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57화 (157/270)

157. 영입제의

회귀를 했다 보니, 과거에 알았던 사람을 만날 때 기분이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엮이고 변해 가면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관계성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회귀 전, 이근택 회장님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스쳐지나가는 인물이었다.

김도준 또한 데면데면한 사이로, 같은 학교 동창인 것만 알았지 같은 팀으로 경기를 해 본 적조차 없었다.

이렇게 변한 관계성을 늘어놓다 보면 아마 밤이 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관계성이 변해 감에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결국 김도준은 과거랑 다른 방식이지만, 1부 리그에 걸맞은 포텐과 능력에 가까워졌고. 류재준 역시 이전 실력과 비교해서 큰 차이는 없었다.

실력 있는 녀석들은, 여전히 헌터스 리그에서 자신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기에 회귀 후 보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형근은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회귀 직전, LTD 단장의 자리에까지 올라섰던 이형근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과거, 이형근이 선수의 미래를 팔아서라도 당장의 성장만을 앞당겨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이형근 감독님, 이전에 3부 리그에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잘 지내셨나요?”

그가 회귀 전 나를 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내가 그렇게 묻자,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이형근이 반색하며 말했다.

“아휴. 전에 3부에서 같이 뛰실 때 저희 팀이 져서 저희 팀이 문제인가 했는데, 이창현 선수의 PER을 보니 그 쪽이 너무 뛰어나서인 것 같습니다. 전에는 그때 패배해서 충격받고 그랬는데, 지금은 오히려 PER이랑 했었던 게 자랑스럽고 그래요. 하하.

저야 뭐, 아직 일개 3부 리그 LTD 감독이지요.”

먼저 대화를 걸어온 총감독보다 이형근의 안부를 묻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했는지, 이형근은 너스레를 떨며 친분을 과시하듯 말했다.

‘3부…… 감독인가.’

회귀 전 이맘때 즈음 이형근은 거의 1부 감독의 위치에 가깝게 도달했었다.

나를 발굴해내고, 제일 잘 안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나저나 이창현 선수. 오늘 경기도 정말 훌륭했습니다. 2부 리그에서 1부리 그로 승급전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데, 오늘 PER의 경기를 보면 그저 감탄이 나오더군요.

1부에서 PER이 저희 LTD와 우승 컵을 두고 경쟁하는 걸 보는 것도 꿈같은 일만은 아니겠습니다. 하하.”

좋은 분위기로 대화가 오가는 것 같자, 이형근이 1부감독 이진한과 총감독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자신이 무엇이라도 되는 사람인 것 마냥.

그래. 이형근은 이런 사람이었다.

아부를 잘하고, 줄을 잘 서면서, 정치질을 잘 하는.

아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각성자들을 감언이설로 꼬드겨 헌터로 만들어 놓고, 쓸모없다 싶으면 내쳐버린 후 안중에도 두지 않던.

‘……그리고 괜찮다 싶은 선수들만 골라 가스라이팅을 시전하고, 뛰어난 교육자인 체 하며 성과 부풀리기에 급급한 녀석.’

자기 말대로 [만개]를 개방하지 않아 경기를 내보내 주지 않고 가스라이팅을 시전했던 회귀 전의 이형근이 생각났다.

이런 녀석이.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코칭 능력도, 헌터스 리그 이해도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이 녀석이.

날 버릴 거라는 걸, 내쳐서 경기에 내보내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걸.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워했던 걸까.

‘한 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바라보면, 이토록 작은 일인데.’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도. 그 외의 다른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을 텐데.

저까짓 감독이 뭐라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회귀 전, 내가 [꿰뚫는 눈]으로 팀원들의 성장을 돕지 않았더라면. 그 성과를 이형근이 포장해 가로채지 않았더라면.

이형근은 여전히 3부 리그 감독에 머물러야 할. 그런 녀석이 맞았으니까.

만나기 전까지는, 솔직히 걱정했었다.

나 없이도. 내가 회귀 전 LTD에서 이뤄 낸 성과들. 팀원들을 돕고 같이 성장했었던 그것들이 없었어도 이형근이 능력이 뛰어남을 인정받았을까 봐.

사실은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 봐.

“……그래서 말인데, 저희 LTD측에서 좋은 제안을 한 번 해 보려고 합니다. 이른바 PER과 LTD의 콜라보레이션 같은 거죠.

알아보니 이창현 선수 겸 구단주님은 팀에 꽤 애착도 있으신 것 같은데, 그래도 결국은 우승이 목표지 않습니까? 거기에 도움이 되고자 LTD와 일종의 영입비용을 하지 않고 매 시즌 프리 – 트레이딩이 가능한 제휴를 맺는……

그럼 이창현 선수의 PER도 살리면서, 이창현 선수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PER에서 벽을 느끼신다던가 하면 LTD로 오셔서 경기를…….”

LTD측에서는 이형근과 내가 안면도 있고 친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형근이 계속해서 마치 상품판매를 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신나서 이야기하는 이형근에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이야기네요.”

“역시 영리하신 분이라, 이 제안의 가치를 알아보시는군요…….”

이형근이 화색을 띠었다.

물론,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

과거에 날 괴롭혔던.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트라우마이자 불안, 괴로움으로 남아 있던 것을 다시 마주했다.

“그런데 말입니다만. 아직 모르시는 것도 있는 것 같으시군요.”

과거엔 그것이 너무나 거대해서, 어찌할 수 없다고. 그저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PER에 간 첫 시즌. PER은 3부에서 유례없는 전패팀이었습니다.”

경험을 쌓고, 한 발자국 물러나 바라보니.

“그리고 제가 PER에 간 첫 시즌. PER은 3부에서 전승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보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2부 승급전, 5년 동안 그 어느 3부 팀도 2부에 승급하지 못했지만, 업셋을 일으켜 승급에 성공했으며.

2부에 올라간 후 바로 2부 정규시즌 1위. 상위리그는 거의 별개의 경기임에도 다름없음에도 저희는 바로 증명했습니다.”

“…….”

“그럼 다음 수순은 뻔하죠.”

1부 승급. 그리고……

“……1부 정규시즌 1위.”

지금의 LTD의 순위이기도 했다.

옆에 있던 1부 LTD 감독 이진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 말에 이형근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대신 말씀해 주시니 편하네요.”

그래, 이건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예기치 못했지만, 중간에 이근택 회장님의 도움도 있었고, 성장 속도도 예상보다 빠르다.

그리고 [만개]의 랭크가 올라가며 회귀 전 이맘때보다는 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이번 LTD와의 연습 경기로 그 길이 분명 보였다.

뭐, 그리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만개]를 개방하는 방법도 있겠지.

전과 다르게 존버한 기간 자체가 다르다.

아직 개방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의 효과. 개방했을 때 고점이 어딘지 나조차도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번 시즌, 저희 팀. PER은 1부 리그에 승급할 겁니다. 그리고 정규시즌 1위, 아니. 포스트시즌마저 1위로 마감하겠죠.

그건 저희 팀원만으로 충분합니다. 스폰도. 선수도, 후원자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제안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아갈 때다.

새삼 LTD의 세 감독과 만나니 실감이 났다.

다시 내가 이 1부의 문 앞에 섰다는 사실을.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벙찐 채 뻐끔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LTD의 감독들을 뒤로하고 나갔다.

***

“무슨 말을 그렇게 했어? LTD 감독님들 아니었어?”

“맞아. 너 들어가고 나서, 여기 있던 선수들 다 그 이야기만 하던데.”

나가자마자 김도준이 내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경기가 끝난 직후의 독대였으니 시선이 쏠려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지금 최고의 주목도를 가지고 국제 리그를 앞둔 팀. LTD의 세 감독과 내가 만났으니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리라.

“밖에 선수들은 그거 보고 무슨 이야기하던?”

새삼 궁금해졌다.

실제로 안에서 한 이야기랑 어느 정도의 갭이 있을지.

“음 뭐…… 다양한 이야기가 있긴 했는데, 너를 LTD에서 영입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나오더라.”

생각보다 너무 정확해서 놀랐다.

과거에도 이런 전례가 있었던 걸까? 물론 내게 LTD가 그냥 나만 영입하는 건 칼같이 거절하리라고 예상했는지, 그 형태는 달랐지만.

‘뭐, 알맹이는 나만 쏙 빼먹어서 LTD에서 굴리려는 거니까 결국은 같겠지만.”

“LTD라…… 확실히 명문 팀이지. 하위 리그도 아니고 1부 LTD의 영입제의라면. 나라면 갔을지도.”

류재준이 끼어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아직 의리로 남아 줄 정도의 호감은 쌓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LTD면 돈도 돈이지만, 다음 시즌에도 우승할 텐데 제의하면 절하고 받아야지.”

팀원 중에서도 특히 현실적인 편인 한지수는 말하지 않아도 그럴 것 같았다.

‘뭐, 말은 그렇게 해도 한지수 녀석. 처음엔 돈 많이 벌게 해 준다는 말에 들어와 놓고, 나중에 계약 연장 할 땐 계속 있고 싶은데 내칠까 봐 쫄아서 팀 규정에 따른다고 해놓고.’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다.

“…….”

이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그런 제의를 받았다면 그대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묻는 게 겁나나.

‘뭐, 내가 이연주 입장이었어도 그럴 것 같긴 해.’

이렇게 다 모은 것도 나. 감독도, 헤드코치도. 그리고 메인오더도. 팀의 중심은 나다.

그런 내가 돈, 명예. 그리고 가장 쉽게 다음 시즌 우승을 노릴 수 있는 LTD의 제의에 넘어가 PER을 나간다면 팀이 와해되지 않을까 두렵겠지.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번거롭게 내 팀을 만들어 내지도, 그리고 어려운 승급전을 하지도 않았겠지.

그냥 상위 리그에서 오는 영입제의를 받고 팀을 옮기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걸 그대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무언가 다들 조심스럽고, 차마 직접적으로 ‘창현아, 팀 옮기는 건 아니지?’하고 묻지 못하는 상황.

이 상황이 조금 즐거웠다.

“영입 제의라…… LTD에서 비스무레한 게 오긴 했지.”

“어?? 뭐야. 진짜?”

김도준이 지나가는 사람도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반면 생각이 복잡해졌는지, 영혼 없이 대답하는 녀석도 있었다.

“어 그래? 잘 됐네.”

말은 굉장히 긍정적이지만 내 플레이를 보고 들어온 만큼 굉장히 복잡한 생각이 드는 건지, 류재준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팍 다운되는 바람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승낙하지는 않았다는 말을 하려는데……

“안 돼!”

가장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 건 의외로 윤한결이었다.

“그러면 내가 파둔 PER 이창현 선수 팬카페도 LTD 선수 이창현 선수로 바꿔야 할 테고. 아 그건 상관 없나? 아무튼 같이 경기하지도 못할 테고, 이제 코칭도 못해 줄 테고. 앞으로 더 배워야할 것도 많은데 끌어들여 놓고 이대로 혼자 가 버리면 마치 아이를 입양했다가 다시 고아원에 보내 버리는 것 같은…….”

평소랑 다르게,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간다는 말은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뭔가 신경 쓰이는 말도 섞여있는데. PER의 이창현 선수 팬카페? 너…… 그런 걸 운영하는 거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