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뒤엎다
“하하…… 이젠 [마나전개]도 없이 완전히 1대1 상황이네.”
마나전개의 반동이 온 것인지, 강준혁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나도, 강준혁도 소모전을 오래 지속했어. 여기서부터의 싸움은 서로 큰 기술을 쓰는 건 무리겠지.’
류재준이 이어준 기회인 만큼,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설령 팀원들이 다른 LTD 선수들에게 져서 경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강준혁에게는 이기고 싶었다.
솔직히 이 경기,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는 생각하고 시작한 경기이지만. 경험을 쌓게 해 주기 위해 잡은 경기이지만.
‘완전히 질 생각으로 시작하는 경기가 세상에 있을 리가.’
“전에 파티에서 나눴던 대화, 기억하세요?”
“아, 1부에서 1년만 기다리라고 했던 그 말 말인가.”
“그 말.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드리죠.”
그래, 아직 성장이 덜 되었고, [만개]도 개방하지 못했다고 한들. 나는 회귀 전 수많은 우승의 기억들이 있다.
그중 쉬웠다고 할 만한 승부의 경험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해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 강준혁과의 대결도 그렇게 될 것이다.
멈춰 있던 몸을 움직여, 다시금 에어비트와 에어앵커로 몸을 공중에 기동시킨 후, 총을 연발한다.
“저는 강준혁 선수의 머리. 그리고 오른 팔을 맞출 겁니다.”
[말하고 때리는 사람]의 선언. 아마, 이근택과의 싸움을 어깨 너머로 본 강준혁은 그 파괴력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근접딜러가 자주 채용하는 ‘에어대시‘로 순식간에 움직이며 거리를 좁혀 왔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탄알을 피함과 동시에. 거리를 좁혀 근접딜러로서 공세를 취한다.
훌륭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내가 쏜 탄도 궤도가 시시각각 수정되어 강준혁을 따라간다는 것. 그건 녀석도 알고 있겠지…….’
즉, 아무리 피한다고 한들, 그것도 한 순간. 에어대시를 무한히 쓰지 않는 이상 강준혁은 방금 쏜 탄환에 맞게 되어 있다.
물론 내가 쓰러진다면 그 탄환은 힘을 잃어 강준혁을 쓰러뜨릴 수 없겠지만.
“사실 네 저번 경기를 보면서 감탄을 많이 했다.”
“?!”
“지금껏 국내 선수한테는 이렇게 공들여서 상대법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에어대시로 빠르게 접근하며 강준혁이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저번, 그 연습을 보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피를 끓어오르게 할 만큼, 내가 저 곳에 서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뜨거운 경기였으니까.”
나는 에어비트를 빠르게 밟으며 해를 등지고 날아올라, 강준혁이 직접 바라보기 어려운 방향으로 계속 뛰어올랐다.
하지만, 강준혁의 에어대시가 연발되고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래서. 미리 어떻게 상대할 지 생각해 놓은 거니. 나한테 져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마. 상대가 나니까.”
강준혁쯤 되는 선수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꽤 건방지네. 강준혁이 여기서 뛰어나다 뛰어나다 하지만, 내 회귀 전 커리어에 반도 못 따라올 텐데.
어느 샌가 강준혁은 눈 앞에 도달해 있었다.
더는 거리를 벌릴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동시에 강준혁의 뒤를 쫓는 총탄도 아직 도달하기에 시간이 남은 상황.
강준혁이 발도했다.
스릉 ㅡ.
찰나의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공중이었음에도, 압도적인 검격이었다.
보고있진 않지만, 아마 내 뒤에 있는 하늘의 구름마저 반으로 쩍 갈라졌으리라.
하지만.
“아슬아슬하네요.”
강준혁의 [마나전개]는 파훼되었지만, 내 [꿰뚫는 눈]은 파훼되지 않았다.
물론 이대로 계속 피하기엔 마나가 모자라겠지만……
내게 필요한 건 찰나. 그 찰나를 버틸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것마저 피하다니…… 너. 진짜 미래라도 보는 거냐?”
강준혁의 진심어린 어이없다는 표정.
그래. 아까 우쭐하는 표정보다는 훨씬 낫다.
이쪽이 내겐 익숙하니까.
게다가 이젠 내 차례였다.
강준혁의 발도. 그 속도와 파괴력은 어마어마하지만, 한번 뽑아내 강한 힘을 뿜어낸 칼은 연격으로 몰아칠 수 없다.
그리고 내 탄알을 단순히 마나실드따위로 막아 낼 수도 없다.
그러니. 이 긴 싸움도 이젠 끝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키이잉 ㅡ.
강준혁이 어느샌가 발도한 검을 내던지고, 품에서 두 자루의 단도를 뽑아냈다. 그리곤 한 개의 단도로, 처음. 강준혁의 머리로 도달하려는 탄알을 쳐냈다.
“크큭…… 이근택 회장님은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다 쳐냈던 거냐…… 그래도…… 도착할 위치만 알고 있다면……!!”
굉장한 힘이었다.
‘일반적인 정도로는 저 탄알을 튕겨 낼 수 없을 텐데.’
능력을 실어 쏜 탄인 만큼. 그 위력은 배 이상이었으니까. 이번만큼은 이근택 회장에게 한 것처럼, 궤도를 흔드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이근택 회장이더라도, 창은 길었기에 변화하는 탄환의 궤도를 따라가 막기는 어려웠지만…… 마치 그걸 감안한 듯 강준혁이 꺼낸 것은 단검이었으니까.
“도착할 위치만 알고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
‘어지간한 심리전이나 꼼수도 먹히지 않는 건가…….’
나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강준혁을 얕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국 헌터스 리그가 세계에서 변방리그일 때도, 이런 인재가 한국에 있었다니.
한 편으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패배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이 심리전이 공평한 심리전이 아니라는 건 유감이네.’
강준혁이 내가 선언했던 오른팔을 앞세우고, 그 팔을 향해 날아오는 탄환이 쳐내기 위해 왼팔의 단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이번에도 탄환이 휘었다.
‘탄환의 표적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그런 건 내 마음이니까.
왼팔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했던 강준혁의 생각과는 달리. 중간에 궤도가 완전히 뒤틀려 강준혁의 머리를 향했으니까.
반응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피슉 ㅡ.
강준혁의 머리를 탄환이 꿰뚫었다. 말한 표적과 맞힌 곳이 달라, [말하고 때리는 사람]의 파괴력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걸로 족했다.
그 능력은 강준혁의 눈을 가린 것으로 족했으니까.
다만……
‘마나가 없다.’
아무래도 내가 해낼 수 있는 싸움은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다음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적어도 이 경기에선 별 영향을 못 주리라.
‘어차피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나는 항복처리하고 나가서 대기실에서 볼까.’
가장 큰 짐은 치웠다. 나머지는 팀원의 몫이리라.
***
경기 바깥. 공개 경기였기에, 어쩌면 많은 사람이 보고 있을 대기실로 나가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뭔가 업셋이라도 일어났나?’
김도준이 준비한 어이없는 꼼수가 진짜로 LTD에 통했다던지. 음. 근데 김도준이 그런 꼼수를 써서 이길때는……
‘우우우으으…….’
같은 저조한 표정으로 찡그리면서, ‘저거 맞아?’같은 뉘앙스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어쩌면 그나마 믿음직한 윤한결이 한 명 잡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우습게, 윤한결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번쩍거리는 눈으로 부담스럽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어…… 근데 어째 윤한결만 보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 윤한결이 대기실에 기다리던 이길한. 이연주. 그리고 한지수까지 다가왔다.
“결국 꺾어 버렸구만.”
윤한결이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말했다.
“야, 방금 강준혁 선배님이란 뜬 거 다 봤다. 여기 사람들도.”
한지수가 평소처럼 부정적이고 뚱한 표정이 아니었다. 아까 그 환호성도 나랑 강준혁의 싸움 장면을 보고 그랬던 건가.
“뭐, 2대1이긴 했지만.”
방금 전엔 안 보이더니, 언제 다가왔던걸까. 류재준이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나이스.”
씨익 웃으며 주먹을 내미는 녀석. 회귀 후로는 이렇게 주먹을 마주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은데.
“그래.”
이런 것도. 나쁘진 않다.
천천히 생각해 보니, 이런 반응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긴 했다.
2부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고는 하지만, 1부 LTD. 그것도 거기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강준혁을 잡아냈으니까.
‘2대1이긴 하지만…… [마나전개]의 사용자라는 걸 생각하면 1부의 다른 팀들은 2명. 아니 3명이 상대해도 맞설 수 없었겠지.’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가장 큰 싸움도 끝맺었지만, 사실상 마나를 모두 다 써버린 나는 강준혁과 공멸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경기의 행방은 남은 사람들끼리의 것이었다.
“지금 상황은 어때?”
이번 경기는 김유현을 대신해 대기 멤버로 남아 있을 이길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
‘설마 경기가 이렇게 될 줄이야…….’
대기실에서 경기를 보던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 그건 압도적인 플레이. 그 수싸움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헌터들이었기에 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정확한 원리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저 꼬맹이 녀석이 퍼뜨린 파동으로 인해 강준혁 선수의 [마나전개]가 무너졌다는 거지.”
[마나전개]사용자도 아닌사람이 [마나전개]를 사용하는 사람을 상대해? 그것도 그걸 파훼한다고?
평상시의 조아라라면 이를 악물고 헛소리라고 소리질렀으리라.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본 이상. 아무리 조아라라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의 대가가 거의 모든 마나를 사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싸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상대는 역시나 계속해서 이창현.
‘팀원이 이어 준 기회라…….’
확실히 이번 경기는 강준혁을 막을 수 없다면. 반드시 필패하는 경기. 가장 강한 전력을 가진 것이 이창현이라는 건 당연한 상황 속에, 어깨가 꽤나 무거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마나전개]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한들, 강준혁은 모든 스테이터스가 한국에서 톱급인 헌터였으니까.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쪽팔리지만 [마나전개]를 강준혁 선배님이 봉인하시더라도 이길 자신은 없다……‘
조아라 자신도 그런데, 이창현이 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그렇다면 지켜봐야 할 점은 다른 것이겠지.
예를 들면, 그래.
‘지금처럼 어떻게 자신의 마지막 수를 보여 줄 것인지…….’
이창현이 강준혁의 어느곳을 맞춘다고 ‘선언’하고 총을 쐈다.
굳이 그걸 말하고 쏘나? 싶었지만…… 선수의 능력이나 징크스. 습관 같은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심리전일지도 모르니. 그 부분에 대한 신경은 껐다.
그렇지만 당연히도.
‘강준혁 선배가 왜 원거리 딜러의 천적인지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네.’
강준혁 선배는 이창현이 쏜 투사체보다도 빠른 속도로, 에어대시를 통해 접근했다.
꽤나 유명한 콤보.
시그니쳐라고도 할 수 있는, 근접 발도.
단일 위력만 놓고 보면, 그 [검의 영역] 마나전개와도 크게 차이가 없는 ㅡ.
“……?!??!?”
“와…… 저 녀석! 저걸 피했어”
“확실히 반사신경이 정신나간 수준이군.”
터져 나오는 환호성. 이창현은 그걸 강준혁의 발도를 림보하듯 피해 낸 것이었다.
‘그걸 대체 어떻게…….’
그걸 고민할 틈새도 없었다.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쏜 탄환이 어떻게 되었는지, 강준혁을 따라 도달해 있었으므로.
그걸로 둘의 싸움은 끝이었다.
“키야…… 저런 괴물같은 녀석이 2부에 있었을 줄이야.”
“우리나라 헌터계의 미래도 밝네.”
대부분 저런 말을 하는 건, 3부. 2부의 떨거지 녀석들. 1부의 선수들은 경계하는 것인지,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선수들이 많았다.
되레, 오른편. 널찍한 자리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LTD의 총감독은 무언가를 참지 못했는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환장할 만한 상황.
‘그래서 결국 이창현이. 그 3부 리거였던. 아니 아예 아마추어였던 애가 강준혁 선배를 이겼다고?’
경기가 뭐가 어떻게 되고를 떠나서, 어지러운 상황. 조아라는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