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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30화 (130/270)

130화 결말

과거, 헌터들이 탑을 개척하던 시기. ‘몽환의 궁전’은 그 시기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악명 높은 맵이었다고 들었다.

그 악명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직 유물 발굴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에도 헌터들이 공략을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엔 당연히 ‘도플갱어’도 있지만, 그 화룡점정은 역시 도플갱어가 7명 이상 모이게 될 경우 나타나는 ‘혼돈’ 효과 때문이었다.

“어……?”

“몸의 감각이 이상해! 네 녀석들 대체 무슨……!”

도플갱어가 많은 곳과 가까워지자마자 나타나는 이 ‘혼돈’의 영향.

이 효과는 정말이지, 아무리 날고 기는 헌터라도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게 만들었으니까.

털썩.

“으…… 일어나려는데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왜 자꾸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야! 야! 도플갱어들 다가오는 거 안 보여? 정신 차려라.”

평소에 껄렁껄렁하던 모습을 보이던 오시환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혼돈의 영향을 받으면 온 몸의 감각이 꼬이니까.’

마치 뇌의 명령전달 회로가 꼬인 듯한 느낌이었다.

팔을 움직이려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고. 왼손을 움직이려 하는데 오른손이 움직인다.

그야말로 통제불능의 상황.

그런 상황에 도플갱어가 들이닥친다? 아무리 위기를 많이 겪어 왔던 프로 헌터이더라도, 제대로 된 싸움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리가.

“으…… 읏. 창현아 이건 대체…….”

“움직이지 말고. 검만 움직이는 것도 마음대로 잘 안 돼?”

“검도 좀 제멋대로 움직이는데. 감각의 연동이 이상해진 느낌이야. 제대로 움직여지는 것 같은 건 겨우 한 자루 정도…….”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도와줄 필요는 없어. 네 몸이나 잘 가눠 봐.”

“…….”

점점 다가오는 도플갱어에 윤한결도 표정을 굳혔다.

‘자…… 이제 시작인가.’

게임을 끝낼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

탑의 대부분의 맵에는 특별한 기믹과 생물이 존재한다.

다만 모두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기에, 헌터스 리그에서 경기를 시작해도 대부분은 그것들이 보여지지 않고 끝나는 것일 뿐.

‘하지만…….’

경기가 길어질수록. 그리고 혹여 참가한 선수가 그 맵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을수록. 그런 특별한 변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물론 맵이 수없이 많기에 그 많은 맵의 특별한 변수와 조건까지 외워 시뮬레이션 하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짓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경력 자체가 훨씬 긴 나라면 이야기는 다르지.’

거기에 나는 [꿰뚫는 눈]으로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맵에 대한 힌트 정도는 잔뜩 얻을 수 있었으니까.

‘몽환의 궁전’의 ‘혼돈’? 물론 대처하기 쉬운 기믹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커리어를 쌓는다는 것. 그것에 비할 바는 절대 아니었다.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기믹도 대부분은 이미 한 번 겪어 보고, 그걸로 이겼다는 것.

그것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왼쪽 팔 대신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 대신 오른쪽 팔인가.’

한 번 겪어 보긴 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기 어려운. 마치 내 몸을 처음 조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무리 회귀 전에도 ‘혼돈’기믹을 겪어 보고, 대비해 훈련까지 해 보았던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어떤가.

‘겪어 보기는 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 아니, 회로가 꼬인 것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조차 시간이 걸리는 게 정상이다.’

실제로 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순간적으로 눈을 감고. 집중했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는 하나, 찰나라도 원래의 습관대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가는 끝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서 상대에게 익숙해질 시간을 주고, 반대로 내가 당할 테니까.

게다가 해치워야 할 상대는 넷. 잘못해서 실수한다면, 럭키펀치라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저항하고는 있다고 하나, ‘혼돈’은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니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함이 중요했다.

동요하지 않고 지금 바뀐 것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행동을 의심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한 팔과, 한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듯한 이상하고도 묘한 감각.

견뎌 낸다.

마치 발가락을 오므리는 듯한, 감각으로 총을 쥔 손에 힘을 줘 들어올린다.

그 이상한 감각을 유지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은 채, 이상한 연동 체계를 떠올리며,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그래, 헌터에게서 사장된 무기. ‘총’이 유리한 점은 또 이런 것이겠지.

조작이 쉽다는 것.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지어졌다.

한 발.

온 몸의 감각에 혼란을 느껴 일어나고 엎어지고를 반복하던 한 녀석. 오시환을 죽였다.

타앙!

두 발.

몸에 큰 충격을 주면, 원래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자신의 팔을 베어 내던 녀석을 죽였다.

타앙!

세 발.

앞서 죽은 두 명을 보고 깨달은 것인지, 다급하게 마나 실드를 펼친 녀석. 하지만, 그 방향이 틀린 녀석을 죽였다.

“하…… 하하. 이런 미친. 뭐냐 너.”

마지막으로 남은 PSG의 이규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타앙!

네 발.

‘…….’

아쉽게도 네 발로 네 명을 잡는 건 무리였나 보다.

감각이 조금은 익숙해 진 것인지, 녀석이 한 팔을 들어 방어막을 펼쳐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버티기일 뿐.

‘마지막이니 조금 화려하게 가 볼까.’

남은 상대는 어차피 이규진뿐.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방금 전과는 달리, 에어앵커를 왼 손으로 잡고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무기를 검으로 바꿨다.

그렇게 공중을 활보하고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번에 이어지는 한 번의 참격.

그 참격이 마지막 남은 상대를 방어막 째로 갈랐다.

그 순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던 도플갱어들이 일시에 달려들기 시작했지만.

지잉 ㅡ.

그것이 채 닿기도 전. PSG의 패배로 경기가 마무리 되었다.

“재밌는 경기였다.”

***

한편 경기의 막바지. 2대 4로 PER이 막다른 곳에 몰린 순간. 관중석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상태에 있었다.

오로지 울려 퍼지는 건 중계진의 목소리들뿐.

[캐스터] : 아아……! 이창현 선수! 대체 무슨 생각이죠? 도플갱어들이 몰려 있는 쪽으로 오히려 가고 있거든요!

[해설자] : 2대4로는 승산이 없어 보이니, 차라리 도플갱어까지 끼워 난장판으로 싸워 보자. 그런 생각으로 보입니디만…… 솔직히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던 찰나. 이창현은 어느덧 도플갱어들이 잔뜩 있는 곳에 도착했고, 심지어 천장과 바닥을 부숴, 위, 아래층에 있는 도플갱어들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자포자기, 혹은 난장판으로 만들어 승부수를 보겠다고 생각한 순간.

하지만, 놀랍게도 도플갱어들은 제 자리에 못을 박는 듯 움직이지 않고 선수 일행들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캐스터] : 어? 왜 공격하지 않는 거죠?

[해설자] : 저 도플갱어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닙니다. 몬스터긴 하지만 지능이 인간 못지않죠…… 압도적으로 유리한 걸 자기들도 아는 겁니다. 저 6명이 한 팀이 아닌 데다가, 자기 쪽이 더 많으니까.

아마, 뭘 하나 지켜보려는 심산이 아닐까요? 게다가…… 7명의 도플갱어가 모이면 맵의 기믹 ‘혼돈’이 발동해 선수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아는 거죠.

[캐스터] : 이른바 독 안에 든 쥐다! 그걸 위에 구멍으로 지켜본다. 뭐 그런 거군요!

[해설자] : 그렇습니다! 아아……하지만 그럼 PER의 노림수는 완전히 물 건너가는데요……

그런 말들이 나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몸을 제대로 못 가누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가운데, 이창현이 혼자 멀쩡하게 일어서 총을 겨눈 것이었다.

그 다음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장면들이었다.

타앙! 타앙! 타앙!

한 번에 한 놈씩. 예전 이창현이 나왔던 어느 경기의 데자뷰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는지, 해설진은 벙 쪄서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마지막 순간에 이규진이 방어막으로 총을 막은 순간에야,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해설자] : 아아…… 그. 그래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건 아니니까요. 총이 무기 특성상 방아쇠만 당기면 되기에 가능한 플레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창현은 방어막으로 총탄을 막은 이규진을 향해 에어앵커로 날아갔다.

그리곤 마치 평소와 다른 것을 하나도 못 느끼겠다는 듯. 완전히 방어막까지 일도양단하는 일격.

그 일격에 모든 것이 끝났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해설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보이스가 비는 것은 방송에서 사고나 다름없었기에. 어떻게든 그 구멍을 메우려는 캐스터의 시도가 이어졌다.

[캐스터] : 이걸! PER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대 역전극을 펼칩니다!

도플갱어가 숨어들었던 위험한 순간을 뿌리치고, 이창현 선수로 둔갑한 김도준 선수의 활약부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도플갱어들 사이에서 대 역전극을 펼치기까지.

이 긴 경기가 끝내 막을 내립니다. 그럼, 잠시 후 선수 인터뷰가 시작되니 자리를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해설자가 정신을 못 차리는 듯 보이자, 아예 캐스터가 중계를 마무리해 버린 것이었다.

[해설자 영혼 빠진 표정.GIF]

ㄴ ‘총’은 방아쇠만 당기면 가능하기에 혼돈 상태에서도 유리해……

ㄴ 는 개같이 검으로 썰어버리기~

ㄴ 아니 근데 대체 어떻게 이창현만 움직인거임? ㅋㅋㅋㅋㅋ 이거 사기 아님?

ㄴ 그러게 난다긴다 하는 1부애들 다 빌빌기던데

[해설자 전문가 맞음? 뭐 하는 말마다 다 틀림ㅋㅋ]

ㄴ 2대4. PER이 압도적으로 불리해진 상황(X)

ㄴ ‘혼돈’상태에서는 몸도 못 가눌 것(X)

ㄴ 근데 일반적으로 보면 다 맞는말이잖아 ㅋㅋㅋㅋㅋ

ㄴ 해설자 전문성 ㄹㅇ 1도없음. 교체바람.

평소보다 훨씬 길었던 경기인 만큼, 경기가 화끈하게 마무리되자 평소보다 채팅창도 훨씬 활활 불타올랐던 것이었다.

그러던 도중. 역시나 경기가 너무 길었던 탓인지, 빠르게 승리팀 인터뷰 대상자가 발표되었다.

[캐스터] : 이번 경기의 MVP는……단연 이창현 선수!!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던 것이, 역시 이번 경기에 거의 상대 적 절반 이상을 죽인 것이 이창현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경기가 사실상 2부 리그의 1위 팀을 결정짓는 경기였기 때문이었던 걸까?

이번 경기는 이창현만을 인터뷰하지 않고, 화제가 되었던 다른 선수들 또한 인터뷰 대상자가 되었다.

이윽고, 그 대상자가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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