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58화 (158/270)

158. 약점

정적. 그리고 한숨만이 흐르고 있었다.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선수인 만큼, 이번에 준비한 제의는 이미 구단주이면서도 팀에 대해 애정이 있을 이창현에게도 매력적인 제안이었으니까.

‘넘어가지 않을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웠을 텐데. 서로에게도 좋은 제안이고…… 그래서 계약서까지 챙겨왔는데 무안하게 되었구나.’

LTD의 총감독으로서는 전혀 상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무언가 더 나은 조건을 달라거나. 혹은 다른 요구사항이 있다던가.

무슨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 줄 수 있도록 열심히 머리를 굴려 왔거늘.

마치 이창현은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고. 이대로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엔 충분하다고. 그렇게 말하며 가 버렸다.

“허어어…….”

새삼스럽지만 그 모습에 강준혁이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 LTD에 강준혁을 영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뛰어난 선수들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는 것일까.

한편, 이창현이 나가고 나자, 3부의 감독. 이형근은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 일개 선수 주제에 감히…… 자기 주제를 모르는 녀석이군요. 안 그런가요? 아직 2부 리그인 PER에 한국 최고 팀이 LTD가 기회를 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해?

오만방자한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그걸 따끔하게 어른으로서 지적했어야 했는데.”

‘오만하다라…… 아니, 오히려 우리 쪽이 오만했을지도.’

“아니네. 자기가 직접 팀을 이끌고 있고, 승승장구한 채로 지금까지 거의 패배한 적 없는 채로 이겨오고 있는데. 우리가 어쩌면 그런 자신감을 얕보았을 수도 있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조금 아쉽긴 했다.

PER이 우리팀을 상대로 꽤나 분전했다고는 하나, 결국 패배한 것은 맞다.

그리고……당연하게도 LTD는 이 경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팀이었으니까.

어찌되었든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린 만큼, 지금 당장 이창현을 영입하는 건 쉽지 않으리라.

“그럼 이제 저 녀석은 포기하시는 건가요?”

역시. 1부의 감독 이진한은 눈치가 빠르다. 내가 대충 고민중인 것을 캐치한 듯했다.

하지만……

“아니, 버리기에는 앞으로가 많이 기대되는 선수다.”

“그렇다면 어떻게 방법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게 내 답이었다.

지금 몸담고 있는 팀이 LTD가 아니었다면. 한국 최고의 팀이 아니었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경기의 경기력이 꽤나 아쉬웠다고 하더라도 LTD는 약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녀석은 알게되겠지. 그제서야 내가 했던 제안의 가치를 말이야.”

이번 경기는 확실히 PER이 꽤나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 줬다.

하지만, 1부는 녹록치 않다. 오래. 그리고 많이 노출되며 부딪히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능력을 잘 알고 분석하며 싸우게 된다.

그런 것의 무서움을 그 녀석이 알까?

아무리 1부의 룰에 적응했다고는 한들. 분석팀을 따로 두고 서로의 상대를 능력은 물론, 습관까지 분석하여 공략하는 살벌한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확실히 준혁이가 봐 보라고 할 만해. 능력 있고, 스폰도 물어 왔고, 헌터스 리그에 대한 이해도도 높지. 하지만, 이 1부 헌터스 리그에는 그 녀석처럼 유능한 녀석들이 잔뜩 있다.

그런데 1위를 논한다는 건, 그건 다른 이들의 축적된 지혜와 노하우를 무시하는 거겠지.”

“아…… 그렇군요.”

이진한은 그제서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래. 녀석은 지금까지, 3부에서도, 2부에서도. 그리고 1부 승급까지도 모두 승리하겠지만, 1부에서만큼은 녀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지.

……그리고 야망이 큰 녀석은 결국 선택하게 되어 있는 법. 녀석 혼자라면 몰라도 PER이 1위는 불가능하다. 그럼 야망 큰 그 녀석이 선택할 수단은 뻔하다.”

“그 때, 다시 제안해 보자는 거군요.”

그래. 아마, 한 시즌이면 되리라.

“국제 리그를 끝내고, 다음 시즌에 다시 한국에서 녀석의 팀과 1부를 부대끼며 끝내면.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힐 기회가 올 거야.”

녀석을 영입하는 건 그때가 되리라.

***

[베스트] 이창현 선수 헌터스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 당시 슈퍼플레이

[베스트] 이창현 매드무비

[베스트] 이창현 선수 2부 미디어데이 인터뷰

‘…….’

회귀 전의 삶을 생각해 보면, 저런 걸 보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야, 그 때는 세계를 주름잡는 선수였으니까.

그런데 이제야 막 1부를 올려다보는 선수에게 이런 팬 카페와 글들이 달려 있다고?

그건 회귀 전에 더 압도적인 힘을 뽐냈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다.

‘물론 그 때엔 윤한결이랑 이렇게 친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겠지만…….’

“……그래서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너라는 거야?”

“뭐…… 운영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거는 없고, 가끔 글 올리고 그런 정도지.”

윤한결이 평소와 다르게 내 눈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글을 쓰는 닉네임이 하나가 아닌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확실히 활동하긴 하는 모양인데…… 솔직히 조금 신기했다.

“전부터 나한테 많이 알려 줬으니까, 네가 하는 플레이도 녹화해 뒀다가 보면서 좀 배우기도 하고 그런 거지…….”

윤한결이 머쓱한지 궁색한 변명을 이어 갔다.

평소의 죽일 듯 강맹하게 이기어검을 쏘아 대는 윤한결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게, 변명이 정말로 궁색했기 때문이었다.

검을 날리는 윤한결이, 내가 테크니컬하게 총을 연발하는 모습을 봐서 배운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원거리 딜러라면 모를까. 아예 전투방식도 다르고, 쓴 글들을 보면 따라할 수 있는 것들과 거리가 멀었다.

능력을 이용한 트리키한 플레이들.

그런 건 당연하게도 헌터 개인의 능력에 영향을 크게 받으니, 전투 방식을 흉내내려 해도 가능할 리가 없었다.

윤한결이 그걸 모를 리 없으니…… 진짜 되는 대로 일단 변명을 하고 봤다고 할 수밖에.

‘……뭐 그렇다고 내 플레이가 좋다고 하는 애한테 뭐라 할 수는 없으니…….’

그래. 팬 서비스. 팬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닐까? 팀원이 미친 듯이 아부? 아니.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그러니까.

단순히 선수와 개인으로서 윤한결을 팬으로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게 뭔…….’ 같은 표정을 숨길 수 있었다.

팬 미팅용 미소. 그래. 웃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페의 글을 조금 더 내려 보니, 조금 어지러울 뻔 했다.

[와…… 진짜 이창현 선수 공중제비 돌면서 총쏘는 거 개섹시한 거 같음.]

섹……시?

“아니, 창현아 그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니 나 여자 좋아하거든? 네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라…….”

“우리 조금 거리를 두도록 할까?”

그 모습에 평소 과묵한 편인 이연주마저도 윤한결을 보고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여긴 이목이 많아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홈에 돌아가면 꼭 저 카페는 폐쇄하라고 해야겠다.

그래, PER팬 카페를 PER선수가 응원하는 건 좀 이상하니까.

“아…… 어찌되었건, LTD에서 제의가 왔지만, 갈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안심하라고.”

“오~ 뭐야. 의외로 의리남이었네. 나같으면 바로 런 했을지도 모르는데.”

한지수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나 어디 안 가니까 다들 이상한 생각들 하지 말고, 1부 승급전이나 마저 준비하라고. 그러니까. 이번 경기도 결국은 졌잖아. 돌아가면 그거부터 복기하고.”

그뿐만인가, 1부 승급전은 결국 거쳐가는 경기일 뿐, 아직 팀이 완전히 1부 룰에 적응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이근택 회장님 덕을 크게 본 ‘가능성을 닫는 함’의 성장이 어느 부분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르는 선수들도 있고.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해야 할 그런 것들. 평소에 주던 개인 과제, 자주 실수하는 부분. 그런 부분이나 더 신경 쓰라고.”

……

“내가 이 팀을 나갈 일은 없으니까.”

아마 앞으로도. 아니, 헌터스 리그를 관두는 그 순간까지도.

***

한편 PER과 LTD의 경기가 보여졌던 대기실 안은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경기 자체도 이야깃거리가 많기는 했지만……

‘LTD감독들과 이창현만 독대…… 안에서 무슨 말을 나눈 거지?’

경기가 끝난 후에 있었던 일 또한 흥미를 사기에 충분했으니까.

‘이창현의 플레이를 보고 LTD로 오라고 제안한 건가?, 아니. PER은 이창현의 팀인데 그걸 쉽사리 넘겨받기는 어려울 텐데…… 그럼 뭐지? 업무 제휴? 아니면…… 진짜 단순하게 경기에 대한 이야기?’

이런저런 뒷사정들까지 잘 파악하곤 하는 조아라로서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LTD의 감독. 그것도 세 명씩이나 이창현과 독대했다는 건, 역시나 간단한 사안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오디션 프로그램 때는 일개 헌터 지망생과 한국 헌터 최정상급의 폼을 유지하는 선수. 그 정도의 갭이 있었는데……

자기계발을 한 순간도 멈추지 않으며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녀석이 이렇게 최속으로 올라온 것을 보니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불쾌감? 허탈감? 아니면 ……불안?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을 찰나. 조아라를 뒤에서 불러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ㅡ. 언니?”

“네. 어? 아……수연아. 너도 여기 있었구나? 경기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지금알았네.”

그녀를 부른 건 다름아닌 1부 팀 TAM의 메인 딜러이자, 스트라이커 조수연이었다.

“언니 원래 헌터연합훈련소 오면 항상 독방에 들어가서 훈련하는데 여기서 봐서 깜짝 놀랐어요.”

“아…… 뭐, 꽤 재미있어 보이는 경기를 하는 것 같아서. LTD는 특히 국제리그 전 마지막 공개연습경기잖아? 그래서 한번 지나가다가 들렀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조수연. 나쁜아이는 아니었다. 내 플레이와 경기를 좋아하며, 다가와 줘 나에게 나름 뿌듯한 기분을 주기도 했던 아이.

그렇기에 가끔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되어도 살갑게 대해 줄 수 있었다.

“오늘 경기 보는데, 이창현 선수인가? 굉장히 잘하더라구요. 언니도 보셨어요?”

‘아…… 그 이야기인가.’

“어 봤지. 2부 리거라는데도 다들 굉장히 잘하더라. 상대가 LTD인데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우리도 분발해야겠는걸?”

“그렇죠. 저도 많이 반성했어요…… 아. 그 혹시, 그러고보니 저 이창현 선수 전에 헌터가 되기 전 헌터 스리그 오디션…… 그니까 [헌터스 –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에도 참가했었다면서요?”

용케도 알고 있네. 지금 알게 된 게 아닌가? 현직 헌터는 아무래도 잘 보지 않았기에 오늘 처음 봤을 텐데……

“아. 그렇지. 내가 그때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했었는데.”

“언니 심사하실 땐 어땠어요? 그 뭐냐…… 그때도 역시 잘…… 했겠죠?”

“뭐…… 그렇지?”

조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런데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 주긴 했지만 왜 그렇게 많이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보이지? 전에도 본 적이 있나? 아님 뭐 플레이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던지 그런 건가? 하 참…….’

“그래도 심사위원입장에서 지원자를 보면 허점이나 약점도 많고, 그렇잖아요. 뭐 그런 건 없던가요? 오늘 경기 보니까 너무 다 잘하는 것 같아서 신기해서…….”

‘약점…….’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생각이 났다.

그래, 조수연의 팀. 1부 TAM은 이번 시즌 10위였기에, 승급전을 치를 텐데……

‘그렇다면 혹시 이번 승급전…… TAM의 상대가 PER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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