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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36화 (136/270)

136. 심술

얼마 전에 있었던 PSG대 PER전을 보니 이근택은 감회가 새로웠다.

비록 2부 경기이지만, 이근택에 있어서는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경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맵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몽환의 궁전.

하지만 이근택도 헌터 세계의 일원으로서 더 크게 와닿는 건 역시 그런 것보다도, 전에 말했던 1부 리그에 진짜로 크게 가까워졌다는 것이리라.

2부에서 PSG를 꺾었다는 건, 이제는 진짜로 1부 리그를 코앞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지치지 않고, 정면을 계속해서 돌파해 나가는 녀석이다 싶었다.

‘3부에서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 주며, 목표를 말했을 때는, 코웃음을 쳤던가.’

아니면, 단순히 패기 있고 꿈이 큰 녀석으로 쳤었던가.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진짜로, 이미 어떤 기록을 세워 가는 녀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애초에 승강전 자체가 성공한 팀이 없다시피 하니, 2부에 이어 1부에 승격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새로운 대기록이 될 테니.

‘하지만…… 큰 고비인 PSG를 넘었다고 해서 녀석들에게 1부 승강전이 만만하지만은 않겠지…….’

순수하게 능력적인 측면이나 경기의 전술적 측면에서는 간혹 2부 상위권이 더 낫다는 말이 들려와도, 그 팀들이 결국 2부에 머무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1부 리그는 체력도, 정신력도 깎여 나가는 진짜 헌터의 영역이니…….’

경기가 아니라,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에잉…… 쯧.”

1부는 그래서 2부랑 이런저런 다른 점이 많은데, 찾아오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도 전에는 이것저것 묻는 것도 있고.

부족한 점도 꽤 많아서 손주같이 챙겨 주는 맛이 있었는데,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먼저 잘 안 하고.

“오오…… 이 경기도 결국 PER이 이겼군요. 그런데 왜 회장님 표정이…….”

“아닐세. 아니야…….”

홧김에 육성으로 내가 이럴려고 이 녀석 키웠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라고 할 뻔했다.

‘그래도 줄 건 줘야겠지.’

게다가 사실 연락이 뜸하고 잘 찾아오지 못하는 것도, 경기를 소화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섭섭한 티를 내지 않자니,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이근택은 이창현을 기다리며, 골탕 먹일 방법을 기어코 생각해내고야 말았다.

‘그럼그럼…… 직접 무거운 몸을 일으켜 가며, 파티에서 밀어준 녀석인데. 괘씸한 녀석이니까.’

***

어느 스포츠가 그렇지 않겠느냐만, 헌터 업계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업계의 환영인사다.

아주 대표적으로는, 1부 승급 선수나, 승급 팀에게 해 주는 “신고식”이 그 예이다.

표현은 신고식이라곤 하지만, 실상은 최대한 타격을 주는 플레이를 지향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며 1부의 무거움을 엄포하는 악질 기강잡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정도도 아니고, 그거랑 결이 조금은 다르긴 한데…….’

1부도 아니고, 일종의 휴식 차 나온 상황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걸 자기가 부른 이근택 회장이 할 줄이야.

역시 삐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열지 않고 있나? 창현 군. 내가 직접 쥐어 줬던 유물보다도 더 유명하고 좋은 거라고?”

나는 어제 저녁, 연락을 받아, 오늘은 팀원과 함께 헌터스 리그 협회장. 이근택을 만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이근택이 준비한 건 굉장히 별 것 아니라고 느낄 만한 작은 상자 하나였다.

실상은 수많은 국가에서 탐내고 있는 굉장한 유물. ‘가능성을 닫는 함’이라는 특급 유물이었지만.

문제는 그 유물 자체가 아니었다.

‘이근택 회장이 나만 이 상자를 열 수 없게 붙잡고 있다는 게 문제지.’

“흠…… 창현 군은 내가 가져온 그 유물이 못미더운 모양이군. 내 지인인 헌터에게 사정사정하며 빌려온 건데, 그 가치를 알아보질 못하다니. 에잉 쯧. 되었다. 네가 싫다면 다른 녀석들에게 먼저 보여 줄 뿐이지. 재준아. 네가 먼저 열어 보거라.”

말은 에잉. 쯧. 하면서 혀를 차고 있지만, 얼굴은 나를 보면서 실실 웃고 있는 것이 골탕 먹이려는 속셈인 게 틀림없었다.

즉, 이근택은 이 가능성을 닫는 함을 열어 보라고 하면서 열 수 없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녀석들은 전혀 모르게, 내가 그것을 쥐었을 때만.

“? ……네. 그럼 제가…….”

그 증거로 내가 열지 않고 가만히 두고 있자, 류재준이 먼저 상자를 열어 효과를 보고 있었다.

류재준은 내가 왜 열지 않는지 영문을 모르는 듯 잠깐 쳐다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자 그냥 자신이 상자를 열었다.

상자는 별 힘을 주지 않아도 열리더니 하얗게 빛나는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마나와 함께 강렬한 힘이 쏟아졌다.

“오오……!”

“너희들도 느껴지지 않나? 바로 이게 ‘가능성을 닫는 함’이라고, 헌터 업계에서는 특급유물로 전해지는 물건이지.”

“아…… 이게요?”

이근택은 나만 상자를 못 열게 하는 것이 즐거운지, 팀원에게 이 유물에 대한 것을, 그 효능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었다.

하긴. 그럴만한 물건이긴 했다.

가능성을 닫는 함. 이름은 뭔가 굉장히 악영향을 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상자를 열고 들여다보는 사람의 잠재력을 한계까지 끌어내 능력의 각성이나 발현을 촉진시키는 유물이었으니까.

실제로 아마 저 이름도, 가능성. 즉 잠재 능력을 모두 끄집어내 그걸 닫아 버린다는 의미에서 지어졌으리라.

그러니까, 당장 내게도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는데……

“자, 재준이 반응 보면 알겠지? 너무 의심하지 말고 열어 보거라.”

하면서, 이근택이 히죽거리며 다시 내게 그 상자를 건넸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도 그 정도가 심했다.

‘이 영감탱이가…… 아주 노골적으로 골탕을 먹이는구만.’

가능성을 닫는 함. 손바닥만 한 그 정육면체 모양의 상자에, 마나를 불어 넣어 조작을 어떻게 해 놓은 것인지, 마치 거미줄이 범벅이 되어 뜯어지지 않는 무언가처럼 상자가 열리지 않게 해 놓은 것이었다.

겉보기엔 단순히 마나가 엉킨 것으로 보일 엉망진창의 모양이었지만. 실은 신묘한 묘리가 들어가 있는 설계가 돋보이는 게,

골탕을 먹이기 위해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겠나?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이 상자를 못 열면 계속 어른을 무시한다느니, 나를 의심한다느니 그런 말을 하면서 핀잔을 넣으면서 즐거워하는데……

그동안 연락을 안 했던 것에 많이 삐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장난을 받아 주는 것도 한두 번인 법. 그래도 한 번 당해 주었다면 충분히 당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제가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 할 수 없군요.”

“그래.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상자를 안 여는 건 역시, 내 성의를 무시하는 게로구나.”

“그게 아니라…….”

한 번 당해 줬으면, 응당 갚아 주는 것도 있어야지. 이 영감님이.

나는 그 길로 마나를 불어넣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나 회로에 강하게 마나를 실었다.

그러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이근택의 심술. 마구 얽혀 덮인 거미줄 같은 회로가 빛나며 드러났다.

“상자에 장난질이 좀 되어 있어서요.”

이렇게 다른 사람들한테, 회장님이 장난질을 한다고 밝힐 줄은 몰랐으리라. 그리 생각하면서 보는데

“허어…… 저런 게 있었다니. 유물의 세계는 참으로 신묘하군. 재준아. 너는 대체 저걸 어떻게 연 거냐?”

“……?”

시치미를 떼시겠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연기가 지독하게 자연스러운 걸 보면 이미 다 예상한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 봤자, 나만 주는 선물 못 받아먹고 이상하게 화내는 사람이 되겠지.

‘하여간 능구렁이 같은 영감님 같으니라고.’

“그러게요. 아주 인위적으로 마나 회로를 실시간으로 조작해 뭔가를 해 놓는 것 같은데…… 이런 건 저도 처음 봐서 신기하군요 정말…….”

“허허. 그러게 말이다. 유물이라는 게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많고. 어쩌면 그 유물이 네 손을 타는 걸 거부하는지도 모르겠구나. 껄껄.”

뭐? 내 손을 타는 걸 거부해?

순간 어이가 없어 이근택 회장을 째릿 하며 쳐다보았지만, 허허 웃는 것이. 역시 나이는 꽁으로 먹은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역시 직접 풀어 줄 생각은 없다는 거겠지.’

아니면 우리 팀원들 다 여는데 나만 마지막에 겨우 열게 해서 골탕 좀 먹이려는 속셈인가 본데……

“뭐, 이렇게 복잡하게 덮여 봉인 된 게 있다면 풀어 보는 것도 재미 아니겠습니까?”

이근택을 바라보며 씨익 웃곤, 다시금 상자를 집어들었다.

네가 그걸 풀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사악한 웃음이 담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근택이야말로 나를 얕본 것이었다.

‘회장님이 전체 헌터 경력으로만 치면 저보다 더 길겠지만, 선수경력으로 치면 제가 한 수 윕니다.’

확실히 굉장히 섬세하고, 잘못 건드리면 회로가 완전히 꼬여 손 대기조차 어렵게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그런 섬세한 마나컨트롤은 회귀 전, 국제 리그에서 생사를 가르며 밀리미터 단위로, 재 가며 민감한 마나를 다뤄 저격을 했던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내가 주입한 마나에 의해 훤하게 빛나는 마나 회로를, 마치 실뜨기를 하듯, 정확한 곳에 손가락을 끼워 넣어 움직였다.

회로를 만지는 도중, 때로 페이크로 들어간 마나 회로를 끊고, 동시에 정확한 회로만을 꼬이지 않도록 골라냈다.

“뭐…… 헌터가 스포츠가 되기 전 세상의 헌터들도 분명 뛰어나지만…… 그 이후의 헌터들도 마냥 허접하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이근택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아니, 어쩌면 청출어람이랄지. 시대의 흐름이랄지. 더 발전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구요.”

어느 샌가 정확한 회로들을 찾는 것은 끝난 채, 내 손으로 상자에 씌여 있던 복잡한 회로들이 정리된 채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회장님은 한국 헌터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보아오셨을 텐데. 회장님도 동의하시죠?”

이근택과 눈을 맞추며 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하자, 그답지 않게 눈을 피했다.

하긴, 자기가 골리려고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그걸 풀어 버리니 놀랍기도 하고 어이도 없겠지.

이 정도의 섬세한 마나컨트롤이 가능한 사람 자체가 한국엔 거의 없을 테니까.

“그쵸? 동의하시죠?”

하지만 괴롭혔던 만큼, 그 대답은 반드시 들어야겠다.

그런데, 들려왔던 대답은 평소의 이근택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것이었다.

위엄. 엄숙함. 멋진 1세대 헌터의 모습. 그런 것 따위가 아닌……

“큿…… 유물까지 쥐어주고 투자자까지 소개해 줬더니만, 연락 한 번도 안 하고, 만나러 오지도 않고 말이야…… 2부에서 승승장구하더니 아주 그냥 기고만장해져가지고는…… 예전에 3부에 있을 때는 그래도 내 조언이라도 들으러 가끔 왔었는데. 심술 한 번 부려 보려니까 그마저도 안 당해 주고,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노망난 할아버지마냥, 대답을 회피하며 빠른 속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야. 그렇게까지 생각했었던 거냐고.

조금 상처 입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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