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엇갈리는 감정
순수한 힘의 차이였다.
그저 압도적인 화력. 각성자라 한들, 헌터라 한들 힘의 한계는 있다.
마치 사람이 운동을 아무리 열심히 한들, 제 힘으로 25톤 트럭을 혼자서 들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에단은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들고 있는 것은 분명 총. 하지만 그건 동시에 총이 아니었다.
그 궤적에 존재하는 모든 걸 지워 버리는 그걸 겨우 ‘총’ 따위로 퉁칠 수 있는 것일까?
그 압도적인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도 나름 한국팀이기도 하고 인연도 있는 LTD가 이처럼 처참하게 밀려서인지.
정적이 이어졌다.
꽤나 충격이 컸던 걸까. 아니면, 매년 이어져 오는 이 경기를 잔혹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회귀했기에, 다른 녀석들과 달리 순수하게 이맘때의 나이가 아니었기에.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상대 팀. 잘하지?”
“저런 거. 완전 사기 아니야? 저런 게임에서나 보던 레이저 빔 같은걸 빵빵 쏴 대는데 어떻게 이겨?”
한지후가 내 말에 이렇게 툴툴댔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헌터스 리그는 재능이 중요한 판이다.
각성자가 되는 것도. 거기에서 헌터가 될 만한 능력을 갖는 것도. 여기까지 우리가 PER이라는 팀으로, 팀원으로 하나하나가 구성될 수 있던 것도 모두 똑같이 재능의 영역이 어느 정도 자리해 있었다.
“[마나전개]를 펼쳤는데도, 이렇게나 무력한 거야?”
한국에선 꽤나 1대1 스페셜리스트였던 윤한결도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하긴, 꽤나 박탈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압도적인 재능이라는 것. 타고나는 것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그런 감정을 선사하곤 했으니까.
“그래도 끝까지 지켜봐. 우리가 저 무대에 서도 그렇게 말하면서 한탄할 거야? 상대가 너무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하면 못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쩌면 죽음까지도. 그 모든 순간이 그렇다.
[해설자 : 강준혁 선수가…… 미국이 자랑하는 에단 선수에 의해 탈락했습니다. 다만, LTD!!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현 선수와 이가람 선수. 민정선수가 아직 분전하고 있어요! 근접에서 이 선수들의 전투력, 굉장하거든요!]
그 불공평함은 확실히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상황이 주어진 후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 하나는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은 확실하다.
[캐스터 : 아! 강준혁 선수가 탈락하고 [검의 영역]이 해체되자, 블랙호크의 선수들. 한번에 달려듭니다! 기세가 매서워요!]
불공평함으로 인해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해설자 : 아…… 여기서 블랙호크 측 근접딜러가 [마나전개]를…… 경기의 구도가 망가집니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해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는 분명했다.
“와…… 근데 우리랑 한 번 붙어 봤던 팀이라 그런지 진짜 체감이 확 다르네. 예전엔 한국 팀 국제전 할 땐 욕하면서 보기 바빴는데…….”
“이젠 좀 알겠어?”
숙연한 분위기였다.
경기는 순식간에 종반. LTD는 거의 패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유리한 전장을 고르고, 상대의 전략을 무효화 시키면서 우리의 판으로 끌어들였음에도 이기지 못한 상대. 그게 LTD였다.
그런 LTD가 저렇게 탈탈 털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심란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아 보이는 녀석도 있었지만.
“원래 수준 높은 헌터는 그냥 헌터랑 싸우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 모르고 있었어?”
이근택과 조준호 아래에서 배웠기에 가능한 것일까.
아니,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리라.
자신이 압도적으로 부족함에도 계속 부딪히며 배움을 얻었던 류재준이기에,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부를 넘으면, 우리가 다음에 싸울 전장은 저기다.”
한 명이라도 자신만만하고, 도전할 의욕이 끓어오른다는 것.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 본 걸, 잘 기억해 두라고.”
각자가 무엇을 느꼈을지는, 글쎄.
비관과 두려움. 괴로움. 혹은 실력에 대한 동경. 저런 상대와 싸울 수 있을 거라는 희열과 기대.
느낀 감정은 가지각색이겠지.
하지만 분명히 보았다.
1부 또한 과정이라는 것을. 앞으로 나아가, 첫 번째 최종 목표가 국제 리그이고.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내가 키워 나가는 팀원들에게 이것을 보여 준다는 것.
오늘은 이걸로 충분했다.
***
……팀원에겐 그랬고.
솔직히 나에겐 꽤나 두근거리는 경기였다.
압도적인 힘. 스쳤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전장. 솔직히 국제 리그는 한국리그와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는 그 격이 다르다고 하는 게 맞았다.
[마나전개]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수부터. 다양한 마나장비를 이용한 전술의 가짓수까지.
내가 과거에 섰던 전장. 그리고 이제 다시금 서야 할 전장을 다시 본다는 것.
그건 분명 각별한 감각이었으니까.
실제로 회귀 전, 에단과 나는 톱급 플레이어이자, 세계에서 둘 밖에 없다시피 한 총 사용자라서 얽힌 인연이 꽤나 많았다.
결국 에단은 내 라이벌이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직 에단은 내 존재 자체를 모를 정도로 작은 존재니까.
아래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실수 없이 다시 디뎌 가며 위를 바라본다는 그 감각은.
아마 이 감각은 지금밖에 느끼지 못하리라.
‘…….’
경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어차피 더 볼 필요는 없었기에, 휴대폰으로 커뮤니티 반응을 둘러봤다.
[한국팀 왜캐 못하냐. 한국리그에서만 강하고 해외 나가면 한없이 약해지는 강약약강 LTD]
ㄴ 이거레알임. 아…… 진짜 볼때마다 스트레스받음.
ㄴ 아니 잘 하다가 왜 이러는 거임? 강준혁을 왜 거기 넣어서 끔살당하게 함?
ㄴ 근데 미국이 좀 사기적이긴 함. 괜히 파워랭킹 1위가 아니잖아.
ㄴ 아무튼 좀 아쉬운 점 많은듯……
[한 국 팀 도 국 제 리 그 본 선 좀 가 자!!!!!]
ㄴ 가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남.
ㄴ 아 근데 가본적이 있긴 있었음? 그건 의외네.
ㄴ 1세대라고 부르던 때였나. 수십년전에 아무튼 있긴 있었다고 함.
ㄴ 본선은 무슨. 그냥 한국팀 포기하고 천조국 형님 팀이나 응원하자.
그래. 이맘때쯤 반응은 확실히 딱 이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었고, 대체로 한국 팀이 죽을 쒀 짜증을 냈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내년에 국제 리그에 나가서 뒤집는다면, 꽤나 재미있을지도.’
뭐, 일단 우리 애들로 1부 리그에서 1등을 하는 것이 우선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
[관조의 방]이라는 묘한 공간은 경기가 끝나자, 다시 처음처럼 돌아와 검게 변했고, PER의 인원들은 바깥으로 향했다.
바깥으로 나가자 그들을 반긴건 에스코트……
“어? 이게 누구야. 이창현 아니야?”
유창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레논과 꽤나 많은 선수들.
아무래도 마주치지 못했을 뿐, 경기를 관람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땠어? 경기 소감은?”
“무난했지. 블랙호크는 여전하던걸?”
아무래도 한국이 진 걸 보고 그것에 대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우리 팀이 진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중, 레논의 무리에서 몇몇이 또 이쪽으로 향했다.
“뭐야. 아는 사람?”
“어. 레만을 만나러 한국에 갔을 때 잠깐. 한국 헌터스 리그 경기를 보러갔다가 만나게 됐지.”
“헌터스 리그? 선수야? 중국인?”
“그럼. 아주 화끈한 녀석이지. 근데 한국인이야.”
그 말에 레논의 동료가 웃었다.
“한국이라…… 국제리그 본선 진출 팀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야.”
순수하게 악의 없이 한 말이라는 건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순수한 궁금증, 의문을 말하는 듯 했으니까.
“저희 팀은 아직 나간 적이 없으니까요. 다음시즌엔 아마 본선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레논. 확실히 네 말대로 화끈한 녀석이구만. 다짜고짜 국제 리그 다음 시즌엔 본선에서 자신의 팀을 볼 수 있을 거라니.”
껄껄거리는 웃음과 함께, 그 남자는 모자를 벗었다.
‘어디서 들었다 싶었는데…… 오스틴이었나.’
“중국인이냐고 물어서 미안해. 사실은 알고 있었어.”
마나장비의 대가라고 불리우는 오스틴. 다양한 마나장비를 이용해 경기에서 수도 없는 변수를 만들어 내 인기가 많은 선수였다.
‘……국제 리그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기도 하고.’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사과하고, 손을 내미는 걸 보면.
“괜찮습니다. 다음 시즌에 본선에서 볼 수 있다고 한 것도 농담이 아니니까.”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누군가가 갑자기 뒤에서 끼어들었다.
“오스틴……??”
다름이 아니라 김도준이었다.
전엔 별로 생각을 못해 봤는데, 지금 와서 보니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 설마 오스틴의 영향을 받은 거였나?’
오스틴이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이, 레논이 앞에 나섰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홈에 들리는 건 어때. 전에 이야기했었던 것들도 있고.”
“좋네요. 어차피 저도 여기에 온 목적은 경기를 보는 거였는데 이젠 다 끝난 참이었으니까요.”
어차피 만나러 갈려고 했는데, 잘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레논의 팀은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나저나 팀 명이…… 이런 이름이었나?
[화이트 스완]
미국 대부분의 팀이 동물이름이 붙는 건 알고 있었는데. 꽤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팀의 홈은 역시나 미국답게 꽤 크기가 있었는데, 건물의 크기가 큰 데 비해 의외로 사용하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지 휑하다는 인상을 조금 받았다.
“미국 팀 홈은 이렇게 생겼구나아…….”
이정훈에게는 예상치 못한 타국 엘리트집단 견학이 되었던 걸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온갖 곳을 쳐다보는 걸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들 팀의 홈을 둘러보고 돌아다닐 동안, 팀원들에게 잠시 팀 구경을 하라고 한 후 나는 레논과 독대했다.
“그래서, 전에 팀에 오면 재미있는 걸 보여 준다더니. 나는 아직 재미있지 않은데.”
“하핫. 겨우 여기에 도착한 것만으로 뭐가 있을라고. 여기에 견학이라도 한 번 와 보고 싶어 하는 미국, 아니 세계의 헌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별 걸 다 쳐다보던 이정훈이 생각났다.
확실히.
하지만 사람 사는 건 뭐가 좀 달라 봤자 결국은 거기서 거기인 법이었다.
“그래 봤자 고작 숙소는 다 거기서 거기지. 여기서 우리 숙소랑 다르다고 할 법한 건 뭐……선수 정도밖에 없지 않나? 뭐, 그것도 주먹을 맞대 봐야 알겠지만.”
레논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아마 내 웃음의 의미를 이해한 모양이었다.
“성질도 급하시군.”
이곳에 오기 전 경기를 보고 마침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마침 이번 경기가 한국이 미국에게 줘 터지는, 한국 팬들 입장에서는 혈압 오르는 경기이지 않았나.
‘비공식이지만, 여기서 나라도 대신 복수해 줘야지.’
그게 또 애국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