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복기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지만 겉으론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
나는 그게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항상 다양한 경험을 해 보라고 하는 거겠지.’
이건 비단 일상생활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헌터야말로 이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경기만 하더라도, 중간에 도탄 사격을 눈치챘을 때 조금만 더 평정을 유지하고, 전략을 고민했으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었으리라.
‘확실히 [꿰뚫는 눈]으로 보았을 때,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TAM녀석들이 대처할 방법은 충분히 있었어.’
하지만 TAM은 자신들의 능력을 살려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일수록 자신의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고.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냉정하게 대처했어야지.
패닉상태에 빠져 버리면 이렇게 쉽게 잡아먹히는 법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지만…… 쥐가 고양이를 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답은 고양이에겐 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양이 앞에서 발버둥 쳐봤자, 결국 쥐는 쥐일 뿐이니까.
‘그것도 결국은 다 경험부족이겠지.’
물론, 이런 경험을 어디에서 해보겠느냐만……
그나저나, 여러모로 이번 경기는 좋은 점이 많았다.
회귀 후 잘 써 보지 않았던 테크닉을 다시금 써 보는 기회도 되었고……
솔직히 도탄 테크닉에 더해서 [전설의 저격수]를 이용해 조금 탄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사각 없는 저격은 회귀 전에나 해봤지……
실전에서 이렇게 해보는 건 조금 오랜만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TAM도 남은 선수는 하나뿐이었는데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꿰뚫는 눈]으로 마나프로텍터의 너머로 숨어 있는 상대가 보였다.
“너는 안 덤벼?”
아마 상대팀, TAM의 메인 딜러라고 알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전의가 꺾인 듯했다.
마나 프로텍터 너머로 보이는 털썩 주저앉은 녀석의 모습은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 경기가 1부와 2부를 가르는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미련이 덜 생길 텐데.
“음…… 그래도 1부 승강전이라, 후회 있는 경기를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의욕이 사라져 버렸나. 그럼, 선물로 좋은 거라도 보여 줄게.”
어차피 이번 경기에서 내가 다짐한 것. 그건 1부에 대한 선전포고였으니까.
이기는 것이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화려할수록 좋다.
그게 이 경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이라면 더더욱.
도탄사격을 할 때, 지금까지는 라이플로 했던 반면 이번엔 권총이었다.
양 손에 쥐어진 권총이 화려하게 불을 뿜었다. 당연히도 총구는 정직하게 상대편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손을 휘젓는 듯한 형상으로 이루어지는. 얼핏 보면 아무 곳에나 막 쏘는 듯한 광경.
하지만...
팅ㅡ ! 팅! 팅!
여러 방향으로 쏘았던 여러 발의 탄환은 이윽고 서로 부딪히고, 또 부딪히며 결국은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순간적으로 빛이 내리쬐는 곳을 번뜩이며 통과한 탄환.
그것이 경기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내 기억상으로는 거의 최단경기에 가까운 속도였던 것 같은데…….’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지 않다보니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경기한 것도 아니다보니.
그것보다도……
“와…… 바깥의 함성소리가 여기까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은데?”
이번 경기에 대한 호응이 굉장했다.
승강전이긴 하지만, 1부의 무대에 선 게 워낙 오랜만이어서 그랬던 걸까.
분명 2부나 3부도 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렇게 열띤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오랜만이었다.
“근데 뭐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어폰 너머로는 네가 총 쏘는 소리밖에 안 들리던데. 대체 어떻게 7명이나…….”
윤한결이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대답하면 또 그 카페에 인터뷰랍시고 글이라도 올리려는 속셈인 걸까.
어째 처음 봤을 때랑 점점 인상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원래 저런 애였나?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나온 것을 적당히 직접 보라고 얼버무리는 동안, 류재준이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너…… 처음부터 이럴려고 7명이 흩어지자고 한 거지?”
무언가 심하게 고심하는 듯한 표정. 무슨 말을 할지는 대충 예상이 가긴 했다.
회귀 전 류재준과 오랫동안 합을 맞췄던 만큼. 척하면 척이지.
“아니…… 7명을 다 해치웠으니 뭐라 말은 안 하겠지만. 그런 무모한 전략을 세운 이유가 뭐야? 솔직히 아무리 너라고 한들 예상치 못한 능력에 발목 잡혀 계획이 어그러졌다면 너 하나만 끝장났을 텐데. 그런 좋은 묘책으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면 팀원이랑 합을 맞춰 훨씬 쉽고 압도적으로 촘촘하게 이길 수 있었잖아……?”
류재준의 잔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긴. 회귀 전에도, 줄을 타는 듯한 리스키한 플레이를 하면 이렇게 잔뜩 잔소리를 하곤 했으니.
하물며 이번 플레이의 경우 일반적으로 리스키한 플레이보다는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근택 회장님은 애처럼 굴더니…… 이 녀석은 이럴 때 보면 꼰대가 따로 없다니까.’
서로의 역할이 무언가 잘못되어 반대로 바뀐 것이 아닐까?
한편, 이길한과 이연주를 비롯한 PER의 몇몇이 조용히 몰려 있는 것도 보였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적당히 류재준의 잔소리에 대답하고 있었기에, 직접 가 보기는 좀 그런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김도준이 다가가 물어봤다.
“너네 뭐해?”
“뭐하긴. 어떻게 이겼는지 봐야 할 것 아니야.”
‘아…… 이번 경기 리플레이인가?’
하긴. 다른 팀원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경기가 끝났을 테니. 궁금하겠지.
팀원 중 한 명의 휴대폰으로 다 같이 리플레이를 보는 것인지, 정말이지 촘촘하게 모여 경기영상을 보고 있었다.
“오오오오…….”
평상시엔 말도 잘 안하는 이연주가, 경기영상에는 나름 리액션이 좋은 게 신기했다.
“아니 여기서 이걸…… 이게 이렇게 맞는다고?”
긴가민가하는 녀석도 있었던 반면.
이어지는 사격에는 이윽고 다른 팀원들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게 요행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듯, 차례대로 상대팀이 쓰러졌으니까.
그리고 아마 마지막 순간, TAM의 메인딜러를 향한 격발을 본 것인지.
“……오오…… 아름답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 정도면 총 쏴서 잔상으로 그림도 그리겠는데?”
나름 해명하자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팀원들이 이번 경기 영상을 보고 나를 존경하는 듯한 눈빛으로 보며 여운에 잠겨 있는데.
어째 경기 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뭐가 더 있나?’
경기에 워낙 몰입했던 탓이었을까. 경기는 저걸로 완전히 끝이었던 것 같은데. 영상이 어째선지 끝나지 않고 재생되고 있었다.
마치 아직 봐야 할 것이 남았다는 듯.
그리고 잠시의 정적이 지난 후. 마치 영화에서 틀어 주는 쿠키영상처럼, 김도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경기 끝났다고? 나 아직 상대팀 팀원들 한 명도 못 봤는데?”
“킥…… 킥킥킥킥.”
“푸하핫.”
압도적 경기.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흐르는 김도준의 얼빠진 목소리가 분위기를 다 망쳐 버렸다.
공감했었던 것인지. 아니면 얼빠진 김도준의 목소리가 단순히 웃겼던 것인지. PER의 대기실이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는 건 금방이었다.
“아니 ㅡ. 너네도 그렇게 생각했잖아. 어이없네 진짜.”
웃음의 대상이 된 김도준이 어이없다는 듯 항변했지만, 그 분위기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스태프가 들어와, 오늘의 MVP를 데리고 나가기 전까지는.
***
이정훈은 이번 경기가 끝나자마자 휴대폰으로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더 많은 사람이 이창현의 위대함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반응을 찾아보고 있는데. 역시나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가장 큰 호응이 이어졌던 장면은 역시…… 마지막의 수많은 탄환이 빛을 받아 번뜩이며 허공을 수놓던 장면이었다.
‘아까 관중석도 난리였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미친 기교.
[이번경기 레전드.GIF]
ㄴ캬…… 이게 로망이지.
ㄴ근데 이걸 대체 어떻게 맞춘거임? 2부나 3부에서도 저런 적 있었음?
ㄴ전 2부부터봤는데 없었음. 보통 방어막이나 그런거에 막히는 경우에도 다른 방법 찾았던 것 같은데……
ㄴ뭐임 그럼. 새로 생긴 능력이란거?
ㄴ그냥 지금까진 완벽하지 않아서 안 쓴거 아니야?
[이창현한테 어울리는 별명 찾았음.]
ㄴ‘금빛섬광’
ㄴ와……ㄹㅇ 이거네. 마지막에 노란색으로 번쩍이는 모습 떠오르네.
ㄴ같은 팀 선수 ‘눈뽕빌런’이랑 비교되는거 뭐임ㅋㅋㅋㅋㅋ 개웃기네
[나름대로의 이창현의 능력분석 및 예상]
ㄴ핵심은 두 가지라고 봄. 탄도 궤적에 보정을 넣어줄 수 있는 사격류 능력. 그리고, 궤적을 모두 계산할 수 있는 능력. 이 두가지 있을거라고 봄 ㅇㅇ
ㄴ그럼 지금까진 왜 이렇게 안쏨? ㅋㅋ
ㄴ탄환의 궤적을 보여주는 능력이라고? 헌터스리그 오래 봤지만, 그딴게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 못들어본듯. 그냥 각성자의 날카로운 감각을 최대까지 벼려낸 거 아님?
ㄴ 나도 각성자 군필 친구 있는데 그렇게 절대못한대 ㅋㅋ
심지어는 이창현의 능력에 대한 여러 가지 추론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단 2부였기에, 아직 1부 선수들에 비해 그 능력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거기에 아무리 각성자가 초인이라고 한들,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초능력이라고 하기엔 또 어쩌면 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모호한 구석이 있었으니……
이정훈으로서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난 나중에 창현이 형한테 직접 물어봐야지.’
새삼 나름 PER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지는 이정훈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내밀한 속사정을 알 수 있는 관계자라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이창현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보았다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이정훈 자신이 한 건 아니지만, 어깨가 계속 으쓱거릴 수밖에 없다.
“어때요 한지후 선수?”
아까 전까지 도탄으로 맞춘 것을 뽀록이라고 했던 한지후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니면 또 어린이마냥 징징대던지.
어떤 모습을 보여 주려나. 하고 나름 반응을 기대했던 이정훈이 본 것은 의외의 장면이었다.
마치, 이정훈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듯. 리플레이 되는 장면을 보고 빨려들어갈 듯 눈을 크게 뜬 채로 몰입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곤 한 마디 말도 채 내뱉지 않은 채, 결연한 모습으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기장을 나갔다.
‘충격 받았나…….’
뭐, 아무래도 좋다. 창현이 형의 이번 경기는 내가 봐도 레전드였으니까.
그렇게 반응을 살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도중.
이윽고 기다리던 순서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평소 이창현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이번 경기의 하이라이트 급의 백미가 될 거라고 예상되는 승자팀 인터뷰.
이정훈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완전히 눈에 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