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영입 0순위
1부의 룰로 새롭게 느끼게 될 고통에 대한 대비 연습은 사실 생각보다 그리 간단히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보통 일반적으로 2부에서 1부로 올라가는 선수들은, 해당 팀의 1부 선수들에게 조언을 듣거나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 팀 입장에서는 나와 이근택한테 배운 류재준을 제외한 전부가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판이니…….’
보다 과격하고, 확실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대가리!”
“컥!”
약간 야만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
‘폭력’이라는 확실한 피드백이 있는 방식인 만큼, 이것만큼 빨리 사람을 적응시킬 수 있는 게 있을까?
물론 공격을 보고 피하는 그 연습 이후로도 계속 다양한 연습이 이어졌다.
“공격을 보는 연습은 뭐…… 그래. 일단은 넘어가고. 너희가 이번에 주로 연습해야 할 건…… ‘맞는 연습’이랑, ‘잘 맞는 연습’이랑, ‘피하는 연습’이다.”
착실하게 준비하고,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을 전수해 줬지만, 생각보다 반응은 영 별로였다.
‘훈련 네이밍 센스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한 명.
다행히 잘 알아듣고, 공감해 주는 녀석도 있었다.
“창현이의 방법이 지나치게 단순 무식해 보이고, 의미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일 테니까.”
나름 이근택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경험자 류재준이 두둔해 준 것이었다.
“좋아 좋아. 그게 맞지. 일단 ‘맞는 연습‘은, 그래. 1부에서 경기를 하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 생기더라도, 악으로 깡으로 평소처럼 경기할 수 있도록 맷집을 기르는 거다.”
“뭐어??”
목소리를 비롯한 온 몸의 행동으로 어이없음을 표출하는 김도준. 그리고 철저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윤한결도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이게 모두에게 맞는 방법은 아니지.”
“오…… 그럼 역시?”
“생각해 보면, 애초에 맞으면 안 되는 포지션도 있지. 예를 들면 지금 저기에 서서 딴청부리고 있는 이연주.”
“…….”
“반면, 피하는 게 아니라 대신 ‘잘 맞는’연습이 필요한 전위 포지션도 있다. 예를 들면 이길한처럼.”
이쯤 이야기하니, 다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제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래.
‘맞는 연습’은 예기치 못한 타격으로 인해 제대로 플레이 못할 것을 대비하는 것이기에. 모든 선수 공용의 연습.
하지만, ‘잘 맞는 연습’이나 ‘피하는 연습’은 이제 포지션이나 자기가 해야 하는 플레이에 따라 갈린다는 것이었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고, 이 외에는 이거에 대한 심화사항일 뿐이야.”
알려 줄 것은 이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스스로 부딪히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깨달아야 하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마지막에는 ‘이상동몽의 지휘관’으로 개인별로 피드백을 해 주겠지만…….’
사실 ‘피하는 연습’이나 ‘잘 맞는 연습’같은 경우 2부나 3부에서도 했었던 것들이었다.
1부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확실하게 커진 것 뿐.
그것을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면서, 조금은 더 기다릴 때이리라.
***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매일같이 열심히 연습해서일까, 아니면 평온한 일상이 매일 비슷했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럼에도 착실하게 들려오는 소식들이 있었다.
바로 1부 포스트시즌 소식이었다.
“와…… 이번 경기 봤어? 어차피 우승은 LTD 하더니 진짜 LTD가 1등을 해 버리네.”
“새로운 일도 아닌데 뭘 그런 걸로 놀라.”
“으으…… 이전까지는 별 생각 없이 볼 수 있었는데. 1부 연습 해보고 나니 마냥 재밌게만은 못 보겠네.”
“왜?”
“한 방 한 방 주고 받을 때마다 아플 거 아냐.”
2부 리그 일정을 일찍이 끝내고서 연습하고 있던 사이에, LTD도 슬슬 1부 포스트시즌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결과는 1부에서 1위. 역시나 우승 팀이었다.
‘이제는 진짜 LTD와의 연습경기가 코앞이네…….’
솔직히 말해서 1부에 대한 대비가 완전히 끝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준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항상 우리가 완전히 준비되는 시점까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연습경기를 LTD랑 잡은 것도 있긴 하지.’
어중간한 다른 1부 팀을 만나서 연습경기를 할 바에, 확실하게 차이를 느끼고 나서 가야할 방향을 찾는 것이 좋을 테니까.
“그래도 두근거리진 않냐? 엊그제까지 3부에서 무승 팀이었었는데, LTD. 그것도 1부 팀이랑 연습경기를 잡았는데. 뭐 새로운 감회 같은 거 없어? 이연주. 이길한. 뭐 없어?”
“허…… 비록 연습경기이긴 해도 당연히 느낌 새롭지. 창현아 넌 모를 거다. 이게 무슨 감각인지. 속에서 끓…….”
“난 모르니까 그럼 길한 씨는 그쯤하시고. 연주는?”
“솔직히…… 아직 크게 실감은 안 나지만…….”
하긴. 어쨌거나, LTD와의 경기도 1부 승강전을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1부에 승급하기 전까지는 크게 실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팀원도…… 있으니까. 잘 해볼래.”
끝내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걸까. 지금은 이런 걸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LTD도 슬슬 연습경기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연합 훈련소로 가 볼까?”
회귀하고 나서 목표로 삼은 몇 가지.
다시 한국리그 정상에 서는 것. 거기서 내 팀을 꾸려, 국제리그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이윽고는 마지막, 창설을 보지 못했던 올림픽에서 결실을 맺는 것.
아직 그 첫 단추도 꿰지 못했다.
하지만, 현 한국 리그의 정상. LTD를 마주할 최소한의 자격을 다시금 갖췄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
“총감독님. 그런데 이런 시점에 왜 갑자기 연습경기를 잡게 되신 겁니까?”
“아. 오늘 있는 그 경기 말한 건가. 그거 준혁이가 물어 와서 성사된 걸걸?”
“팀을 운영하고 스케줄을 짜는데 일개 한 선수가 영향을 끼치도록 내버려두시다뇨. 항상 생각하지만 총감독님은 너무 무르십니다.”
“그런가? 그래도 준혁이 그 녀석. 평소엔 부탁 같은 거 안 하는 녀석이니, 한 번쯤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게다가…….”
“뭐가 더 있으십니까?”
“이번에 성사된 연습게임 말이야. 생각보다 우리 팀이랑 인연이 있는 애들이란 말이지……PER이라고. 전에 2분가 3부에 투명전술로 화제였던 애들 있지?”
“아…… 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형근은 3부 LTD의 감독이었기에 더더욱 잘 알고 있었다.
무승 팀이었던 한 팀이 구단주, 감독이 바뀌고 나서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여 주며 2부로. 그리고 이젠 1부를 노리고 있는 팀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것을.
‘PER…….’
“그 땐 별 생각 없이 재미난 전술이라 생각해서 한 번 빌려 썼는데…… 뭐, 그때 그 전술이 없어도 이겼었겠지만. 그래도 빌린 값 정도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죠.”
그렇게 3부 LTD 이형근 감독과 LTD의 1부를 맡고 있는 총감독이 대화를 하던 도중.
누군가가 감독실로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빠르게 들어왔다.
“감독실에 노크도 없이 누가 함부로…….”
“어어. 준혁이. 왔어?”
이형근의 말이 무색하게, 총감독은 따듯하게 강준혁을 맞았다.
강준혁은 이형근의 그런 태도에 머쓱했는지, 약간은 불편한 미소를 짓고는 목례했다.
“그래서, 너 답지 않게 그렇게 급하게 무슨 일이야?”
“오늘 경기 말입니다만.”
“어. 그거 네가 하자고 했었잖아. 뭐, 일정 변경이라도 생긴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아마 감독님도 한 번 직접 보시는 게 어떨까 해서 말입니다.”
“내가?”
총감독은 꽤나 의외였는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아주 중요한 경기가 아니라면 총감독은 리그 경기도 거의 보러 가지 않았으니.
총감독 입장에서는 이런 강준혁의 요청이 꽤나 의외였으리라.
“녀석. 1부 결승전 경기를 하러 갈 때도 그런 말은 안하더니만. 이런 자잘한 연습경기에 그런 말을 하다니……뭐가 기대되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영입 0순위입니다. 영입 0순위.”
강준혁이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영입 0순위. 다음 시즌이 시작되면 반드시 영입해야 하는 선수라는 의미였다.
“한국 리그는 이제 질려서 다음 시즌에는 외국으로 나간다고 노래를 부를 때는 언제고…… 영입해 봤자, 네가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그 녀석을 데리고 오면, 제가 여기 계속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허허…… 그 정도란 말이야?”
이형근은 순간적으로 총감독과 강준혁의 대화에 떠오르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PER이라는 그 팀. 그 팀에서 영입 0순위. 에이스라고 할 만한 녀석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기가 전에 보았던 그 녀석은 뛰어나긴 했어도 1부 LTD에서 영입 0순위로 꼽는다?
그건 전혀 말이 안 되었다.
그랬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 강준혁 선수. 그게 누굽니까. PER이라고 해봤자, 이제 겨우 1부 승강전에 도전하는 팀 아닙니까?”
“아. 그렇긴 한데…… 저번에 제가 파티에서 점찍었던 녀석 있지 않습니까.”
“그, 창현인가 뭔가 하는 친구 말이냐?”
“네. 이번에 우연하게 연습장면을 봤는데 아주 놀랍더군요. 정말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총감독은 그 말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욘석. 친한 동생이라 챙겨 주고 싶다 뭐 그런거냐? 내가 경기를 다 챙겨보지 않는 것 같아도, 선수 상세나 프로필은 달달 외우고 있다 임마. 꽤나 뛰어나긴 해도, 다른 팀이면 몰라 우리 1부 LTD에선 벤치멤버정도 밖에 안될 텐데.”
총감독은 악의를 담지 않고, 순수하게 강준혁에게 말했다.
이형근이 보기에도 지금 이 대화에서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 건 강준혁이었다.
그런데도 강준혁은 꿋꿋하게 말하곤 가버 렸다.
“그건 보시면 아시는 일이겠죠. 어쨌든, 이번 경기. 보러 오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
“녀석 참.”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총감독과는 달리, 이형근의 눈에는 강준혁이 그리 좋게 보이진 않았다.
뛰어난 선수이기는 하나, 대체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뭘 믿고 저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인지.
거기다가 영입 0순위 이야기도 그랬지만, 총감독에게 직접 보러 오라고 말한 것의 속뜻은 영입하는데 돈이 많이 들거나, 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PER의 그 녀석이 영입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정도로 가치를 계산하지 못하고 망나니처럼 저리 들이댈 줄이야.
“어린 녀석들이 참 겁도 없군요. 총감독님을 이리 불렀다, 저리 불렀다. 자기 좋을 대로 불러다 쓰니. 원 참……위계질서가……”
“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뭐……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보러 가야겠군요. 조금 기대가 되긴 하지만…… 준혁이가 좋아하는 동생이라 해서 호의적으로 봐주지는 않고.
한 번 봐 보도록 하죠. 냉정한 전문가의 시선으로.”
LTD의 총 감독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