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34화 (134/270)

134. 삼자대면

상위리그. 1부, 그리고 국제리그로 나아갈수록 큰 평가를 받는 항목이 무엇인가.

초능력? 맞다. 마나조작능력? 그것도 맞다.

하지만,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과 능력이었다.

저번 PSG대 PER전만 하더라도 그게 잘 드러난 경기였다.

전체적인 팀의 체급은 PSG가 더 높았지만, 결국 승리를 거머쥔 것은 ‘혼돈’ 상태에서도 별다른 영향 없이 상대를 평소처럼 해치운 PER의 승리였으니까.

앞으로의 경기. 1부나 국제 리그는 그게 더 심하면 심했지, 앞으로 그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레논만 하더라도 그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직접 탑을 공략하던 시기.

날고 기는 숙련된, 땅을 뒤흔들고 하늘을 울리는 초능력의 헌터들도 ‘몽환의 궁전’에서 모두 한낱 사냥감이 되었을 뿐이었으니까.

‘믿고 싶지 않았다…….’

처음, 레논은 PSG와 PER의 경기를 보고 놀랐지만 동시에 그 성과를 낮춰 잡았다.

무방비한 상태의 적을 총으로 쐈을 뿐. 도플갱어들이 들이닥쳤다면 아마 대항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면서도 동시에 확인하고 싶었다.

실제로 도플갱어들이 들이닥친다면 이창현이 견뎌 내지 못할 것이란 것을.

움직일 수 있으나, 여전히 ‘혼돈’의 영향을 이겨 내지 못하고 패배하리라는 것을.

이건 레논의 유일무이한 트라우마이자 뼛속 깊숙하게 새겨진 패배의 기억이었다.

지금껏 지난 일이라고 묻어온 몽환의 궁전에서의 사고.

누구나가 그 일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레논에 그것에 동의하곤 지금껏 고개를 돌린 채로 살아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 영향을 받는 인간의 한계라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레논은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목격함으로서 알아 버린 것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자신이 무력했던 것’임을.

누구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혼돈’의 영향 가운데에서도 녀석은 마치 평소와 전혀 다름없이,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괴로웠다.

첫 원정 당시 ‘몽환의 궁전’에서 수많은 동료들을 잃고.

그 다음엔 그곳을 피해 가려 했지만, 탑의 변덕 때문이었을까.

다시금 그 장소에 마주하며 두 번째 비극을 반복해야 했다.

그 한참 후에야, ‘몽환의 궁전’을 완전히 벗어난 원정루트가 개발되었고 그 사건은 천천히 잊혀졌다.

‘첫 원정에서 실패하고, 어떻게든 연구했더라면…….’

그래서 지금 저 녀석이 하는, 이겨 내는 방법을 알아냈더라면.

그녀가 죽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죄책감이 되살아났다.

모두들, 그건 레논의 잘못이 아니라고. 탑을 오르는 헌터들은 모두들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고 오르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레논은 이 순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난 세월 함께 공략했던 인원들의 얼굴이. 그 면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괴로움에 몸을 떨며,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깔자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몽환의 궁전’의 조명 때문일까. 강한 보랏빛 후광을 등진 채로 이창현이 레논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도플갱어들 사이에 ‘경화’로 홀로 살아남아 까마득한 시간이 지나고, 결국은 구조 받았던 그 때의 기억이 오버랩되는 것만 같았다.

‘그 때도 한국의 헌터였던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도플갱어를 다 물리친 녀석. 그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레논 자신.

모든 것은 확인했다. 이 경기를 더 이어 나갈 이유는 없었다.

***

“레만, 그 분은……?”

그 대결이 끝난 후, 대기실에는 레논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군.”

‘혼돈 상태에서 제대로 날뛰어서 놀란걸까.’

그것만으로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굉장히 감정이 벅차오른 것 같던데……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이러나저러나, 레만의 막무가내식 요청으로 성사된 대결이긴 했지만 내게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개 - 재능개화 : 완전한 몸] : 자신의 몸을 다루는 것을 통달합니다. 이미지하는 것, 동작의 체화에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저번 PSG전에서 ‘혼돈’의 감각을 겨우 이겨 내며,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한 번 성공시켰기 때문이었을까.

어느 샌가, 그것에 [만개]가 반응하여 얻은 새로운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 상황 속에서도 완전히 내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줄이야…….’

그뿐만인가, 사람은 이미지로 떠올리더라도 손쉽게 그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이 필요한 법이었다.

하지만 저 능력을 얻은 이후로는, 처음 시도해 보는 동작.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던 동작들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야 근데 진짜 어떻게 한 거야? 저번에도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갔잖아. 이번엔 저번보다 훨씬 더하던데.”

한지수도 이번만큼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직접적으로 물어왔다.

다른 PER팀원들도 내심 그게 궁금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만개]에 대해서 말할 생각은 없는데…….’

적당한 대답으로 좋은 건 역시 저번 경기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말해 주는 것이리라.

물론 그것도 회귀 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포장이 조금 들어가면 안 될 것도 없다.

“혼돈 기믹이라는 건 너희도 느꼈겠지만, 아예 못 움직이는 게 아니야. 단지 뭔가가 꼬여서, 원래 팔을 움직이려 했다면 다리를 움직이는 식인 거지.”

“그런 건 우리도 다 알고 있어.”

그것만으로 뭘 어쩌냐는 듯, 팀원들이 대꾸해 왔다.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 같으니 숨기지 말고 대답하라는 뉘앙스였다.

“응? 그러면 그걸 알면 끝이잖아.”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 PER의 팀원들이 쳐다보았지만.

“어디 대신 어디가 움직이는지만 다 파악하면, 그걸 고려해서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야 이…….”

한지수가 듣다 못해 어이가 없었는지, 한 마디를 하려 했지만 윤한결이 그 말을 받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긴 하는데…… 전에 기억 나? 타쿠미 선수 창현이가 이긴 영상 봤었잖아.”

마치 모든 웜홀의 위치를 알고 있는 듯한, 그 굉장한 변칙성까지 이용해 버렸던 경기.

한지수는 그제서야 조금 수긍한 듯, 무언가 골몰히 생각에 빠졌다.

‘아직 초짜들이라 속여넘기기 쉬워서 다행이라니까.’

하지만, 아마 레논에게서 똑같은 질문이 나온다면 이걸로 완전히 숨길 수는 없으리라.

오래 몸을 써 왔던 사람에게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을 집중하는 잠깐이라면 몰라도, 몇 명이나 되는 도플갱어를 무기를 바꿔 가며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인다는 건 전혀 설득력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레논이 마음을 추스른 것인지 어느 샌가 대기실에 나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둘이서 대화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죠.”

그렇게 둘만 감독실로 들어가는데, 막무가내로 레만이 끼어들어와 세 명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

“우선 이 밤중에 찾아와 갑작스레 이런 일을 벌여 미안하게 생각하네. 아까 그 경기를 보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그만…….”

놀랍게도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걸 인지하고는 있던 모양이었다.

근데 경기에서 봤을 텐데 확인이라니 대체……

“잠깐 움직이거나, 아주 단순한 움직임이라면 ‘혼돈’상황에서도 가능하지. 그래서 자네가 PSG경기에서 이기긴 했으나, 도플갱어는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네.”

아.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는 건가.

“그리고 그 결과 자네는 완벽하게 해 냈지. 허탈감과 동시에 씁쓸함이 몰려오더군…… 그래서 그건 대체 어떻게 한 겐가?”

“아까 혼돈상태에서 도플갱어들을 물리친 것 말인가요?”

그 말에 레논이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나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저희 팀은 한국 헌터스 리그 1부, 그리고 이어서는 국제리그를 바라볼 겁니다. 그렇다면 미국과도 경쟁하게 되겠죠.”

레만이 그 말에 웃었다.

“인터뷰에서도 능력의 정확한 상세를 물으면 얼버무리는 상황에, 경쟁팀에게 그 비법을 알려 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반면 레논은 그렇게 답할지는 몰랐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하긴, 자신의 팀과 이 팀을 경쟁상대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겠지.

하지만 내 말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긴 했다. 헌터 개개인의 능력은 간혹 팀원들과 공유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숨기는 부분이 있을 만큼 중대사항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실례이기 때문에, 등을 맡길 동료가 아니라면 묻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런데 그때, 파격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흠…… 틀린 말은 전혀 아니군. 그렇다면, 내가 몸 담고 있는 미국의 1부 팀의 동료가 된다면 물어봐도 된다는 뜻이겠군?”

현재 미국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제의를 한다고?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레논!!!”

레만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레논을 노려봤기 때문이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무언가의 박력이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레논은 그런 레만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자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미국 리그는 그 이상을 장담할 수 있을 거야. 부, 명예, 권력. 그 무엇이든. 미국은 그런 나라지.”

나도 알고 있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함께, 세계 헌터스 리그를 주름잡는 가장 큰 리그 중 하나였으니까.

“비지니스란 원래 그런 법이지. 의리가 아니라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법. 레만에게 미안할 필요도 없고, 레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네.”

이 사람. 레만이 바로 앞에 있는데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미국에서 헌터의 힘이 세긴 센가보다.

“아마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헌터스 리그는 단순히 스포츠의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네.

국제 리그. 그것의 존재만 봐도 알 수 있지. 탑은 더 이상 인류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는 하나, 아직도 탑엔 미지의 영역이 존재하지.

……아직도 ‘탑’의 개척은 진행 중인 부분도 있다는 거지.

미국은 그런 헌터를 키워 내기 위한 육성의 차원에서도 헌터스 리그를 크게 지원하고 있지.

좁게 보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확실히 다 맞는 말이긴 하다.

이 제의가 얼마나 큰 가치인지 알고 있는지, 레만은 옆에서 평소 모습과 다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참다 못해 입을 열어서 한다는 소리가.

“내가 자네만 믿고 이 팀에 얼마를 투자했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얼굴이 시뻘건 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불안하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레만이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은 처음부터 변한 바가 없었다.

“저를 높이 평가해 주신 건 기쁩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나 명예를 위해 여기에서 머무르는 건 아니라서요.”

‘내 팀. 오로지 내가 선수를 고르고, 전략을 짜며 방향을 정해 키워 갈 수 있는 그런 팀을 위해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레논의 팀은 유명하기도 하지만, 미국 리그가 워낙 빡세서일지 실제로 국제리그까지 나간 적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신다니, 성의를 너무 보이지 않는 것도 실례겠군요.”

나는 레논의 머리 쪽으로 손을 옮겼다.

“이게 무슨…….”

그리고 그 머리에 손이 맞닿자, [이상동몽의 지휘관] 효과로 환하게 빛이 퍼져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