 꿰뚫은 것은 심리적 허점을 꿰뚫은 한 방.

헌터스 리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머지 모두를 쓰러뜨린 것은 건물을 무너뜨리며 파편들을 이용해 이동의 제약과 공간의 제약을 걸어, 움직임을 제한해 쏜 한 방.

3부에서 류재준을 결정적으로 꿰뚫었을 때의 한 방은 이연주의 [속박]과 함께한 한 방.

수준 높은 설계가 들어가 있었지만, 본질은 저스틴이 말한 정공법의 본질과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저곳에서 이창현은 혼자였고,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 없었으며, 상대는 자아가 없었기에 심리전을 걸 수 없었다.

“……저스틴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이해하지만, 녀석도 일류 헌터. 아무리 어제 추하게 패배했다고 한들 말이네…….”

심지어 레논마저도 이연주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무슨 방식이던 이기면 되는 헌터스 리그가 아니라, 기술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니. 어쩔 수 없네…… 훈련은 고지식한 게 되레 더 도움이 되기 마련이니. 그리고 ‘유물’을 이용한 훈련 기구라는 게 다 이렇네. 그러니 못 맞추더라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니 쪽팔릴 필요는…….”

“…….”

흥미진진하지만, 멋진 보습을 보여 주더라도 결국 맞추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가 떠도는 가운데.

레논이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있던 가운데.

눈앞에서 하나의 표적.

미국의 1세대 헌터 노아가 사라졌다.

모두가 긴장을 풀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눈으로 쫓을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난 것이었다.

***

헌터스 리그에는 굉장히 다양한 헌터들이 있다.

특히 그 무대를 국제 리그, 세계로 돌리면 더더욱. 능력은 보잘것없으나, 그 활용 능력을. 창의성을 이용해 리그를 주름잡는 헌터. 자신의 모자란 점을 마나 장비로 채우는 헌터.

그런 것 없이도 체술과 마나 장비만으로 떼우며 백병전을 하는 헌터. 그리고…… 압도적인 마나로 아무런 기술 없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정석적인 재능빨 헌터까지.

헌터스 리그의 세계에는 굉장히 다양한 싸움방식이 존재하고, 그게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 낸다.

능력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연주의 [속박]은 상대를 묶는 데 사용할 수도 있지만, 공중에서 발 디딜 곳 없어 떨어지는 가운데, 손잡이로 사용할 수도 있다.

능력마다 태생적 한계는 있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자유로운 것. 그것이 능력이다.

‘그래서 평소에 어떻게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다양하게 쓸 수 있을까. 이미 내 능력에 대해서 다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재미있게도, 다 알았다고 생각했기에 사고가 굳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금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궁리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 이런 걸 만들어 낼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

우우웅 ㅡ !

무언가가 강렬하게 시동하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마치 레이저 빔이 나가듯, 얇디 얇은 한 줄기의 광선이 그 공간을 갈랐고, 동시에 한 표적이 자취를 감췄다.

어두컴컴한, 표적만 존재하는 공간 속. 그 중앙에 선 이창현에게서 쏟아져나온 한 줄기의 빛은, 정확히 표적을 꿰뚫고 있었다.

누구도 맞출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표적을.

이건 피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무기였으니까.

[마나 입자가속기]

레이저 병기의 속성과, 마나의 속성을 융합한 새로운 속성의 마도공학 병기.

엊그저께 본 국제 리그 경기의 에단에게서 영감을 받은 새 결전 병기였다.

회귀했기에, 정상에 서서 오랫동안 그 폼을 유지했었기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능력의 극한을, 끝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활용 방법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지도.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성장 루트를 짜야 하는지도.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아껴 둔. 마나량이 더 늘면 사용할 수 있는 최종 성장형 전술과 무기. 능력의 궁합까지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오만이었던 게 아닐까?

세상엔 아직 겪어 보지 못한 고난이 있고, 가능성이 잠들어 있었다.

[만개]하지도, 동료에게서 도움받지도, 경험을 이용해 심리전을 걸지도, 지형을 이용해 상대를 몰아넣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방법이 내 안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제한되고 또 제한되어, 무기들을 사용할 수 없었던 그 순간.

그 순간에 발견한, 자신도 모르는 무기.

기존의 승리 경험도 소중하지만, 거기에서 답보하지 않고 한 발 더 내딛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역시 헌터짓 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니까.”

한 번 번쩍였던 빛줄기가 사그라들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 바라본 것은 이제 다음 표적들이었다.

“우선 한 개. 그리고…… 다음인가.”

그 사람을 실제로 구현하는 건 아니기에,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대로 위협을 느꼈던 탓일까?

웨이는 지금까지와 달리 멈춰 서지 않고, 번쩍이는 섬광처럼 계속 움직이기 시작했고, 유럽의 여제. 아나의 형태를 한 표적은 찡그리곤 총구를 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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