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53화 (153/270)

153. 패배가 뻔한 싸움을 앞두고

“하아아…….”

PER의 대기실 반대편. LTD에서 먼저 탈락한 선수. 강준혁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예상 밖의 일이 너무 많았어.’

운석 폭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것. 유인전술에 당해야만 했던 것. [마나전개]의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것. 심지어 그것을 파훼당한 것.

……이번 경기에는 제대로 맞물려 제 힘을 낸 전술이 하나가 없었다.

이게 만약 국제 리그 실전 경기였다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으리라.

그런데, 그 상대가 국제 리그에 나온 최정상 팀도 아니고 PER이라는 2부 팀이라니.

‘높게 평가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강준혁으로서는 이젠 놀라움을 넘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왜.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경기라 당황했나? 우리 에이스.”

대기실 바깥에서 구두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름이 아니라 LTD의 총감독이었다.

“하아…… 보러 오시라고는 했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한 건 아닌데. 유감스럽게 됐군요.”

“선수들과 감독. 코치들은 한 개의 경기를 앞두고 무수히 많은 전략과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싸움을 시뮬레이션하지.

그런데, 그것들이 그대로 들어맞는 일이 얼마나 있지?”

“그래도 상대의 능력도 대충은 알고, 저희 능력도 대충은 알고 있으니 생각보다 꽤 ㅡ.”

“생각보다 꽤? 생각보다 어설픈 면이 있군. 안 그래? 나름 한국에선 최고의 선수라고 하는 선수가. 그런 말을 하다니. 생각보다 꽤, 라는 건. 하나도 들어맞지 않아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나 다름없다고 들리는 것 같은데.”

강준혁으로서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어떻게 반박을 한다고 한들, 총감독의 말에 본질적인 반박은 불가능했으니까.

PER을 상대로 방심은 하지 않았다. 이창현의 경기를 직접 보고, 싸움에 대해 고민했으며, 실제로 이창현의 전술을 몇 번 읽어 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수많은 고려 끝. 결국 자신의 예상대로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얻어, 자신이 이창현에게 졌을 뿐.

“꾸짖으려는 게 아니야. 원래 헌터스 리그라는 것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지. 한국 헌터스 리그에서 LTD는 분명 1황. 그래. 1등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팀이지.

하지만 시야를 넓혀 세계로 보면 어떻지? 국제 헌터스 리그 파워랭킹에선 찾아볼 수조차 없다.”

“…….”

반박할 수 없었다.

“국제 리그는 그 나라의 리그 수준이 어떻든, 각국에서 최정상에 다다른 팀이 나오는 리그다. 아무리 파워랭킹이 낮은 팀이라도, 자신만의 승리공식이 있는 팀들이지.”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뭡니까.”

“너무 예상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그리고…… 오늘 네 플레이는. 썩 나쁘지 않았다.”

그 말에 강준혁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 플레이는 썩 나쁘지 않았다…… 는 건가.’

“국제 리그에서는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게 되겠지. 작년에도. 그 지난번 경기 때에도 국제 리그에서 상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준 적이 있었던가? 상대가 2부에서 올라가려는 팀이라는 걸 빼면. 국제 리그에서 꼭 필요한 걸 이번 경기에서 배웠다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해.”

문득, 오히려 너무 상대의 수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지금 2부 팀이라고 해서. 이창현이 2부에서 유망주라고 불리는 녀석이라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플레이를 못한다고 할 만한 근거라고는 할 수 없었는데…….’

어렴풋이 내려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3부와 2부를 최소 1시즌은 거쳐야만 1부로 올라올 수 있는 헌터스 리그.

그 녀석은 순전히 그 룰 때문에 2부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 2부라는 딱지를 붙이고 볼 것이 아니었는데.

‘나 참. 한 번도 제대로 겨뤄 본 적이 없는 녀석을. 내 마음대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니.’

처음 헌터스 리그에 들어왔을 시절. 3부에서 모두를 위로 바라보던 그 시절의 초심을 되찾아야겠다고. 새삼 생각했다.

‘국제 리그에서는 우리나라가 하위권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어쩌면 국제 리그에서 이기기 위해, 지금 강준혁과 LTD에게 필요했던 건 이런 마음가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감독님 말씀이 맞네요. 초심. 되찾을 수 있도록 해볼게요.”

총감독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말을 듣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아. 그런데 경기는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어요?”

“놀랍게도. 아직 마지막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강준혁과 총감독은, 아직 이어지고 있는 LTD와 PER의 마지막 싸움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언제 이렇게 많이 몰려들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내부 경기를 송출하는 화면 앞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 속에서는 꽤나 의외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이창현이 LTD의 강준혁을 상대로 업셋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팀 LTD의 체급은 PER을 압살한다.

이게 주류 의견이었을 텐데……

‘의외로 팽팽하잖아?’

화면에서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는 PER의 김유현과 김도준. 그리고 상대하는 LTD의 선수는 이가람과 아현.

그중, 이가람은 특히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야…… 저거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괜찮은 거 맞아?”

강준혁으로서는 상황을 몰랐기에 대체 이가람이 무슨 싸움을 벌였는지 사고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 귀에서 피가 나는 상황. 전투는 절대로 흔하게 볼 수 없었으므로.

그에 반해 PER측. 김유현과 김도준은 꽤나 멀쩡한 편에 속했다.

“와…… LTD도 다 망했네. 국제 리그 나간다고 어깨에 힘 빡 주더니. 2부 팀한테 발리는 거?”

저런 말까지 하는 녀석이 있었으니.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는 눈에 안 봐도 훤했다.

“감독님 이건 대체…….”

강준혁이 총감독에게 물었지만, 총감독은 단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여유라는 걸까. 주변 반응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인 것 같은데. 상처 입은 것도 4명 중 이가람 뿐이고……

척 봐도 밀리는 상황인데.

“아까 내 말 기억하나? 너무 예상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쌓아 온 것이 있지. 지금까지 우리가 허투루 1부 리그. 그것도 그곳의 최고의 팀이 된 게 아니야.”

총감독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어깨를 피고 경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

한편 경기장.

김유현의 [요새화] 그리고 김도준의 여러 잡기술과 나름의 쾌검.

각자 남은 PER의 둘은 자신이 가진 최선의 수를 이용해 이가람과 아현을 공격했지만, 상황은 전혀 녹록치 않았다.

‘우리가 공세를 펼치는 걸로 보이지만…… 이대론 좋지 않은데.’

김유현의 포탑이 펼치는 공격과, 내 검술이 전부 막히고 있었다.

검술뿐만 아니라, 귀갱과 눈갱을 비롯한 전략들까지 전부.

다름이 아니라, 새롭게 합류한 LTD의 아현에 의해서.

“나 참. 이런 애들한테 저렇게 당하고 말이야. 포스트시즌에 우리 팀한테 졌던 팀들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겠어. 이제 우리 팀은 한국 대표로 국제 리그 나갈 텐데.”

“네가 첫 상대였으면 너도 당했을걸?”

“뭐래. 난 그렇게 무식하게 너처럼 주먹질 하지 않아서 그럴 일 전혀 없는데?”

그뿐만 아니라, 아현이 합류하고 나서 꽤나 여유가 생긴 것인지 둘이 티격태격하기까지 했다.

‘저 로봇만 어떻게 처리한다면 될 것 같은데…….’

아현을 태우고 나타난 저 인간형의 로봇. 저게 참 문제였다.

마나를 이용해 기동하는. 마나장비로서 기동하는 로봇.

그런데 솔직히 저것도 한 개의 마나장비랍시고 경기에 들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공방에서 만들어 온 마나장비들도 제약이 전혀 없었으니까…….’

꽤나 오래전부터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졌던 문제인데, 쉽사리 변경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어른의 사정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유현아. 저 로봇. 어떻게 할 수 없어? [요새화]의 지형을 변형시키는 능력으로 구멍 같은 곳에 못 쳐박아 버리나.”

“상식적으로 저런 로봇이 구덩이에 빠진다고 못 나오겠어……?”

김유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긴, 마나로 움직이는 장비에, 지금 김유현의 포탑이 쏘아 대는 마나탄도 모조리 막아 내고 있는데. 구덩이 따위를 못 빠져나올 리는 없으리라.

게다가 이가람이라는 저 녀석이랑 싸운 듯 보여도 저 로봇도 내 검을 의식하며 피하는 걸 보면…… 쉽사리 당해 줄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시간을 더 끌면 안 좋은데…….’

저 이가람이라는 녀석. 처음에 귀갱을 제대로 당하고도 비틀거리면서 계속 막아 낼 때 눈치챘지만, 회복력도, 적응하는 능력도 엄청났다.

아까도 그 상태로 밀렸는데, 더 시간이 지난다고 유리해지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모처럼 아현의 저 마나장비를 상대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론 그냥 K.O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저번에 ‘가능성을 닫는 함’에서 뭐 새롭게 얻은 능력이라던가 그런 건 없는 거야?”

“그게…….”

김유현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하긴. 아직 팀원 대부분이 실마리를 잡지 못했는데, 김유현에게 그걸 지금 당장 어떻게 해내라는 것도 무리이리라.

“하아…… 그럼 어쩔 수 없네.”

“……항복 ……할까?”

김유현이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뭐어? 그래도 꽤나 밀어붙였었는데, 이 경기를 이대로 끝내자고? 끝도 안 보고?”

“그래도…… 지금 상황으로 보면 이기기는 힘들잖아. 냉정히.”

냉정히 생각하면 김유현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영 내키지 않았다.

“우린 아직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상황인데. 이대로 끝내자고?”

관객들은 단순히 나를 보고 광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빛나는 검으로 상대에게 눈갱을 선사하고, 심지어는 귀갱을 해서까지 우스꽝스럽고 우악스럽게 이기니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경기를 가볍게 생각한 적은 없어.’

경기에서 돋보이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조금 다른 선수들보다 관심을 받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헌터스 리그의 선수라는 자긍심은 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 항복을 할 순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야…… 1부 리그는 많이 다치고, 힘든 일을 많이 겪으니까,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온존하는 게 중요하잖아. 이건…… 승급전 본 경기도 아니고…….”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네가 가는 건 말리지 않을게.”

아쉽지만, 조금 아픈 기억으로 남더라도. 상대한테 고통받아 피로가 쌓이더라도.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 다는 걸 알기에.

“하지만, 기억하는 게 좋아. 결국 뭘 배우든, 시작은 전부 맞으면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처음 빛나는 검을 만들게 된 것도. 마냥 어그로를 끌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몇 번의 대련이 계속 이어져도 도저히 한 번을 이길 수 없었던 이창현.

그 녀석의 시선을 잠깐이나마 빼앗을 수 있겠다. 생각하며, 녀석에겐 단순히 신난 아이처럼, 관종처럼 보이며 만들었던 거니까.

실제로 그 성과도 있었고, 이창현에게 매번 패배하면서도 끝내 계속 달려들지 않았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발상이리라.

그 말에, 김유현은 갈등하는 듯.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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