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1부 귀환
사실 이번 승강전 경기를 더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류재준의 말처럼, 팀원들을 조금 더 이용하는 대책을 썼으면. 아니, 하다못해 류재준만 나랑 붙어 있는 상대로 2대 7을 시작했어도 싸움은 훨씬 수월하고 압도적으로 풀렸으리라.
‘특히 류재준의 경우는 [마나 프로텍터]로 막지 않은 부분으로 돌입해 파동을 일으켜주기만 하면, 내가 후속타를 넣어 훨씬 쉽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건 솔직히 약간의 내 욕심이었기도 했으니까.
이 경기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도 했고.
다른 PER의 팀원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회귀를 거쳐 다시 이곳. 1부에 돌아왔다는 것.
그것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그렇기에 이 경기는 이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금 내가 이 리그에 돌아왔다고.
이런 모습으로, 전보다 더 완전해질 준비를 끝마치고 돌아왔다고.
그런 모습을 어느 정도 고려한 전술이었다.
‘점사할 수 있다는 건 예측했어도, 그 첫 번째로 나를 고르진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결국 경기는 처음 예상한 대로 되었다는 것.
그렇기에 결과는 당연했다.
“이번 경기 MVP는 이창현선수입니다. 인터뷰 준비해 주세요.”
“네.”
첫 무대. 첫 인터뷰.
나는 이 한 걸음을, 1부 리그에 대문짝만 하게 찍어 줄 생각이었다.
***
예전과는 수준이 다른 함성. 하지만 익숙한 함성이었다.
내가 대기실에서 나와 캐스터가 있는 무대로 향하자 순식간에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졌다.
관중석을 둘러보는데, 역시나.
초롱초롱 기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정훈과 눈이 마주쳤다.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찰나. 곧이어 캐스터 앞에 도착했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캐스터 : 안녕하세요. 한국 헌터스 리그 1부 리그 승강전. 그 승리 팀이자, 이제는 1부 리그 팀이 된 PER의 구단주이자 주장이자, 감독. 이창현 선수를 인터뷰해 보겠습니다.]
[이창현 : 안녕하세요.]
[캐스터 : 우선, 이번 경기. 축하드립니다. 무려 헌터스 리그 경기 최단 기록을 깨셨어요. 알고 계셨나요?]
‘그랬었던 건가.’
최단기록이라…… 딱히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일종의 선전포고를 위한 경기였으니, 이런 타이틀이 하나쯤 있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창현 : 물론입니다. 애초부터 오늘은 최단기록을 쓰려고 생각하고 왔으니까요.]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경기를 끝내는 남자. 그런 별명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딱 그 정도의 것만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어째 관중석에서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최단기록을 쓰려고 생각하고 왔다는 내 허세에, 관중들이 호응한 것이었다.
갑자기 확 달아오르는 반응. PER의 다른 선수들이 이런 반응을 접했다면 주춤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온갖 경기에서 인터뷰를 해 본 나에겐 오히려 즐거움의 한 요소였다.
보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대답을 하는 게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캐스터 : 최단기록을 처음부터 염두해 두신 거군요? 그 말씀은 즉, 이번 경기의 이런 흐름을 미리 예상해서 짜 오신 건가요? 혼자 떨어지고, 1대7을 하게 되고, 그걸 모조리 혼자 격파하는 그런 ㅡ?]
[이창현 :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처음 TAM의 팀원이 모두 마나프로텍터를 장비하고, 설치하는 동안 계획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우연이 조금 낑겨 있기도 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7대1은 기본적으로 쉬운 도전은 아니었으니까.
나를 나름 파훼하려고 준비해 온 마나프로텍터 전략이, 내 두터운 경험과 테크닉이 없었다면, 적어도 그게 TAM에게 스스로를 옭아매는 전략이 될 일은 없었겠지.
[캐스터 : 그건 그렇고, 이번 경기에서 역시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역시, 사각에 있는 TAM선수들을 사격한 것이거든요……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다음은 능력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통은 인터뷰에서 능력이나 기술에 대해 잘 알려 주는 편은 아니지만, 사실 이번 도탄 사격에 대해서는 말해 줘도 괜찮긴 했다.
‘뭐…… 거의 본 그대로의 순수한 기술에 가까운 테크닉이니까’.
보더라도 따라하지 못하고, 애초에 따라할 만한 총수자체가 없다.
[이창현 : 아 역시 그 부분이군요. 질문이 나올거 라는 예상은 했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아마 각성자가 되면 일종의 초인으로 취급받는데, 오감이나 인간의 전반적인 스펙이 증가하죠. 도탄의 궤도는 순수하게 기술의 영역입니다.
거기에, 그냥 제가 탄을 쏘는 평소의 능력이 더해지는 것뿐이구요.]
물론 완전 다 말한 건 아니지만.
궤적을 가늠할 수 있는 [꿰뚫는 눈]이나, 다소 흔들릴 수 있는 탄도를 조정할 수 있는 [전설의 저격수].
이것도 빼놓을 순 없긴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내 능력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것들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내 기술은 간단하지 않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으니, 저렇게 말해도 거짓이 있는 건 전혀 아니리라.
하지만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은 이것을 약간의 기만이라고 생각했는지 반응이 뜨거웠다.
[요약 : 하니까 되던데? 님들은 왜 못함?]
ㄴ현역으로 뛰고 있는 군인 저격수 오열 ㅋㅋㅋㅋ
ㄴ노오력이 부족하네 노오력이
ㄴ근데 사실 뭔 능력 있어도 이창현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것 같지는 않긴 함.
ㄴ재능충의 기만에 울어버렸다~
[캐스터 : 하하하. 정말 호쾌하시군요. 이번 경기에서 쓰인 기술부터, 능력까지. 모두 잘 들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창현 선수. 그리고 PER의 1부에서의 각오.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웃음이 나왔다.
사실 오늘 인터뷰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나온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이창현 :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3부 리그에 막 올라가 제가 한 첫 인터뷰는 이겁니다. ‘3부 리그에서 잘하는 팀이 없다.’
그리고 그 시즌 전패팀이었던 PER이 3부 리그에서 전승했죠. ……그리고 지금 할 말은 이겁니다. 1부 리그에도 잘하는 팀은 없습니다.]
그 말에 관중석이 크게 요동쳤다.
그야, 여기까지 보러 왔다는 것은 어느 팀이 되었던 한국 헌터스 리그에 깊은 애정이 있다는 것. 그런데 한국 헌터스 리그 팀을 다 싸잡아 못한다고 하니, 좋게 보일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창현 : 이렇게 말하시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겠죠. 그래? 다 못한다고? 그럼 잘하는 팀이 어디 있는데. 이렇게.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잘하는 팀은 국제리그에 있습니다.]
이 한 마디에 숙연해졌다.
실제로 한국 헌터스 리그의 지위는, 세계적으로 보면 예전 1세대 헌터들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니까.
하지만 내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창현 : 그리고 또! 여러분이 지켜보신 것처럼 지금 여기에 서 있습니다.]
그래, 이건 출사표다.
이미 한 번 정복했지만, 끝내는 세월의 흐름에 밀려. 제대로 따르지 않고, 수준이 낮았던 팀원들에 의해 밀려났던 내가.
다시금 정상을 쟁취하겠다는 출사표.
[이창현 : 새로 시작되는 1부 리그에서의 시즌. 적어도 국제 리그에 가기 전까지.]
아. 왜 이러지. 어째선지 이런 순간에,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결연한 순간인데. 재미있다고 느껴서일까. 아니면 피가 끓어올라서 그런 것일까.
[이창현 : 저희 팀의 적수는 없습니다.]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관중석의 환호성.
어쩌면 이게 마약처럼 나를 미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게 마약이라면, 나는 아마 마약 중독자쯤 되겠지.
다른 팀들을 싸잡아 PER아래라고 말해 버린 패도적인 발언에 벙찐 캐스터를 뒤로하고, 대기실로 향했다.
오늘의 경기는 여기까지였으니까.
***
인터뷰가 끝나자, 영상 옆에 띄워진 채팅창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채팅이 갱신되고 있었다.
[한국 헌터스리그 1부 승강전 TAM vs PER]
ㄴ와……경기 내용부터 인터뷰까지. 지렸다.
ㄴLTD는 이거 보면 ㄹㅇ 똥줄탈듯 ㅋㅋㅋㅋㅋㅋ
ㄴ그건 그렇고 인터뷰때는 솔직히 좀 슬펐다. 한국헌터스리그는 나름 우리의 축젠데 세계로 나가면 별 볼일 없는게……
ㄴ근데 이래놓고 다음시즌 1부에서 개같이 망하면 개쪽팔릴듯.
ㄴ 오늘 경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경기내용 못지않게, 인터뷰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국제리그에서 경쟁력을 잃은 채, 그들만의 리그를 해오고 있던 한국 헌터스 리그를 날카롭게 꼬집고, 패기 있게 선언하는 3부 리그 출신 팀?
적어도 한국 헌터스 리그 역사상, 아니 세계 헌터스 리그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창현은 바로 앞에서 그걸 증명하기 위한 경기를 벌였으니까.
아무리 상대의 실책이 있었다고는 하나, 압도적인 테크닉으로 찍어 누르는 실력을 보여 줬으니까.
그렇기에 이 경기를 본 사람은 이창현의 말을 듣고 꿈꾸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1세대 헌터들의 시대. 탑 공략이 이루어지던 시대처럼, 한국 헌터가 세상을 주름잡았던 시기의 재림을.
“허어…….”
이근택 회장은, 옆에 누가 있던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봤구만. 아주 물건이야 물건. 솔직히 처음 이야기 했을 땐 긴가민가했는데…… 루키 정도가 아니었구만.”
옆에서 함께 보던 조준호가 말했다.
이근택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곤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그렇게 좋나?”
“그럼. 저런 말을 하는데, 싫어할 수 있는 1세대 헌터는 적어도 한국엔 없을 테니.”
실제로 탑을 ‘공략’한다고 할 만했던 과거의 시기. 최고로 찬란하고 위명이 높았던 그 시기를, 약간은 다르다고는 하나. 다시 불러오겠다고 하고 있었으니.
“1부에 올라간다고, 국제 리그를 목표라고 말하더니, 끝내는 성공해버리는구만.”
“그것도 1대7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주면서…… 라.”
납득할 수밖에 없는 성과였다.
이제는 이창현은 쇠락해 가는 한국 헌터계를 부흥하기 위해 키웠던 자신들의 수제자들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았으니까.
‘연화도 보았을까.’
이근택과 조준호가 가르쳤던 류재준은 어느덧 이창현과 함께하고 있었고. 방황하던 조연화는 어느덧 따라잡혔다.
최근엔 그나마 방황하는 모습이 줄고, 헌터스 리그를 그만두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이창현과 함께하는 류재준의 성장세와는 달리 약간 정체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조준호는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 이제 우리는 뒤로 빠져야 할 시기가 아닌가. 재준이만 봐도 그렇지 않나. 우리가 가르친 것보다도, 녀석의 팀에 들어가서 더 많이 늘었어.”
“…….”
“……그러니 지켜보도록 하세. 나는 왠지 저 녀석 하나가 한국 헌터스 리그에 큰 파급을 몰고 올 것 같으니까.”
과거 별 볼일 없던 한국 1세대 헌터들이, 신성 같은 한 명의 헌터가 등장을 시작으로 수준이 오르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정말로, 이창현이라는 작은 하나의 돌이 일으킨 파문이 한국 헌터스 리그를 바꿔 놓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조금 어처구니없는 꿈을 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