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생각보다 치열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헌터스 리그.
그 헌터스 리그에는 수많은 팀이 있고, 그 팀들도 저마다 나름의 ‘승리공식’을 가지고 있다.
계산적으로 착착 떨어지는 뛰어난 오더의 플레이. 어찌되었든 교전을 일으켜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플레이. 서로의 끈끈한 팀플레이로 한타에서 이기고 마는 팀플레이 등등.
그런 헌터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가지고 있다는 건, 당연하게도 그 팀이 가장 강력한. 그리고 가장 다양한 승리공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와…… 저 녀석들. 2부라더니. 진짜 2부 맞아? LTD를 상대로 선취를 따냈잖아?”
“강준혁 선수도 꽤나 당황스럽겠어. 지금까지는 전술적으로 완벽하게 PER에 휘둘리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아파트에서 매복플레이라니. 상당히 얄미운 짓을 하는걸.”
“이대로 가다가 PER이 그냥 진짜로 이겨 버리는 거 아니야……?”
그렇기에. 조아라는 생각했다. 지금 아무리 PER이 뛰어난 수싸움으로, 전략에서 완전히 LTD를 잡아먹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LTD가 쉽게 질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계속해서 PER의 매복플레이가 이어지려던 순간.
강준혁이 그 흐름을 끊는 파괴적인 일격을 가하며 판을 뒤엎었기 때문이었다.
“오오……!”
‘이제야 PER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겠군.’
경기를 지켜보던 조아라가 두 눈을 빛냈다.
***
팀원의 희생까지 감안해 가면서 전면전을 벌이기 위해 흩어져서 탐색을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허탕을 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내 생각보다 이창현이 전략 전술에 훨씬 능하다는거겠지.’
강준혁으로서는 이미 한 번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플레이 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처럼 흩어져서 또 탐색을 해 봤자, LTD의 팀원만 희생될 뿐. 별로 전황에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았으니까.
“후…… 어쩔 수 없네. 조금 무리하더라도, 무식한 방법으로 가자.”
“그러게 내가 뭐랬어.”
LTD 팀원의 볼멘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마나가 느껴지는 걸 보면, 역시 멀리 가진 않은 것 같으니까. 이대로 바로 베어 버릴 거야. 도망 못 가게, 이번엔 진짜 제대로 보고 있어.”
“당연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준혁 주변으로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설령 이걸 쓰더라도,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이런 형태로 이걸 쓰게 될 줄이야…….’
이창현. 아마 녀석의 전술이겠지? 항상 상상을 뛰어넘는 녀석이다.
“하아아압 ㅡ.”
강준혁이 들어올린 검집에서 강렬한 풍압이 일며 검이 뽑혔다.
그 직후.
샤라락 ㅡ.
무언가가 무수히 베이는 소리가 들렸다.
별로 크지 않은. 아주 깔끔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반동은 결코 작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궁……!!!
강준혁을 중심으로, 아파트의 벽이니 바닥이니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녀석을 제대로 경기에서 조우하기도 전에 ‘마나전개’를 사용하게 될 줄이야.’
하여간 대충할 수 없게 만드는 녀석이라니까.
“아니 선배 뭐 이렇게 많이 베어 버렸어요! 제가 발 디디는 곳도 무너지잖……!”
“그것도 못 버티면 그냥 깔려서 내 활약이나 지켜보도록.”
“제가 그럴 리가 있겠어요? 후…… 그나저나 잠깐이긴 해도 겨우 연습경기에 이렇게 전력으로 할 필요 있어요? 오늘 [검의 영역]을 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오래 펼치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잠깐이면 크게 힘든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찾은 것 같네.”
강준혁이 펼친 [검의 영역]으로 순식간에 아파트가 난자되자, 당연히 그 잔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PER의 녀석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건물이 무너져 파편들을 밟으며 바깥으로 향하는 가운데.
이창현과 PER의 팀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야 얼굴을 보여 주네.”
“사람 찾는 방법 한 번 과격하시네.”
그게 이번 경기에서 사실상 이창현과의 첫 조우였다.
***
건물에 숨는다면 건물을 부순다. 강한 능력을 가진 헌터라면 충분히 가능한 전술이긴 했다.
하지만, 굉장한 마나를 소모하게 될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넓은 범위를 이렇게 초토화시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예 [마나전개]를 펼쳐 버릴 줄이야…….’
것도 건물을 부수기엔 전혀 적합하지 않은 냉병기. 검으로 건물을 난자할 줄이야.
거기에 강준혁이 노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건물을 베어 버리는 그 일격은 건물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었다.
건물과 베임과 동시에, 참격에 맞아 순식간에 이연주와 한지수가 당해 버렸으니까.
‘상당히 화끈하고 호쾌한걸.’
동시에 건물이 무너지며 시야가 탁 트였다.
“이제야 얼굴을 보여 주네.”
소리가 나는 쪽엔, 강준혁이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 찾는 방법 한 번 과격하시네.”
“절대 안 싸워 주면서 숨어 버리는 너희 쪽만 할까.”
무너지는 건물 속, 시시한 농담따먹기도 잠시.
강준혁이랑 나,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전투태세로 순식간에 진형이 새롭게 갖춰지고 있었다.
하지만, LTD와 달리 PER은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이 눈앞의 상대뿐만이 아니었다.
“……머리 위!! 피해!”
아파트가 무너지고, 훤히 드러나게 되면서 이젠 다시 오제헌의 운석들이 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콰콰과광.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PER은 진형도 채 제대로 꾸리기가 어려웠다.
‘모든 건 강준혁의 마나전개. 그 일수가 지금 전황의 모든 것을 바꿔 버린 건가……’
지형마저도 바꿔 버리는 강렬한 마나전개의 일격. 그 효용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어폰에서는 오더를 요청하는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매복작전은 글른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진형을 다시 구축할 시간도. 다른 전략을 시행할 만한 시간도 없다.
완전히 말려 놓은 줄 알았는데, 이번엔 이쪽이 강준혁의 기술에 말려 버렸나.
할 수 없지.
“이 상황에 어쩌긴. 결국 헌터스 리그는 몸으로 들이박고 싸우는 거 아니겠어?”
전술이 줄 수 있는 이점은 여기까지. 그 후로는 결국 전투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현이는 눈치보다가 인비저블 클록으로 빠지고, 준비가 끝나면 일시에 [요새화]를 이용해서 엄호할 수 있도록 해 줘.
그리고 나머지는 전에 짰던 전우조 위주로 활동하면서 상대를 격퇴한다. 알았지?”
“알았어.”
상대측에서도 대충 견적이 잡힌 것인지. 본격적으로 덤벼 오기 시작했다.
싸움을 주로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김도준과 윤한결을 빼고.
나는 재준이와 함께 상대 진영의 최심부, 강준혁에게로 향했다.
어차피 난장판이 되어 버린 경기.
서로 섞인 가운데 펼쳐지는 이 경기의 흐름은 더이상 되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아까 아파트를 뭉개 버린 그 일격을 보고도 이리로 오다니…… 재미있네.”
강준혁이 접근한 나와 류재준을 보며 씨익 웃었다.
“뭐, 건물 부수기는 저도 장기라서요. 선배님도 제 오디션 경기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류재준은 그 말을 듣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때 말고도, 뭐만 하면 건물 부숴서 활로를 돌파한 적이 많긴 하지. 이거 완전 폭파범 아니야.”
“그건 그렇고. 훨씬 가벼운 경기로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힘을 끌어낼 줄은 생각 못 했는걸. 내가 기대하는 유망주라고는 해도, 2부니깐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 걸 후회할 정도야.”
“국제 리그라는 큰 경기를 앞두고 이 연습시합을 잡은 걸 후회하시나요?”
“천만에.”
강준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제대로 한 번 보여 주도록 하지. 국제 리그에서 뛰는 팀의 힘이라는걸.”
아까, 잠깐 펼쳐진 것과 다르게 다시 밀도 높은 마나가 강준혁에게 몰려들어 특정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후배들에게 주는 서비스야.”
강준혁이 나와 류재준을 마주한 상태에서, 그의 ‘마나전개’. [검의 영역]이 퍼져 나갔다.
***
한편, 다른 선수들과 달리 연습경기 대기실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LTD의 총감독과 얼떨결에 따라오게 된 3부 LTD의 감독. 이형근이었다.
바깥에서 점점 달아오르는 구경꾼들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대기실의 분위기는 굉장히 차갑고 침착했다.
“경기가 이렇게 흘러가나…….”
강준혁 녀석. 경기를 꼭 보러 오라고 하길래 왔건만. 팀 LTD가 보여 주는 폼이 썩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처음 전략부터 꼬여 제 발에 넘어지듯 제대로 활약을 못하더니, 결국은 강준혁이 [마나전개]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나.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게 아니라 ‘꼬이게 만든 것’ 일지도.’
생각하는 걸 훤히 읽듯이 맵과 위치를 선정한 저 PER의 사령탑. 이창현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총감독이 작게 혼잣말을 내뱉자, 이형근도 거기에 동감하는 듯 크게 말했다.
“그렇네요. 확실히 보러 올 만한 가치는 없지 않았습니까? 신인주제에 강준혁 선수의 [마나전개]를 이끌어낸 건 또 괜찮긴 했지만. 그 뿐이죠.
이제 단번에 결판이 나지 않겠습니까?”
“으음…… 확실히 그렇네.”
강준혁의 마나전개. [검의 영역]. 파괴력도 일품이며, 그 영역 내의 거의 모든 것을 참격으로 베어 버릴 수 있는.
사기적인 성능을 뽐내는 능력.
그 영역이 지금 저 싸움에서 발동되었다.
게다가 거기에 상대하는 것은 다름아닌 PER의 사령탑 이자 에이스인 이창현과 류재준.
아마 저것이 나온 이상, 경기가 순식간에 정리되고 끝이 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준혁이의 능력만 재확인한 셈인가.’
뭐, 녀석이 영입 0순위라고 난리친 것 만큼, 꽤 싹수는 있다고 느껴졌지만……
역시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신인과 현 한국 헌터스 리그 1부의 황제로 군림하는 강준혁을 비교하기엔, 아직 너무 초라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오오오오오오!”
대기실 바깥에서 크게 웅성거리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의 영역]이 발동되었기에, 이제 슬슬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해서 정리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당황스러운 마음에 다시 고개를 돌려 강준혁과 이창현, 류재준이 대치하는 곳을 바라보았지만. 변한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검의 영역]을 발동시킬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아, 바로 싸워야 할 텐데…… 변한 게 없다고?’
그제서야 LTD의 총감독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마나 전개]가 일어나고도 전투구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계속 다시 바라보고 있던 도중.
역시나.
강준혁이 팔을 휘두르며, 셀 수 없이 수많은 참격들을 만들어 내 분출시켰다.
마치 꽃이 피어나는 듯 보일 정도로 빽빽하고, 수도 없이 생겨나는 초속의 참격들.
제아무리 초인인 헌터라고 한들 그걸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마치 대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듯 주변이 초전박살 나 있는 가운데.
이창현은 마치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듯. 멀쩡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