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대단원
헌터의 재능 중에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재능이 많다. 전투에 강력하게 도움이 되는 능력도. 신체 능력, 스테이터스가 우월하게 뛰어난 것도.
모두 전투에서 쉽게 드러나는 특징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 중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나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압도적인 마나량은, 같은 스킬을 쓰더라도 경이로운 수준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뛰어난 마나조작능력은 앞서 본 것처럼 경천동지의 경지. 마나전개를 해내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이 마나와 관련된 능력이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다른 것들과 달리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는 내 [꿰뚫는 눈]으로도 아직은.’
물론 아예 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마도 [꿰뚫는 눈]능력이 더 성장하면 볼 수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확실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크읏……! 저 녀석. 대체 언제까지 저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계속 날려 댈 수 있는거야?”
내 뒤에 붙어서 강준혁의 공격을 피하던 류재준이 말했다.
‘확실히 나도 궁금할 정도네. 이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버틸 줄이야.’
솔직히 말해서 마나전개를 한 강준혁이 먼저 나가떨어지리라고 생각했던 것.
그렇게 추측했던 것이 실책이었던 걸까.
몇 분 남짓이 지났음에도 강준혁은 저리 강한 마나를 뿜어내고도 팔팔했다.
반면 나는 어떤가.
‘[만개]를 해방시킨 거랑 아닌 거랑 확실히 차이가 엄청나군…….’
회귀 전 과거는 마나로는 고생따위 해 본 적 없고, 회귀 후로는 적절하게 [꿰뚫는 눈]을 꼭 필요한 때만 사용해 마나가 부족해 본 적 없었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서로 마나를 소모하는, 일종의 소모전이 일어나고 거기서 내가 질 가능성이 높아질 줄은.
“하핫……! 이걸 이렇게까지 피하다니. 이렇게 힘을 쏟아 낼 수 있는 상대였다니. 의외네! 하지만 후배. 계속 잘 피하는 것 치고는 많이 숨이 차 보이는데?”
강준혁 녀석. 자기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한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물론 숨이 차서 그런 건 아니지만, 이 대치상황으로 더 이상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소모전으로 [마나전개]를 버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는 강준혁과 결착을 지을 마나를 아슬아슬하게 조금이라도 비축하려면,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내가 마나를 많이 쓰는 것도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나. 류재준을 한 번 믿어보는 수밖에.’
아직 [가능성을 닫는 함]으로 뭔가 성장했다거나 그런 말은 없었기에. [파동]만으로 이 판을 뒤엎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회귀 전 가장 뛰어난 파트너 중 한 명이었던 류재준을 한 번 믿어 보는 수밖에.
“류재준. 이대론 안 돼. 소모전으로 가면 우리가 질 거야.”
급한 숨을 몰아쉬며, [검의 영역]속 참격을 피하는 도중 겨우 말을 내뱉었다.
류재준은 그 말을 듣고는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만, 곧이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사실 이 정도로 버틴 것도 이상하다고 봐야겠지. 그건 그렇고, ‘판 뒤엎기‘라…….”
류재준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솔직히 이근택 회장님과 조준호 사무장님한테 배웠으니, 헌터스 리그는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이쯤 되니까 좀 다르군 그래.”
궁지에 몰린 주제에 애들 장난과 조금 다르다니.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 녀석, 허세가 심하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이 상황은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마무리까지는 어떻게 잘 좀 해봐. 지면 평생 우려먹을 테니까.”
원래 이런 녀석이었나. 뒤끝 있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준혁의 참격을 함께 한 번 피해내자 마자, 류재준이 에어비트를 밟고 순간적으로 공중에 날아올랐다.
“야. 그렇게 벗어나면 위험ㅡ!”
말한 지 한 순간이 지나지 않아, 류재준을 향해 참격이 뻗어 나갔다.
지금 허공으로 날아오른 류재준은 나와 떨어져 있기에 강준혁의 참격에 활로를 찾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반드시 끔찍하게 베이리라고 생각한 순간.
류재준의 표정이 멀리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죽기 직전인데, 웃고 있어……?’
***
때는, 초등학생 즈음이었을까. 철도 없고, 그럼에도 헌터를 동경하는 어린 시절이었다.
한참 이근택 회장에게서 헌터로서 이것저것을 배우던 시절.
“할아범. 지난번에 얘기하던 거 이어서 얘기 해 줘. 모처럼 쉬는 날이잖아.”
“할아범이라니,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 않았더냐.”
이근택이 꿀밤을 내리찍었다.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그야말로 자비 없는 이근택의 꿀밤.
아마 귀엽지만 적당한 훈육이 필요하겠다 싶어 한 것이겠지만, 이근택은 일반인이 아니라 1세대 헌터.
그 꿀밤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파 왔다.
아무튼.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어쩔 수 없구나……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헌터들이 가진 다양한 능력에 대해서였었나?”
“마나전개요 마나전개. 그게 헌터들 필살기 같은 거라면서요.”
1세대 헌터. 그것도 그 시절 정상에 가까운 자리에 군림했던 이근택의 이야기였기에. 일반인들은 모를 법한 그런 귀중한 정보였다.
뛰어난 헌터들끼리만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기술적인 이야기, 탑을 올랐던 영웅적인 무용담 등……
“아아. 마나전개 이야기였나. 하여간 어린 녀석이 쌈박질에만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걱정이 되는구나. 아무튼, 마나전개는 네 생각만큼 단순한 게 아니다.
자신이 가진 마나를 퍼뜨려, 그 마나를 퍼뜨린 영역을 자신의 의지에 맞게끔 세세한 컨트롤을 한다. 기본은 그러한 것이지만…….”
“별로 안 복잡한데?”
다시금 이어진 이근택의 꿀밤에 조잘거리던 류재준이 조용해졌다.
“그게 기본이라는 게야. 그처럼 [마나전개]는 특정 ‘영역’에 한해 마나를 극도로 세심하게 조정함으로써 강한 힘을 뿜어내는 것이 기본이지. 하지만 이걸 변형시켜 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해. 넓은 개념인 ‘영역’이 아니라, 극도로 좁은 ‘한 점’으로 모아 아주 작은 단위에 강한 변화를 주는 강화형 변주도 있고…….”
“하아암…… 알았어 할아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왜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듣지 못했을까.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나. 류재준이 듣기엔 어려운 말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아무튼, 그 다음은 그나마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럼 나도 이제 마나전개 가르쳐 줘. 필살기 멋있잖아.”
“네가 하기엔 한참 이르다. 꼬맹이 녀석이. 쯧…….”
“뭐야 그럼. 다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한 거야? 할아범?”
그 때 그 말을 들었던 이근택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굉장히 상처받은 표정이었던 것 같은데……
물론, 꼬맹이한테 쓸데없다는 말을 들어선지 그 직후. 어떻게든 꼬맹이였던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려 주었지만.
“큼큼…… 네가 마나전개를 지금 배우는 건 무리겠지만, 그에 대항할 방법은 조금 있을지도 모르지…….”
“오…… 뭐야 그런 것도 있어?”
이근택은 정말이지, 그 땐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산전수전 다 겪은 명장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헌터스 리그도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그런 다양한 기술과 상대법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기억이 지금 와서야 도움이 될 줄이야…….’
사람 사는 일은 두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전개는 결국 요컨데, 자신의 마나입자를 마구 흩뿌려놓고 유지시켜, 그 마나를 의지대로 이용한다. 그래서 그 영역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이야기…… 하지만 ‘나에겐 그걸 흩트릴 방법’ 이 있잖아?’
마나나 심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는 기술이라 지금껏 헌터스 리그에 몸담고도 아직 쓴 적 없는 기술인데.
이런 방식으로 보여 주게 될 줄이야.
‘1세대 헌터한테 배운 기술이니, 눈 제대로 뜨고 보라고.’
“재준아. 헌터의 ‘능력’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그건 헌터마다 다양하게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지만, 결국은 마나를 자신이 특질에 맞는 방식대로 움직여서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거다.”
그리고 그런 내 특질에 맞는 능력은……
‘[파동]이다.’
그 순간, 어느 순간보다도 강렬하게. 그야말로 모든 마나를 사용한다는 수준의 일념으로 파동을 내뿜었다.
평소와는 약간은 다른 세심한 컨트롤이 곁들어진 [파동]이었다.
그 강렬한 파동이, 어느 작은 입자하나 파고들 틈 없이 빽빽하게 류재준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류재준에게 미친 듯이 뻗어 나가던 강준혁의 참격이 그가 일으킨 [파동]에 휩쓸려 나간 것이었다.
“으…… 근데 이건 이러나저러나 해도 안 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뒤는 알아서 해라. 이창현.”
너무 힘을 쏟았나. 마나도 없고, 남은 기력도 없다. 이제 적어도 이 경기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일은 없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괜히 퍼맞고 아웃될 필요는 없지.’
전투이탈 후 항복처리를 하고, 경기장에서 나가 버리는 류재준이었다.
***
강렬한 류재준의 일격으로 나와 강준혁이 합을 주고받던 공중은 잠잠해져 있었다.
설마……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회귀 전에도 본 적 없는 류재준의 기술이었다.
‘강준혁의 [마나전개]를…… 참격을 막아 낼 줄이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참격을 ‘막아 낸’건 아니었다.
강준혁이 [마나전개]로 흩뿌린 강준혁의 체내마나를 녀석의 ‘파동’으로 빽빽하게 모두 밀어내고, 그 결과로 강준혁의 마나가 닿지 않아 참격이 사라져 버린 것일 뿐.
물론 나처럼 류재준을 세세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 강준혁은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마나전개를…… 강제로 해제시켰어?”
놀라움을 넘어 경이를 느끼는 듯했다.
하긴, 나라도 강준혁이었다면 저렇게 반응했으리라.
기본적으로 마나전개는 헌터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술이라고 여겨지니까.
‘하지만, 유명 헌터끼리 구전으로 전해지는 마나에 대한 개념이나, 헌터의 능력. 그런 정보들에 대해 빠삭하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아무튼.
“이걸로 다시 동등해졌나요?”
아직 [만개]를 개방하지 않아 [마나전개]를 사용하지 못하는 나.
그리고 [마나전개]를 했지만, 개방해 낸 그 마나들을 모두 몰아내 버려 [마나전개]가 해제되어 버린 강준혁.
아마 남아 있는 마나는 둘이 큰 차이는 없으리라.
“그래. 네 동료도 가 버렸고. 이젠 [마나전개]도 없이 완전히 1대1 상황이네.”
다른 녀석들은 잘 하고 있나.
오더를 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는, 내 입장에선 못미더운 팀원들이기에 이런 생각도 들지만.
이 정도로 해 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무대를 깔아 준 류재준을 생각하면 다른 녀석들도 나름 잘 하고 있지 않을까.
의외로 분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뭐, 물론 내가 여기서 강준혁을 막지 못하면 끝나겠지만.’
연습경기이지만, 꽤 뜨거운 이 경기도 이젠 대단원만 남겨 둔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