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55화 (155/270)

155. 앞으로

원래부터 1부 선수가 되지 않으려고 했었던 건 아니었다.

모든 헌터스 리그의 선수의 목표는 1부 선수가 되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1부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것.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1부에 처음 승급되어 올라간 연습경기에서 생기게 되었다.

서로 팀을 알아가게 되고, 합을 맞추려 팀에서 처음 합을 맞췄던 연습경기.

김유현은 그 경기에서 깨달아 버린 것이었다.

지금껏 자신이 1부 리그에 가지고 있었던 것. 그 대부분이 자신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선배님……! 상대팀의 돌파력이 상상 이상이에요. 이대로 가다간 [요새화]로도 버틸 수 없습니다!”

“유현아. 좀만 더 버텨 봐. 준비가 거의 끝났으니까. 이거 준비만 끝나면 무조건 역전하거든?”

“그런데 혼자 더 버티기엔 시간이……!”

“몸으로 막아서라도 버텨 봐. 어떻게든 버티면 이번 경기, 이길 수 있어.”

팀에서 합류해서 다른 팀과 하는 첫 경기.

김유현은 차마, 선배의 오더를 거부할 수 없었다.

1부 리그의 패널티나 룰이 조금 다르다고는 하나 결국 헌터스 리그. 김유현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는 것이, 쏟아 내는 것이면 충분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아…… 이 잔뜩 널린 포탑이랑, 트랩 가득한 지형을 이 녀석 혼자 만들었단 말이지?”

“정규시즌엔 꽤나 까다롭게 됐네. 그래도 우리 팀은 연습경기를 해서 다행이네. 그나마 먼저 볼 수 있어서.”

어느샌가 포탑은 모두 무너지고, 김유현의 [요새화]는 상대팀에게 모두 돌파된 채였다.

상대방은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김유현은 그제서야 다시 팀 보이스로 속삭여 볼 수 밖에 없었다.

“선배님…… 이제 진짜 더이상은 버틸 수 없는데요?”

[요새화]는 강력한 능력인 만큼, 막대한 마나를 사용하는 능력.

애초에 능력에 훈련시간을 대부분 할애하기도 하고, 마나도 사용했기에 김유현 본신의 힘으로는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했다.

“유현아. 진짜 조금이면 돼. 조금만. 대화를 하던, 낚시를 하던. 뭐라도 좀 해봐. 거기 지금 너 뚫리면 준비한 전략은 써 보지도 못하고 끝이야.”

[요새화]가 상대방에 의해 뭉개지고, 이젠 돌파되기 직전이지만. 나머지 6명의 팀원. 더해서 밖에서 경기를 보고 있을 대기 선수와 감독 코치님까지.

그들의 생사여부가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웠다.

정말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농담 따먹기라도 해서 시간을 끌어 보자.’

그럴 심산으로 나간 순간.

쐐애액 ㅡ.

상대 측에서 날아온 거대한 쐐기. 그것이 김유현의 다리를 꿰뚫었다.

크읏……

뿌득뿌득 참아 냈지만, 1부가 처음인 김유현으로서는 솔직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리가 꿰뚫리는 게 이런 느낌인가?’

그 고통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더 두려운 것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직 자신은 살아 있었고, 거기에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는 임무까지 있었다.

그렇기에. 김유현은 쐐기에 다리가 뚫린 채로 상대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다들 대단하시네요. 제 [요새화]를 뚫고 이 앞까지 오시다니.”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흘려서라도, 시간을 조금 벌어 보려는 심산이었는데.

문제는 상대가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요새화]가 만들어 낸 트랩에 당한 건지, 흙을 뒤집어 쓴 상대 팀원 하나가 김유현에게 대답도 않고 달려든 것이었다.

“이거 설치한 게 너냐? X발. 개 X밥 같은 게…….”

아무래도 흙투성이가 된 게 상대팀에서 그 사람뿐이었기에, 팀에서 비웃음을 산 모양이었다.

그는 상당히 김유현에게 격노했으며, 또 감정적이었다.

그렇기에.

푹 ㅡ.

“너…… ‘1부 신고식’이라고 들어봤냐?”

푹 ㅡ.

“얼마 전까지 2부였던 새끼가 건방지게.”

푹 ㅡ.

이미 전투력을 상실한 김유현에게, 상대는 급소를 피해 가며 계속해서 검을 찔러 댔다.

몸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처음, 다리에 쐐기가 박혔을 때는 어떻게든 참았지만. 숙련된 1부 리그 헌터의 난도질을 계속해서 참아 내기엔, 김유현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고통. 고통. 그리고 또 고통.

‘항복할까?’

하는 생각이 밀려 왔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자신이 난도질당하는 이 시간 또한, 자신의 팀에게 시간을 벌어다 줄 테니까.

그래서 자신이 벌어 낸 시간이 결국 승리로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쉬익 ㅡ.

“그쯤 해 둬. 시간이 없다. 바로 돌파한다.”

냉정을 유지한 상대 팀원 하나가 김유현의 숨통을 끊은 것이었다.

‘아…… 안 돼…….’

아직까진 목표한 시간까지 아주 조금이지만 남은 상황. 그럼에도 김유현은 그 순간까지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혼자서 오래 버텼고, 자신의 다른 팀원들이 조금만 시간을 더 벌어 준다면. 분명 이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도 욱신거리는 듯한 몸을 이끌고 대기실의 모니터 앞에 섰을 때. 김유현을 맞이한 건 예상 밖의 광경이었다.

“아 뭐야. 그 잠깐을 못 버티네. 야. 그냥 서렌 쳐. 이번 경기는 글렀다.”

“그래도 좀만 버텨 보는 게…….”

“연습경기인데 열심히 해서 뭐해. 그냥 안 되는 거였어 이건. 괜히 쳐맞고 아파서 후유증 남기는 거보단 나아.”

판을 뒤엎을 수 있다고 자신하던 김유현의 팀원들이 김유현이 뚫리자 바로 항복해 버린 것이었다.

아니, 승부에서 도망갔다.

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능성으로 인해, 피로해지고 아플 수 있다는 이유로.

온 몸을 난자당하고도 상대를 붙잡으려고 한 김유현을 뒤로한 채로.

그 때, 아마 김유현에게 상흔처럼 남았던 것이리라.

헌터스 리그 경기에서 상처를 입고, 고통을 입는 상황. 그 고통을 감내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 내더라도, 그 뒤에는 김유현이 바랐을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실망. 좌절. 괴로움…… 그리고 배신감.

김유현은 1부에 그런 것들만을 느낀 채, 몇 시즌을 쉬고 돈이 없어 돌아온 곳이 결국은 2부였다.

***

상황은 약간 불리한 상황.

김도준과 김유현, 대치하는 상대는 LTD의 아현과 이가람.

‘……그리고 아마, LTD는 인원이 더 남아 있을 테지.’

반면 PER은 메인오더인 이창현 그리고 한지수도 이연주도. 윤한결도 류재준도.

어느 순간 이어폰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이젠 정말 김도준과 둘뿐이었다.

기적적으로 아현과 이가람을 이기더라도, 그다지 이 경기를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LTD의 다른 인원이 끼어들지 않아 이 상황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김도준은 자신의 상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김유현 자신이 항복을 권했음에도. 1대 2가 되어 버렸음에도 그랬다.

연습경기일 뿐인데. 남는 것은 고통과 패배밖에 없을 텐데도 그랬다.

그렇게 한걸음 뒤에 서, 김도준을 지켜보고 있던 순간, 녀석은 말했다.

“하지만, 기억하는 게 좋아. 결국 뭘 배우던, 시작은 전부 맞으면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그제서야 김유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과거, 끝까지 난자당하고서도 상대를 막아섰던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과거 그토록 배신감을 느꼈던 팀원과 결국 똑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래, 사실 제일 괴로웠던 것은 1부 리그에서 느끼게 될 고통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고통을 견뎌 내며 버티더라도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돌아오는 것은 배신뿐이라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함께하는 팀원이 있고, 내가 포기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고 나아가는 팀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패배가 뻔한 싸움을 앞두고, 한 발자국 앞으로.

김유현은 어느 샌가 [비폭력지대 생성]으로 만들어낸 공간을 버리고 그 밖으로 나가 있었다.

***

‘호오…….’

“저 녀석, 팀원이랑 티격태격하더니 결국 경기를 포기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근성 있잖아?”

“보통 저런 상황이라면 둘 다 기권하고 나오는 게 정상일 텐데…… 상처로 인한 고통도 무시 못할 테고. 2부 선수들 주제에, 꽤 근성 있는데?”

경기를 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김유현이 움직이지 않아, 어쩌면 경기의 결판이 난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다시금 팽팽한 상황으로 바뀌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김유현이 [비폭력지대]를 포기하고서 바깥으로 나올 줄이야.’

바깥에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닌 일, 어쩌면 전술의 일환으로 보이겠지만……

뭔지는 모르지만, 1부를 한 번 포기했던 김유현으로서는 큰 결심이 필요한 한 걸음이었으리라.

‘물론 중요한 건 그 한 걸음보다도, 그게 무슨 결과를 불러오냐겠지만.’

이창현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읽었던 김유현의 선수 프로필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1부 모든 팀에게 러브콜을 받은 2부 선수.’

뭐, 이창현 자신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만큼 그 당시에 기대를 받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이창현이 보기에도, [요새화]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능력임이 확실했다.

‘마나를 엉뚱한 곳에만 쓰지 않는다면.’

[비폭력지대 생성]같은, 유지하는데 어마어마한 마나가 드는 능력을 포기하고, 온 마나를 한 번에 [요새화]에 사용한다면.

김유현이 만들어 낸 [요새화]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아앗…… 저 녀석. 한 번 다 부숴 버렸던 포탑들이 다시 자동으로 수리되고 있어!”

“왠지 모르게 기존보다 더 공격이 강렬해진 것 같은데?”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김유현은 자신이 도망갈 곳. [비폭력지대 생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퇴각하고 살아남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모든 마나를 [요새화], 그것도 그것의 포탑능력에 사용하고 있으니까.

과거와 포탑 출력, 숫자의 차원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거기에, 이가람은 숨어든 김유현을 포기하고 김도준을 노리기 위해 뒤로 돌아선 상황.

아현이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제일 쉬운 건, 뒤돌아서 도망치는 상대를 맞추는 거니까.”

그만큼 맞추기 쉬운 표적이 달리 있을까?

김유현의 포탑이 쏘아 대는 마나탄의 적중도 내가 쏘는 저격과 다를 것은 없었다.

급소에 상대방의 공격이 직격하는 것. 그건 맷집이고 어쩌고, 그런 걸로 퉁칠 수 있는 차원의 공격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약점인 곳이었으니까.

게다가 맞는 사람도 헌터이지만, 쏜 사람도 결국은 헌터.

[비폭력지대]속에서 틀어박혀 있던 김유현의 한 발자국이. 그 앞으로 나서는 행동이 불리했던 이 2대2 상황을 바꿔 놓았다.

‘이번 경기는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인가.’

저 한 발자국의 의미는 컸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로 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일 수 있었던 김유현은, 어느 샌가 성장해 있었다.

‘류재준도, 나도, 그리고 김유현도…… 아니. PER은.’

이 경기에서 얻어가는 게 LTD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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