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신전
흩어져서 각개 돌입을 선언한 후, 나 역시 마나프로텍터가 잔뜩 설치된 신전으로 돌입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무너져 있고, 심지어 천장도 뚫려 있는 부분이 종종 있었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무너뜨리긴 어려워 보이지만.’
영리하게도 내 예전 경기기록을 찾아보았던 것일까.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곳은 마나프로텍터가 기둥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최근들어 경기를 한 맵 중에 이색적인 풍경을 지닌 곳이라 꽤나 흥미진진했다.
지금에야 헌터스 리그가 스포츠화 되고, 일종의 맵이라고 간단하게 뭉뚱그려 말하지만……
과거 1세대 헌터들이 직접 탑을 탐사할 시절에는, 마치 고고학처럼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일을 했었던 것인지 같이 탐구하곤 했다고 하니까.
확실히 호기심이 생겨나는 부분이 있는 곳이긴 했다.
‘무슨 신을 섬겼던 걸까.’
뭐,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긴 하겠지만.
특이점이 있는 맵이 아니라, 이 맵에서 주로 등장하는 유물을 봐 두진 않았지만 아마 이 신전에서 섬긴 신과 유물의 특성이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안쪽으로 걷던 도중.
“다들 아직 적이랑 조우한 사람 없어?”
문득,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산개해서 마나 프로텍터를 펼친 후 유물을 찾아다니며 우리 팀을 각개격파하려는 속셈이었을 텐데.
아직도 적이랑 마주친 사람이 없다고?
“……이쪽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연주야. 아직도 감이 잘 안 잡혀?”
“……응.”
원래라면 이연주가 상대의 동향을 알려줘야 했지만, 마나프로텍터가 워낙 많이 설치되어 있는 탓인지 위치파악능력에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의외의 정보였다. 마나장비를 여러 곳에 설치해 상대의 위치를 교란하다니.
아마 의도적인 전술은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이번 경기에서 꽤나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상대의 위치가 아직도 전혀 파악되지 않는 건 좋지 않은데…….’
모여 있는지, 흩어져 있는지.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그것들을 알아야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 어떻게 나오는지 전술을 읽을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어쩌면 꽤나 골치아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전방에서 강한 마나의 반향이 느껴졌다.
마나 프로텍터라고는 볼 수 없는, 그런 기운이었다.
‘저렇게 뭉쳐서 마나 프로텍터는 설치해 둘 리 없으니…… 모여서 한 명씩 제거하는 전략이었나. 그리고 그 첫 상대가 나인 거고.’
1부의 경기에 익숙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날 제외한 후 각개전투를 벌일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 짚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쇼타임의 시작이다.
***
“다들 준비는 됐어?”
TAM의 리더이자, 메인 딜러.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고있는 조수연이 물었다.
그 물음에 모든 팀원들은 엄숙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경기를 진다는 것은, 2부로 강등된다는 것.
그렇기에 1부에서 있었던 다른 경기들보다도 특별하고, 열심히 준비한 상태였다.
“멈춰.”
무리를 지어 이동하던 TAM이 숨을 죽이고 마나 프로텍터 뒤에 몸을 숨기며 멈춰섰다.
아니나 다를까, 조수연의 제스쳐가 보였다. 계획대로였다. 앞에 표적. 이창현이 있다는 의미였다.
완벽했다. 1대 7의 상황. 상대방은 에이스인 이창현이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는 팀. 게다가, 이 지형은 이창현이 활약하기 어려운 지형. 설령 녀석이 강한 무력을 보여주더라도, 7명을 결코 쓰러뜨릴 수는 없으리라.
지속력이 부족한 녀석인데, 마나프로텍터 뒤에 숨어 소모전을 유도할 거니까.
조수연은 숨을 죽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후, 갑작스레 전투가 개시되었다.
첫 선두는 조수연이었다.
이번 전투를 위해, 평소보다 길이가 짧은 채찍을 들고 온 상태였다.
벽 뒤에 엄폐한 상대까지 공격할 수 있도록, 유연성과 테크닉을 연마한 상태였다.
마나 프로텍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이창현을, 순식간에 들이쳤다.
녀석은 웃고 있었다.
“……?!”
하지만 어쨌거나, 이 거리는 조수연의 거리였다.
이 장애물이 많은 근거리에서 장검을 휘두르는 것도 총을 쏘는 것도. 미리 맞춤으로 준비해 온 조수연의 채찍에 비하면 매우 불리하리라.
게다가 지금 조수연만 이창현을 노리는 게 아니니까.
쉬이익 ㅡ.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총 쏘기를 주저하는 동안 조수연의 채찍이 먼저 강렬한 선공을 가했다.
“채찍이라니, 좋은데?”
좁은 구역. 하늘로 솟아 피하기도 어려운 실내. 그래서 마나장비를 이용한 공중전이 특기인 이창현이 피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는데……
‘허리를 저렇게 꺾어서 피한다고?’
거의 곡예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이창현이 그걸 피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이창현이 상대해야 할 건, 7명이니까.
채찍을 피한 순간, 또 다른 방향에서 숨어 있던 TAM의 팀원이 불안정하게 서 있는 이창현의 다리를 향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또,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채찍에다가 팀원도 이렇게 바리바리 데리고 오다니.”
그래, 마나장비라도 사용하지 않는 한 절대 피할 수 없는 자세. 그 자세에 또 다른 팀원의 공격이 들어가자, 이창현이 권총을 들어 완벽한 견제사격을 가한 것이었다.
타탕 탕 타탕!
불안정한 자세, 하지만 그렇다고 팔과 상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마치 녀석은 눈이 여러개라도 달린 듯, 그 상태에서 정확히 뒤를 잡는 TAM의 팀원이 더 가까이 와 공격하지 못하도록 녀석이 자랑하는 쌍권총으로 견제사격을 가한 것이었다.
“마나 프로텍터 뒤로 피해!”
‘후…… 정말 쉽지않은 녀석이네.’
이미 반 쯤은 계획대로 되었는데, 그럼에도 쉽사리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수도 있다는 것까지 예상했어.’
녀석이 얼마나 총을 잘 쏘든간에, 이 마나 프로텍터 뒤에 있는. 엄폐물을 끼고 싸우는 우리를 쉽사리 공격할 방법은 없다.
소모전을 벌이면 그만일 뿐.
여유만만인 것 같아 보이던데…… TAM은 이 경기를 위해 밤낮으로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절대 질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돌입 신호를 보내려는 순간.
녀석이 나지막이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있는 [마나프로텍터]를 맞춘다.”
쾅! 콰콰쾅 쾅!
평소보다도 훨씬 강력한 파괴력이었다. 마치 땅이 울리는 듯한, 거대한 굉음.
정보로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고 강력해서였을까.
어느샌가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만약 마나 프로텍터가 부숴진다면. 이 계획은 모두 끝이니까.
녀석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탈출해 공중전을 벌일 것이었다.
엄폐물 뒤에 있다면 엄폐물 째로 날려 버릴 것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됐다.
일단 조수연. 자신이 등지고 있는 마나 프로텍터엔 이상이 없었지만……
“다들 괜찮아?”
아직 그 거대한 총소리와 파쇄음으로 이명이 들렸음에도 다급한 마음으로 팀원들에게 물었다.
“어. 난 괜찮은 것 같아.”
“나도. 부숴진 마나프로텍터는 없는 것 같은데? 아니. 다 완전 멀쩡하잖아.”
그제서야 조수연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렇게만 하면 돼. 이렇게 소모전을 유도하면 녀석은 마나를 다 써 제 풀에 지칠거야.
그리고 녀석의 팀원들이 지원을 오기도 전에 우리한테 죽겠지.
“자 그럼 ㅡ!”
다시 녀석을 몰아칠 공세에 나설 차례라고 생각하고, 옆을 바라본 순간.
……
함께 같은 마나 프로텍터에 몸을 숨겼던 TAM의 팀원. 오지헌이 쓰러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조여오는 압박감.
뭐지? 어째서. 분명 피했을 텐데.
이렇게 좁은곳에서, 궤도를 꺾어 맞추는 것 따위 가능할 리가 없는데.
녀석의 능력은 이미 다 분석됐는데.
주변엔 분명 저 녀석밖에 없는데.
왜. 뭐야. 무슨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눈앞이 아찔했다.
찍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절명한 팀원이 있었다.
그건 완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상대의 일격을 막아 낸 안전지대에서의 일이었다.
엄폐물 뒤에서의 일이었다.
“조수연 ㅡ. 오더가 너무 느려…… 이대론 저 녀석 팀원들이 합류할 때까지 시간을 줘 버린다고. 애들아! 돌입하자!”
안 돼. 아직 저 녀석이 무엇을 했는지 ㅡ.
“키킥. 마나프로텍터 천지인데, 아예 라이플을 드는 건 또 뭐냐? 차라리 권총이면 몰라. 수연아 완전 네 말대로인데? 소모전만 반복하면 힘 빠진 짐승마냥 쉽게 집어삼킬 수 있겠다.
어? 야. 애들아 쟤 또 총 치켜올린다. 안 싸워도 소모전만 하면 되니까, 엄폐물 뒤로~!”
“여기있는 [마나프로텍터]를 맞춘다.”
녀석은 또 나지막이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까 전과는 팀원의 반응이 달랐다.
“흠집도 못 내면서 마나프로텍터를 맞춰 봤자 뭐 할라고.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고 버티는 것만 하는게 나을텐데. 당황해서 그런 것도 모르나 본데? 킥킥.”
아니다. 녀석은 우리가 모르게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쾅! 콰콰쾅 쾅!
또 한 번 들려온, 그 거대한 총성.
다시금 강한 이명이 귀가 먹먹하도록 들려왔다.
정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더를, 내가 오더를 내려야 했다.
아직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TAM의 팀원들이 이대로 계속 들이박도록 놔둬선 안 됐다.
“얘들아. 얘들아!”
“어? 왜. 잘 되고 있는데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마. 안 그래도 귀 아픈데.”
후…… 다행이다. 어쩌면 이번엔 아무 일도 없었는지도.
그렇게 생각한 찰나. 이어폰 뒤로 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현수야. 이현수! 아니…… 얘…… 뭐냐? 얘 총 맞았나 본데? 아니 근데 이 이창현이랑 우리 사이엔 마나 프로텍터가…….”
이번엔 다른 쪽이었다.
여전히 조수연이 겪은 일과 똑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상처를 보면 총상인데, 아무리 탄도가 조금 변화한다고 해서 맞출 수 있는 경로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너무나 중요한 경기. 의외의 위기 상황에 냉정을 잃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강한 심호흡을.
어차피 녀석은 지금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어째선지 기다려 주는 것 같아.’
그 틈을 타, 처음 죽었던 오지헌의 상처. 그리고 그 주변을 살펴보았다.
보이는 건 탄환이 벽에 맞은 흔적이었다.
오지헌의 위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마나프로텍터에 남겨져 있는 탄흔이었다.
결코 맞을 수 없는 방향에서 쏘아진 탄환. 그리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탄환이 쏘아진 방향에서 직진하다,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꺾지 않는 이상은.
‘반대 방향으로 꺾어…….’
설마……
“도탄…… 사격?”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게 가능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도탄 같은 걸, 궤도를 정확히 조정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상식적으로.
하하……
쓰러진 오지헌의 몸을 앞에 두고. 조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완벽한 전략. 완벽한 방어. 소모전이라는 대책까지 준비해 놓은 이 무대.
하지만 모순적으로 이 무대에 안전한 지역따윈 애초에 없었던 것이었다.
마나 프로텍터 너머로, 자신을 향해 여유롭게 웃고 있는 이창현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눈치채 버렸네. 일부러 요란하게 일을 벌여서 숨긴 건데. 눈치가 빠르네.”
경기장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보았다면 쾌활한 녀석이라고 생각할 법한 그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잿빛, 누렇게 바랜 바깥의 빛이 신전의 무너진 틈새로 들어왔다.
구름 가득한 하늘.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이 무너진 틈새로 이창현을 비추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이곳의 신은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