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61화 (161/270)

161. 파훼

곧이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 시작 시간에 가까워지고 다소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아라 언니, 저 가 볼게요! 후…… 1부에서 강등될 수도 있어서 눈앞이 캄캄했는데.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수연이 이쪽을 향해 머리를 꾸벅 숙이고는 가버렸다.

주변 관중들은 곧 경기가 시작되는데 여기에 오늘 출전하는 선수가 있는 것이 생소했던 것인지 다들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입에 침이 바싹 마르겠지.’

조아라도 과거 단 한 번. 1부 리그 승강전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이번 한 경기에서 지면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은 종종 선수를 삼킬 정도로 강했으니까.

하지만 조수연은 걱정을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았다.

괜히 2부에서 1부로 올라오는 팀들이 없다시피 한 것이 아니니까.

아무리 그것이 이창현이 이끄는 팀이라도 예외는 없다.

철저히 분석당하고, 그 플레이를 파훼당하는 것.

한 번도 1부의 그런 치밀한 괴롭힘을 당해 보지 않은 선수가 그걸 이겨 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조아라는 그렇게 다리를 꼰 채로, 흥미진진하게 경기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봤다.

***

[캐스터 :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1부의 포스트 시즌이 끝나고, 국제 리그 전에 남은 유일한 국내전! 헌터스리 그의 최고의 혈투! 1부 승강전을 찾아주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해설자 : 아…… 그나저나 ‘승강전‘은 오랜만이죠 캐스터님?]

[캐스터 : 네 그렇습니다…… 흥미진진하게도, 1부 승강전은 대부분 2부리그 도전자 측에서 기권을 했기 때문에, 승강전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사실 올해도 크게는 다르지 않습니다.]

캐스터가 가르킨 손에 화면이 환하게 켜졌다.

거기에 쓰여 있는 소식은 다름 아닌, PSG의 1부 승강전 기권소식이었다. 즉, 이번 승강전에 참여하는 건 PER뿐.

[해설자 : 아…… 그렇군요. 사실 1부에 도전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대부분의 팀들이 1부에게 호되게 당하고 트라우마를 겪는 선수도 많거든요. 그런 점에서 PER! 플레이도 화끈하고 낭만 있지만, 정말 멋진 도전 정신입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의 플레이에 있어……]

해설자와 캐스터의 그런 티키타카가 이어지는 동안, 이윽고 화면에는 오늘의 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신전의 모습처럼,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완벽하게 관리되지 않은 건물이 즐비한 맵.

[마지막 신전]이었다.

[캐스터 : 아……! 오늘의 맵이 공개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오늘 선수들이 착용한 마나장비도 모두 공개되었는데요. 오늘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해설자 : 우선 기본적으로 가장 큰 장벽은 이 경기가 1부의 룰에서 진행된다는 점이겠네요.

PER측에서는 경기 진행 중 예상치 못한 통증으로 제 컨디션을 내지 못할 수 있다는게 가장 큰 변수입니다. 그 외에 맵같은 것에 별다른 변수는……!]

갑작스레 해설자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해설자 : TAM이 장비하고 온 마나장비가…….]

다름아닌 화면에 떠 있던 TAM의 마나장비가 일반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뿐만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비였으니까.

[해설자 : 모든 선수가, 마나장비에서 에어 앵커만을 제외하고 방어형 마나장비를 장착했군요!]

마나실드에 이어, 마나프로텍터까지.

마나실드의 경우, 즉발적으로 마나를 뿜어내 전방에 원하는 형태, 원하는 모양으로 실드를 생성해 막아 낼 수 있었지만, 그 방어력이 약했다.

하지만, 마나프로텍터의 경우 유연성, 즉발성, 기동성같은 것을 모두 제하고 오로지 방어에만 특화된 마나장비.

마나를 주입하면 마나회로를 방어에 최적화되도록 안정화시켜, 그 방어력하나만큼은 어마어마한 장비였다.

[해설자 : 보통 1부 리그 승강전에서는 1부 팀이 경기 중 통증에 익숙하지 않은 2부 선수들을 괴롭히려 공격적으로 운영하는 편인데…… 이번엔 완전히 반대인 모양입니다.]

[캐스터 : 흥미롭군요! 처음 나오는 승강전의 경기양상이라…… TAM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독특한 마나장비 채용이 눈에 띄는데 반해…… PER은 데이터와 별로 다른 것은 없군요?]

[해설자 : 네. 그렇습니다. 에어앵커에 에어비트. 그리고 개인이 즐겨쓰는 마나장비를 하나씩. 정석적인 채용입니다만…… 이건 TAM이 대 PER전을 준비해 온 것이라고 봐야겠죠. PER의 기세는 무섭지만…….]

경기의 해설을 보던 PSG의 한지후는 혀를 내둘렀다.

‘1부에서는 분석관까지 두어서 상대를 분석한다더니…… 확실히 쉽지 않아 보이는군.’

아무래도 마나프로텍터를 엄폐물로 삼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장을 구성하려는 모양인데…… 확실히 괜찮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PER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에이스 이창현. 마나프로텍터를 덕지덕지 박아 대면 엄폐할 곳이 생겨 총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뿐만인가, 저렇게 많은 팀이 저걸 장비했다면……

‘결국 이창현은 마나프로텍터가 가득한 곳에서 싸우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

누구와 싸우던 저걸 막 박아 댈 테니까.

그러면 결국 이창현의 장기인 저격은 힘들 테고, 그나마 남는 선택지가 쌍권총으로 그 묘기 같은 장기를 보이는 것인데……

솔직히, 지금까지 이창현이 공중기동을 워낙 잘 해서 그렇지.

녀석의 총이 특별하다곤 해도, 권총으로 싸우게 되면 칼을 휘두르거나 너클을 들고 주먹질을 하는 헌터들과 근접전을 하는데 오히려 손해였다.

‘이상적인 건 권총의 아슬아슬한 유효사거리에서의 중거리전투인데…… 그것마저도 마나프로텍터에 엄폐하면 맞추기가 너무 어려울 테니…….’

TAM이 이 한 경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선지 해설자들도 이어서 PER에 대해 부정적인 관측을 쏟아냈다.

[해설자 : 이런 방어전략을 겪어 보지 못한 PER로서는 정말 어려운 전투가 예상됩니다. 시작부터 전술적으로 너무 강한 카운터가 준비된 느낌이라…… 이창현 선수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TAM은 PER에게 벅찬 상대라고 보이거든요.]

“야 꼬맹아. 지금 해설하는 거 들리냐? 너희 창현이 형으로는 힘들댄다.”

한껏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건방진 꼬맹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창현 저 녀석이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는 하나, 현실을 알아야지.

난 1부리거고, 저 녀석은 이기기 힘든 승강전을 겪고 있다.

결국은 하위리거 녀석이 되리라.

역시나 꼬맹이 녀석도 그 상황을 이해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암. 그럼 그렇지. 애들이 알면 뭘 알겠어.’

헌터스 리그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수싸움이 물 밑에서 이뤄지는 스포츠였다.

‘그런데 쟤네 너무 대비가 허술한 거 아니야? 아무리 TAM이 1부의 꼴등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고 한들, 뭔가 특별한 걸 준비를 해오든 했어야지…… 쯧.’

한지후 자신이 이창현의 자리에 있었다면 팀원들을 통솔하며 필승할 수 있을 전략을 가져왔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옆에서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분명, 해설자의 전문적인 해설도. 그리고 주변 분위기도 보았을 텐데……

“제가 보기엔 그래도 창현이 형이 이길 것 같은데요?”

이 꼬맹이는 그 녀석한테 뭐라도 받았는지, 의견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미 시작부터 어느 정도 카운터를 당했는데도.

“쯧…… 이래서 경기 보는 눈 없는 애들이란.”

“형은 경기 잘 봐서 창현이 형한테 졌나 봐요?”

조그만 녀석이 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자꾸 되받아치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졌다.

“야. 자꾸 창현이 형. 창현이 형 그러는데. 이창현이 널 알긴 하냐? 헌터 좋아하는 꼬맹이면 그냥 잠자코 해설진 말 들으면 그렇구나~ 하지. 쬐끄만 게.”

하여간 선수가 잘나가면 그 팬들이 우쭐거리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하는 건 그 선수인데, 왜 우쭐거리지? 소속감이라도 느끼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되돌아온 답변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네. 아는데요? 아니, 저 창현이형이랑 PER 홈 한지붕 아래에서 자고 먹고 싸는데요? 창현이 형이 제 스승이에요.”

팔짱끼고 우쭐거리는 듯 말하는 꼬맹이.

심지어 대답한 내용도 가관이었다.

요 꼬맹이나 이놈 가르친 놈이나. 어쩐지 열받게 하는 건 똑같은 것 같다.

***

“하나. 둘. 셋.”

“화이팅!”

대기실에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곧이어 다들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이렇게 화이팅 해 본 것도 오랜만이네.’

회귀 전에는 이걸 하는 다른 팀은 봤어도 직접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의외로 평소에 조용하던 이연주가 제안해서 해 보았는데……

‘나쁘진 않네.’

이제 이 경기만 이기면 1부라는 것도 다들 체감하는 건지, 다들 이번 경기에 사활을 거는 것이 느껴졌다.

경기장에 입장하고, 눈을 뜨자 드디어 오늘. 대망의 승강전의 맵이 눈 앞에 비춰졌다.

스러져가는,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듯한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신전.

그 신전이 구름 낀 하늘에서 사이사이 뿜어져 나오는 햇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경치 하나는 좋네. 따로 변수가 큰 맵도 아니라서 좋고.’

물론 아직 상대가 저번 2부에서 마나장비를 각개격파 컨셉 위주로 짜왔던 것처럼, 상대가 어떤 전술을 준비해 왔을지는 더 두고 보면서 관찰해야겠지만.

적어도 이번 경기는 각개격파 전술을 펼치기에 좋은 맵은 아니었다.

“이번 경기. 맵에 특별한 변수는 없으니까, 일단 모이자. 평소 했었던 대로만 하면 될 것 같아. 상대 팀 움직임은 어때?”

그 말에 이연주의 대답이 이어폰에 들려왔다.

“조금…… 소극적인 것 같은데. 그냥 별로 경계하지 않고 합류해도 될 것 같아.”

‘……조금 의외네.’

내 기억으로 보통 1부를 처음 겪는 선수나 팀 상대는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정석적이었는데.

소극적으로 나온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아무리 우리 팀이 꽤나 1부의 룰에 익숙해지긴 했어도 초반에 몰아치면 팀원 애들이 꽤나 흔들렸을지도 모르는데…… 이 기회를 그냥 내버려둔다고?’

그렇게까지 해서 팀원이 합류를 하기만 하면, 특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이 TAM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 합류가 이렇게 편하고 긴장감 없는 경기는 처음이네. 무슨 동네 마실 나온 것 같아.”

“너무 연주말만 듣지 말고 경기 중엔 항상 긴장하랬지.”

제일 먼저 온 김도준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이렇게 합류하게 되고, 부딪히는 전투도 1부 팀이 선호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교전을 일으키고, 상대를 교란하고. 소규모 국지전을 펼치면 많은 변수가 발생하고, 변수가 발생하면 당연히 경험 많은 1부 선수, 팀이 유리하다.

무언가 경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꿍꿍이이려나…….’

팀원이 합류하도록 기다리 있는데, 의외의 정보가 이어폰에서 들려왔다.

“일단 합류하래서 합류 우선했는데, 저건 또 뭐지? 쟤네 팀원들은 다 되게 커다란 뭔가……? 를 설치하는 것 같던데?”

커다란 거…… 능력인가? 아니, 쟤네 팀원‘들’이라고 했는데…… 그럼 역시 마나장비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마나장비는 별도로 특수제작한 게 아니라면 그리 큰 것은 없을 텐데……

그 때,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큰 것이 마나장비가 아니라, 마나장비로 생성한 것이라면……

‘그럼 혹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