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무모한 전술
헌터스 리그에서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 경기의 양상을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그 팀이 어떤 전술을 선호하는지. 어떤 선수 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컨셉으로 어떤 스타일의 경기를 하는 팀인지.
……그리고 당일이 되면 그것들에 더해져 그날의 경기 컨셉을 알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며 공개되는 그 팀 선수들이 채용한 ‘마나장비‘.
이것이야말로, 그날 그 팀의 전술의 컨셉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힌트였다.
‘마나프로텍터…….’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평소엔 정말이지 별로 잘 쓰이지 않는 비주류 마나장비 중 하나. 즉, 특수한 전술을 준비해 왔을 때나 쓰이는 마나장비였다.
그걸 이번 맵과 엮어 사용방식, 전술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사용할 방식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방어전을 펼치고, 동시에 지형을 파괴시키지 못하도록 한다…….’
이른바 많은 엄폐물이 있는 실내에서, 근접전을 강제하겠다는 발상이리라.
‘[마지막 신전] 맵은 마침 찾을 수 있는 유물도 대부분 신전과 건물 지역에 몰려있으니까…….’
그 곳에 진영을 잡고, ‘마나 프로텍터’로 엄폐물을 가득 만들면서, 건물의 기둥이 무너져도 건물은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만든다.
그런 생각이리라.
아니나다를까, 상대방의 동향을 관찰하며 합류 중이던 팀원의 목소리가 울려 왔다.
“쟤네들 내가 본 그 커다란 게…… 뭔가 설치를 하는 것 같은데?”
완전히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TAM이 우리가 전에 펼쳤던 우주방어전략처럼, 드러눕고서 소모전을 펼칠 요량인가본데…….’
누구를 저격한 건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전술을 한 건지, 뻔히 보이는 것 같았다.
재미있네.
***
관중석에서 보여지는 화면에서는 한참 작업중인 TAM의 모습이 보여졌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마지막 신전]의 무너져 가는 신전이 자리한 곳에 합류함과 동시에, ‘마나 프로텍터’를 설치하는 모습이.
‘저런 식으로 한다면…… 원거리 딜러에겐 쥐약이지.’
헌터스 리그에서도 뛰어난 분석력과, 천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조아라.
그녀가 보기에는 적어도 그랬다.
바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적어도 저 곳에서 싸운다면 그 어떤 원거리딜러가 오더라도 공격력이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신전이라는 실내도 실내이지만, 건물을 무너뜨려 바깥에서 저격하는 전술 따위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니, 그 건물은 TAM이 만들어 낸 엄폐물. ‘마나 프로텍터’로 가득하다.
어디로든 쉽게 피할수 있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이는 원거리 딜러뿐 아니라, 장검을 쓰는 윤한결이나 김도준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반면 TAM은 단검이나 건틀릿…… 혹은 아예 마나봄버만 들고 와서 엄폐물 때문에 무기를 휘두르는데 걸리적거릴 일이 없어.’
이건 TAM이 손짓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거대한 수렁을 파 놓은 채로 먹잇감을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그렇다고 들어가지 않다가는 신전에 자리한 강력한 유물을 TAM이 모두 가지게 되어 전투 자체에 크게 유리해지리라.
즉, PER은 시작부터 TAM에게 전술적으로 말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차라리, 시작부터 집요한 교전을 일으켜,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하거나, 혹은 신전쪽에 PER도 자리를 잡았으면 모를까……
지금 TAM의 노림수를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었다고 봐야 했다.
‘내가 말한 부분을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야…… 별로 신경 쓰진 않았던 동생인데. 성장했나.’
아니, 승강전이라는 다급함이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전술적 생각을 하며 경기를 미리 가늠하는 동안, 마침내 두 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설자 : 아아…… PER! 팀원들의 합류가 끝나자마자, TAM이 구축한 진영으로 움직입니다!]
[캐스터 : TAM의 구축한 진영으로 들어가면 말씀해 주셨다시피, 거의 승산이 없는 것 아닌가요?]
[해설자 : 네…… 분명 싸움도 미리 준비한 TAM이 유리하고, 그렇다고 소극적으로 싸우면 소모전만 일어나면서 PER에겐 불리할 텐데요…… 이창현 선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요!]
자포자기일까. 아니면 오만일까.
‘오만일지도. 지금까지 모두 이겨 왔던 녀석이니까.’
녀석의 탄이 탄도를 비튼다는 이야기는 나도 다른 선수에게 들었었다.
아무래도 그걸 믿고, 안에 엄폐물이 많아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무리 각성자가 능력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물리법칙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강한 힘으로 탄환이 쏘아졌다면, 약간의 궤도수정이 능력으로 가능할진 몰라도, 멈췄다가 같은 속도로 역주행 ㅡ 같은 능력을 사용하기는 일반적으론 힘들었다.
‘실제로 들었던 탄도를 비트는 능력도, 탄의 궤도를 그렇게 급격하게까지 틀지는 못한다고 들었고…….’
실내, 그것도 장애물이 많은 그런 곳에서 지그재그로 장애물을 피해가며 날아가는 건 불가능하겠지.
선수에겐 분명 자신을 믿는 자신감과, 그리고 도전정신이 필요하지만……
녀석은 아직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하고 무모한 일을 벌였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해설자 : 네. 지금 이 순간, TAM이 만든 진영에 PER이 돌입합니다!]
***
“나랑 연주한테는 좋겠지만, 나머지 팀원들한테는 아무리 봐도 쥐약이겠는데. 이렇게 좁고 장애물도 많은 곳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
[파동]으로 공간과 방어물체에 간섭받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류재준이 말했다.
‘꽤 합당한 지적이네.’
과연 이근택이 키운 녀석이다 싶었다. 그리고 내 회귀 전 파트너였던 만큼, 헌터스 리그 이해도가 높기도 했고.
합류한 팀원들. 이길한, 김유현, 이연주, 김도준, 윤한결, 류재준……
이번 경기에 선발된 PER의 멤버들의 면면들을 봐도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이길한은 지형상 돌진 자체가 안 되겠고, 장검을 쓰는 김도준이나 윤한결은 좁은 지역이었기에 장검이 제대로 휘둘러지기 어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류재준은 더해서 이렇게 생각했겠지.
“왜. 좁고 엄폐물 많은 지역에선 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힘들까 봐?”
류재준을 보며 씨익 웃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 부분도 상당부분 지분을 차지했는지, 류재준이 흐음…… 하며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말하고 때리는 사람]으로 탄환의 공격력이 증강되더라도 [마나 프로텍터]를 부수지는 못할 테고…… 그렇다면 [마나 프로텍터]로 가려지지 않는 부분을 쏴야 할 텐데, 좁기도 좁고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커지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일반적이고, 정론이다.
분석이 좋았다.
실제로도 일반적인 시선으로 봐도, 절대 활약하지 못할 것이라 보이리라.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해 봤어? 예상 말고 실제로 해 봤냐고.”
“아니, 그걸 꼭 해봐야…….”
류재준은 나름 내 전술적 이해도나, 헌터스 리그 이해도를 높이 사는데 내가 이런 땡깡부리는 듯한 말을 하자 머리가 아픈 듯, 붙잡았다.
“뭐, 지금 설명해 봐야 의미 없고. 보여 줄게.”
“…….”
“뭐야, 창현이 너…… 나 몰래 뭐 새로운 마나 장비라도 개발했어? 뭐, 지진이라도 일으켜서 다 묻어 버리는 장비라도 있나?”
김도준이 헛소리를 해댔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다 해도 이런 경기양상을 예측해서 그걸 준비해 오는 것도 말도 안 되겠지.
반면 윤한결은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눈치였다.
마치 새로 나온 블록버스터 영화를 바라보는 소년 같은 표정이었다.
“오더만 잘 따라 봐.”
계획은 단순했다. 마나 프로텍터로 엄폐물이 가득해 원거리 공격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전장.
[마지막 신전]의 심층부로, 전방향적으로 PER이 돌입. 난전을 벌인다.
설명이 끝나자, 류재준이 미쳤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도 시간이 가고 있고, 시간이 더 지나면 저쪽은 유물을 찾아 더 유리한 고지에 서겠지.
게다가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저 곳에 터를 잡는 걸 제지하지도 못했고.
방법은 결국 그냥전력으로 부딪히는 것뿐.
류재준은 아마 이 방법으로는 상대가 많이 유리하여 이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글쎄.
‘싸움이라는 건 어차피, 결국 더 잘 싸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까.’
표정으로 반대의사를 밝힌 류재준도 오더를 따라 잠자코 돌입을 시작했다.
‘이럴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팀원들을 내 매드무비의 제물로 삼아 버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때. 내가 사랑하는 리그에 돌아왔는데, 평범한 등장은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다시금, 헌터스 리그 팬들에게. 그리고 선수들에게 내가 왔다는 걸 보여 주는 것.
이번 경기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리라.
***
한편 [마지막 신전]의 터에 자리를 먼저 잡고 있었던 TAM측에서는 PER측의 돌입을 감지하고 있었다.
“수연아! 상대방이 이제 결정을 내린 모양이야. 돌입하고 있어.”
“역시나 모여서 한 쪽을 돌파하려고 하는 것 같아?”
“그…… 예상외로 산개해서 다들 다른 부분으로 각개 돌입하는 것 같아.”
“뭐어?”
조수연은 의외의 보고에 머리가 멍해졌다.
PER은 팀 합도 좋고, 무엇보다 각개전투보다 팀 전술에 능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될 수록 뭉쳐서 싸움을 걸어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오히려 좋아.’
다 분석한 상대가 의외의 방식으로 공격해 온다는 것. 그건 상대 역시 그 방식이 익숙하지 않고, 상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쓰는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저번 분석팀 보고서, 다들 봤지? 각개 전투 시 조심해야 할 녀석은 이창현, 류재준, 윤한결. 이 셋만 견제하고 나머지는 개인의 전투능력이 약해. 오히려 좋은 상황이야.”
“그…… 김도준…… 인가도 있지 않았나?”
“한시가 급하니 중요하지 않은 건 제쳐두고, 각개전투? 전투가 쉬워졌으니. 일단 내 오더대로 따라와 봐.
여기는 완전 우리 구역이야. 게다가…… 찢어진 걸 확인했으니, 상대가 안에서 합류하기 전에, 강한 녀석들부터, 일점사 해서 죽이자.”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떨어져 준 덕분에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
상대팀은 이창현 위주의 팀. 크랙이자 스트라이커인 이창현만 확실히 제거할 수 있으면 경기는 정말 쉬워지리라.
그런데 이렇게 좋은 타이밍에 찢어져 줬으니, 맞아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물론 1대1이 아니라, 7대 1이겠지만.’
거기에 [마나 프로텍터]가 즐비한 엄폐물이 널린 전장에서 말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상황에서 문제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무슨 함정인가 생각을 해보더라도,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더라도 상대가 무모하다고 느껴졌을 뿐.
조수연의 TAM은 역시나 빈틈이 없었다.
“자, 가자! 다 같이 한 놈씩 해치우는 거야.”
조수연의 독이 묻은 단검이 빛을 받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