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서로의 속셈
창문 바깥으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볕에 눈을 떴다.
아직 아침 알람소리가 울리지 않은 채였다.
그래서일까, 다들 여전히 잠든 채였다.
‘시간도 좀 남았으니, 벌써 깨우기는 좀 그렇고…… 먼저 몸이나 풀고 있을까.’
회귀 전부터, 평소의 습관이었다.
경기는 보통 오후에나 있지만,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훈련으로 몸을 푸는 것.
게다가 지금 타이밍은 한참 시험해 볼 것들도 많았다.
‘이번에 얻은 능력들을, 원래 가지고 있었던 테크닉에 접목해 볼 시간까진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2층으로 내려갔다.
PER의 홈. 2층에 있는 내부 연습실.
거기엔 의외로 선객이 와 있었다.
“어……?”
이번 LTD와의 연습 경기에서 꽤나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 준 김유현이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오늘 경기 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그야, 이제 진짜 1부 경기의 시작이니까.”
평소에 우물쭈물 망설이던 김유현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무언가 평소와는 달리 자신감 있고 후련해진 느낌?
이번 LTD전에서 2대2 교전의 승리가 큰 자신감을 심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뭐, 좋아. 스스로 연습하겠다는데 말릴 감독은 없지. 혼자 상대도 없이 심심했을 텐데, 한 번 상대나 해 줄까?”
“그런 것도 좋지.”
김유현이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성장했다는 건가. 노림수가 뻔했다.
‘뭐…… 성장해서 달라진 나를 보여 주겠다…… 나를 이겨 버리겠다. 뭐 그런 뻔한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그런 호기로움도 나쁘진 않았다.
물론, 김유현이 성장한 것보다 내 능력이 더 많이 강해졌겠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연습실에 지형이 구축되고 순식간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교전의 양상 자체는 김유현의 능력을 알고 있는 만큼 특별한 건 없었다.
다만……
타타타당 ㅡ !
‘포탑의 화력 자체가 전이랑 차원이 다른데…… 가만히 막아 내기는 마나실드 정도의 방어력으론 어렵겠어.’
모든 마나를 포탑생성에 집중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전과 달리 포탑을 적게 생성하는 것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정확히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김유현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만들어 낸 결과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능력이라는 건 활용하는 능력에 따라 굉장히 그 수준이 갈리니, 현명한 선택이었다.
‘지역방어가 전보다도 강해지겠는데 이러면?’
보기만 해도 혈압이 오를 정도의 우주방어 전략이 가능할지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포탑이 확실히 강해졌네. 그런데…… 1부 리그엔 아무리 단단하고 강해져도 고정되어 있는 걸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은 모든 팀에 있을걸? 그 [포탑], 지금 부숴 줄게.”
역시나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말하고 때리는 사람]로 강화된 수준의 저격만 있더라도, 지형을 바꾸던 뭘 하던 부수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지이잉 ㅡ.
포탑이 일순간 포격을 멈췄다. 그리곤 놀랍게도 내 탄환도 그 포탑에 닿지 못하고, 무언가에 막힌 듯 힘을 잃고 떨어졌다.
‘설마…….’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지 못하고, [꿰뚫는 눈]으로 바라보니 김유현이 포탑 부분에만 순간적으로 [비폭력지대 생성]을 발동한 것이 보였다.
‘이런 식으로 메우다니…… 머리 꽤나 썼네.’
한 순간만 발동함으로써 마나 소모도 줄이고, 그것에 더해서 절약한 마나만큼 포탑에 힘을 실어 준다.
좋은 전략이었다.
‘물론 나한테 통하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콰콰쾅!
“어…… 어? 저게 왜……분명 막았을 텐데.”
“사람이 공격하는데 방심하면 안 되지. 상대가 난데.”
이번 능력을 얻고, 평소에 신경 쓰는 부분은 심리전.
사람들은 어느 곳을 쏜다고 하면 거기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 트릭에 쏘는 횟수. 궤적 수정까지 가능한 시점에서 내가 절대 불리할 수 없는 심리전이지.’
[비폭력지대 생성]을 순간적으로 잠깐 사용해서 막아 낸 건 좋았지만, 두 발을 시간차를 두고 도달하도록 발사했기에, 그것이 풀린 순간 포탑에 적중한 것이었다.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네. 연습 좀 더해야겠어.”
김유현의 성장이 느껴져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헌터스 리그에서 제일 중요한 건 경험.
경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능력을 새롭게 재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쓰임을 알게 된다.
다양한 전술을 소화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전술을 상대할 수 있게 된다.
1부 리그는 바야흐로 상대를 완전분석하고 싸우는 전장.
그런 수라장에서 수도 없이 우승을 거머쥐었던 내게, 아직 김유현은 풋내기나 다름없었다.
“1부에서는 상대에 대해서 분석을 다 하고 나오니까. 빈틈없는 전략. 그리고, 유연한 센스로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도록 고민해 보는 게 좋겠네.”
내가 김유현이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해 줄 수 있는 건 이정도이리라.
그 경험이라는 것. 경험치라는 것. 그건 단순히 전달해 준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나저나…… 이번 1부 승강전에도 빡세게 분석해서 오려나. 승강전은 처음이라 모르겠네.’
무엇이 되었든, 약점을 노리려 무언가를 준비해 올 텐데. 반나절밖에 안 남은 경기인데, 기다려져서 몸이 근질거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상대가 약점이랍시고 생각해 온 전술. 그걸 박살 내 버리는 것이야말로 나름 헌터스 리그 경기의 최고의 재미이기도 했으니까.
***
경기를 반나절 앞두고,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잠깐 몸을 풀고, 가벼운 식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팀원들의 움직임을 봐 주었더니, 어느덧 경기시간이 되어 경기장으로 출발할 시간이었다.
“와…… 진짜 두근거리네. 이것만 이기면 이제 1부인 거지?”
“뭐, 1부 정도면 그래도 처음 약속은 지켰네. 이 정도면 이적해도 연봉은 두둑이 받을 수 있겠어.”
“아, 지수 이적하게? 1부 올라가자마자 다른 팀이랑 트레이드 해 줄까?”
“가겠다는 건 아니고…….”
평소와는 달리 쩔쩔매는 한지수의 모습에, 팀원들이 깔깔 웃어 댔다.
한지수 녀석. 처음 들어올 땐, 연봉 두둑이 올려서 이적시켜 준다는 말에 들어왔으면서.
막상, 이젠 나가기 싫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건 그렇고, 왜 승강전은 우리 팀밖에 안 해? PSG는 승강전 안 하는 거야?”
“어. 거긴 전시즌에도 정규시즌1위하고 승강전 안했어.”
“뭐지…… 왜 안 하는 거지.”
“왜긴 왜야. 거기 애들 자체가 애초에 1부 못하겠다고 내려온 애들인데, 승강전을 하겠어?”
그제서야 김도준이 알겠다는 듯 김유현을 보며, 손뼉을 쳤다.
김유현은 그런 김도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얼굴을 돌렸다.
그런 헤프닝도 잠시. 어느 샌가 경기장 앞에 도착해 있었다.
평소 2부 리그의 경기장과는 달리, 승강전임에도 꽤나 많은 관중이 있었다.
“와…… 이제 진짜진짜구나.”
빈약한 어휘력 보소.
게다가 아직 이게 다 온 것도 아닌데.
“아직 경기시작하려면 좀 남았으니, 사람은 계속 들어올걸?”
“허어…….”
이연주도 조금 놀란 듯, 입을 헤 벌리고 관중들을 구경했다.
“야. 야. 저 사람들이 동물원 원숭이야? 쪽팔리는 짓 좀 그만하고 빨리 대기실로 들어가자.”
아니, 헌터스 리그 경기 처음 하는 애들도 아니고. 부끄럽게시리.
…… 사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지금까지 2부나 3부는 솔직히 말하면 1부에 비하면 보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한다는 건. 자신의 경기 장면이 비춰진다는 건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무대공포증 있는 사람은 없지?”
묻는데 다들 1부 경기장과 관중에 압도된 것인지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 유명한 사람이라도 있나 싶어서 관중석을 둘러봤지만…… 확실히 익숙한 얼굴들은 몇몇 있어도 유명인사가 와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아라가 왜 이 경기를 직관하러 온 거지?’
거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자기랑 상관도 없는 경기를 이렇게 열성적으로 와서 볼 정도였나.
***
한편 관중석.
이정훈은 먼저 연습 스케줄이 있어, PER의 팀원들과 함께 오지는 못하고, 겨우 경기시작 1시간 전에 관람석에 들어갔다.
“우와…….”
처음 보는 직접관람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뿐만일까. 이미 알고 있는, 나름 유명한 1부 선수도 관람석에 앉아 있었다.
‘조아라 선수……! 음…… 그리고 그 옆엔 누구지?’
열심히 무언가 조언하고 있는 듯했다.
“음…… 그렇게 준비했구나. 확실히 PER을 완벽하게 분석했네. 그 팀을 상대로 방어하기에 상당히 좋은 전략이야. 그쪽 코치님 분석이 정확한 것 같네.”
“아니에요…… 언니가 그 날 슬쩍 힌트를 주셔서 겨우…….”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점을 실제로 파고들고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은 얼마 없지.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는 게 좋겠네.”
“헤헤…… 감사합니다.”
‘PER을 상대하기에 좋은 전략……?’
아무래도 조아라 선수 옆에 서 있는 선수는 PER의 상대 팀 선수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PER을 완벽하게 분석했다니……
이거 아무리 창현이 형이 있는 팀이라도 위험한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대기실에 들어가서 빨리 상대팀이 PER의 전술을 읽고 맞춤 전략을 짜왔다는 걸 알려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이정훈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그 사이에 누군가 또 이정훈의 옆자리에 와 앉았다.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정훈이 일방적으로.
“헛…… 혹시…… PSG의 한지후 선수……!”
“읏……!”
적당히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쓰고 왔지만, 이정훈도 PER의 일원. PER대 PSG전은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랬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저 상대를 잡아먹을 듯 보이는 강렬한 눈빛.
“꼬맹아…… 조용히 말해라. 여기는 2부 리그 보는 사람도 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뭐. 싸인이라도 해주리?”
칫. 연예인 병인가?
2부 리그 팀이면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으려고. 우리 팀의 창현이 형처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주면 몰라.
게다가 승강전도 기권패 해 버린 PSG면서 싸인은 무슨.
“아뇨. 싸인 필요 없어요. 전 PER 팬이라서요. 그보다 그거, 마스크랑 모자 쓰는 거 자의식 과잉 아닌가요? 조금 그렇네요.”
이정훈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 말에 천하의 한지후도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었을까.
솔직한 어린아이의 직설적인 말이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왜…… 나도 이제 다음 시즌 1부로 올라가거든? 게다가 2부에선 상대할 선수조차 없는 선수였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창현이 형한테 털렸잖아요.”
“창현이…… 형? 아니 아무튼. 나도 이제 1부 선수라니까? 1부 헌터 싸인 같은 거 배추마켓에서 막 중고거래도 되고 그래. 그런데도 안 받아?”
“PSG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한지후 선수만 혼자 영입받아서 올라가는 거잖아요. 저희 창현이 형은 캐리해서 팀을 통째로 올렸는데.”
그 말까진 도저히 어떻게 대처할 수 없었는지, 한지후는 입을 열지 못했다.
문득 조용해진 한지후가 궁금해져서 이정훈이 한지후 쪽을 돌아보았더니, 멀쩡히 앉아 있지만 평소보다 헬슥해지고 안색이 거무죽죽해진 한지후가 보였다.
알아보아서 팬이라고 생각해서 내심 기뻤는데, 아니어서 데미지가 더 컸던 모양이었다.
‘쯧. 멘탈도 약하긴.’
저런 한심한 어른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