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한 발자국
많은 사람들은 헌터스 리그에 환호한다.
그 사람들의 고통이 실질적으로 진짜와 비슷하다는 것도, 거의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마치 자신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소모해 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김유현 자신도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제작년, 1부에 올라가서 경기를 뛰어 보기 전까지는 자신도 그들과 다를 게 없었으므로.
1부에 처음 들어서고 마주쳤던 것. 그건 바로 ‘1부 신고식’이라고 불리우는 것이었다.
1부에 막 들어와 아직 잘 적응하지 못한 신인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팀을 공략하는 작전.
되돌아봐도 꽤나 끔찍한 기억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힘들었던 일도 지나면 다 추억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2부로 다시 내려갔다. 아니, 도망갔다.
꿈을 포기한 것도.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한 것도 아니었다.
김유현은 헌터스 리그를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처럼 서로의 전술과 능력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가볍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떻던가.
1부 리그는. 더 올라가서 국제 리그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데스게임들. 그것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성자는, 초인은 일반인은 움직이지 못할 법한 상처를 입어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민감했다.
오감이 더 발달한 만큼,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일반인에 뒤져지지 않았다.
‘그래서 1부로 올라가는 걸 꺼렸는데…….’
운명의 장난인 걸까. 또다시 상황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2대2의 상황. 항복하자고 설득했지만, 전혀 듣지 않고 상대에게 투지를 불태우는 같은 팀원.
‘분명 내가 혼자 항복해서 경기를 포기해 버린다면…… 녀석은 혼자서 두 명을 상대해야겠지.’
그 경우는 더 볼 것도 없이 필패. 게다가 녀석의 말을 생각해 보면, 내가 포기한다고 해서 녀석까지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즉, 상대 팀. LTD에게 2대1로 두들겨 맞으면서까지 경기를 이어 갈 가능성이 크리라.
‘어째서 그렇게까지…….’
김유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LTD의 아현이 나타난 순간부터 경기가 크게 기울었는데, 이렇게 계속 이어 나가려는 이유를.
그때, 김도준이 말했다.
“기억하는 게 좋아. 결국 뭘 배우든, 시작은 전부 맞으면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걸.”
아니. 아니야. 패배한 기억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만 하더라도, 과거의 그 신고식 덕분에 1부를 그만두었으니까.
차라리 승리의 경험이. 승리하는 방식을 더 깨달았으면 달랐으리라.
하지만, 그런 김유현의 생각이 무색하게, 김도준은 겁도 없이 아현 쪽으로 달려들었다.
이미 상처를 입혔던 이가람도 아니고, 쌩쌩하게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아현에게.
더 보지 않더라도 패배가 뻔한 상황.
김도준은 이미 한 번 막혔던, 굉음을 내는 검. 그리고 번쩍거리는 검을 계속해서 들이밀며 자신의 장기인 쾌검으로 승부하려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현을 공격해도, 그녀가 조종하는 마나장비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마, 김도준이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서 빈틈을 노리는 만큼, 상대는 로봇을 이용하기에 의미가 없는 거겠지…….’
상성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저런 거,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김도준은 멈추지 않았다.
더 준비한, 특별한 장비도 없을 텐데.
“후배, 모름지기 마나장비라면 상대의 빈틈을 찌르는 건 좋지만, 이런 좀 고급스런 맛이 있어야지.”
아현의 반격은 매서웠다.
그야말로 사기라고 생각할 법한 저 로봇이, 온갖 투사체를 쏘는 걸 비롯해 근접전 능력까지 커버하고 있었으므로.
우물쭈물거리는 사이, 상대의 반격이 점차 거세졌다.
그리고 그건 아현뿐만은 아니었다.
“쳇. 알았어. 그럼 네가 그 녀석 상대하던가. 그럼 나는……!”
이가람은 아직 이 경기를 어떻게 할지 갈피를 잡지 않은 내게 쇄도해 왔다.
따로 떨어진 1대1 상황 속. 모든 [요새화]의 포탑들이 이가람을 저격하고, 나 또한 이가람에게 검을 들이댔지만……
과하게 맞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을까. 자세가 무너짐과 동시에 위기에 처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비폭력지대] 생성……!’
이가람은 마치 공격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급소를 노린 포탑의 공격만을 막아 내며 달려들었다.
그 직후 [비폭력지대]를 생성해낸 내게 건틀릿을 낀 손으로 타격을 가했지만, 역시나. 타격은 전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벽에 막힌 것 마냥 공격이 우뚝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어……? 어어? 이게 왜?”
나에게만 보였기에 이가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지, 계속해서 주먹질을 연발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휴…….’
“야! 이가람. 멀었어? 왜 서포터 하나 제대로 못 잡아서 그 난리야. 너 진짜 어디 좀 아프냐?”
속사포로 뒤에서 이가람을 쪼아 대는 아현에게, 이가람은 귀가 먹은 듯 못 들은 체 했지만. 아현은 멈추지 않았다.
“어휴…… 진짜 평소엔 그렇게 안 봤는데 연습경기 끝나고 한 번 제대로 봐야겠네.”
“뭐? 제대로 보긴 뭘 봐. 평소에 나랑 1대1 뜨면 맨날 발리는 주제에.”
“크. 못 듣는 척 하더니만 제대로 다 똑똑히 듣고 있었나 보네?”
포탑을 맞은 부분이 급소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꽤나 아플 텐데.
이미 김도준에게 당한 부분도 있고……
하지만 이가람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타고난 정신력일까. 아니면 그런 아픔을 겪는 것에 익숙한 걸까.
잠시간 생각이 많아졌다.
그것도 잠시. 상황은 계속해서 변해 갔다.
“일단 그 녀석 먼저 치우자고?“
무슨 능력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제대로 공격하고 있지 못한 나를 놔두고, 김도준을 먼저 처리하려는 쪽으로 바꾼 모양이었다.
“별로 끌리진 않는데…… 할 수 없네.”
이가람이 이쪽을 흘끗 바라보곤 다시 김도준에게로 향했다.
아현이 조종하는 로봇과 치열한 공방으로 인해 아직 상황을 잘 모르는 김도준에게.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지 뻔한 상황.
나는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
되돌아보면, 나도 처음부터 월클 관종이라고 불렸던 오스틴을 동경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역시 처음 헌터스 리그를 접했을 때, 동경했었던 것. 그건 다름 아닌 에단이었다.
눈이 튀어나갈 만큼 말도 안 되는 화력.
저런 걸 같은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압도적으로 파괴적인 그 광경.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광경에 매료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내가 오스틴을 동경하게 되었던 건 헌터스 리그 시립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난 이후였다.
이어지는 평범한 날들 속 보았던 하나의 인터뷰와 경기 영상.
거기엔 그때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오스틴의 속사정과 그가 이겨 냈던 경기의 영상이 있었다.
‘제가 이뤄 내고 싶었던 건 단순히 네티즌의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미국 헌터스 리그는 그야말로 ‘재능론’으로 일축되는 세계.
좋은 능력을 타고나는 능력. 좋은 신체적 자질을 타고나는 능력. 그 외 다수의 재능들로 인해 선수들의 한계를 멋대로 정하고 단정지어버립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런 사람의 방식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왜 그가 요란하고, 때론 비웃음을 사는 마나장비를 써 가면서까지 경기를 꾸역꾸역 이겨 냈던 것인지.
거기엔 도저히 더이상 비웃을 수 없는 그의 열의가 깃들어 있었다.
특별한 능력적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각성자. 그야말로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헌터가 살아가는 방식을 증명한 그의 이야기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김도준 또한, 나름 엘리트 아카데미인 서울 시립 아카데미에 들어갔다고 한들. 그 안에서 특출 나지 않은 재능으로 그의 이야기를 백분 공감했기 때문에.
그리고 3부에서 2부로. 2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순간, 오스틴이 생각했고 증명하고자 했던 그 생각은 김도준의 마음 속에도 깃들어 있었다.
어느 한 경기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고. 그건 자신이 동경했던 오스틴에 대한 동경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다.
“하아…… 쉽지 않네.”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김도준은 계속해서 마나로 몸을 보호하고 강화하면서 아현의 마나장비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마나만 사용하면 되는. 그리고 지치지 않는 상대와, 한 합을 주고 받을 때마다 비틀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버텨야 하는 김도준.
‘마나 장비에도 재능이 있다면 딱 저런 거겠지…….’
단순하고 새로운 마나장비를 개발해 매 경기를 김도준처럼 땜빵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술과 연계해 상대가 알고도 쉽게 대처할 수 없는 강력함을 지닌 마나장비.
2부가 되고 새롭게 PER에 합류한 기술코치의 검술 지도 덕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슬슬 한계인데.’
생각보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현의 저 로봇이 쓰는 기술을 그리 많이 엿보지도 못 했는데. 그저 투닥거리다 끝나게 생겼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통증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아현의 그 마나장비의 비결을 어느 하나 더욱 빼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걸 바로 앞에 두고 있음에도. 더 관찰하고 상대할 기회가 있음에도.
김유현이 함께 도와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결국 새로 들어온 팀원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래도 마지막 순간인데. 화려하게 가 볼까.’
남은 마나장비가 없는 건 아니니까.
숨겨뒀던 마나봄버를 검에 몰래 끼워넣었다.
아마 아현의 시선에서는 로봇에 가려 보이지 않았겠지.
경기는 이렇게 끝나도, 그 잘난 로봇 팔 하나는 가지고 가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알겠다고. 보채지 좀 마. 어차피 다 끝난 경기!”
김유현에게 간 줄 알았는데, 내 뒤를 잡은 이가람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아현의 로봇을 상대하는 동안 내 뒤를 잡은 모양이었다.
왜 지금에서야 들을 수 있었던 걸까. 생각이 많아서? 아니면 김유현이 신경 쓰여서?
아니. 애초에 한계까지 집중력을 발휘해서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아아. 이제 끝인가.’
상처로 인한 고통. 욱신거리는 팔. 후들거리는 무릎. 온 몸에 만연한 피로감.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마지막 마나봄버를 칼에 달아 휘두르는 한 방. 어쩌면 아현의 그 새로운 기술을 한 번 더 끌어낼 수 있었을 한 뼘의 거리가 아쉬웠다.
연습경기이고, 분명 다음은 있겠지만.
아현과 똑같이 어느 정도 마나장비에 의존해 승부를 하는 선수였던 만큼, 증명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
아쉽다.
온갖 선택하지 못했었던 더 나은 방법에 대한 분기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 망상을 깨어 버리는 한 방이.
뒤를 노리는 이가람을 쏘아 보내며, 날아왔다.
[요새화] 속에 틀어박혀 공격을 막아 내던 김유현이, 어느 샌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