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회심의 일격
그런 말이 있다.
잘하는 놈이 결국 잘한다.
이 말을 듣고 뭔 개소리냐, 혹은 당연한 말을 뭐라도 있는 듯 말하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의 속뜻을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느 업계에 아무리 오래 몸담았더라도, 적당히 할 줄 아는 녀석보다 간혹 다른 업계에서 탑을 찍은 고인물이 거기서 더 잘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으니까.
예를 들면, 어중간한 축구선수의 결정력보다 깡통차기만 2만판 한 깡통차기 월드 챔피언의 결정력이 뛰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딴 월드 챔피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건, 헌터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저스틴. 그가 뒤늦게 도착하고서는 나를 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어느 업계, 분야에서 활약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먼저 도착했는지 궁금해?”
물론 대답은 단순했다. 내 공중 기동 능력은 기본적으로 압도적이다. 더해서 [꿰뚫는 눈]으로 훤하게 다 보이니 거의 날아가는 수준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가르쳐 줄 필요는 없었다.
“그거야 단순하지. 그야 내가 답파 속도가 더 빠르니까.”
그 말을 시작으로, 나는 표정이 썩어 있는 녀석에게 총을 뽑아 들었다.
***
한편, 저스틴 측과 이창현 측의 답파 미션을 모두 보고 있었던 관중석 측은 놀라움에 물들어 있었다.
“저스틴 녀석…… 이번에 신기록을 뽑았는데도…….”
“저 녀석은 뭐지? 어떻게 저런 칠흑 같은 어둠에서 저런 몸놀림을. 지형을 이해하고 외운 수준이 아니라 마치 훤하게 불이 켜진 듯 모두 보이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모두 이창현이 그 어두컴컴한 동굴. 대공동을 돌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니까.
결론부터 두고 말하면, 그들은 이창현이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저스틴이 어둠을 의식하며 가장 안전한 곳. 몸으로 외운 곳을 되짚어 가며 겨우 달려가는 동안…… 이창현은 마치 모든 게 눈에 훤한 듯, 동굴의 종유석과 천장의 장애물을 피해 가며 에어앵커로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냥 가는 것도 아니었다. 저스틴과는 달리, 중립몬스터 서식지까지 있는 최단 경로로, 곡예를 하듯 지나갔다.
그 어둠 속에서도 모조리 따돌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역시.”
물론 모든 사람이 놀라워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부터 이창현을 옆에서 보아 왔던 윤한결로서는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아무도 알지 못했던 히든피스를 찾거나, 모든 공격을 예상한 듯 피하는 것.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것들을 보고 판단해 줬던 이창현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렴풋이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으니까.’
“어때요 레논. 제 말이 맞죠?”
이 내가 팬카페를 만들 정도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아니나 다를까, 레논도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래도 레논은 저번에 [몽환의 궁전] 때의 일도 있으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리라 생각했는데…… 놀라는 건 좀 의외네.’
“저희 팀에서는 창현이가 저 정도 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인데. 레논도 좀 익숙해져야겠네요.”
“그런……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야.”
“……?”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것들은 지금 당장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야간 투시경으로도, 단순히 랜턴같이 빛을 밝히는 방식으로도 돌파할 수 없는 탑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 그런 것들을 단순히 두 눈으로 보고 돌파해낼 수 있다는 건…….”
“천성이 헌터로군.”
레논의 끝마디를 어느샌가 김도준과 나타난 오스틴이 가로챘다.
“어쩌면 여기 있는 다른 어느 녀석들보다도 저 녀석의 자질이 1세대 헌터스러운지도 모르겠어.”
그 말에 구경 중이던 관람석에 정적이 맴돌았다.
“과거 한국이 구가했던 1세대 헌터의 영광을 생각해 보면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오스틴이 나지막이 웃었다.
***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먼저 앞서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품을 쩌억 쩌억 해대고 있는 저 녀석을 보니 머리끝까지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은 저스틴 자신의 돌파 시간 신기록이기까지 했는데.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거기서 줄이는 건 불가능해…… 게다가 숨이 차거나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도 않았는데…….’
척 보니 막 도착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 자신의 기록보다 더 줄이려면, 에어대시나 에어앵커 같은 마나장비를 사용하거나, 중립 몬스터의 서식지를 지나와야 할 텐데…….
보이지도 않고, 감지하기도 어려운 [칠흑의 동굴]에서 돌파 속도 좀 줄이겠다고 그런 위험한 짓거릴 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보다도 큰소리를 치고 들어왔는데, 저 녀석이 먼저 도착하는 것이 화면에 비쳤을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저 녀석이 자신이 그냥 답파 속도가 더 빨라서 그랬다고 장난질을 쳐대는 걸 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화가 치밀어오르다가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오히려 이 상황은 기회일지도 모르겠군.’
원래의 ‘답파미션‘은 서로 가진 경험에 따라 답파하는 루트가 다르거나, 시간이 달라 적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 돌파하는 속도만을 겨루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 녀석처럼 멍청하게 자만에 찌들어 기다리고 있다면?
‘저 녀석을 여기서 처리해 버리는 것도 룰에 문제는 없지.’
헌터스 리그를 하는 녀석이니 발뺌도 못하리라.
답파 미션으로 발려서 패배가 확실해졌다면 오히려 더 문제였을 텐데. 여기서 감히 오만하게 날 기다리다니.
그것이 곧 저 녀석의 패인이 되리라.
아니나 다를까, 녀석도 전투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지 총을 빼들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1세대 헌터라고 해서, 탑을 공략하는 헌터라고 해서 매번 주구장창 쌈박질만 하는 헌터스 리그의 헌터보다 약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이 꼬맹이.”
“……?”
“그래. 어떤 꼼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보다 먼저 도착했군.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송곳 같은 형태의 거대한 검을 빼들었다.
“먼저 도착했으면, 끝까지 도망쳐서 답파 미션을 했어야지! 멍청하게 싸움을 거니까 패배하게 되는 거다!”
베는 검이 아니었음에도, 발도술을 연상시킬 정도의 빠른 공세전환.
송곳 같은, 찌르기를 위한 검이 녀석에게로 순식간에 향했다.
직접 탑에 몸을 던지는 헌터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회심의 일격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 자신 있게 쓸 법한. 그 무엇보다 손에 익숙하며 상대의 빈틈을 찌르고 들어가 치명적으로 피어나는 무기가.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찰나의 순간 그것을 꺼내 들어, 찌르고. 동시에 그 길이가 순식간에 엄청나게 늘어나 상대를 꿰뚫을 테니까.
그게 방심한 순간, 피했다고 생각한 끝까지 늘어나 순간 상대를 죽여 버리는 저스틴의 비수였다.
마침 녀석은 총을 든 상태로, 막을 것도 없고, 피하기도 글렀을 텐데……
텅!
“……!”
“형태는 펜싱검 같은 형태에…… 무지막지하게 늘어난다라…… 한 점을 꿰뚫으니 파괴력도 그럭저럭 좋고. 재미있네요.”
보지 못했다. 녀석은 분명 방패따윈 들고 있지 않았을 텐데……
양 손에 들고 있던 총은 어디 가고 방패로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채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흘러가 벙쪄 있던 가운데.
“이번 건 의외성도 있었고…… 나름 헌터라 그런가? 비장의 수 같은 느낌이 있어서 괜찮은데? 근데 일단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다른 건 없나?”
빈틈을, 사고의 사각을 노렸다고 생각한 완벽한 회심의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 내고는 녀석은 말을 쏟아 냈다.
더 보여 줄 것은 없냐는 둥. 마치 구경거리 즈음으로 취급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하면서.
무언가 이상했다.
답파가 자신이 느렸던 것도. 그 공격이 막혔던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 뿐이었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자기객관화에 실패한 건 아니다. 이미 저 수들은, 아니, 내 실력은 이미 헌터들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회심의 수들뿐인데……
그게…… 그게 이렇게 어린아이 놀아주듯 막혔다고?
복잡해진 사고가 머릿 속을 뒤덮었다.
마치 내 앞에 서 있는 녀석이 악귀처럼 보였다.
“이제 뭐 더 보여 줄 건 없어? 그럼 어쩔 수 없네.”
녀석이 들고 있던 방패가 갑작스레 총으로 다시 변환되었다.
‘아…… 녀석의 방패는 물질 변환 능력으로…….’
생각이 더 이어질 틈은 없었다.
탕! 타탕 타타타탕!
녀석의 연발이 시작되었으니까.
비장의 수는 괜히 비장의 수가 아니었다. 일격 필살이자, 모든 걸 쏟아부은 한 개의 기술이니 비장의 수였다.
그게 막혔으니 반동이 올 수밖에 없었다.
‘피해야…… 피해야 해.’
등 뒤에 마나실드를 펼쳐 놓고, 에어앵커로 날아오르며 도망쳤다.
시간만. 회복할 시간만 벌면, 다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지금 이 위기만 넘길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그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가고 있었다.
녀석은 도망치며 등 뒤에 띄워 놨던 마나 실드가 거슬리는 듯, 마나 실드가 보호하지 못하는 부분만을 조준했기에, 급소에 총이 맞는 일은 없었다.
‘키킥…… 왜 헌터들이 총을 안 쓰는지 모르는 건가. 이래서 떨거지 헌터 놈들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총 같은 건 에단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 헌터가 없을 테니까.
저 녀석도 견제 이상의 의미로 총을 쏠 수는 없으리라.
마나 실드가 보호하지 못한 왼 팔에 스쳐 맞아 통증이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이 정도는 충분히 허용 범위니까.
이대로, 회복하기만 하면 분명 전세를 뒤집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나실드가 막지 못한 부분들에 총이 스쳐 가는 빈도조차도 점점 줄어들던 찰나.
‘좋아…… 이 앞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져서 녀석도 길을 찾기 힘들 거야.’
그렇게 시간을 벌 수 있을, 미로 같은 수로를 앞둔 찰나.
녀석은 나지막이 입에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머리를 맞춘다.”
멍청하게도. 마나 실드로 막고 있는 부분을 노리려는 모양이었다.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에 했을 테지. 아마 저것은 페이크이리라고 짐작하며 수로로 들어가던 찰나.
피슝 ㅡ.
사고가 정지했다.
아니, 시간이 마치 멈춘 것만 같았다.
등 뒤에 세워 둔 마나 실드는 야구공을 맞은 유리창마냥 힘없이 깨져 나갔다.
그 충격에 뒤돌아본 찰나. 두 눈에 담긴 것은, 머리를 향하는 하나의 빛나는 탄환.
“어…… 째서.”
이런 파괴력이라면 처음 회심의 일격이 실패한 순간, 진 것이나 다름없었을 텐데.
마나 실드를 부술 수 있었다면 도망치게 내버려 둘 필요도 없었을 텐데.
왜 이렇게.
마치, 마나 실드를 부술 수 없어 피해서 맞춘다는 느낌으로.
치명적이지 않은 곳만 골라서……
“그야, 한 번에 끝나면 재미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저스틴의 두 눈에 담긴 건, 마치 그 십대 후반대의 애로는 보이지 않는 악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