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총력전
마나전개. 지금 당장 한국에서 몇 명 안 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어떤 경지. 혹은 개념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리라.
내 경우엔 회귀 전, 만개를 개방했을 때 [전설의 저격수] 능력이 극대화되는 방식으로 사용했는데…… 이근택의 경우엔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창을 흩뿌린다라…… 마나를 전개한 영역에서 창을 잡지 않고 자유자재로 다루기라도 하는 건가?’
찰나의 순간,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예측일 뿐, 실제로는 한 번 받아 봐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역시 1세대 최고의 헌터 중 하나라고 불렸던 이근택인가…….’
마나 전개는 회귀 전, 시간이 지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늘었어도 극소수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방대한 마나량이 필요했으며, 그와 더불어서 극도로 세심한 수준의 마나 컨트롤이 가능한 각성자만이 가능한 기술이었으므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과 천지개벽 수준으로 차이가 나서, 모두가 사용하길 원했음에도 그랬다.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이근택이 등에 매고 있던 창을 사방에 흩뿌려 던졌다.
그리고는 에어앵커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나를 향해 창을 던져 왔다.
처음에는 손에 들고 있었던 것 하나.
그리고는 바로 옆자리에 꽂혀 있던 다른 창 하나.
마치 춤사위를 보는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등 뒤에 매고 있던 창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꽂혀 있는 창을 뽑아 던졌다.
그럼으로써, 빠르게 움직이는 속도를 유지하고 몸의 회전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의 탄성을 곳곳에 널브러져 꽂혀 있는 창으로 옮겨 담는다.
마치 활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수 개의 창이 빠르게 쏘아져 왔다.
놀라운 점은 이근택이 던진 창 하나하나가 굉장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왔다는 점이었다.
‘피한 듯싶었는데, 이렇게까지 휘어져 온다고?’
아니. 이건 ‘잘 던지는 것’만으로는 분명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에어앵커로 빠르게 회피기동을 하고 있는데, 마치 자석이라도 붙여 둔 듯, 창들이 곡선 궤도를 그리며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근택이 퍼뜨린 마나입자로 만들어진 영역. 이근택이 펼쳐낸 마나전개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껄껄껄. 이걸로 이제 끝이구나. 나를 뒷방 늙은이 취급 하다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
창을 반쯤 던진 이근택이 이겼다고 확신한 것인지, 바닥에서 나를 보며 손사래를 쳤다.
‘이 영감이…….’
날아오는 창의 강렬함을 보면, 당연히 마나실드로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따돌리는 것도 불가능…… 그렇다면.
나는 에어대시로 최대한 빠르게 속도 차이를 벌려 거대한 나무의 뒤로 숨었다.
“껄. 녀석이 나름 머리를 썼구나. 하지만…….”
콰콰콰ㅡ 콰직!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나무였지만, 그 모습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게, 이근택의 창들은 나무를 꿰뚫었다.
‘……그래도 회전은 많이 죽였다.’
물론 창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오고 있긴 했지만, 더 이상 피하기만 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계속 따라오니까, 한 번 멈추는 수밖에.’
[마도공학 무기변환]으로 총을 방패로 변형시킨 후, 그것도 모자라 마나를 끌어올려 에테르로 방패의 전방을 감쌌다.
그 직후, 나무를 꿰뚫은 창이 만들어 낸 방패와 맞닿았다.
끽 ㅡ. 끼기긱 기기기기긱 ㅡ.
방패를 쥔 손으로 강렬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뿐만일까, 어느덧 방패를 변형시켜, 찌그러진 철판처럼 뾰족하게 내 쪽으로 튀어나오던 찰나.
‘설마…… 뚫리나?’
다행히도 창은 거기서 멈췄다. 어째, 창을 하나만 더 던졌더라도 뚫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렇게 한 번 받아 내고 다시 공세로 변환하려던 순간.
푸슉 ㅡ.
전혀 예상치 못한 궤도로 날아온, 숨겨져 있던 창 하나가 어느 샌가 어깨 윗 부분을 스쳐 꿰뚫고 지나가 있었다.
‘이런……!’
“다 막았다고 생각했구나. 끌끌끌…… 아쉽게도 오늘은 제대로 하기로 했으니 말이야. 창을 막는 건 놀라웠지만, 그걸 막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 그걸 가볍게 막아 내지 못한다면, 상대는 또 다음 대책을 사용할 테니까 말이지. 수업이라고 생각하거라.”
막아 냈다고 생각한 순간, 그 허점을 노려 이근택이 아무래도 사각에서 창을 날려 조종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어떻게든 마지막 순간에 조금이라도 몸을 비틀어 직격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1부 룰로 붙고 있을 때 이런 일이…….’
거의 승부의 양상이 뒤집히지 않는 1부의 룰을 따르는 경기를 할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니.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
이창현이 창에게 닿기 전, 간발의 차이로 무기를 방패로 변환했을 때.
그리고 이창현의 모든 시선이 창으로 쏠려 있을 때.
‘이런 때야 말로 진짜 제대로 노리기 좋은 순간이거늘…… 아직도 수행이 부족하구나.’
아니, 오히려 전심전력으로 막지 않으면 막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으리라.
어찌되었든 그것은 결국 실력부족으로 인한 일이니, 똑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1부에 올라가기 전 예방접종을 시켜 줬다고 생각해라. 너무 원망하지는 말고. 끌끌끌.’
이근택은 사각에서 이창현을 향해 창을 날렸다.
방패를 피해 갈 수 있는 궤도로.
‘그나저나 그 창을 막아 내다니.’
이근택으로서도 꽤나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가 지금 만들어 낸 이 영역의 ‘마나전개’는 창의 조종을 자유롭게 해 줄 뿐 아니라, 굉장한 회전력을 더해 주고 있었으니까.
그 파괴력은 마나실드 따위는 종이짝처럼 찢어 버릴 수준이었는데……
그걸 막아 낸다?
‘일반적인 방패는 아닌가 보군…….’
나름의 보람이 느껴졌다. 하기야, 몇 년 만의 ‘마나 전개’인데 이렇게 빨리 끝나면 이근택으로서도 재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놀아줄 생각도 없었다.
막아 낸 건 막아 낸 것. 하지만, 방금 다시 쏘아 낸 그 창이 분명하게 이창현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원래 완전 직격타를 노리진 않아서였을까. 팔 하나 정도만 못 쓰게 하려고 했는데, 녀석이 몸을 비틀어 피해 어깨가 다치는 것에 그쳤다.
반사신경이랑 동체시력. 이거 하나는 각성자중에서도 확실히 혀를 내두를 만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부의 리스크. 통증…… 1부는 그 존재로 인해 한 번 공격을 허용하면 뒤집기가 쉽지 않지……‘
한 번 맞은 순간, 두 번은 쉽다. 상처를 입은 순간, 전력은 반토막이 나고 팽팽했던 전투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아마 1부를 처음 접하는 이창현 녀석은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으리라.
지금껏 이정도로 팽팽하거나 자신을 앞서는 상대를, 그것도 1부 룰로 상대해 본 적은 없을 테니까.
“노인네에게 매운 맛을 보니 어떠더냐, 창현아.”
“이쑤시개로 잇몸을 잘못 찌른 것 보다는 아프군요.”
이근택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사실상 처음 당해 보는 이런 상황에도 저런 농담을 할 수가 있다니.
과연, 일류의 재목을 가지고 있는 걸까.
“1부의 경기는 지금껏 해 왔던 경기들과 다르게, 이를 악물고 달려든다고 해서 지던 경기를 뒤집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어때, 직접 느껴 보니 알겠지?”
상처로 인한 고통은 몸을 정상 상황처럼 다룰 수 없도록 만든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가지고, 싸운다면 당연히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
지금의 이창현만 봐도 그렇다.
‘겨우 창에 스친 수준’ 이었지만, 어깨는 이미 피칠갑이 되어 있었고 저 상태라면 왼팔은 전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겠지……
한 손으로 무기를 든다고 치면, 남은 한 손으로 에어앵커로 공중 기동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남은 한 손이 없다.
‘그렇다고 나랑 바닥에서 뒹군다면 결과는 뻔하겠지…….’
결과는 이미 났다.
이창현이 마지막 창을 포착하지 못하고 스친 순간, 끝나버린 것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아마 많이 피곤하겠지…… 더 피곤하지 않게 이 노인네가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해 주마. 어차피 에어앵커도 못 쓸 텐데.”
손을 까딱이며 한 마디를 더했다.
“오거라.”
……그런데 뻘쭘하게도, 이창현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느끼는 그 감각에 너무 놀랐던 것일까? 하지만 그 생각이 우스울 정도로 바보 같았다는 건 바로 다음 순간에 알 수 있었다.
이창현은 마치 어깨를 다친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왼 팔로 에어앵커를 다루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
‘허어…….’
저건 단순히 고통을 참고 움직인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1부 리그보다 더 리얼한 전장. 탑에서 싸워 왔던 이근택이라면 알았다.
아무리 노련한, 고통을 버티는 데 익숙한 헌터라도 저런 부상으로 저럴 순 없다는 것을.
끽해야 축 늘어진 팔에 에어앵커를 잇는 정도나 가능하지, 저런 것은 ㅡ.
“피곤하지 않게 끝내주신다뇨, 저는 젊어서 그런 걸 모르겠는데. 회장님은 역시 연세가 있으셔서 벌써 피곤하신가 봅니다? 그럼 역시 제가 정리해 드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창현이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으며, 공중을 활보했다.
다시금 움직임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였다.
‘허허…… 저 녀석.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그거와 관련된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말이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물론, 그러다 어느 순간 진짜로 몸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움직이지 않게 망가져 버리겠지만.
적어도 1부 리그에서는 최고의 재능 중 하나이리라.
“건방진 녀석.”
아무래도 진짜로 팔 하나를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은, 멈추질 않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황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럼 다시 창을 던지면 되는 일……
‘…….’
타타타타타타탕!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창을 던지지 못하도록 공중에서 총을 난사하며 견제를 해 왔다.
간혹 강력한 탄환이 섞여 있었지만, 이미 이 영역에는 이근택의 마나가 전개되어 있는 상황.
샥 ㅡ.
그런 탄환을 창으로 베어 버리는 기예조차, 간단한 일이니까.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는 회장님한테 안 통한다는 거군요…….”
“이제야 깨달았느냐.”
그 순간, 이창현은 마지막으로 화력을 몰아서 결판을 내려는 듯. 마구 외치기 시작했다.
“저는 이번에 회장님의 [창], [방패], [머리], [어깨], [왼팔], [오른팔], [왼쪽 다리], [오른쪽 다리]를 각 탄환으로 맞출 겁니다.”
그 말에 호응한 듯, 갑작스레 마나가 이창현에게 모여들었다.
‘어느 곳을 맞출지, 이야기하는 게 능력의 트리거인가……’
이쯤 되니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머리, 방패를 맞춘다고 했던 때에 왜 특별할 정도로 화력이 강했는지.
“오냐. 그럼 나는 너의 심장에, 이 바닥에 남은 모든 창을 박아 주마.”
막는 방법도 있겠지만, 녀석이 걸어 온 싸움. 이근택은 그 도전이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