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어린 시절의 동경
먼 과거.
헌터가 되겠다는 생각도 못했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물론 그때 헌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 헌터스 리그는 국민스포츠였기에 경기를 보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특히, 다양한 능력과 전술을 엿볼 수 있는 국제 리그를 보는 건 어린시절의 김도준에게 큰 재미를 주었다.
형형색색 빛나는 능력을 쓰는 헌터들. 번뜩이는 전술과 치열한 경기.
어느 선수가 1대1로 떴을 때 제일 강한가? 그것이 또래에서 제일 뜨거운 화제였으며, 그때 단연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에단이었다.
어마어마한 마나량. 한 번 총을 쐈다 하면 그 공간이 채로 삭제되어버리는 듯한 화끈함.
거기에 한 번도 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까지.
얼핏 싸가지 없어 보일 에단의 언행도, 실제로 다 이기는 그에게는 뛰어난 선수의 자신감이라고 포장되었다.
‘하지만 난 에단도 좋지만…… 역시 오스틴이.’
김도준이 집중한 것은 조금은 다른 선수였다.
능력으로는 별 볼일 없지만, 또 하나의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 오스틴. 그야말로 김도준의 영웅이었으니까.
[아아…… 오스틴 선수! 이번 결승전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마나장비를 선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오스틴이 매번 사용하는 괴이한 마나장비 때문인지, 룰에 마나장비 제한을 추가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그를 견제해 경기의 룰까지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영향력과 달리 평가가 그리 좋진 않았지만.
“뭐? 오스틴? 걘 능력도 별 볼일 없고 장비빨이잖아. 비겁하게.”
“그래도 매 경기마다 오스틴이 뭘 할지 기대하게 하지 않냐?”
“기대는 무슨. 신성한 헌터스 리그에 졸렬한 짓 하는 그런 놈. 나는 인정 못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오스틴의 인기는 바닥을 기었다.
그야, 순수한 무력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장비를 이용해 꾸득꾸득 이기는 모습이 비열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김도준은 오히려 그 집념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사람들이 무시하는 별 볼일 없는 능력들뿐. 형형색색 빛나는 초능력을 쓰는 헌터들 속에,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이.
그런 사람이 상대방의 허를 찔러 이기는 모습이.
아마도, 김도준은 그 때. 자신이 헌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으리라.
***
“졸렬한 새끼.”
이가람이 겨우 말을 내뱉으며 휘청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팔팔했던 이가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원래 상처를 입으면서도 더 터프하게 파고드는 이가람의 모습을 알았던 LTD 팬이라면 경악할 만한 모습이었다.
그 말에, 오히려 좋아. 김도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야, 졸렬하다고 상대방을 까는 거. 그거 정말 잘하고 있다는 뜻이거든.’
오스틴을 존경해 왔던 김도준에게서 그런 말은 익숙했다. 오히려 그와 비슷한 말을 듣는다는 것에 희열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하…… 아직 제가 그 정도 말을 들을 정도까진 아닌데. 원. 좀 부끄럽고 그렇네요.”
김도준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붙잡지 못했다.
뭐, 이러나저러나 김도준에겐 지금이 기회였다.
“그럼, 다른 데 맞는 건 괜찮은데 비해 고막은 수상하리만치 약한 마조히스트 선배. 갑니다!”
김도준이 키득거리면서 다시금 검으로 맹공을 시작했다.
하지만 과연 1부 1황의 자리에 있는 LTD의 저력인 것일까?
거의 머리가 멍하고 세상이 흔들리는 수준의 감각일 텐데도 이가람은 꿋꿋하게 김도준의 검을 막아 냈다.
‘허어…… 이거 완전 인간승리 수준인데.’
한 번 김도준의 검을 막을 때마다.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림에도 김도준의 검을 막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니, 지금처럼 데미지를 입은 상황이었기에 피하지 못해. 피치 못하게 막아 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차라리 지고 말지, 그 소리를 들으며 계속 막아 낸다는 것. 그것 자체로도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심지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막기에 급급했던 이가람은 반격을 하는 형세가 되어 있었다.
“…….”
“익숙…… 해졌다고 이제?”
‘아예 귀가 맛이 가 버린 건가?’
정말 대단한 집념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는 1부다 이런 건가.’
우위를 점했을 때 끝냈다면 좋았을 텐데, 분명 상처를 꽤나 입혔음에도 이가람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픔을 느껴야 더 잘 싸울 수 있다는 그의 인터뷰를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김유현!”
팀 연습으로 이제는 익숙해진, 팀원의 마나가 느껴졌다.
슬슬 준비되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는 역시.
김도준이 김유현의 이름을 외치자, 강준혁의 난도질로 무너진 건물이 다시 오물조물 만들어지며, 포탑들이 속속 생겨났다.
김유현의 [요새화]였다.
상대방일 땐 꽤나 곤란하지만, 팀이면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점화된 수 개의 포탑이 이가람을 향해 불을 뿜었다.
“끝이다!”
퉁 투퉁 퉁!
순식간에 이뤄진 집중포화로 일어난 먼지구름 덕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젠 내가 창현이를 도와줄 타이밍인가. 어쩔 수 없네.”
막 김도준이 자리를 뜨려던 순간.
의아함에 다시 집중포화가 일어난 곳을 쳐다보았다.
‘마나가 여전히 느껴지는데…….’
이가람은 딱 보기에 공격에 모든 걸 특화한 스타일. 이 정도의 집중 포화를 몸으로 받아 내고 멀쩡할 리는 없는데……
곧이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먼지가 잠잠해지자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어휴. 평소에 피를 봐야 오히려 더 몸이 달아오른다더니. 그것도 너무 많이 흘리니까 현기증이 다 나나봐?”
“닥쳐.”
“2부 애들 상대로 뭘 하는 건지 원. 이제 국제 리그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런 모습이라니. 한심하네.”
이가람의 앞을 거대한 인간형 기계장치와 한 소녀가 막아세운 것이었다.
마치 만화에서나 볼 것 같은 비쥬얼이었다.
그리고 김도준도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아…… 아현 선수도 LTD 선수였구나…….’
외국에 마나장비 사용으로 유명한 선수 중 오스틴이 있다면, 한국엔 아현이 있었다.
물론, 오스틴처럼 순수하게 다양하고 특이한 마나장비를 개발하고 사용하기보다는, 그녀가 사용하는 마나장비가 워낙 특이했으니까.
마나 돌. 아현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조작 가능한 특별하고 섬세한 구조를 지닌 마나장비. 사실 마나장비라고 보기보다는 그녀가 가진 능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안 보이다가 이쪽으로 왔다는 건…….’
뒤늦게 김도준이 윤한결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지만, 윤한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1대1에서 윤한결은 1부 상위권 선수들이랑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데, 저렇게 상처하나 입지 않고 이겼다고?
김도준이 아무리 윤한결을 상대로 빛나는 검으로 눈뽕을 먹이고 귀를 먹게 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럴 자신은 없었다.
과연 1부에서 1황이라고 불리우는 팀인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찾아온 위기감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물론, 동시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현의 저 유명한 마나장비를 직접 상대해 볼 기회가 지금을 제외하면 쉽게 오겠는가?
누구나 위기라고 느낄만한 상황. 김도준은 오히려 뻔뻔하게 웃었다.
***
“이 경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경기를 지켜보던 총감독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LTD에 비하면 PER은 체급도 낮은 편이고, 준비해 온 전술도 나름 강력했다. 그게 PER맞춤 전술이 아니다 뿐이었지.
국제 리그에 앞서 체력소모 없이 간단하게 전투 감각만 유지하려고 한 경기가, 생각보다 선수들에게 큰 피로를 안겨 주게 생겼으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준혁이가 [검의 영역]을 펼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걸 버티다니.’
강준혁이 괜히 이번 경기를 보러 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저걸 막아 내는 선수, 저걸 펼치기 전에 선수를 쳐 버리는 선수 등. 다양한 선수들을 국제 리그에서 상대해 왔지만……
저게 이미 발동된 상태에서 피한다?
그런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도중. 경기장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하나 더 도착했다.
“어디있나 물어봐서 왔는데. 다들 여기서 뭐해요? 이형근 감독님에, 평소엔 얼굴도 안 비추는 총감독님까지. 허허 참.”
“아, 이진한 감독. 찾고 있었나? 휴대폰을 못 봤네. 이거 집중하느라.”
다름이 아니라, 1부 LTD의 감독 이진한이었다.
“아, 오늘 준혁이가 잡았다는 연습경기가 오늘이었구나. 최근에 이 코치랑 국제 리그 전술 고안하느라 바깥에 나오지도 못했는데. 그 동안 그래도 혼자 연습경기도 잡고. 애들이 열정이 있어서 좋네.
근데…… 상대가 누구길래 이렇게 다 모여서 본데요?”
국제리그 준비로 바빴던 것일까. 이진한이 뒷북을 치며 그제서야 상대 팀에 누구 있는지를 발견했다.
“어? 쟤 걔잖아요 걔.”
“걔? 아는 애야?”
“아니 저번에 저희가 빛나는 검이랑 인비저블 클록 전술 썼을 때, 그거 원조가 쟤네잖아요. 그리고 저 쟤 누구야? 맞다. 이창현. 내가 저번에 쟤 영입하자고 그렇게 떼를 써도 쳐다도 안 보시더니.”
이제야 뒤늦게 무얼 하냐는 듯 성토하는 이진한의 말에 이형근은 슬금슬금 눈을 피했다.
“이형근 감독! 어디가. 그러게 3부에 들어오기 전에 오디션 리그 끝났을 때 이형근 감독이 잘 좀 했어야지 아휴. 쟤 하나 놓쳐서 얼마나 손해인 건지 원 참.”
이진한 감독은 꽤나 뒤끝 있기로 유명했으니까.
게다가 영입 실패한 것도 한참 지난 일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뒤끝작렬에 기억력도 좋다. 그야말로 최악.
“어? 쟤를 우리팀에서 영입을 시도했었나?”
“왜 그러세요 총 감독님. 그 때 감독님도 있었을 텐데. 아닌가? 그 땐 다른 업무 하셨나?”
“나는 지금 경기 보는게, 준혁이가 저 친구 보고 다음 시즌 LTD, 저 친구가 영입 0순위라고 해서 지금 보는건데…… 이미 한 번 영입에 실패한 친구였나.”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LTD 총 감독의 목소리가 고뇌에 젖어들었다.
“그때 제시했던 조건이 뭐였지?”
“그…… 그게 사실 그땐 3부리그 선수였고 해서 그리 큰 걸 제시하진 않았을 거에요. 총 감독님도 아시잖습니까. 그쪽 선수들 대우가 어느 수준인지. 그래도 나름 3부에선 최고 수준 대우를 제시했는데…….”
“허어.”
그 짧은 한숨에 총감독의 모든 심정이 들어가 있었다.
동시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굳이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중요한건 지금까지 어땠냐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겠지. 안 그래?”
“하하. 맞습니다.”
총감독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저 참격 세례 속에서 버텨 낸 게 2분 이상은 되는 것 같은데?”
이젠 이창현이 강준혁과의 저 대치를 단순히 버틸수가 있느냐, 없느냐. 그 차원이 아니라, 강준혁과 합을 나누는 그 다음의 모습까지도 기대되기 시작했으니까.
‘암, 절대로 쉽사리 포기할 순 없는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