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착각
윤한결.
이 녀석은 사실 회귀 전에도 1부에서 이름을 좀 날렸던 녀석 중 하나였다.
한 번에 최대 7개까지 다룰 수 있는 이기어검. 그건 특히 1대1 대인전에서 아주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7개나 사용하는 만큼, 그 정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고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이점.
그리고 인간의 몸에 얽매이지 않은 검술이기에 약점이 보인다 싶으면 바로 찌를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강력한 대인전 능력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연주의 [속박]을 피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순간, 마치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걸 기다렸다는 듯.
윤한결의 이기어검이 총탄처럼 쏘아져 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공중전에 아주 익숙했기에,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로 회피기동을 연이어 사용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쉬이익 ㅡ.
총탄처럼 쏘아지는 것은 첫째요, 살짝만 틀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려 하면 바로 검을 휘둘러 왔으니, 마냥 계속 피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연주도 아마 계속 틈을 보고 있을 테고…….’
공중에서 유영하며 지속적으로 검을 피하다가, 어느순간 뒤에서 검을 조종하고 있는 윤한결이 보였다.
그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한번에 스쳐 지나갔다.
‘김도준처럼 유도탄을 쏠까? 아니면…… 아예 근접해서 쌍권총으로?’
김도준을 상대할 때 사용해 보았던 [유도사격(중)]의 경우 확실히 좋은 대응책이었지만, 마나소모가 극렬했다.
거기에, 제대로 반응해서 마나실드로 막는다면 말짱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경기는 새롭게 얻은 능력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하는 것인데 똑같은 능력만 써 봐서는 의미가 없으리라.
‘그럼…… 이렇게 해볼까.’
어떻게 다른 방법을 시험해 보면서도, 효과적으로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하던 도중. 재미있는 한 아이디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
반드시 이긴다.
그것이 오늘 윤한결이 가진 마음가짐이었다.
첫 만남은 헌터스 리그의 한 오디션. 윤한결도 나름 잘 나가는 유망주였기에, 솔직히 무력에서는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거기서는 최상위권이었다.
‘거기에서 혜성같이 등장했었지.’
이창현은 그런 자신보다도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여 줬다. 추락의 위험속에서도 두려움을 모르는 듯, 마치 원래 날아다니는 생물이었던 것마냥 자연스럽게 마나장비를 사용하는 모습.
그리고 누구도 상상못한 방면으로 경기를 이끌고 와, 결국에는 이근택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멋지게 동귀어진하는 모습까지.
그 모습을, 그 플레이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헌터가 되기로 마음먹고 꿈꾸게 된 것은 결국 그런 압도적인 모습, 그 광경을 보고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1부에도, 국제 리그에도 뛰어난 헌터는 많았다. 하지만 윤한결이 보기엔 이창현은 그들과도 무언가가 달랐다.
인터뷰에서 보여지는, 자칫하면 싸가지 없다고 보일 수 있는 면모도 다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한결은 이창현을 이기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윤한결에게 이기어검술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줄 때도. 헌터 서바이벌에서 살아남는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리고 실전 경기에서 결국은 모두를 지탱해 경기를 이끌어 승리를 가져올 때도.
윤한결의 눈은 항상 이창현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엔 한없이 가까운 줄 알았으나, 가까워진 후 한없이 멀어 보이기만 하는 이창현을 꺾는 것.
그것이 어느샌가 그의 새로운 어떤 목표가 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1대1은 아니긴 하지만…….’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기라고 한 게 이창현이었다.
윤한결을 어느샌가 씨익 웃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준비한 작전은 생각보다 잘 먹히고 있었다. 윤한결의 컨디션이 좋았던 것일지, 이기어검으로 생각보다 이창현을 잘 몰아붙이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상태에서 결판을 내는 게 최선인데…….’
약한 검격은 허락하면서도, 치명적인 공격은 모두 피해 가고 있었다.
아마 모두 계산된 부분이리라.
그래서 더 몰아붙이려는 순간.
‘……진짜로 오늘.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창현이 에어비트를 이용해 윤한결이 검을 조종하는 쪽으로 날아왔다.
아무래도 총을 정확하게 조준할 만한 시간이 없으니, 아예 근접전으로 몰아가 난장판으로 만드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개인대련을 할 때도 많이 겪었던 상황.
‘그래, 실제로 지금껏 이렇게 몰아가서 당한 적이 많았지…… 이렇게 몰고 가면 이기어검을 운행하는데, 내 몸도 고려해야 해서 검을 운행하는 데 사용하는 데 신경을 덜 쓰게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당했는데, 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지금 이 날을 위해 준비해 온. 8번째 검. 그래, 윤한결은 또 새로운 검을 준비한 상태였다.
7개의 이기어검에, 윤한결이 직접 휘두르는 검 한 개가 추가됨으로써 완성이었다.
그야말로 근접전의 진수.
게다가 이런 지근거리에서는 헌터끼리의 싸움에서 총은 검에 비해 아무런 이점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총은 마나실드에 막힐 가능성이 있으므로, 근거리에선 총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래. 이건 이창현이 빨려들어온 것이었다.
윤한결은 지금껏 수도없이 머릿 속으로 그려 왔던 싸움을 떠올리며, 이창현이 지근거리에 들어서자, 이기어검으로 압박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이전처럼 회피기동이 이어졌다.
자칫하면, 윤한결이 맞을정도로 지근거리에서의 회피기동.
이기어검을 쉽사리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도록 만드는 영리함이 돋보였다. 그때, 윤한결은 이창현이 알지 못할 여덟 번째 검을 꺼냈다.
그 검은 일곱 개의 이기어검을 조종하면서도, 생각보다도 훨씬 날카로운 검술을 펼쳤기에.
‘확실히 그 상자를 열고 나서 무언가가 달라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껏 그 여덟 번째 검을 사용해 보려다가 밸런스가 무너져 실수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마치, 이창현을 이기라고 신이 내려 준 듯한 기회.
윤한결은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았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결국 연주는 어차피 널 근거리로 끌어들이는 정도의 역할밖에 못했으니까.”
이런 급박하고 서로 얽히는 근접전에선 이연주가 활약을 하긴 어려우니. 이젠 진짜 1대1이니까.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한 번쯤은 동료한테 지는 일이 있지 않겠어?”
아드레날린이 샘솟았다. 시간이 느리게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근거리에선 검이 유리. 거기에 대인전 최강에 가까운 이기어검이 윤한결을 돕고 있다.
그리고 그 평생 느껴 본 적 없는, 마치 털 한올한올까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찰나의 순간.
윤한결의 여덟 번째 검이, 윤한결에게 들이밀려던 이창현의 권총 한 자루를 쳐냈다.
깔끔하게 이창현의 손에서 퉁겨 나가는 권총 한 자루.
경계해야 하는 권총이 한 자루 뿐이라면 훨씬 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표정이 쉽게 읽히는 이 지근거리.
이창현은 웃고 있엇다.
“뭐, 확실히. 이기기만 하는 선수는 세상에 없지. 근데…….”
녀석은 권총이 날아가 비어 버린 손으로, 마치 나를 잡으려는 듯 계속해서 뻗어 왔다.
‘……!’
“지는 게 오늘일 것 같지는 않네.”
이창현은 무투파 헌터가 아니다. 그건 분명했다. 평소에도 단순히 힘으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은 없으니까.
몸에 손이 닿는 것. 그것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윤한결의 몸에 이창현의 손 끝이 살짝 닿는 순간, 어디에서 본 듯한 익숙한 빛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빛이 강렬한 것에 비해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윤한결이 칼을 휘두르던 팔은 멈추지 않았다.
‘뭘 하려고 했었던 거지? 하지만……그게 뭐가 되었든.’
푹. 확실하게 감겨오는 찌르는 감각.
털썩 ㅡ.
이창현은 확실하게 쓰러졌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속 안에 무언가가.
상큼한 과즙이 터지는 듯, 청량하게 퍼져 나갔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기분 좋은 승리.
윤한결은 분명,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웃고 있었다.
***
“휴…… 위험했네.”
어찌된 일일까? 윤한결은 분명 이창현을 찌르고,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쓰러진 채로 전장에서 탈락한 것은 윤한결이었다.
그것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듯, 웃는 표정이었다.
[만개 - 재능개화 : 이상동몽의 지휘관].
2부에 PER이 올라오고 나서부터, 팀원들의 폼을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은 스킬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새롭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기도 했다.
‘강제로 상대에게 어떤 이미지를 보여 줄 수 있다니…….’
몸에 닿은 상대라면, 상대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더라도 그 이미지가 전달됩니다.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은 한 마디의 설명.
하지만 그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마지막, 윤한결이 여덟 번째 검으로 이창현의 권총을 쳐낸 순간. 이창현의 손 끝이 윤한결에게 닿았다.
그 후 발동된 [이상동몽의 지휘관].
윤한결은 잠시간 멍하니 선 채로, 일체의 모든 행동을 멈췄다.
‘아마 내가 심어 준 이미지를 보고 있었겠지…….’
여기까지보면 이전의 능력과 똑같았지만, 문제는 윤한결의 어떤 동의도 없었고 전투중이었다는 것.
한 순간 신체가 닿는 것만으로 윤한결은 무력화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헤벌레 웃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나한테서 이기는 환상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경기 외적으로도 쓸만한 곳이 꽤나 많을지도 모르겠네.’
회귀 전을 통틀어 듣도보도 못한 능력이었기에, 이창현으로서도 감탄할 만한 능력이었다.
닿아야만 쓸 수 있다는 것이 아쉽지만, 범용성과 활용방법 희소성까지.
굉장한 가치를 가진 스킬임이 분명했으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껏 본 적도 없는 능력을, 점점 성장시키고 새롭게 얻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만개]가 S+랭크에 오른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회귀 전의 인생을 되짚어 다시 걸어오고 있던 도중.
나는 이제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기어검을 7개나 다루면서 본체로 검을 한 개 더 다루다니…… 이번 이근택 회장님의 유물의 효과인가?’
마나를 아끼고자, [꿰뚫는 눈]의 사용도 자제했기에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덟번째 검을 사용한 것은 정말 의외였다.
약점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나마 가장 취약한 부분. 그건 바로 윤한결 본체와 지근거리에서 하는 전투였으니까.
그런 단점을 윤한결이 직접 검을 사용해 합공하는 것을 통해 완전히 지워 버렸다.
‘성장했네.’
1대1로는 1부로 쳐도 상당한 강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지난번처럼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카운터 능력이 있다면 힘들겠지만 그런 건 흔하게 있는 게 아니니까.
물론 이번은 성장한 건 윤한결뿐만이 아닌것이 문제였지만.
팀원의 성장. 이것도 분명 큰 소득이리라.
***
한편, 넓게 트인 곳.
이근택은 등을 긁적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몸을 쓰려니까 주체가 안 되는 건가…….”
그리고 그 주변.
류재준과 김유현, 이길한을 비롯한 나머지 PER 선수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다.
“끌끌…… 재준이 녀석. 좀 늘었나 싶었더니 아직도 멀었구만. 그나저나 이창현 이 녀석은 이리로 오는가 싶더니, 왜 이렇게 늦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