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다 아는 사람들이구만
회귀 전의 기억.
회귀를 하고 난 후에도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가끔은 생각이 나곤 한다. 이렇게 과거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때 더더욱.
연습경기를 하기 위해 PER의 팀원들을 이끌고 헌터 연합훈련소로 들어가던 도중, 먼저 들어가던 LTD의 팀원들이 보였다.
강준혁과 LTD의 총감독을 필두로, 회귀 전 몸담았던 첫 1부 팀. LTD의 팀원들의 면면이 보였다.
되돌이켜 봐도 좋은 팀이었다.
팀원들이 바뀌기 전. 처음 몸담았던 1부 팀이자, 나를 로얄로더로 만들어 줬었던 첫 시즌.
그때 LTD에서의 기억은 아직도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강한 향상심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꽤나 끈끈한 동료애.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결국엔 한국 헌터스 리그 역사상 최초로 국제 리그 우승까지 이뤄 냈던 과거.
‘물론 이제 그런 일은 없겠지.’
이미 회귀 전 과거와 지금은 꽤나 달라졌다.
내가 1부 LTD에 들어갈 무렵에는, 강준혁 선수가 해외 팀으로 이적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만 하더라도 그런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내가 회귀한 것으로 인해 일어난 나비효과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가다 말고 뭘 그리 문득 서 있어? 상대가 1부 LTD라 쫄기라도 했어?”
김도준이 나름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한 건지, 나를 놀리려 들었지만. 짜식. 쫄았으면 자기가 쫄았겠지.
“아니. 됐다. 가자.”
“뭐야 싱겁게.”
현 LTD의 팀원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지금도 저 1부 팀원들의 면면이 기억이 나는 편이다.
아마, 이번 연습경기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헌터 연합훈련소. 거기서 훈련하는 선수들은 3부에서 1부까지 아주 다양하게 있다. 그리고 단연, 1부 선수들의 경기는 훈련소 내에서도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물론 비공개 연습경기라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 공개시합을 할 줄이야.’
솔직히 조금 예상 외였다.
일반적으로는 전력 노출을 막기 위해서 비공개 연습경기를 잡는 것이 다수였는데, 앞서 국제 리그 경기를 앞두고 있는 LTD였기에 그랬던 것일까.
우리는 이만큼 준비했다. 우리 팀은 이렇게 강하다. 국제 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오겠다. 그런 각오를 내심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우리 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기도 하고.’
1부의 인파는 2, 3부와 그 수준이 다르다. 아직 엄청난 관중 앞에서 경기를 치룬 적이 없는 PER로서도 좋은 연습이 되지 않을까?
“와…… 사람 되게 많네.”
“지금 시점에 남은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우리 상대팀인 1부 승급전 팀을 제외하면 남은 경기 있는 팀은 없을걸?”
“여기서 실수하면 박제되는 거 아니야?”
“시작 하기도 전부터 실수할 생각이나 하고 있냐?”
자기네들끼리, 잘 못하면 어쩌지, 잘했는데 다른 선수들이 다 지켜봐서 분석당하면 어쩌지. 콩트를 찍는 동안 어느새 LTD의 팀원들이 다가와 있었다.
“동생! 그동안 잘 지냈나?”
여전히 친한 듯 연기하는 강준혁. 그리고 LTD의 팀원들이 뒤이어 따라오고 있었다.
“아아. 그런데, 얼굴 본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요. 저번에 회장님이랑 할 때도…….”
“어? 아아. 그랬지.”
강준혁이 머쓱한듯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하긴, 저번에 이근택과의 연습경기를 본 건 공식 일정이 아니었으니까.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은데. 살살 해 주시라구요. 아직 1부 룰에는 제대로 적응 못한 애들이니까.”
“살살…… 그려러고 생각을 해 본 적도 있긴 한데…….”
“한데…….”
“오늘 오시는 분들이 귀한 분들이라, LTD 총감독님 아시나? 그 분 원래 경기 보러 직접 안 오시는데. 오늘 경기는 기어코 직접 보러 오시겠다고 하시더라고. 그것도 그렇고, LTD는 국제 리그 경기를 나가기 바로 전 경기인데. 살살 할 수는 없잖아?”
허어…….
LTD의 총감독이라고 하면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긴 했다. 회귀 전에는 내가 1부로 올라가자마자 일선에서 손을 떼고 경영 쪽으로 간 것 같았는데.
여러모로 헌터스포츠계의 전략가로서 말이 무성한 사람이라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빡세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뭐…… 1부 신고식을 막 하겠다는 건 아니고. 진지하게 하겠다는 거지.”
“흠…… 그런가요.”
사실 예상한 부분이긴 하다. 이런 시점에 연습경기를 잡는데, 우리한테 맞춰서 설렁설렁 할 양반들이 아니긴 하지.
하지만, 우리도 이번에는 꽤나 전력을 보강해 온 만큼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쉽게 당해 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 좋아.”
강준혁이 웃으며 뒤를 보곤 손을 흔들고, PER과 LTD는 각 팀의 대기 장소로 돌아갔다.
“무슨 얘기를 경기 전에 그렇게 한 거야?”
“별 이야기 아니야. 그냥, 본 때를 보여 주자고.”
나름 1부에서 가장 이름을 날린 LTD이기에 의식했던 걸까. 류재준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씨익 웃었다.
회귀 전, 류재준과 함께 1부 LTD에 올라 로열로더가 되었는데. 이번엔 그 상대를 하고 있다니. 세상살이는 역시 두고 볼 일이다.
***
이번 연습경기의 목적은 사실 PER에게 있어서, “1부 베테랑 팀”에게 한번 된통 당해보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PER은 아직 1부 LTD에 닿으려면 멀었으니까.
회귀한 만큼,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고, 그 차이도 알고 있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 이 작은 차이 하나가, 원래는 할 수 있었던 세세한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만들고, 플레이어의 눈을 가린다.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1부는 이전. 2부나 3부와는 달리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성장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경우 가장 중요한 것. 그건 바로.
“오늘 우리가 싸우는 저 팀. 저 팀 정도의 수준을 처음 목표로 삼는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진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고.”
첫 목표의 기준치를 잡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저쪽이 우세한 만큼, 우리가 가져온 맵 선택권 어드밴티지도 있으니, 그걸 잘 살려 보자고.”
물론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최선을 다해 부딪히고 그 간극을 재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전략은 미리 짜온 대로. 합류를 우선시하자. 연주야. 애들 위치는?”
“팀원들은 다들 무난하게 합류하고 있고…… 적 팀도 딱히 각개격파를 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하긴. 국제전을 앞둔 LTD로서는 아마 대인전을 연습하기보다는, 호흡이 지금 잘 맞는지 점검하고 싶을 테니. 초반 전술을 걸어오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긴 했다.
“맵은 전에 말하고 숙지시켰던 시가지맵이랑 똑같지? 7시 부근 아파트단지 쪽으로 합류해.”
“오케이.”
‘하지만 그렇게 뻔히 LTD가 읽혀준 만큼,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단 말이지…….’
LTD를 이용해 팀원들에게 1부의 쓴맛을 보여 준다고는 생각했지만, 맥없이 당해 준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번에 내가 양보를 받아 택한 맵. 이 아파트가 가득한 시가지. 그리고 이 맵을 이용해 준비한 내 특별전술로 LTD를 꽤나 골려줄 생각이었으므로.
“와…… 근데 정말 수상하리만치 너무 잘 풀리네. 초반 합류가.”
“국제전을 준비하느라, 합을 맞춰 보려 해서 그런 거겠지.”
“그런데 우리는 이걸로 괜찮은 거야? 아직 새로운 기술을 다 익히지도 못했고. 이 아파트단지가 지키기엔 좋아 보이긴 해도, 상대가 유물 찾아서 오면 어쩌려고……?”
“아니, 상대방은 유물을 찾아서 공략하려고 하진 않을 거야.”
상대는 진심이 아니다. 아니, 진심일 수가 없다. 1부에 근접하다고는 하나, 아직은 2부 팀.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상대가 수성 좀 한다고 유물을 찾으러 돌아다녀?
그런 짓을 했다간, 한국 1황. LTD의 명성에 흠이 가겠지. 아랫 리그 상대하는데 뭐 그렇게 하냐고. 국제 리그 대비하는 포부를 보여 줄 거면 화끈하게 한타를 하던가 했어야지. 뭐 그런 이야기를 들으리라.
그런 뻔히 보이는 상황.
그러니까 ㅡ. 상대가 할 행동은 다 대충 예상이 간다는 거다.
미리 머릿속으로 이번 경기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동안, 어느새 PER의 팀원들은 전부 모여 있었다.
“계획은 전에 말해 준 거 기억하지? 우선 지하주차장쪽으로 가면서 이야기하자.”
팀원들은 그 계획을 듣고 반신반의했었지만, 나는 이 계획이 반드시 통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야, LTD 녀석들. 그 녀석들에 대해 지금 나만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공격도 전략도. 이제 곧 나가게 될, 국제 리그 경기에서 사용할 전술도.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빠르게 PER 팀원들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던 도중.
마치 건물이 흔들리는 듯한 강렬한 진동과, 파괴음이 울려왔다.
‘LTD도 다 모여서 슬슬 시동을 걸었나. 처음은 역시나…… 오제헌.’
한번 제대로 놀아 볼 시간이다.
***
한편, 전 팀원이 다 모인 것은 LTD 또한 마찬가지였다.
PER과 조금 다른 점은, LTD의 경우 PER이 향한 아파트 쪽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
그 이상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답답하게 가는 거야? 그냥 시작하자마자 각개격파로 갔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연습경기를 잡은 의미가 없잖아.”
“쟤들 저기 모여서 수비하는데 이걸 그냥 두 눈뜨고 보라고?”
“수비 전략에 대한 파훼법을 연습한다고 생각해라 꼬맹이.”
“누가 꼬맹이야!!”
“수비했으면 천천히 뚫으면 되지. 민정아. 너무 신경질 내지 말고.”
“……네.”
강준혁이 성을 내는 이민정을 달랬으나, 내심 더 놀라고 있는 건 오히려 강준혁이었다.
‘맵의 선택부터…… 시작부터 자리잡은 곳이 아파트의 중심부?’
당연히 체급 상 밀리는 팀은 PER이었기에, 맵 선택권을 줬는데.
이창현은 마치 그걸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이번에 실험하려는 전술의 완벽한 대응책을 준비해 온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아파트단지가 빽빽한 시가지 맵. 그것도 저 한 가운데 자리 잡을 수가 있겠는가?
‘후우…….’
이걸 사전에 계획한대로 계속 해야 할지, 아니면 상대가 너무 준비를 잘 해 온 것 같아 틀어야 할지 고민하던 도중.
강준혁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오늘 연습해 온 전략은, 무조건 한 번 실전 비슷하게 해봐야 해.”
“그걸 이 맵에서 하자구요?”
“그래. 제헌아.”
“네.”
강준혁에게서 이름을 불린 오제헌. 한국 헌터스 리그에는 정말 몇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
그가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마치 그 움직임에 응답하듯,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머진 돌입하자.”
“네.”
강준혁은 어째, 첫 단추를 끼우는 것부터, 이번 경기는 그 녀석의 손에 놀아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반.
설마 이것까지 다 생각해서 고려한 거겠어 하는 생각 반으로.
머리가 뒤죽박죽한 상태로, 팀을 상대에게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