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승리의 기억
‘원거리 딜러의 훈련을 돕는, 표적을 맞추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유물이라…….’
회귀 전에는 들어본 바 없는 유물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 시설 자체를 이번 삶에서 처음 알았으니 당연한 건가.
그나저나, 파괴력과 기본기를 겸비한 에단이 꽤나 고전했었다니. 나도 꽤 긴장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체 무슨 표적이길래 3번밖에 맞추지 못한 거지?’
에단이라면 표적에 방어 기능이 있더라도 그것째로 꿰뚫어 버렸을 테고,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상당한 범위를 커버하는 사격으로 죄다 쓸어버렸을 텐데.
그런 에단이 표적을 세 개밖에 맞추지 못했다 하면…….
‘표적의 갯수가 적나?’
아니면 표적이라는 것이 예상보다도 훨씬 엄청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유물에 손을 댔다.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칠흑 같은 색의 검은 구.
그걸 만지자, 나를 중심으로 검은 블랙홀이 생기며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환상이 느껴졌다.
눈을 한번 깜빡이자, 어느새 주변의 공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공간에 나 혼자 내버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서 있는 것도 신기하네.’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디디고 서 있었다.
자, 그래서 표적은 뭐냐.
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생겨난 표적들의 면면을 보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표적이 인간일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염두해 두고 있었지만, 이런 사람들이 나올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정확히 몇 명인지 어둠 속에 있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보인 몇 명만 하더라도 지금 맞출 수 있을지, 솔직히 감이 오지 않았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정장을 입은 배우 같은 장신의 남자.
압도적인 속도로 잔상만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1세대 헌터 노아.
그리고 한 손으로 뒷짐을 진 채 지긋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남자. 최속의 남자라고 불리는
중국 리그의 웨이.
헌터스 리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치렁치렁한 장식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
유럽 리그의 여제라고 불렸던 아나.
그 외에도 아직까지는 한국 리그에 등장하지 않아 별로 화제가 되진 못했지만 압도적이고 개성 있는 능력으로 유명했던 이경찬까지.
칠흑 같은 어둠에, 완전히 보지 못했지만 그들 외에도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잔뜩 표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왜 에단이 표적을 많이 맞추지 못한 것인지. 그리고 이 유물이 생성해내는 표적이 무엇인지.
‘내가 제일 맞추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이 생성되는 건가.’
그렇다면 세 개를 맞춘 것도 아주 잘한 것이라고 봐야겠지.
지금 내 표적으로 나온 면면들만 봐도 그렇다.
아직 두각을 드러내지 못해, 헌터스 리그에서 알려지지 못한 선수도 있고, 한참 미래에나 활약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결국 리그의 수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상향한다…….’
그들이 지금 유명한 헌터들보다 잘하면 잘했지, 못할 리는 없었다.
거기에 구관이 명관이라고 미국의 헌터 유명 인사, 노아까지 껴있었으니.
그야말로 회귀 전 정상에 도달하기까지.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켜 나가면서 만났던 제일 맞추기 어려운 상대들을 모아 놨다고 봐도 좋았다.
다행히도 공격을 해 오지는 않는 걸 보면, 순수히 피하기만 하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난이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들은 원래 모두 다 다른 팀. 실제 본인이 아니라곤 하나, 이렇게 모아 놓고 상대해 놓을 일은 평생 없을 테니까.
‘역시 유물이 있으면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니까.’
다신 없을 최고의 연습 기회라는 건 분명했다.
***
한편, 이창현의 표적이 막 나타난 순간.
이걸 지켜보고 있던 바깥 대기실은 술렁이고 있었다.
이창현이 겪어 본 최악의 선수는 기껏해야 한국 선수들. 혹은 한국의 1세대 헌터 정도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으니까.
척 봐도 서양 사람처럼 생긴 사람도. 중국 헌터도 있었다.
심지어 헌터스 리그 업계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원로 헌터이신 노아님이 어째서…… 한국 신예 헌터스 리그 선수랑 대련해 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그뿐만이 아니야. 옆을 봐.”
“아나…… 유럽의 여제잖아. 저 녀석은 또 왜 저기에…….”
모르는 헌터들도 섞여 있었지만, 지금 헌터스 리그, 그리고 헌터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압도적인 헌터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직접 상대해 본 표적만 나오는 게 맞나?”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항상 유물은 그것에 대해 모든 걸 알 수는 없는 법이지. 어쩌면 뭔가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레논으로서는 궁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인선만 보면, 아마 에단으로서도 상대해 보지 않은 유명 헌터들까지 섞여 있는데.
그것도 국적 구분도, 리그의 구분도, 헌터스 리그와 헌터의 경계도 상관없이. 그저 뛰어난 헌터들만 모아놓은 것처럼.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창현의 명성을 생각해 봤을 때, 절대로 저 사람들을 전부 상대해 봤을 리는 없었다.
표적으로 생성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헌터스 리그에서의 위치. 그 실력.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결코 쉽게 만날 수조차 없는 헌터들이었으니까.
이창현이 아니라 에단이었다고 하더라도 가능할까 말까 한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놀라움이 대기실을 휩쓴 것도 잠시.
잠시간 무언가 생각을 한 것인지 멈춰있던 이창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적이 흐르는 대기실에, 이창현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탕!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특이한 사격이었다.
비스듬하게 바닥을 쏘곤, 현란한 손놀림으로 이번엔 무릎 언저리의 높이를 쏜다. 그렇게 바닥부터 위까지 쓸어올리는 듯한 사격을 하고 있었다.
“저건 대체……?”
이해할 수 없는 기행.
그냥 대놓고 제대로 저격해도 맞추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저렇게 이상한 곳을 조준해서 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총이 격발되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서 대기실의 모두는 알 수 있었다.
이창현의 에테르 탄이 흘린 금빛 궤적이 얽히고 얽혀. 나아가는 궤도가 바닥에 튕긴 도탄과 다시금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무한히 새로운 모습을 자아냈다.
“……아름답다.”
마치 어둠을 배경으로 금빛 실을 이용해 실뜨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뿐만일까, 이 자리에 있는 노련한 헌터들은 그제야 이창현이 왜 저런 사격방식을 취했는지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저런 방식이 있을 줄이야. 총구의 방향이나 궤적을 보고 타이밍을 맞춰 피하는 건 불가능하겠군…….”
은은한 미소를 띨 수밖에 없는 그런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그리고 동시에 전술적 가치도 뛰어난 기술이었으니까.
헌터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서로를 예측해 움직여 나가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상대의 움직임이나 총구의 방향은 물론. 미세한 근육의 수축이나 팽창까지 포착해, 미래를 읽는 수준으로 공격을 예측하는 선수까지 있었으니.
그런 심리전의 영역이 강한 최상위권 헌터들의 싸움이었기에, 오히려 저 방식은 더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이 지나갈 틈 없이, 곡예를 돌며 전방위적으로 연발해 가는 이창현을 중심으로 금빛 궤도가 예측할 수 없이 얽혀 가며 공간을 장악해 나가는 가운데.
어쩌면 표적을 모조리 다 맞춰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보는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어 버리는 가운데.
이변 아닌 이변이 일어났다.
뻗어나가는 이창현의 탄환의 궤도가 표적들에 닿은 순간.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으니까.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표적이 이창현의 연발을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피해 내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한국에서 무한잔상이라는 밈으로도 유명했던 미국의 1세대 헌터 노아. 그는 가진 별명 답게, 마치 수십 개의 잔상이 생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리를 옮겨 가며 피하고 있었다.
중국의 웨이는 ‘섬광’이라는 이명답게, 이창현이 연발한 순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아예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유럽의 여제. 아나는 마치 혼자 다른 차원에 노니는 듯. 압도적으로 빠른 탄환을 가볍고 느린 동작으로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도 쉽게 피해내고 있었다.
“저 녀석은 누구지? 생긴 것 보면 한국 녀석 같은데…… 분명 맞은 것 같은데 전혀 사라지질 않잖아? 누구 아는 녀석 없나?”
심지어 이름 모를 한낱 선수까지도. 이창현의 탄환은 표적에게 단 한 발도 도달하지 못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황이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압도적인 변칙성으로 궤도를 전혀 읽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이창현의 사격테크닉에서.
그리고 한 번은 그걸 모조리 피해 버리는 이창현의 표적에게서.
물론 그렇다고는 하나, 아직까진 하나도 맞지 않은 표적의 승리였다.
이 싸움의 행방에 예측이 불가해, 모두가 숨죽이고 바라보는 가운데.
이걸 지켜보던, 이름 모를 한 헌터가 말했다.
“이 싸움…… 어떻게 되는 거지?”
***
한 번의 금빛 궤적이 모든 상대를 훑고 지나간 후.
내게도 쉽지 않은 사격이었기에, 머리칼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쉽지 않네…….’
사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결과이긴 했다.
이미 회귀 전 한 번 싸워 봤던 상대들인 만큼, 상대의 저력을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상대는 회귀 전, 내가 알고 있던 가장 강한 순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 반해, 나는 아직 회귀 전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도 벅차는데, 이렇게 다 맞추라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실제 헌터스 리그였다면 한 놈씩,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서 맞췄을 텐데.’
여기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순수하게 맞추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원거리 딜러 능력향상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듯한 시설.
거기엔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설계 능력까지 들어가 있지는 않았으니까.
‘하다못해 [만개]를 개방했을 때만큼의 마나만이라도 있었다면…….’
지금까지 마나 문제로 사용하지 못했던, 총의 세 번째 폼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한 놈씩 줄여 나가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
그렇다고 여기에서 관둘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나보단 센스가 별로인 에단도 세 개의 표적을 맞췄다고 했다.
상대하는 사람의 수준도 다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지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생각해야 했다.
상대는 헌터계의 스페셜리스트들이자, 무결점에 가깝다고 불리우는 사람들.
공략할 방법…… 약점이…… 있나?
찰나의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돌고 돌아서 결국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그래 봤자 결국 회귀 전에는 다 내가 이겼던 사람들이다.’
내 능력이 약간 약해졌을 뿐.
사람 자체는 다르지 않다.
능력과 마나가 줄었을 뿐, 기술은 더 갈고닦았으면 갈고닦았지. 결코 전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과거에 이겼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능력이 부족한 지금, 그걸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
모자란 능력만큼, 기술적으로 성장한다.
그거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