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승리인가 패배인가
헌터스 리그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선수가 경기 속에서 느끼는 것이랑, 모든 걸 알고 보는 관중이 느끼는 것이랑 큰 차이가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지금 이 경기가 특히 그랬다.
전략과 전략이 얽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는 선수들과 달리, 관객들은 모든 걸 볼 수 있었으니까.
[아니 눈뽕좌 왜 이상한 허연 거적데기같은거 들고옴?]
ㄴ 눈뽕으로 한 번 맛 보고 걍 다이소 됨. 쓸 만해 보이면 이것저것 긁어다 모아옴 ㅋㅋ.
ㄴ 이번엔 또 뭐이려나 ㅋㅋ
ㄴ 나같아도 못참을 것 같긴 함.
ㄴ 어……어? 저거 뭐냐? 변신하는거냐?
얼마 지나지 않아, PER의 팀원들이 자리를 잡고
후방에서 대기하던 하얀 거적때기를 입은 김도준의 모습이 이창현으로 변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선수는 변신한 걸 모르는 듯했지만, 외부 옵저버로 보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팀원과 똑같이 변신하는 마나장비라니, 특질계열 마나장비가 아무리 다양하다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어 쉽게 쓰이지 않았으니까.
한편, 어떻게 쓰일지도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다. 똑같이 변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 직후, PER과 PSG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해설자] : 아아…… 마나봄버! PER의 주 장기인 폭격기 전술이 작렬합니다. 하지만 PSG에게 타격이 그리 크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만.
[캐스터] : 그런데 해설자님. 저거 뭐죠?
옵저버가 먼지구름이 일어난 전장에서 PER측을 확대했다.
[캐스터] : 이창현 선수랑 이창현 선수로 외형을 변신한 김도준 선수가 자리를 바꾸고 있는데요? 저렇게 함으로서 얻는 이득이 있을까요…….
[해설자] : 그건…….
솔직히 해설자도 모든 걸 알 수는 없었기에, 말꼬리가 흐려지고 있었던 찰나.
그 이유는 굳이 해설자가 해설하지 않아도 몇 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다시 먼지구름이 가라앉고, 이창현과 김도준의 자리가 바뀌었을 때.
한지후와 김도준의 검이 맞닿은 순간.
끼이이이익 ㅡ.
굉장히 강렬한 소음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눈뽕좌에 이은 귀갱좌]
ㄴ 아니 ㅋㅋㅋㅋㅋ PSG선수들 다 쓰러진 거 봐.
ㄴ 귀에서 피나는 거 같은데?
ㄴ 아니 진짜 미치겠네 ㅋㅋ.
ㄴ 같은 팀원들은 괜찮은 거임??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리를 바꿔 후방에 자리잡은 이창현이 저격총으로 지원사격이 이루어졌고, PSG가 몰려 도망가는 모양세가 되었으므로.
[해설자] : 이 경기가 이렇게…… 김도준 선수가 준비해 온 특별…… 전략이 전황을 바꿉니다!
[캐스터] : PER이 PSG를 완벽한 전술로 몰아세웁니다! PSG…… 뿔뿔이 산개해서 도망을 택합니다.
경기 예측과는 달리, 전황은 PER이 잡은 듯 보입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는군요.
한편, 경기 화면을 흐뭇하게 보던 레만과는 달리 거구의 흑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저 PER이라는 팀은 놀라움의 연속이군요. 하지만…… 저 전술이 막힌 시점에서 어렵게 되었습니다.”
“분위기도 좋구만 왜 그러나.”
“냉정히 보면, PER의 전술은 대부분 상대가 모를 때 힘을 발휘하거나 소모적인 전술…… 이제 남은 건 진짜 힘 싸움뿐인데, 결국은 6대 6입니다. 그럼 결국 힘의 순리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흠…… 그런가.”
레만이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끌끌…… 힘싸움이라.”
헌터스 리그 파티장에서 보았던 한 켠의 미니게임. 엄청난 크기의 해골 덩어리를 공략하던 이창현의 모습이 기억나서였을까.
레만은 무심코 내뱉었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지.”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PSG와 PER의 힘 차이가 극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
가끔 이런 경기가 있다.
어떤 전략을 써도, 상대가 능숙하고 체급이 좋으면 준비한 전략이 잘 안 통하는 경기가.
‘다른 팀이었다면 진작 끝이 났을 텐데. 과연 PSG인가.‘
처음은 전면전으로 연막을 한 후, 김도준과 나를 바꿔치기.
그렇게 소음에 대한 면역이 없을 때, 고막이 터질 정도의 소음.
그리고 그 소음을 틈타 상대방의 급소를 핀 포인트 사격.
전략의 수순이 꽤나 복잡한 만큼, 이번 전략은 솔직히 꽤 강력하다고 평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렇게 보호막과 에어비트로 다 커버를 할 줄이야…….’
1부 리그에서 만났다고 해도 믿을 만큼, 꽤나 훌륭한 커버 및 후방 지원 능력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는 아니라는 거.
“창현아. 근데 전면전으로 가면 우리가 불리하다고 하지 않았어? 소모한 것도 너무 많고.”
“확실히. 그런데, 이 경기는 오래 끌수록 우리한테 안 좋은 점이 더 있으니까. 전처럼 끄는 건 불가능해.”
“안 좋은 점이 저번에 설명한 것보다 더 있다고?”
“……그래.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도 도플갱어가 더 나올 거야.”
이게 ‘몽환의 궁전’의 무서움이기도 했다.
아직 안에서 돌아다니는 “진짜”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은 도플갱어와, 새로 생성되는 도플갱어까지.
점점 버티는 것 자체가 버거워지는 맵이었으니까.
그뿐만인가, 이 맵에는 그런 도플갱어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혼돈’이라는 특수한 기믹도 있었다.
‘물론 이번 경기는 거기까진 안 갈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되면, 기본 스테이터스도 높고, 베이직한 능력으로도 강한 힘을 발휘하는 PSG가 훨씬 힘을 쓰기 좋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튼 빨리 붙는 것이 차라리 변수가 적고, 더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김도준의 소음 가득한 검 때문에 모여서 교전을 하는 걸 꺼릴 텐데, 한편으로는 그것 때문에 이어플러그를 하느라 이어폰도 못 쓸 테니까.
‘그 빈틈을 파고든다면…….’
가능성은 분명 있다.
***
“야. 그 녀석들 이쪽으로 몰려오는데?”
“아냐. 마나 반응 보면 다 가는 건 아닌 것 같고…… 몇 명만 가는 것 같은데.”
“이어플러그 끼고. 그 소음 뿜어내는 검 없는 것 같으면 이어폰 껴.”
“그럼 각개격파인가? 그럼 먼저 교전 들어간 팀이, 그 검 있는 녀석 있는지 확인해서 말해 주고 그렇게 하자고.”
PSG의 팀원 간 통신은 그게 끝이었다.
‘드디어 녀석들이 움직인 건가…….’
한지후로서도 바라는 흐름이었다. 녀석들이 두 팀으로 흩어졌다니.
그럼 한지후는 오시환과 함께, 그 기괴한 검이 없는 녀석이 있는 쪽을 먼저 격파하면 그만이었다.
나머지 PSG팀원들이 검을 맞대주지 않고 도망가며 버티는 동안, PSG가 그 녀석들을 쉽게 쓰러뜨리고 합류한다.
그리고 그 인원의 우위로 시끄러운 검을 가진 녀석과 맞대지 않고 이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정말 잡스러운 녀석인데, 그 소음 하나는 끝내주게 커. 귀찮은 경기를 만들었다.
이어플러그를 껴서 괜찮을 정도였으면 아예 전원 이어플러그를 끼고 싸웠을 텐데…….
충돌 당시 이어플러그를 끼고 있던 이규진도 겨우 커버했을 뿐 굉음에 아직도 몸서리 칠 정도였으니, 아직은 그게 현명한 생각이 아닌 듯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전에 들어간 PSG의 다른 팀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이 녀석 그 검 들고 있어. 우리가 버틸 테니까, 먼저 정리하고 합류해. 뭐, 그래도 한 번 상대는 해볼 게. 해볼 만하면 우리가 잡고. 이제 이어폰 끈다.”
‘경기가 단순해졌군.’
이제 한지후는 지금 다가오는 PER녀석들을 격퇴하고, 팀에 합류해서 녀석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끝날 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난 건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건너편 PSG의 팀에서 검 들고 있다고 한 녀석이 나타났댔는데…….
‘왜 여기에도 녀석이 있는 거지?’
건너편에는 이창현이 녀석의 동료와 함께 고고하게 서 있었다.
***
‘한지후랑 오시환…… 인가.’
이창현으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못미더운 김도준한테 맡기는 것보다 자신 쪽이 더 어려운 상대를 맡는 게 좋았으니까.
아마 구도는 2대2 / 4대4.
이쪽의 경우 나, 윤한결 / PSG측은 한지후, 오시환이었다.
“이쪽이 일종의 대장전인가.”
이창현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PSG측 선수들의 반응은 영 좋지 않았다.
“대장전은 무슨. 그런 졸렬한 칼이나 차고 다니는 녀석이 헌터랍시고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게 신기하군.”
한지후가 제대로 비꽜다.
‘후……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김도준이었는걸.’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걸 지금 말할 수도 없고. 아무튼 답답한 노릇이었다.
“더 나눌 말은 없는 것 같네. 한결아.”
그 말이 마지막 대화였다.
창을 쓰는 오시환, 그리고 순간이동과 동시에 강렬한 검술로 상대를 꿰뚫는 한지후.
그 둘을 향해 이창현과 윤한결이 달려들었다.
그런데 역시. 재미있는 점이 있었다.
‘둘 다 이어플러그를 끼고 있네.’
아까 그 괴성이 난 검을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더욱 좋았다.
샥!
한지후는 내 검을 막지 못하고 피하기만 연발했으니까.
하지만 또, 그렇다고 내가 일방적 공세만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슝!
녀석의 텔레포트는 마나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지, 갑작스레 텔레포트로 이동하며 사각에서 나를 노렸으니까.
‘아마 류재준도 도플갱어의 이 능력에 당했던 게 아닐까.’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목을 찌른다면, 아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절명하겠지.
그리고 그건 아마 PER의 누구라도 그럴 가능성이 크리라.
‘단, 내가 아니라면 그렇지.’
[꿰뚫는 눈].
나는 무기의 궤적과, 상대의 능력만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도 볼 수 있었다.
슝!
샥!
뒤에 텔레포트 하는 한지후를 향해, 한지후가 완전히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나는 그 방향으로 칼을 내질렀다.
“큿…….”
마나의 잔재. 흐름으로 인한 전조. 그건 아무리 텔레포트라고 하더라도 헌터의 능력인 이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게다가 녀석은 소리를 의식해 녀석의 무기로 내 검을 막지도 않고 있었다.
텔레포트를 이용한 급습도. 무기술로 합을 나누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김도준이 나오게 된 순간부터, 그리고 지금 흩어져 만난 상대가 내가 된 순간. 넌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시작한 거다.’
김도준의 바꿔치기 전술이 한 번 통한 이상. 그리고, 그걸 알아채지 못한 이상. 이건 예견된 수순이기도 했다.
심리전. 어느 곳에도 답은 없는 불리한 양자택일.
마나가 바닥났는지, 누구나가 우러러볼 만한, 강력한 능력. 텔레포트를 가지고 있는 한지후는, 검을 피하지도, 막지도 못한 채로 급소에 찔렸다.
“크…… 읏…… 이…… 새끼…… 가…….”
녀석은 그렇게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로, 허무하게 이번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편, 오시환과 윤한결의 싸움은 꽤나 팽팽하면서도 느슨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쪽으로는 우리의 싸움을 보면서 한 마디씩 내뱉었으니까.
“휘유~ 항상 자기혼자 센 소리하더니 거의 제일 먼저 죽어 버리고. 얼굴은 어떻게 들고 다니나 몰라.”
“창현아…….”
화색을 띄는 윤한결과, 한지후를 보고 비웃는 PSG의 오시환.
‘근데 저 녀석…… 이제 2대1을 감당해야 할 텐데. 웃는다고?’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지후와 싸우느라 집중했기에 깨닫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건너편으로 간 팀원의 콜이…… 없다.’
어쩌면 위기인 건 저 녀석이 아니라, 윤한결과 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