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작당모의
김도준의 눈뽕에 제대로 직격당한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너무나도 강렬하고, 제대로 봤던 나머지 눈에 하얀 잔상이 남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당연히 총을 제대로 조준할 리도 만무했다.
더군다나, 김도준이 사용하는 검술은 가볍고 경쾌한 쾌검 위주의 검술. 위협적인 것을 제대로 피해내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보고 피하는 것이 중요했다.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조준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쏴야 해.’
이러다간 진짜로 김도준에게 어이없게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어후. 그건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이리라. 한 번 당했다가는 거의 평생 우려먹지 않을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크큿…… 어디다 쏘는 거야? 천하의 이창현도 내 앞에서는 별 수가 없구나!”
그래, 분명 이런 상태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김도준을 제대로 조준할 수는 없지. 아무리 나라도.
하지만.
[만개 - 재능개화 : 전설의 저격수 [유도사격 (중)]
나에겐 이번에 만개의 랭크가 오르며 변화된 스킬 중 하나, ‘유도사격’이 있었다.
타앙!
이미 권총에서 격발되어 내 손을 떠난 탄알에 강한 마나를 작용시켰다.
그렇게 강하게 마나를 방출시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니, 이건 익숙한 일이겠지.’
마치 몸의 끝자락. 손가락의 끝 마디를 움직이듯, 총알이 내 몸의 끝자락 어딘가에 연결된 듯 의식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개 - 재능개화 : 전설의 저격수]의 경우에는, 회귀 전에도 한 번 이미 가졌던 능력. 그랬기에 이번 생에 다른 능력들보다는 훨씬 익숙했다.
지금껏 참아온, 그리고 찾기를 고대한 익숙한 감각.
그 감각을 다시 느낀 순간, 그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총을 정확히 조준하지 못해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던 총알이, 크게 회전하여 다시 김도준을 향했다.
아직은 눈뽕을 당해, 잔상이 남아 있지만……
한 번 격발한 총을 피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녀석. 김도준은 복잡한 움직임을 하기보다는 나를 향해 직선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위치는 내 바로 앞.
피슉 ㅡ.
“컥…… 이…… 게 무슨.”
내 바로 앞 검을 내리치려던 김도준은 팔을 높이 든 상태로 총을 맞아 쓰러졌다.
“널 옆에서 제일 오래 본 사람 중 한 명인데, 그런 눈뽕이 먹힐 줄 알았어?”
물론 거의 먹혔다. 아니, 적으로 상대해 본 적이 없기도 하고, 선글라스를 안 들고 오기도 했으니…….
그래도 안 먹힌 건 맞지 않은가?
“대기실 가서 내 활약이나 보라구~.”
그 사이, 김도준이 탈락해, 몸이 사라졌다.
***
한편, PER의 그 경기를 외부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근택 회장이 프라이빗 룸으로 잡지 않았기에, 헌터 연합훈련소에서 원하는 사람은 볼 수 있었으니.
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조연화였다.
‘볼 생각은 없었는데, 이근택 회장님이 이런 곳에서 PER 녀석들이랑 경기를 하고 있을 줄이야…….’
우연찮게 연습을 하러 왔다가, 신경 쓰이는 팀. 그리고 이근택이 있는 걸 발견하고 들어온 것이었다.
뭐, 게다가 어찌되었건 지금의 PER에는 친분이 있는 류재준도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진짜로 1부 승강전에 이름을 올리게 될 줄이야…….’
파티 때 이창현이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그 때의 전력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언가를 하기 전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룰은 헌터 서바이벌이랑 비슷한가…….’
무난하다. 근데 그러면 이근택 회장님이 다 쓸어버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니, 저번에 그 녀석이 보여 줬던 그 ‘미래시’에 가까운 능력…… 그거라면 어쩌면 이근택 회장님이랑 싸우는 걸 시뮬레이션을 엄청 돌려봤을 수도…….’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 가운데, 경기에선 정말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어이없게도 이창현이 같은 팀의 김도준.
그래, 눈뽕빌런이라고 유명한 녀석에게 그걸 직격으로 당한 것이었다.
조연화는 그 장면을 보고 경악했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쟨 뭐, 저런 걸 당한데?’
같은 팀이라 당해 본 적이 없어 방심한 것이었을까? 조연화도 아는 저 녀석의 시그니쳐를 저렇게 무방비하게 당해 줄 줄이야.
진짜 ‘미래시’같은 능력 가지고 있는 거 맞아?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동시에, 저걸 당한 만큼 저격수이자 원거리 딜러인 이창현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먼 검사는 몰라도, 눈 먼 저격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역시나. 녀석은 평소처럼 압도적으로 정밀하게 총을 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권총을 연발했다.
‘진짜…… 이대로 끝?’
조연화가 표정을 찡그리는 가운데. 그리고 김도준이 검을 높게 들어, 이창현을 끝내려는 순간.
무언가가 김도준을 꿰뚫었다. 쓰러진 건 오히려 김도준 쪽.
“!??!??!?”
조연화는 어이가 없었는지, 표정을 괴상하게 찡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리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영상을 돌려보고 무엇이 김도준을 죽인 것인지 확인한 순간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총알의 궤적이…… 휘었어?’
그것도 약간 휜 것도 아니고, 아예 빗나간 게 몇 초 지나 180도 돌아 부메랑처럼 돌아온 수준이었다.
이딴 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가?
물론 아직 유물이나 헌터가 초능력을 쓰는 메커니즘이라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건 많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저런 식으로 막 쏴도 맞으면, 검 같은 건 의미가 없을 테니까.
상대방이 마나실드를 전방에 펼치더라도, 총알이 옆으로 돌아 지금처럼 뒤에서 박으면 끝이리라.
상식 밖의 상황. 그러면 역시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새로운 능력이 생긴 건가……?’
바로 새 초능력이 개화되었을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이미 녀석이 가졌다고 알려진 능력도 꽤나 많은데 거기서 또……?
조연화는 새삼, 이창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위로 올라갈 포텐셜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국에서 단일 선수로는 최고에 가까운 선수가 될 포텐셜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도 불구하고.
***
한편 이근택이 낀 이 경기. 헌터 서바이벌에서는 다들 이근택과 한 번 손을 섞어 보는 걸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팀원들도 있었다.
바로 이연주와 윤한결이었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만난 둘. 윤한결은 이연주가 전투 포지션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굳이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를 제안했을 뿐.
“어차피 너는 전투 포지션은 아니니까, 1대1로 싸우는 걸 할 필요는 없지. 그러니까 팀을 짜서 한 번 거물을 잡아 보는 게 어때?”
“……이근택 회장님?”
“이근택 회장님은 전에 싸워 봐서 아는데, 힘을 합쳐도 어차피 못 잡을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게…… 질 것 같아도…… 싸워 봐야 하는 것 아니야?”
윤한결과 이연주는 개인전인 서바이벌에서 싸우진 않고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근택 회장님이 아니라, 창현이를…… 그.”
윤한결도 지금 말하는 게 그리 떳떳하지는 않은지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아…….”
지금껏 윤한결의 연습을 굉장히 많이 봐주고 상대로도 셀 수 없이 겨뤄 봤다. 하지만 윤한결은 이창현을 이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창현을 선수로서도, 친구로서도 존경하고 선망하지만.
그래도 한 켠으로는 그래도 딱 한 번. 꼼수를 쓰더라도 한 번쯤은 이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작전은…… 있어?”
“평소에 팀에서 하던 거랑 비슷하게. 너는 숨어서 서포트하고, [속박]으로 붙잡아 주면, 나머지는 내가 해볼게.”
물론 둘이라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작전이긴 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가 달라. 뭔가가…….’
윤한결도 ‘가능성을 닫는 함’을 열고 나서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정확히 그 변화를 알아내진 못했지만, 일단 컨디션은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평생을 돌이켜봐도 이렇게 잘 될 거라는 느낌이 든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일단 그럼, 창현이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예상 경로로 먼저 가서 기다리자.”
헌터끼리의 싸움은 선빵이 항상 무조건 유리하니까.
이연주와 윤한결이 이창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한편 이창현은, 가장 큰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곳에 이근택이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캬…… 근데 이거 경기 녹화를 켜 뒀던가. 아까 김도준 당할 때 표정 대박이었는데.’
당황한 표정만이 아니라, 지금은 헌터서바이벌이지만 1부 연습을 겸하고 있었기에 당할 때 상당히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당한 김도준은 아웃되기 직전, 그야말로 나올 것 같은 똥을 어떻게든 틀어막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건 저장해 뒀다가, 까불 때마다 슬그머니 꺼내 줘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에어앵커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마나의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느껴졌다.
‘누가 대기하고 있나?’
그런 것이 느껴진다면, 당연하게도 타고 있는 에어앵커의 궤도에 몸을 맡기면 안 된다.
그 즉시 에어비트를 이용해 변칙적으로 움직였다.
쉬아아악 ㅡ.
역시나.
내가 에어앵커로 향하던 방향에 검은 무언가가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이연주의 [속박]인가.’
별 생각 없이 갔다면, 아마 꽤나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이연주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별로 생각치 못했다.
평소의 플레이를 생각해 보면 아주 정확한 순간. 완벽히 맞출 거라고 생각한 순간이 아니라면 쓰지 말라고 했고, 그렇게 했었는데.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쓰지 말라고 한 걸 까먹은 거야?”
근처에 이연주의 기운이 느껴졌기에,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꿰뚫는 눈]을 이용하면 바로 찾을 수 있겠지만, 이번 경기의 마나는 되도록이면 새 능력을 사용해 보는 데 쓰기로 했기에. 굳이 찾지는 않았다.
“그렇게 능력을 쓰고 나면 상대는 피한 순간부터 계속 그걸 생각하기 때문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그렇게 이연주에게 계속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고 있었는데,
쉬아아악 ㅡ.
또 한번 발 밑에서 [속박]이 사용되어 에어비트를 이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니까, 그렇게 쓰지 말래도 ㅡ. ……!”
그런데, 그렇게 공중으로 날아오른 순간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던 일곱개의 검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하……!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어쩐지 평소보다 말도 안 되게 대담하게 나온다 싶었는데.
그럼 그렇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리가 없었다.
“야! 윤한결! 이연주! 너네 이거 개인전인 건 알고 있지? 이번 게임 끝나기만 하면 아주…….”
그 말에 숨어있던 이연주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는
“혼자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면…… 팀원을 이용하라고 했었잖아…….”
이연주가 한 번 된통 당해 보라는 듯 평소보다도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