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노림수
때는, 아직 PSG를 상대하기 위해 2명, 4명으로 갈라지기 전.
이창현이 똑같은 모습으로 변한 나. 김도준에게 말했다.
“그쪽은 맡길게. 이기는 것까지는 솔직히 기대 안 하니까, 최대한 발목이라도 붙들고 늘어져봐.”
“발목잡기는 무슨. 오늘 경기에서 내 활약 안 보여?”
그래, 이번 경기에서 창현이에게 혼나기는 했지만, 솔직히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적에게 굉장히 혼란을 주면서, 꽤나 심대한 타격을 주는 데 성공했으니까.
게다가 그 변수는 아직 끝나지 않고, 둘로 흩어져서 싸우는 나와 이창현. 둘 다에게 이롭게 작용할 터라, 이번 경기의 MVP는 내가 아닐까 싶었다.
‘이게 얼마만의 MVP야…….’
자신만만하게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이런 임팩트를 경기 중에 꽂아 줬으니, 이제 창현이도 나를 벤치에 내릴 생각을 다시는 못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고.
“믿고 맡겨 봐. 내가 아주 남은 PSG녀석들을 도륙을 내 줄 테니까.”
“……그래라 그럼. 그래도 안 될 것 같으면 도망친다던가 시간 끄는 위주로 하고. 상대가 누구든 아마 만만하진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PER의 팀이 2명, 4명으로 갈라져 상대를 향해 돌입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몽환의 궁전 복도에서 발견한 건.
“아…… 아쉽게도 잔챙이인가.”
PSG에서 에이스로 유명한 한지후가 있는 쪽은 아니었다.
그 녀석을 꺾으면 거의 MVP가 확정되는 건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 몸이 양보하는 셈 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PSG의 상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와 이길한이 전위. 그리고 몰래 숨어서 서포트하기로 한 이연주. 후위와 서포트를 맡은 한지수의 콤비였다.
샤샥! 샥!
PSG의 녀석들은 당연하게도 아까 그 굉음을 의식하고 있었기에, 검을 피하기만 할 뿐. 여전히 막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플러그를 끼고 있는데도 막지 않고 피하네, 현명한 선택을 하는군. 재미있어.’
PSG의 어느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증폭기를 달아 이어플러그만으로는 소리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래 봤자, 나 김도준의 검을 막아 낼 수 없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 것을!
“검으로 몰아 세울 테니까, 연주는 스킬 쓰지 말고 있다가 커버만. 그리고, 나머지는 제가 몰아세우는 녀석을 점사하죠.”
과연. 효과는 상상한 그대로였다.
내 검이 마치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지팡이마냥, 막아설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쾌검 사용자의 검을 아무도 막아 세우지 못하는 상황. 이렇게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렇게 몰아세우다 보면, 반드시 결정적인 찬스가 오는 법.
마침, 내가 몰아세우던 PSG의 녀석이 이길한과 한지수의 커버에 의해 넘어져 베어 버리려던 순간.
“아…… 앗! 도준아!”
“……?”
이제 베어 버리면 한 명 컷인데. 왜 저렇게 다급하게 부르는 거지?
어차피 멈출 수 없는 동작이었고, 그대로 PSG의 녀석을 베어 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방어막?’
상대를 제지하기 위해 함께 달려들었던 이길한. 그리고 상대를 베려던 나. PSG의 상대방까지 방어막에 둘러싸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상황.
하지만, 시간은 그런 상황을 비웃듯 지나갔고, 나는 녀석을 베었다.
그런데……
‘웃고 있어?’
별 것도 해보지 못한 채로 적에게 당했는데 웃어……?
……그게 그 경기에서 보았던 마지막 풍경이었다.
그 순간, 웃으며 죽어간 PSG 녀석이 가득 품고 있던 마나봄버가 떨어지며 굉장한 소리를 내며 모두 폭발했으니까.
쾅! 콰콰콰쾅!
“야! 김도준! 이길한!! 이런 씨…….”
한지수가 낸 소리일까? 소리가 무언가 멀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
[캐스터] : 아아…… PER!! 이창현 선수가 있는 쪽은 승기를 이어 나가지만, 반대로 본대가 있는 쪽은 타격이 큽니다!
[해설자] : 이러면 경기가 힘들어지는데요…… 아무리 한지후 선수가 PSG의 주장이자 에이스라고 하지만, 사실 실속 있는 에이스 선수들이 더 잔뜩 있거든요.
방금, 방어막에 가둬 놓고 김도준 선수와 이길한 선수를 폭사시킨 이규진 선수. 그리고 현란한 개인기로 유명한 오시환 선수. 그 외에도 센스 있는 커버플레이로 정평 난 나머지 선수들까지…….
경기를 화면 너머로 보고 있는 중계진은 연달아 PER에 부정적인 전망을 쏟아 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PER의 본대 측은 김도준과 이길한이 한 번에 폭사해 버리자, 이규진의 센스 플레이에 한지수까지 한 번에 가 버리고, 이연주는 겨우겨우 도망쳤을 뿐.
이제 남은 인원은 3대 4.
그나마도, 대항할 수단이 숨고 도망가는 것 밖에 없는 이연주도 잡히는 건 시간문제.
그러면 사실상 2대 5라고 보아야 했으니까.
그런 일반적이고, 경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상황.
옵저버는 이제 사실상 2대 5로 마무리 일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찰나에, 의외의 것을 비추었다.
[캐스터] : 후…… 이제 이연주 선수도 당했으니, PER측에 남은 건 윤한결 선수와 이창현 선수. 그 두 명의 선수로 PSG의 5명의 선수를 상대해야겠군요…….
한지후 선수를 처리했을 때, 두 선수가 협공으로 오시환선수라도 빠르게 정리했다면 그나마 좀 해 볼만했을 텐데……
PER측에선 상황이 좀 절망적이겠군요? …… 그런데 옵저버가 갑자기 비추는 이것들은 뭐죠? 도플갱어……? 인가요?
캐스터가 가리키는 화면에서는 하나, 둘 늘어 가던 도플갱어가 어느 순간엔가 꽤나 늘어 이제는 7명 즈음까지 늘어 있었다.
PER과 PSG측에서 최대한 도플갱어를 피해 가며 전투했지만, 맵에선 꾸준히 도플갱어가 생성된 결과였다.
[해설자] : 네 맞습니다. 아까 전에 PER에서도 변수로 작용해 류재준 선수가 탈락한 맵의 기믹이죠. 경기가 길어져서인지…… 벌써 도플갱어가 이렇게 늘어 있었군요.
[캐스터] : 오…… 그럼 혹시. 옵저버가 굳이 잡아 줬다는 건, PER에게 이 도플갱어를 사용한 역전의 변수가 있는 걸까요?
[해설자] : 이 맵엔 도플갱어가 7명 모이면 발생하는 특별한 기믹이 있습니다만…… 아마 이제 직접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PER이 유리해지는 건 아니고…… 과거에 이 ‘몽환의 궁전’에서 그 많은 헌터들이 죽은 또 다른 이유를 보여 줄 수는 있겠군요.
해설자가 조금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분명한 것은, PER이 압도적으로 불리해진 이 상황.
경기가 무지막지하게 길어지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맞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더…… 버티긴…… 힘들…… 것. 같아…….”
이어폰으로 더 이상 숨이 차서 말하기도 힘든 듯, 이연주가 말을 쏟아 냈다.
‘그래도 이연주가 혼자 남은 상황에 이 정도면 많이 버텼지.’
김도준 쪽 PER의 본대가 전부 당했다는 것도, 사실상 이연주 덕분에 다 알 수 있었으니 이연주는 충분히 제 할일을 다 했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그 직후, 이연주의 통신이 끊겼다.
“연주도 탈락한 거지?”
윤한결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크윽…… 내가 조금만 더 집중해서 녀석의 발목을 잡았으면 그래도 2대 3까지는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윤한결은 아마도 아까 전, 잠깐의 실책으로 오시환을 놓쳐 자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지수도, 이연주도 없는 상황에서 [신속] 같은 능력이 있는 적의 뒤를 붙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딱히 자책할 필요는 없어.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래.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어때, 방법은 보여?”
흠…… 이번 경기의 타개책이라.
사실 PSG가 한지후의 포스가 강하지만 실은 다른 팀원들도 비슷하게 강한 편이었다.
김도준 측이 쪽도 못 써 보고 당했던 것처럼.
즉, 2대 4의 정직한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
그걸 알기에 윤한결도 자꾸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방법이라. 뭐 별 거 있겠어? 다 피하고 다 맞추면 이기는 거지.”
“오…… 뭐야. 가능하겠어? 뭔가 또 신기술이라도 준비해 온 거야?”
윤한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윤한결은 나를 너무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번 경기에서 새로운 걸 그렇게 많이 썼는데, 2대4 상황에서 경기를 뒤집을 신기술?
그런 건 굳이 따지면 ‘만개’를 개방하는 것 외에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바로 1부 리그에서도 최상위권 선수 수준의 능력치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고, 대신……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게 하나 있긴 했다.
“신기술은 아니고, 마지막 남은 희망이 하나 있긴 하지.”
“그게 뭔데?”
“헌터스 리그의 수많은 맵들 중에서, 경기에 시간제한이 걸리지 않은 몇 가지 맵이 있어.”
“그런데?”
“우리가 지금 경기 중인 ‘몽환의 궁전’도 그런 맵이지. 근데 그 맵들이 왜 시간제한이 없는지 알아?”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답은 뻔하니까.
“그렇게 버티는 경기운영이 어차피 불가능한 맵이니까 그런 거야.”
자, 이제 길고 길었던 PER과 PSG전. 그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시간이다.
***
“헉…… 헉…….”
“뭐야 오시환. 그렇게 장담하더니만, 털리고서 도망까지 친 거야?”
“헥…… 아니 너희들은 쉬운 애들 상대했으니까 이기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어? 진 건 내가 아니라 한지후 그 자식이라고.”
“패배한 꼴이 보기 좋네. 오랜만에. 꼴 좋다~.”
“잡담은 됐고, 이 경기도 이제 지겨우니까 빨리 끝내자. 좀. 2대4면 전면전으로 가면 압살이니까.”
그래. 이 길었던 경기도 이제는 진짜 끝이리라.
이번 경기가 끝나면 한지후에게나 한 마디 해야지.
평소에 콧대만 잔뜩 높아져 있는 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9시 방향 쪽으로 도망가고 있네. 빨리 가서 끝내고 회식이나 하자고. 2부 리그 전승 아닌가?”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서포팅 능력을 지닌 팀원이 살아 있던 PSG였기에. 어느새 벌써 눈앞에 PER의 녀석들이 보였다.
“어차피 다 진 게임 그러게 왜 도망을 가. 도망을. 추하게시리. 그냥 장렬하게 들이박고라도 끝내지.”
PER녀석들에게 한 마디 안하려고 해도, 할 수 밖에 없는 말들이었다.
“괜히 우리 피곤하게 하려고 그런 거냐? 아니면 뭐, 정신으로 이겨 낸다. 약간 그런 구식마인드?”
“…….”
PER녀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 뭐. 어차피 대답을 기대한 말은 아니었다.
“애들아, 끝내 버리자고.”
“네 선배님!”
PSG의 오시환이 날아들고, 내가 방어막과 에어비트로 서포팅해 주기 위해 신경을 집중시켰다.
빠르고, 정확하게 끝내기 위해서.
그런데 그 순간. 그 녀석. 이창현이 검을 대포 같은 것으로 변환 시킨 후 조준한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위…….’
먼지를 일으키고 다시금 도망갈 시간을 벌 셈인가. 잔머리를 굴리는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샌가 무너진 벽에서, 녀석들의 뒤에서. 그리고 우리 팀의 뒤에서 도플갱어들이 등장했으므로.
‘대체 몇 명을…….’
이동 궤도가 약간 이상하다 싶었더니, 어그로를 끌며 꼬리를 잔뜩 달고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이해는 되지 않았다.
도플갱어를 끌어들여 개판을 만들더라도 결국 불리한 건 인원수가 적은 녀석들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금 전투를 이어 나가려던 찰나.
“어…….”
몸의 감각이 이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