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대면하다
마침내 경기가 끝나자, 환호성이 울려 퍼지며 선수들이 모두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이번 경기는 국제 리그를 앞둔 LTD의 마지막 국내 공개 경기였기도 했기에, 훈련소에서 직접 이 경기를 보고 있는 헌터들도 많았다.
‘하아…… 그런 상황인데, 이런 경기력을 보여 주고 출국하게 되다니.’
LTD 총감독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었다.
본디 실전감각을 유지하면서, 압도적이고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 주며 기세를 이어 나가고 싶었는데.
경기가 이렇게 되어서야, 이 경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였으니.
지금 경기로 오히려 PER만 띄워 준 결과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창현. 그 선수만 뛰어난 게 아니었군.’
물론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일단 한 가지. PER은 2부 리그 선수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놀라우리만치 잠재력이 높은 선수들이 꽤나 있다는 점을 알아낸 것.
이번 마지막 전투의 하이라이트였던 김유현 선수가 딱 그랬다.
그 외에도 두 번은 안 당하겠지만, 이가람을 틀어막은 김도준. 그리고 강준혁의 [마나전개]를 파훼한 류재준까지.
PER에는 다양하고 전략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가 꽤 많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1부 리그에 올라오면 경쟁자가 될 테니, 이런 정보를 직접 맞부딪혀 얻어 냈다는 건 꽤나 큰 이득이었다.
‘그 외의 선수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강준혁의 [마나전개]에 휩쓸려 오히려 자세히 능력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어쩌면 PER이 더 여러 가지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1부의 감독. 이진한이 다가와 있었다.
“하아…… 근데 이 경기가 이렇게 되네요. 이렇게 힘들게 저희 팀이 이길 줄이야. 저희 선수들만 놀란 게 아니라, 경기를 보고 있던 다른 선수들도 다 놀란 것 같더라구요.”
“너스레 떨 필요 없다. 내가 보기에도, 우리 선수들이 잘못했다기보다는 저쪽이 너무 예상 외로 전력이 강했던 거니까.”
“하하…… 본심을 들켜 버렸나요. 이거. 참. 귀신 같으신 부분이 있으시다니까…….”
아무래도 이번 경기에서 1부 LTD가 별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에 질책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오히려 이번 경기 내용으로 보안해야 할 점이 많이 드러났으니까. 선수들한테는 오히려 좋았다고 다독여 주도록 하고.”
전략의 유연성을 갖추고, 파훼될 수 있는 의외의 구멍들이 PER과의 연습경기로 인해 드러났다.
‘그리고 어쩌면 최악은 면한 것인지도 모르지…….’
강준혁의 눈 먼 [마나전개]로 인해 PER의 두 명이 한 순간에 탈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경기는 어쩌면……
“아니, 그나저나 이 녀석들 혼내 줘야 한다니까요? 마지막에 아현이랑 상대 포탑쟁이랑 싸우는 게 얼마나 살이 떨리던지.
동수 승부처인데, 비열하게 싸움에 끼어들 수 없다고, 오제헌이랑 녀석은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질 않나.”
“그래도 결국은 그 둘이 끝내지 않았나.”
“그야 그렇죠. 경기를 질 순 없으니까. 아현이는 이번에 꽤나 궁지에 몰려서 자존심에 상당히 상처받은 것 같던데.”
하기야. 다 이겼다고 생각한 상대 PER 선수…… 김유현이랑 김도준 선수였나. 그 선수들에게 반격당해 결국 다른 팀원이 구해 줘 이겼으니.
“어차피 국제 리그 경기에 나서면 계속 겪을 일이니 내비 둬. 그보단 이제, 경기도 끝났으니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아. 그렇죠. 그럼 같이 가 보실까요. PER대기실 쪽으로.”
그래, 이 경기의 피드백은 뒤로 밀어 두고, 결국은 더 먼 미래가 중요했다.
이 경기로 인해 더욱 명확해졌으니까.
‘놓칠 수 없는 녀석이야.’
[마나전개]가 팀원의 조력에 의해 파훼되었다고는 하나, 강준혁과 전면에 맞서 이겨 낸 그 녀석을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이.
***
“아니, 난 걔네 둘 밖에 안 보이기도 하고, 창현이도 탈락한 것 같아서 우리가 싸움 이기면 경기 이기는 줄 알았지.”
“뭐, 연주도 없어서 상대 인원을 파악할 수 없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경기가 끝난 후 PER의 대기실. 김도준이 아쉬움을 성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의 마지막 전투. 이가람과 아현의 콤비를 이기면 경기에서 이기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건물에 있을 때, 강준혁 선수의 [마나전개]로 우리 팀이 두 명 아웃됐잖아. 그 때 인원수가 열세가 된 걸 생각했어야지.”
사실 나는 대충 눈치채고 있었긴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꺼렸던 것이기도 하고, 김도준이 패배를 무릎 쓰고도 부딪히기 위해 나아간다고 느껴져 더욱 멋있었던 것이었는데……
저 말을 들으니 조금은 깼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이번에 내가 새로 얻은 능력, [비폭력지대 생성]. 그 따뜻하고 안전한 곳.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평화로운 지대는 어쩌면 자신을 보호해 주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최후의 보루로 그것을 위한 상당량의 마나를 온존하고 펼쳤던 [요새화]를 펼쳤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걸 포기하고 마나를 전력으로 개방한 결과 이가람을 이기고 아현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니까.’
1부의 1황이라고 불리우는 팀의 전위 둘을 상대로 이 정도로 몰아넣었다는 것.
가슴이 뛰는 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1부에서 2부 리그로 내려간 이후. 다시 헌터스 리그에서 이토록 흥분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고작 연습경기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평소엔 빛나는 검, 온갖 소음공해로 김도준을 조금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만은, 조금 멋지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 LTD의 스트라이커 이가람? 별거 없죠? 그냥 고막 좀 터뜨리고 눈뽕 좀 해 주면 한국 1부 1황도 어림도 없죠? 그냥 딱 놀라가지고 칼 한 번 섞으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이번 경기 벤치멤버였던 이길한한테 입을 털고 있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놀랍게도 싹 사라졌다.
그동안 본 게 전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
이 경기의 마지막 싸움을 장식했기 때문이었을까, 경기가 끝난 후 PER의 대기실은 김도준이 자신의 무용담을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냥, 딱 맞아도 눈 깜짝하나 안 하는 그 괴물 같은 이가람을 내가 콱!”
“…… 그래서? 그래 봤자 그냥 상대방이 날린 운석 맞고 비참하게, 개같이 멸망했지?”
물론 먼저 탈락해 경기를 대부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한지수가 딴지를 걸었지만.
“게다가, 2대2 이긴 것도 사실상 유현이 포탑이 2인분 했지? 아 물론 그건 인정함. 약간 어그로 끄는 건 좀 굉장하긴 했지~.”
아카데미에서 한지수에게 꼽주던 짬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나는 당사자가 아닌데도 딜미터기가 터지는 것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잘했으니까.’
같이 있었던 김유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김도준과 함께 싸웠던 것이 좋은 영향이 있었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으로서, 이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이번 경기가 값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머지 아쉬웠던 점이나, 복기는 영상 남아 있으니, 돌아가서 홈에서 하자. 다들 가자.”
그 말에 다들 경기장에 들고 왔던 것을 주섬주섬 챙겼다.
“야, 김도준. 그리고 네가 그 녀석들 상대하는 동안, 창현이는 강준혁 선수 상대했어.”
“헐, 뭐야.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이겼냐??? 뭐야. 진짜 이겼어?”
한지수가 운을 띄운 것에, 어째 류재준이 가볍게 웃고 있었다.
평소엔 과묵하고 무슨 말을 들어도 티를 잘 안 내더니.
강준혁에게 함께 펀치를 날린 것이 꽤나 뿌듯했던 모양이었나 보다.
회귀 전 과거, 류재준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에겐 그 풋풋한 새내기 같은 모습이 꽤나 새로웠다.
새 팀. 도전자의 입장. 그리고, 기어코 시작된 본 무대, 1부 리그로의 돌입. 이 모든 것.
‘시작이 좋네.’
이걸로 1부 승강전의 준비는 충분하리라.
“뭐해. 다 챙겼으면 가자.”
“그래.”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날의 일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PER의 팀원들이 모두 짐을 싸고, 바깥으로 나간 순간.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LTD의 총감독과 1부감독 이진한이었기 때문이었다.
회귀 전, 잠깐이나마 같이 함께했기에 아는 얼굴들이기도 했다.
이진한은 회귀 후에도 잠깐이나마 마주친 적이 있기도 하고.
그랬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1부의 감독. 이진한은 그렇다 치고, LTD의 총감독은 그리 쉽사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무슨 일로 대기실 앞까지 찾아온 것인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LTD의 총감독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오늘 경기, 한국을 대표해서 국제 리그를 나가기 전에 좋은 예방주사가 되었네.”
‘악수…… 인가.’
역시나 다른 감독들이랑 격이 다른지 그릇도 꽤나 다른 듯했다. 지금껏 3부나 2부에서 거쳐 왔던 녀석들은 기어오르느니, 운빨이라느니 그런 녀석들이 더 많았는데.
오히려 최정상에 있는 팀 LTD를 지휘하는 총감독은 좋은 경기였다며 머리를 숙여 왔으니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제 이 팀이 새삼, 1부 리그. 그것도 다른 뛰어난 팀들한테 존중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게 느껴져서였을까.
“저야말로 감사하네요. 팀에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서.”
“그쪽도 좋았다고 하니 다행이군. 2부 리그 선수들은 1부에 익숙지 않아 이번 경기로 조금 힘들었을 선수도 있을 수 있는데 잘 적응하는 것 같고 말이야…….”
잠시간 총감독이 말을 흐리더니, 갑작스레 본론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선수일 뿐더러 감독, 구단주까지 겸하고 있다던데…… 잠시 비즈니스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네.”
LTD의 총감독이 뒤에 선수들, 그리고 그 외에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선수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따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제스쳐를 보내 왔다.
‘비즈니스라…….’
지금은 레만의 지원도 꽤나 빵빵한 편이고, 뒷배로는 이근택 회장까지 있었으니, 굳이 직접 구단주로서 뭔가 일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구단주라고는 하나, 사실 구단주로서 매출을 내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하지만…….’
LTD의 총감독과 1부 감독 이진한.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아마 현재 3부 리그의 감독일 이형근이 보여서였을까.
과거의 기억을, 회귀하게 된 계기를 만든 사람을 보니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물론 그 이야기도 좋습니다. 어찌되었든 구단주로서 비즈니스 하는 것도 제 업무니까요.”
지난 삶에서는 최악의 악연이었던 이형근은 아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내 인생을 자신의 실적을 위해 어그러뜨린 이형근을 기억했으니까.
조금은 옹졸할지도 모르겠지만 회귀 후 변한 나의 행보로, 뒤바뀐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잠깐 스쳐 지나갔었던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 이형근 감독님을 또 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