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마나전개
이근택. 싸움의 신이라고 불리웠던 과거가 있는 1세대 헌터.
사실 명성은 자자하지만, 그 위용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지 오래였다. 아니, 오히려 헌터들을 제외하면 저평가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이근택이 활동하던 시기. 그러니까, 진짜로 탑을 탐험해 개척해 나가던 시기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그러니,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지금 1부 리그 헌터들 거기에 가져다 놔도 다 할 수 있는 거 아님? ㅋㅋ’ 같은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뭐…… 그렇다고는 해도, 이전 헌터계에서 유명했던 그 본신의 전력을 낼 수 없는 건 사실이긴 하지…….’
조연화는 새삼 씁쓸했다. 몇몇 PER의 선수들이 달려드는 가운데, 이근택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기기는 했으나, 이전만큼 특별함은 없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이근택이 보여 주는 정정한 모습에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다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옆에 누군가가 걸어오더니 혼잣말을 내뱉었다.
“오, 웬일이래? 이근택 회장님을 여기서 보고 말이야.”
조연화가 고개를 돌리니, 옆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 강준혁이 있었다.
“저기, 너도 1부 선수였지?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
강준혁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왜 하필…… 여기에 저 녀석이…….’
조연화는 저절로 찡그려지는 표정을 가까스로 참았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근택 회장님이 뭐 특별한 거 보여 준 거 없어? 근 몇 년 동안, 제대로 힘을 발휘하신 적이 없었잖아.”
‘……역시 강준혁도 관심 있는 게 저 부분인가.’
역시 헌터들이 하는 생각은 다 똑같지 뭐.
그런 생각을 뒤로 해두고 적당히 대답했다.
“네. 뭐, 특별할 것까지는 전혀…… 그런데, 여긴 2부 PER에서 빌린 연습 공간인데. 저번 파티 때 돌았던 소문대로 이창현 선수랑 각별하신가 봐요?”
“아…… 뭐, 그야 재미있는 동생이지.”
강준혁이 약간 곤란한듯, 적당히 말하는 게 더는 말하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뭐야, 저번 파티 땐 완전 친한 듯 뭔가 하더만. 실제론 그렇게 막 친하지도 않은가?
어찌되었든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긴 했다.
“이근택 회장님은 모든 헌터들의 관심을 받고 계시긴 하죠. 그런데 이번 경기만은, 저 선수를 지켜보시는 게 더 흥미로울걸요?”
“이창현? 걔는 이미 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이근택 회장님의 유망주. 총을 다루며, 2부 경기에서도 꽤나 흥미로운 여러 면모를 보여 주긴 했는데. 1부에서까지 파괴적일지는 잘 모르겠네.”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조연화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느샌가 이창현이 이근택과 조우하고 있었다.
이 연습게임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될 차례였다.
***
“이제야 온 게냐. 거의 다 온 것 같더만, 갑자기 멈춰서고 말이야.”
“오는 길에 약간 사고가 있어서요.”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전력을 못 낸다는 핑계를 미리 대는 건 아니겠지?”
이근택이 기분이 좋은 듯 껄껄 웃었다.
“그럴리가요. 기왕 나오신거, 힘 좀 써서 다시 묻어드리겠습니다. 나이도 드셨는데, 편한 곳에 앉아 계셔야죠.”
“크핫. 역시 제정신이 아닌 놈이구나.”
그냥 나이먹은 할배로 봤는데, 도발을 하는 솜씨가 예사가 아니다.
하지만, 입털기 하면 역시 나 아니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꽤나 이전 싸움에서 전력을 비축해 두었기에, 이근택과의 싸움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했다.
“새삼 이렇게 너랑 마주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구나. 이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신들의 전장’맵에서 또 이렇게 대면했던가.”
“나이가 드시니 옛날 생각이 많아지시나 보군요. 아니면, 저희 팀원 몇명 쓰러뜨린다고 체력을 많이 소모하셨나 봅니다?”
막상 이근택을 앞에 두니, 넋두리도 듣기 싫을 만큼 몸이 근질근질했다.
아직 써보지 않은 스킬들이 아직 잔뜩 있었으므로.
또 그것들을 새롭게 조합해서 쓰면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도.
전력을 내서 싸울 수 있는 상대는 팀에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도발하는 솜씨 하나만큼은 예술이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칭찬 아니다. 이번엔 저번처럼 널 도와줄 거인 같은 기믹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데, 자신이 있는가 보구나.”
“그야,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근택으로부터 강렬한 마나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
“그래, 그럼 한 번 시험해 보마.”
지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사실 이근택이 직접 상대한 건 내가 아니라, 그 맵 속의 기믹. 무지막지한 크기의 거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이근택이 방해 없이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니, 그 중압감의 차원이 달랐다.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크기, 그리고 일선에서 은퇴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무지막지하게 단련된 저 근육.
쉽게 상대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까닭에, 바로 [꿰뚫는 눈]을 사용한 찰나.
갑작스레 내 몸을 꿰뚫는 궤적이 보여졌다.
그 순간 해야 할 일은 분명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평소랑 다르게 ‘마나봄버’대신 ‘에어대시’를 챙겨오길 잘했군…….’
찰나의 순간 에어대시를 이용해, [꿰뚫는 눈]으로 간파했던 궤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실제로 정확히 그 궤도로 이근택의 거대한 창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창이라기보다는, 그래. 포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사용한 것은 장병기이면서도, 결과는 장병기가 아닌 그런. 헌터의 진수를 보여 주는 일격.
“호오…… 이번엔 약간 진심을 담아 던졌는데 잘도 피했구나.”
이근택으로서도 이렇게 깔끔하게 피할지는 예상 못했는지 눈에 이채를 띄었다.
확실히 만약, 이번에 챙겨온 것이 에어비트와 에어앵커뿐이었으면, 스쳐 맞았을지도 모르는 수준의 엄청난 일격이었다.
얼마만일까, 이렇게 일격을 간 발의 차로 피한 후, 등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이.
‘지금까지 힘든 경기는 꽤나 있었지만…… 1대1로 이렇게 어려운 상대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게다가 그 상대는, 헌터계에서 전설이라는 이근택. 전에 싸웠던 것과 다르게, 이번엔 진짜로 1대1인 상황.
‘그럼 한 번 놀아 볼까.’
“할아버지가 던지는 창에 맞는 젊은이가 어디 있겠어요.”
속으로 느낀 것과 다르게 던지는 가벼운 말.
그 말을 하면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주 장기로 다루는 에어앵커를 한 손에 잡고, 남은 한 손으로 에어비트를 온갖 곳에 흩뿌린다.
‘가만히 서 있지 않으면, 어쨋든 저 창을 피하는 것은 훨씬 쉬워질 거야.’
중요한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하는 것이다.
이근택은 던질 만한 창을 딱 보아도 열댓개는 가지고 있으니, 이쪽 측의 공격이 더 중요하리라.
‘그리고 보여 줄 것도 많으니까.’
“그럼 이번엔 이쪽에서 갑니다.”
타타타탕! 탕!
이근택을 향해 공중에서 곡예를 돌며 총을 연발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총은 이근택의 방패에 막힐 뿐. 아무런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런 콩알탄으로 아직도 나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냐.”
“그럼요. 그럼 이번엔, 한 방 먹이게 [머리] 저격 갑니다!”
“그런 걸 뻔히 말하고 쏘는 녀석이…….”
이근택이 잔소리를 하다 말고, 방패를 들어 제대로 탄알을 막아 냈다.
하지만, 이번 탄알의 경우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콰아ㅡㅡㅡㅡ앙!
제대로 마나를 실은 방패를 올려 막았거늘, 평소보다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생각보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머리]를 맞춘다고 선언했는데, 방패로 막아 버려서 그런건가?’
파괴력이 올라오다가 만 느낌이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에잉, 영감님. 센스없게 다 막으시기는. 자꾸 막으시니까 할 수 없군요. 그 [방패]를 저격해서 부숴버리는 수밖에는 없겠군요.”
“뭔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파괴력이 전보다 좀 늘어나긴 했구나. 그래도 그 파괴력으로 내 방패는 무슨……겉멋만 들어서는 에잉…….”
그런 말을 내뱉는 것 치고는 공세로 전환하지 않는 것이, 이근택 회장은 한 번 받아 줄 생각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그럼 사양 않고.’
타앙!
정면에서 쏘아진 한 발의 총.
평소와 같았다면, 헌터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그런 견제의 의미만 있을 한 방이겠지만.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만개 - 재능개화 : 말하고 때리는 사람]
만개를 개방하고 처음 얻었던 그 쓸모 없었던 스킬이, 마침내 빛을 발했다.
콰콰콰콰콰쾅!!!
마치 포수가 투수의 공을 잡듯, 막기 위해 방패를 쥐었던 이근택을 방패째로 저 멀리 밀어낸 것이었다.
땅바닥은 몇 미터인지, 이근택이 디딘 두 발이 뒤로 끌려 거대한 자국을 내며 말려들어갔고, 방패의 상태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저 방패는 이제 쓰지 못하겠군.’
한 번은 막아냈으나,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모양으로 변했으니까.
“허…… 허허.”
이근택으로서도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던 걸까?
웃고있었지만, 단순한 웃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파괴력에 경탄한 듯 했다.
솔직히 나도 이 정도로 강력해 질 줄은 예상도 못했으니까.
이근택이 들고 있는 방패가 평범할리가 없는 데다가, 마나까지 실어 훨씬 단단했을 텐데, 이 정도로 몰아붙일 줄이야.
“이게 이번에 네가 얻게 된 능력이더냐?”
“뭐, 그렇죠.”
“확실히…… 확실히 놀랍구나. 덕분에.”
‘덕분에…….’
“네 덕분에 한 번 제대로 놀아 보자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야.”
이 영감. 아직도 뭔가가 더 있었던 건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곤란하진 않았다.
‘이쪽도 아직 꺼내지 않은 게 있으니까.’
[에테르], [말하고 때리는 사람], [유도사격], [이상동몽의 지휘관], [완전한 몸].
그리고 [꿰뚫는 눈]과 [마도공학 무기변환]까지.
김도준을, 윤한결을. 그리고 이근택을 상대하면서 한 가지씩 써 보긴 했으나……
‘제대로 실전처럼 엮어서 시너지를 내, 같이 써 보진 않았다.’
우선은 익숙해지자는 시범운전 차원의 싸움이었으니까.
하지만, 상대 쪽에서 진심을 보이는 이상. 나도 그냥 싸우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그렇게 무기를 매만지던 도중, 이근택이 입을 열었다.
“헌터가 되기 위해 보통 ‘각성’따위를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 그런데, 이미 그런 ‘각성’을 거친 헌터들 중에도 한번 더 깨달음을 얻는 녀석들이 있다는 걸 아느냐?”
“2차 각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2차 각성. 이미 각성을 한 헌터가 새롭게 또 처음 각성할 때와 같이 능력을 하나 더 얻는 것을 말했다.
……하지만, 이근택이 말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미적지근한 것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경지에 오른 헌터들 사이에서는 이걸 암암리에 마나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다고 했지.”
‘마나로 영역을 구축…… 그거 완전…….’
“자신의 체내의 마나를 퍼뜨려, 그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이 극대화 될 수 있도록 한다. 일명 ‘마나전개’라고 한다나.”
‘마나전개잖아…….’
내가 생각하던 것이 완전히 이근택과 겹쳐졌다.
“귀한 광경을 보게 될 테니.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이근택의 체내에 있던 마나의 입자가 얇게 퍼져 나갔다.
그러고는 이근택은 사방에 창을 흩뿌려 던졌다.
이근택을 중심으로 땅바닥에 꽂힌 열댓개의 창. 그리고 공중에서 에어앵커에 매달려 있는 나.
본격적인 전면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