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변신망토
PER측에서 터뜨려 버린 마나봄버로 인해 먼지구름이 잔뜩 일어나자, 일시적으로 서로 폭발을 피해 흩어졌기에 싸움은 멈췄다.
하지만 그 정적도 잠시.
차차 시간이 조금 지나고 먼지가 가라앉아 앞을 볼 수 있게 되자, 다시금 서로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쟤네…… 한 명도 안 당했어.”
PER 측에서 준비한 폭격기 전술까지 가미한 한 방 전술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역량을 PSG의 오시환 한 명에게 집중했음에도, 별다른 부상도 입히지 못했던 것이었다.
“어떻게…….”
윤한결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분명 그 거리에서 마나봄버를 피할 방법은 없었을 텐데……
“앗…….”
그러나 냉정하게 천천히 생각해 보면, 뚫고 나올 구멍은 분명 있었다.
한지후가 오시환을 들어 끌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그 텔레포트 능력으로…….”
순식간에 오시환을 들어다 텔레포트를 해 마나봄버를 피했다. 그런 것이 아닐까.
정말이지 성가신 능력이었다.
장기전으로 갈 경우, 전술에 소모되는 아이템도 많고, 1명이 이미 탈락해 6명인 PER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붙지 말고 저번처럼 유물을 찾는다던지, 다른 전략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더를 내리는 건 자신. 윤한결이 아니라, 창현이었으므로 지금은 오더를 잠자코 기다릴 뿐이었지만.
“어떻게 할 거야 창현아……?”
그런데 옆에 있는 이창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손짓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있었다.
평소랑 다르게 뭔가 묘한 분위기를 내고 있긴 했는데, 뭐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건가?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돌입하자고?’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창현이의 오더가 틀린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았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먼지구름이 완전히는 가라앉기 전.
다시 PER의 3톱. 이길한과 윤한결. 이창현이 돌입을 시작했다.
‘그런데 김도준은 왜 전위에서 뺐던 거지? 후방에서 걔가 할 일은 없을 텐데…… 아냐. 집중하자.’
당장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해야 했다.
먼지구름을 헤치고 다시 상대편으로 진입하니 방어막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창현의 과거 경기를 찾아봤나보네.’
먼지구름을 일으켜 시야를 제한하고 사격으로 모조리 학살했던 이창현의 사격을 경계하는 듯 했다.
적어도 먼지구름이 내려앉을 때까지.
“뭐야. 총도 안 쏘고 그냥 왔네? 너희 멍청이 아니냐? 야~ 현수야 규진아 서포팅 잘해라. 이제 쟤네 마나봄버도 없으니 하나하나 썰어 주러 직접 갈 거니까.”
PSG의 한 선수가 말하곤 그 말을 시작으로 다시 PER과 PSG의 전위 간 힘싸움이 시작되었다.
지금에서야 아까 느낀 이창현의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창현이가 총을 안 들고 있네…….’
상대의 커버를 의식해서 쌍권총이 아니라 검을 써서 제대로 상대를 몰아붙이려는 생각인 걸까.
확실히 이창현의 무기변환 능력과, 무기술 능력이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창현이 상대방의 대장격인 인물, 한지후에게 달려들어 무기로 합을 나누는 순간.
끼이이이이이이익 ㅡ.
“…….”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거기까진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어도 그려러니 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분명 그 긁는 듯한 소음은 별로 크지 않다고 느꼈는데, 상대하는 PSG팀원들의 반응이 극렬했던 것이었다.
“다들 귀 괜찮지? 지금 몰아붙이자.”
교체한 이 이어폰 때문일까? 아무래도 이 이어폰이 저 굉음을 막아 준 듯했다.
그리고 그 굉음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PER의 선두 측에서 공세에 나서기 직전.
팀 PER의 뒷편. 후방에서 총소리가 났다.
타앙!
‘어…… 저건 또 무슨……. 앞에서 싸우는 게 창현이가 아닌가?’
윤한결은 지금 돌아가고 있는 전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이어폰에 오더가 내려진 대로, 적들이 소음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함께 이기어검으로 공세에 나설 뿐이었다.
***
한편, 강렬한 소음을 일으키며 싸움을 일으키고 있는 PER과 PSG의 격전지 뒤쪽에는 어찌된 일인지, 이창현이 평소처럼 저격을 하고있었다.
분명 격전지에서도 전위로 칼을 들고 윤한결의 옆을 지키고 있었을텐데. 어떻게 된 일일까?
‘김도준 녀석…… 그런 걸 만들어 올 줄이야.’
답은 단순했다.
김도준이 이번에 가져온 마나장비이자, 허물 같았던 그것. 그건 인비저블 클록의 응용 버전으로, 일종의 변신망토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먼지구름이 일어나 서로를 확인할 수 없었던 사이에, 이창현이 후방으로 가고 이창현의 모습을 한 김도준이 앞으로 나선 것이었다.
그랬기에. 저 소음을 내지르는 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내가 아니라 김도준을 경계했을 테니까…….’
그 자리엔 분명 내가 있었으므로, 내가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총을 검으로 변환시켰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있는 건 저 기괴한 검을 든 김도준이었고, 그 검의 소음으로 그렇게 무력화된 적을.
타앙!
한 명씩 저격한다. 그 뿐이었다.
“제기랄!”
[꿰뚫는 눈]으로 증강되어 자세히 보이는 상대편 측의 상태는 꽤나 심각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고막에서 피를 흘릴 정도라니…….’
아무래도 저번보다도 출력을 훨씬 강하게 조정한 듯싶었다. 한지후가 그에 대해 뭔가를 준비해 놨는지, 팀원들에게 무어라 계속 말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너무 큰 소리를 들어 귀가 먹어 버린 것이었을까. PSG의 팀원들은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우리 측은 미리 준비한 특수 이어폰으로 귀를 보호해 큰 충격은 없었다.
즉, 지금이 기회라는 뜻이었다.
“밀어붙여. 연주. 지수. 커버하기보다는 상대의 발목을 붙잡는 쪽으로.”
“알았어.”
PSG의 진영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그 한 번의 강한 파장으로 의사소통이 힘들 뿐더러, 그 강한 개인전력을 가진 PSG로서도 직접 충돌을 꺼리고 있었다.
특히, 내 흉내를 내는 김도준의 검과의 충돌을.
‘저런 소리를 내는 검이라면, 나라도 검을 못 맞대겠지.’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끝은 뻔하다. 검을 다른 무기로 맞대어 막지도 못한다? 그저 피하기에 급급하고, 그러면 결국 수세에 몰릴 뿐.
그래서 본격적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려던 찰나.
“……!”
PSG의 진형. 나처럼 변장한 김도준의 쾌검을 피하던 한지후에게서 강렬한 마나파동과 함께 사자후가 뻗어 나갔다.
“흩어져!!!”
‘크……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에서도 판단력 하나는 괜찮네.’
적이지만 솔직히 감탄했다.
좋은 선택이기도 했고.
물론 도망가는 적을 이연주의 [속박]이나 한지수의 [중력]능력이 붙잡았지만, 상대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난장판 속에서도 서로 적절히 커버를 해줘, 부상은 입더라도 결과적으로 잘 도망갔으니까.
‘잡은 건 겨우 한 명 뿐인가...’
“뭐야. 별거 아니네. 크하하.”
이번 싸움에 크게 만족했는지, 김도준 녀석은 웃고 있었고 다른 녀석들은 약간은 벙쪄 있었다.
“너 도준이냐?”
“목소리 듣고도 모르겠어?”
“와…… 뭐냐. 그냥 생긴 게 똑같은데. 이게 아까 말했던 그……?”
PSG와 처음으로 맞붙은 교전. 그 교전에서 이득만 거둬 갔기에 꽤나 팀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잡담은 그만. 방금 교전에서 생각보다 피해를 못 줘서 이번 경기는 더 어려워졌어.”
“……? 뭐?”
솔직한 전황은 완전히 반대였다. 방금 교전에서는 적어도 3명. 3명은 처리했어야 비등비등하거나 우세를 점칠 수 있었을 텐데……
“이미 김도준은 저 검을 한번 전에 보여줬었어. 뭔가 대처할 거리를 가져왔겠지. 단지 김도준이 안 보여서 그걸 사용하기도 전에, 나로 변장한 페이크에 당한 것일 뿐.”
“아…….”
그뿐만일까. 우리 쪽은 일회성 전략인 폭격기전술도, 그리고 비장의 전술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대부분 들켜 밑천이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아까 그 교전에 사활을 더 걸었어야 했는데……
‘전위만큼이나 커버도 수준급…… 인가.’
이전만큼 상대를 흔들어 놓아도, 쉽사리 총에 피격당해 죽는 법이 없었다.
서로 에어비트를 던져 주거나, 마나실드를 생성해 막아 내거나. 혹은 방어막 능력자가 가세해 커버를 쳐 줬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고민이 조금 길어졌다.
이번은 저번처럼 따로 누군가를 보내 특별한 전술을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이 맵에서 등장하는 ‘도플갱어’의 기믹 때문에 PSG라면 모를까 개개인의 무력이 아쉬운 PER로서는 떨어져 행동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으니까.
“위치는 파악하고 있지? 어때. 다들 떨어져 있어?”
“방향은…… 비슷한데…… 거리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같아…….”
‘진영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가 몰려가서 한 명을 집중공격하면, 다시 한 번에 모여 싸먹듯 덮쳐 공격하겠다는 것 같은데…….’
이 경기에서 남은 건, 어쩌면 진검승부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
“크으윽…… 졸렬한 새끼들이”
반면 PSG측은 완전히 팀 분위기가 뒤집어져 있었다.
한지후가 김도준의 그 시끄러운 검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걸 대비해서 경기에 이어플러그를 모두 지참시키도록 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김도준이라는 녀석이 아니라 총을 쓰는 주장. 이창현 녀석이 쓸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어플러그를 낀다는 것은, 이어폰을 뺀다는 것.
그건 몽환의 궁전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검을 쓰는 이창현 녀석이 난동을 피우면서 또 뒤에서 지원사격이 총으로 들어왔는데?
그럼 또 그건 누구인가.
혼란스러웠다.
총을 쏜 건 누구고, 검을 쏜 건 이창현이 맞는 건지. 그리고 녀석들은 그 굉음을 듣고도 어떻게 멀쩡했던 건지.
‘아... 다른건 몰라도 어쩌면 소음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외부의 소음을 차단해주는 이어폰을 꼈다면. 그런 소리가 났어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헌터스 리그의 이어폰은 세세한 기척이나 외부의 소리를 들어야 했기에 소음 차단 기능이 없었는데, 어쩌면 저 검을 준비함과 동시에 이어폰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그 빈틈을 파고들어 매운맛을 보여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외에 이상한 점은 뭐... 별로 중요하진 않으니까.’
지금 당장 대책을 강구할 필요는 없으리라.
한편, PSG는 한 명이 당했지만 그리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결국엔 이길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이 있어서였을까.
귀가 다친 사람이 상당수임에도, 웃으면서 서로 팀 보이스로 대화하고 있었으니까.
“휘유~. 경기 아까 거기서 종칠 뻔했네. 그래도 규진이가 다 커버 쳐 줘서 살았네. 걘 아까 고막 터지는 소리 듣고도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데? 난 지금도 귀가 아프고 먹먹한데.”
“규진이는 합류하자마자 이어폰 벗고 이어플러그 꼈다더라.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 나타나기도 전에 혹시 모르니까 낀다고.”
“이어플러그가 살렸네. 킥킥킥킥.”
당했는데도, 유쾌하게 지들끼리 떠드는 꼴이라니.
연승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분위기가 좋은 것은 좋지만, 경기를 진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한지후로서는 한심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진지하지 못하니까 1부에서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거겠지. 뭐 이 팀도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테니. 아무튼.’
“녀석들은 아마 그 소음을 차단하는 특수한 이어폰을 낀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우선 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경기부터 끝내고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