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경기 전야
한국 헌터스 리그는 각각 약간의 난이도 차를 주며 3부에서 1부까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3부에서 2부로 갈 떄는 다양한 지형과 맵, 중립 몬스터나 유물의 변수가. 그리고 2부에서 1부로 갈 때는 통증 재현도의 증가로 인해 경기의 양상이 크게 변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경기 내적인 일이었다.
‘사실 어쩌면 더 중요한 건, 경기 외적인 일이지…….’
흔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국 리그에서 굉장히 잘나가다가, 미국 메이저리그로 갔다가 다 파훼당해 결국 국내 리그로 돌아온 야구선수의 이야기.
헌터스 리그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2, 3부리그는 국내 리그. 1부 리그는 메이저리그쯤 되겠지.
1부에 올라서는 순간, 선수들은 전과 비할 수 없이 수많은 관중들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다수의 관계자들에게 노출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 선수가 낱낱이 해체되어 분석당한다는 의미였다.
2부나 3부리그에서는 그 선수의 의외의 능력. 장비 등에 의해 변수가 나올 수 있었지만, 1부로 가면 그 경우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모든 경기를 챙겨보며 상대 팀을 분석하는 각 헌터스 리그 팀의 전력분석가. 그리고 각성자 전문가. 기타 등등.
1부 리그의 팀들은 스폰이 빵빵한 만큼 많은 인력으로 그들을 대거 채용해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약점이라던가…… 지원자 시절엔 그런 게 많이 노출되지 않았나요?”
팀 단위로도 상대를 분석하고 약점을 찾는 행동을 일상적으로 하는데, 선수단위로 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조수연이 나. 조아라를 찾아온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걸 도와줄지는 좀 고민이 되지만…….’
조수연을 도울 정도로 친한가? 하면 확실히 미묘했다. 혼자 생각하고 분석한 정보까지 덥석 안겨 줄 정도는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싸늘하게 그런 거 모른다고 답하기에도 미묘했다.
어쨌거나 날 좋게 봐주고, 선수로서 나를 존경하는 녀석인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럼 반대로 이창현은 어떠한가.
‘……난 그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처음엔 조금 건방진 지원자. 하지만 예상외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줘, 뛰어나지만 건방진 지원자. 그리고 지금은……
‘…….’
어쨌거나, 실력을 떠나서 이창현보단 조수연 쪽이 호감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뭐, 그렇담 딱히 도와주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
근 몇 년간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1부 리그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건 선수입장에서 굉장한 스트레스일 테니까.
마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천천히 숨이 막혀 오는 기분이리라.
더군다나, 상대가 계속 새로운 기록을 갈아치우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팀이라면 더더욱.
“약점이라…… 좋아. 나도 헌터스 리그 선수니까, 천천히 분석해 볼까? 우선은…… 오늘 경기에서도 봤다시피 각성자로서 능력은 출중하지만…….”
“출중하지만…….”
“그 능력이 강력한 거에 비해 마나 보유량은 터무니없이 적은 것 같은데.”
“마나 보유량이요?”
내 말을 듣고는, 조수연이 생각에 잠겼다.
아마 그것에 비춰 이번 경기를 다시 생각해 보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마 내 말이 맞을 거야.’
사실 이건 비단 이번 경기에서만 드러난 약점이 아니기도 했다.
[헌터스 -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때에도 사실상 혼자 다 이길 수 있는 상황도 있었다.
마나만 충분했으면…… 말이지.
이번 경기에서 강준혁을 이겨 놓고도, 마나고갈로 경기를 등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강준혁 선수는 마나전개를 몇 번이나 사용하고, 그렇게 난리를 쳐댔는데도, 마나가 부족해서 지진 않았어.’
아마, 이창현의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지 강준혁 선수가 버티기 모드로 들어갔다면 승자는 반대였을 테지.
“아…… 확실히 그런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공격력도 좋긴 했지만, 그런 부분에서 약점이 있었군요.”
전략을 짜는 능력, 팀원에게 내리는 오더. 자기 일신의 강함. 모두 뛰어난 건 맞다.
하지만 분명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뭐…… 2부 리그나 3부 리그에서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약점을 노리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드러나지 않은 거겠지.”
“하하. 그렇죠. 제가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었나 봐요 언니…… 다른 분이랑 이야기도 해보니 한결 좋네요.”
조연수는 마치 일부러 정보를 캐러 오지 않은 듯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의도야 뻔했다.
‘다른 분이랑 이야기해서 좋다니…… 단순히 PER의 약점을 찾으러 온 거면서.’
애가 어려서 그런지 속을 잘 숨기지 못하고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제대로 도와줘야지.
“그러니까, 만약 네 팀에서 공략한다면 이창현은 체력빼기 전략으로 가야지. 공격을 계속 유도해서 제 풀에 지치도록.”
“아이, 언니도 참. 저희 팀으로 공략하다뇨. 그냥 오늘 경기 보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어휴. 이건 그냥 말하는 게 낫겠다.
“너희 팀, 이번 1부 승강전에 참여하지?”
“……네.”
조수연의 표정이 금방 침울해졌다.
그래, 피 말리겠지. 스트레스도 상당히 많이 받고.
“선배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몇 마디 해 주는 거니까. 그냥 감사하게 들어. 내가 그 상대팀이면 약점을 이용해서…….”
“오……그런 방법이 있군요. 이거면 아무리 강해도 공략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다른 팀원들이야 뭐……솔직히 저희 팀이 밀리지도 않고. 정말…… 정말 감사해요 조아라 선배.”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내 두 손을 부담스럽게시리 꽉 쥐면서 똘망똘망한 눈길로 마주봤다.
“그…… 그래. 열심히 하고.”
조수연을 딱히 많이 도와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막상 저리 기뻐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선수의 약점을 후벼 파는 것. 그건 1부 리그 선수는 다 겪어 가는 일인데. 내가 말한다고 크게 다른 건 없지.’
물론 아직 PER. 그리고 이창현은 1부 리그 팀이 아니라 2부에서 올라오려는 것이지만. 그것도 결국 한 뼘 차이.
나중에 겪을 일인 거, 지금 겪으나 큰 차이는 없으리라.
‘아니면 1부 승급전에서 정보 좀 알려 줬다고 지는 건, 딱 그 정도 수준인 거겠지.’
하위리그에서 아무리 잘하더라도 상위 리그로 올라가고 고꾸라지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니까.
***
PER의 홈은 한창 이제 금방 있을 1부 승강전으로 인해 준비가 한창이었다.
“저번 LTD와의 경기가 네 말대로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큰 도움이 된 모양이야. 다들 저번 경기 이후로 기합이 달라. 기합이.”
어느 샌가 멘탈케어 전문 코치가 되어있던 이종규가 말했다.
‘음…… 확실히.’
같이 이렇게 연습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확연히 차이가 느껴졌다.
기술코치를 영입한 이후로는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며 매 번 연습결과나 연습량을 측졍하는데, 그 때를 기점으로 꽤나 개선된 부분이 많은 편이었다.
물론 그 경기 이후 LTD전에서 불꽃같은 내 피드백이 있었던 영향도 있었겠지만.
“직접 이미지로 전달해서 감각까지 느끼게 해 줬잖아! 그렇게 해서 1부 리그에서 해 먹을 수 있겠어?”
“지금 그걸 검술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런 뻔한 궤도로 칼질할 거면 그냥 팀 때려치우고 나가서 횟집에라도 취직해 버려. 뒤진 물고기나 맞을 것 같은 검술이니까.”
평소엔 꽤나 친절하게 팀원들을 가르쳐 줬다고 생각했던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1부 리그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말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1부는 패배하는 순간, 그 데미지가 하위 리그에 비해서 배로 오는 리그.
경기의 패배, 고통 등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겨 헌터를 관둔 선수들도 꽤나 많았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가 더 빡세게 말하는 수밖에.’
차라리 내가 녀석들의 트라우마가 된다면. 그런 일이 없을 테니까.
죽도록 굴려 줘야지.
그런 다짐을 다시 다지고 있을 무렵, 이종규 코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요새 선수들이 많이 무서워하더라. 스트레스를 보기보다 많이 받더라고. 조금 애들 보면 보듬어 주고 그래.”
멘탈케어를 위해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대화를 많이 나누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전에 비해 지켜보는 사람도 많고, 부담감도 크고. 경기는 또 할 때마다 아프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긴 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가 하ㄷ…….”
그 말을 하던 도중, 선수들의 훈련과 기술에 대한 코칭을 담당하는 임성태가 들어왔다.
“아이구. 다들 오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드디어 내일이군요. 1부 승급을 하는 날이.”
“준비 마지막 날이라 조금 일찍 끝났나보네요. 애들 컨디션은 어때요?”
“다들 최상까지 끌어올리긴 했습니다. 아마 제 기량을 다 낼 수 있을 겁니다.”
“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부 룰로는 완전히 각자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기는 힘들 거라고 했었는데.
폼이 많이 올라오긴 한 모양이었다.
“아. 그런데 구단주님은 따로 연습 안 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최근에 선수들 보느라 많이 개인 시간을 못 내시는 것 같던데…… 지금이라도 제가 좀 봐 드리거나 도와드릴까요?”
‘흠…… 확실히 최근 들어 개인 훈련을 많이 못하긴 했는데…….’
어차피 나는 1부 리그의 룰이나 고통. 그런 패널티들에 익숙하기도 하고…… 이 팀에서 최고의 무력을 담당해 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다른 선수들 훈련이 끝났고, 이제 코치님도 피곤하실 텐데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건 나니까. 무언가 막혔을 때 논의해도 상관없으리라.
“훈련이 잘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임성태 코치님. 애들이 힘들어하던데 그만큼 땀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내일은 어찌…… 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듣고 있던 이종규 코치가 임성태에게 말했다.
“흠…… 솔직히 말해서 저희 팀이 조금 유리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직 저희 PER의 팀원들이 상대 팀보다 약하긴 한데…… 저희 팀은 무려 강준혁 선수를 꺾어 버린 구단주님이 계시니까.”
뭐, 확실히 맞는 말이다.
안 되면 내가 다 때려잡으면 되겠지. [만개]의 랭크가 어느 정도 올라간 지금, 내 폼은 냉정히 봐서 상당한 수준이었으니까.
“이종규 코치님도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연습 때는 안 그랬지만, 내일 실전 경기 때는 애들 실수는 제가 전부 커버치고, 오더도 제가 할 테니. 그럼 다들 들어가서 쉬시죠.”
공격 막기에 특화된 마나 장비 따위를 잔뜩 들고 와 버티기 전술을 이용해, 내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지 않는 이상.
생각보다 꽤 수월하게 이기리라.
그럼 이제 나도 슬슬 쉬러 들어가 볼까.
방에 불을 끄고 나와 침대로 향하려던 때.
어느 샌가 이정훈이 다가와 있었다.
요새 꽤나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나 보던데. 지금 당장은 큰 도움이 안 되더라도, 꿀단지 같은 든든한 보험이 되어 줄 녀석.
‘아무리 늦어도 무조건 올림픽에 헌터스 리그가 신설되기 전에는 성장할 테니.’
그런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이정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경기 내일이죠?”
“그래.”
“보러가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마치 군기 잡힌 신입사원처럼 이정훈이 소리치고는 돌아갔다.
이거, 모처럼 관심이 집중된 1부 승강전이 될 텐데.
멋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