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상흔
이창현이 총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 선언하고, 이근택이 그 탄환을 쳐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이창현의 무지막지한 탄환을 이근택이 창으로 하나, 둘, 쳐낼 때마다 대기실에선 탄성이 울려 퍼졌다.
“오오……!”
“역시나 상당하신걸…….”
팅! 팅! ㅡ 팅!
휘두른 창의 궤적이 잔상처럼 보이고, 탄을 맞춘 것인지 불똥 튀는 것만이 보일 뿐.
하지만 그런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적으로 바뀌었다.
피슉 ㅡ.
이창현의 마지막 탄환이, 이근택의 한쪽 눈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저거…… 맞춘 거야?”
“와…… 근데 애초에 거의 보이지도 않아서 다 쳐내는 게 말이 안 되긴 했어.”
“그럼 창현이의 승리인가…….”
‘이거이거…… 파티 때 했던 말처럼, 녀석이 진짜 올라올지도 모르겠는걸. 개인의 무력만 보면, 1부 상위권에서도 활약할 것 같은 수준인데.’
그 경기를 바라보는 강준혁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뛰어난 녀석이고, 그런 건 알았지만 솔직히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샌가, 녀석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벌써 턱 밑까지 쫓아와 있었다.
전에 보았을 때와는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지. 경기가 끝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이근택 회장님은…….’
“어…… 어? 이근택 회장님 아직 움직이는데? 게다가 창현이를 오른손으로 붙잡았잖아?”
“창 닿겠다. 닿겠어!!”
그럼 그렇지. 1세대 헌터로 갈고 닦아 온 헌터들은 후대의 헌터들이랑 그 집념이나 근성이 남다르니까.
‘역시 이근택 회장님인가…… 이창현으로서는 아깝게 되었군. 녀석의 완력으로는 이근택 회장님에게 벗어날 수 없다.’
설령 남은 한 손으로 권총을 난사한다고 해도, 아마 이근택 회장은 저 손을 놓지 않겠지.
끝이다.
그래도 저 정도면 충분히, 과히 넘칠 정도로 잘 싸웠지.
그 증거로, 한국 헌터스 리그의 대표선수인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으니까.
강준혁은 기분 좋게 싱긋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 창현이가 뭔가 던졌는데?”
“이미 늦었어. 마나봄버 같은 걸 던져도 무승부가 한계일 거야. 이근택 회장님이 괴물같이 버티고 있는 걸 보면, 그마저도 안 될지도 모르고.”
“아니,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
이창현이 던진 것은 다름 아닌 ‘에어비트’였다. 그것도 평소와 달리, 바닥에 깔아 그 반동으로 기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스듬하게, 이근택의 옆에 에어비트를 던졌을 뿐이었다.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행동.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천지차이였다.
‘저런 방법이…….’
에어비트의 반동으로 몸이 돌아가면서, 이근택이 던진 창에 맞은 것은 이창현이 아니라, 이근택이 되었으니까.
실력. 선천적 능력.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순간적인 판단 능력에서 드러나는 센스.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경기는 끝났다.
경기의 끝과 동시에, 통증이 잦아들었다. 그리고는 이제 자동으로 대기실로 소환되었다.
옆에는, 자신도 방금 소환된 것인지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이근택이 있었다.
“진짜로 나를 이겨 버릴 줄이야.”
“유감이신가요?”
“그럴 리가. 오히려 아주 기쁘구나. 헌터 협회장이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이렇게 박 터지게 싸운 것이 대체 언제인지…… 새삼스럽게도 옛 생각이 나는구나.”
“옛 생각이요? 오디션 프로그램 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과거, 동료들과 함께 탑을 탐험한 시절을 말하는 게다.”
지난 삶. 회귀 전에는 이근택과 그리 인간적으로 접점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1세대 헌터가 탑을 오르던 시절의 이야기라니.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무슨 일이긴. 지금처럼 박 터지게 싸움이나 했지.”
“크하핫. 그 때도 다른 헌터 중에 회장님을 꽤나 골치 아프게 만든 사람이 있었나 봐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이근택이 잠시간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인지, 감상에 빠져 있었다.
“뭐,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만약 네가 네 말대로 국제리그에 가게 된다면 조금쯤은 말해 주마.
탑에서 일어나는 일들, 있었던 일들. 그리고 탑에 대해 관심이 있는 헌터라면 누구나 흥미로워 할 이야기들을 말이야.”
‘지금은 아직 이야기해 주기 이르다는 건가…….’
확실히 이근택은 무용담이 잔뜩 있을 것 같아 보이긴 했다.
아마 탑의 숨겨진 비밀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더 깊숙이 알고 있기도 할 테고.
이번 기회에 듣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도 잠시, 이근택이 나를 재촉했다.
“그럼 이제 나가자꾸나. 다들 기다릴 테니.”
***
바깥에 나가자, 의외의 얼굴들이 보여 조금 놀라웠다.
불시에 즉흥적으로 벌어진 연습경기인데, 조연화는 그렇다 치고 강준혁 선수가 있었을 줄이야.
강준혁 선수가 나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꽤 하던데?”
“이 정도면, 그래도 1부 LTD랑 연습경기 해 볼 만하지 않았나요?”
“이정도로는 아직 이르지.”
강준혁이 씨익 웃었다.
‘나도 1부 리그 팀들 수준 알거 다 아는데 그렇게 말하고 말이야.’
역시 조금 얄미운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야 그렇다 치고 아직 팀원들은 그 수준을 아직 많이 따라오지 못한 건 사실이기도 하고.
“나는 그냥…… 훈련소를 둘러다보다 보이길래.”
“재준이한테 들었더니 심상치 않은데, 진짜로 1부 올라오는 건가? 하면서 온 거 아니구요?”
조연화는 꽤나 오랜만에 본 것이었기에 약간의 장난기가 들었다.
“그래, 그런 것 같기도. 쟤 너 경기 보면서 입을 못 다물더라.”
류재준이 이때다 싶어서 달려드는 것이 둘은 정말 오랜 시간을 보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처음 보여 준 능력들도 꽤나 많은 것 같은데. ‘가능성을 닫는 함’으로 새롭게 얻은 능력들인 거야?”
엄밀하게 말하면, 아예 새롭게 얻은 능력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새로운 효과가 생긴 건 맞지만, 사실상 [만개 - 재능개화]로 이미 얻은 능력이 상위버전으로 바뀐 것뿐이니까.’
하지만 그걸 그대로 말할 수도 없고, 이해시키기 어려울 텐데, 괜히 그럴 필요는 없으리라.
“그렇다고 봐야겠지. 나는 내 능력에 대해 꽤 감이 좋은 편이라.
너네도 아마, 몸이 조금 더 가볍다던지, 평소엔 하기 어려웠던 기술이 조금 더 수월해졌다던지…… 아니면 아예 사용방법을 모를 뿐 새로운 능력이 생겼을 수도 있을 거야.”
윤한결만 해도, 평소엔 엄두도 못 내던 8개의 검을 제어해냈으니까.
류재준은 그 말을 듣고, 더 성장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에 기쁜 듯 두 손을 꽉 쥐었다.
반면…… 팀 PER의 다른 팀원들은 분위기가 썩 활기차진 않았다.
‘아마 경기에서 느꼈을 통증 때문이겠지. 이근택과 조준호에게서 제대로 훈련받았을 류재준과 다른 녀석들의 차이인가……’.
나도 처음 1부에는 적응할 때 꽤나 고생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아예 모든 걸 피해 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고, 플레이 스타일도 회피기동이 특출나게 되는 계기가 되긴 했는데……
결국 결론은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일종의 데스매치나 다름없는 이 헌터스 리그에서, 상대를 쓰러뜨리려고 하면서 자신만 상처 하나 없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통증을 덜 느낄 수 있는, 덜 맞을 수 있는 포지셔닝이나 플레이는 존재할 수 있지만.
결국은 그들도 모두 통증에 적응해야만 한다.
어찌되었건,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도록 할까.
“이근택 회장님. 선수들이 1부 룰로 경기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다들 많이 피로해진 것 같네요. 그럼 오늘은 먼저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준혁 선수.
그리고…… 조연화 선수…… 는 재준이랑 한 번 놀러오기로 했었는데, 재준이가 혼자 팀에 들어와 버렸지만 시간 되면 다음에 한 번 놀러와요. 재밌는 거 보여 줄 테니까.”
‘가능성을 닫는 함’에 대해 아직 듣지 못해서였을까, 어벙하게 서 있는 강준혁 선수와 조연화를 뒤로하고.
피로해 보이는 선수들을 데리고 홈으로 향했다.
***
대부분의 1부 팀은 2부나 3부와는 다르게 거의 열댓 명 이상의 선수진을 꾸리고 있는 팀이 대다수였다.
아무리 경기 중에만 느끼고, 경기가 끝나면 온전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다지만……
매 번 경기를 할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건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있어 극심한 피로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였으니까.
즉, 1부 LTD와의 연습경기. 더 나아가서 1부 승강전을 준비하는 PER이 가진 과제는 두 가지였다.
1부 룰로 인해 경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익숙해지고, 대응하는 능력을 기를 것.
그리고 이번 이근택 회장에게서 받은 일종의 선물. ‘가능성을 닫는 함’으로 깨워진 새로운 능력을 찾고 익숙해지는 것.
특히 후자의 경우, 내 능력을 이용하면 수월하게 도와주기 좋은 부분이 많았다.
[꿰뚫는 눈]으로 선수들의 잠재능력과, 그 개화 방법을 고려하면 되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근택과의 연습을 하고 그 다음 날. 팀원끼리 차후 훈련 방법과 일정에 대해 미팅하던 도중 발견할 수 있었다.
원래도 좋은 능력인 [요새화 : A+]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김유현에게 어느 샌가 새로운 능력이 생겨났던 것이었다.
[비폭력지대 생성 : ?] : [요새화]가 생성된 지역 안에 서로에게 타격을 가할 수 없는 구역을 생성합니다.
‘랭크가…… 정해지지 않은 건가?’
[꿰뚫는 눈]으로 보면 보통 뚜렷하게 그 랭크가 드러나는데,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랬기에 당황을 느낄 수밖에.
사실 랭크도 랭크인데, 저런 능력 자체도 굉장히 특별하고 특이한 능력이기도 했다.
[요새화]만 하더라도 다소 약하다고는 하나, 마치 [마나 전개]처럼 광범위하고 넓은 범위에 강력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능력인데……
저 [비폭력지대 생성]은 그것에 한 술 더 뜨고 있었다.
‘……확실히 특별한 만큼, 가치가 어마어마하겠는걸.’
저걸로 인해 팀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날 미팅은, 자연스럽게 김유현에게 제의를 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한 명씩 같이 나랑 1부 대비 연습을 해 볼 건데…… 첫 번째로 음. 유현아. 지금 바로 같이 연습실 들어가 볼래?”
그런데 들려온 대답은 조금 의외의 것이었다.
“그…… 저 지금까지 말씀을 못 드렸는데.”
“…….”
“1부 승강전 말인데요. 그 경기는 저 대신 다른 선수가 나가면 안 되나요? 저번 PSG전처럼…….”
현재 PER의 팀 인원은 총 8명. 출전할 수 있는 건 7명뿐이었기에, 안 될 건 없긴 했지만……
솔직히 강력한 능력을 가진 김유현을 뺀다는 건 특별한 이유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하려던 중.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처음 김유현을 뽑을 때 프로필에 써져 있었던 정보.
2부 베테랑. 1부의 제의를 여럿 받았지만, 2부에서만 계속 활동함. 연봉을 중요시하는 선수.
김유현이 왜 1부 승강전을 기피하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