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26화 (126/270)

126. 팀이란 것

김도준이 벗어 놓은 묘한 마나장비를 보니,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때는 지금 PSG와의 경기보다 꽤나 오래 전. 아마 그 빛나는 검에 인비저블 코트까지 입었는데, 그 전술이 상대 팀에게 막혔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얼마 후, 모라스 공방에서 연락이 왔었지?’

나한테 이야기도 안 하고, 김도준이 찾아와서 새로운 마나장비 개발에 대한 상담을 했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사실 모라스 공방에서 연락이 나에게도 왔기에 김도준이 모라스 공방과 뭘 만들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긴 했다.

김도준이 그걸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어떤 타이밍에 사용할지 궁금해서 냅두고 있었을 뿐.

‘그걸 지금 들고 나온 건가…….’

솔직히 ‘몽환의 궁전’ 맵이 나온 지금에 들고 온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맵의 컨셉이랑 꽤나 비슷한 것이…… 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걸 이 맵에서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응용할 수 있을지는 약간은 미묘했다.

물론 나로서는 저걸 사용할 많은 방법이 생각나긴 하는데……

김도준이 과연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고민하는 새에, 김도준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잔뜩 꺼내 놓았다.

“원래 쓰던 이어폰은 벗어 놓고, 이걸로 써. 오늘 준비한 전략에 맞춰서 새로 준비한 거야.”

‘전략에 맞춰서 새 이어폰을 준비했다고?’

“너 설마 저번에 그 칠판 손톱으로 긁는 소리 나던 검을…….”

“…….”

그제서야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굉장한 소음을 일으키는 검. 그리고 전신에 착용하는, 그 마나장비. 그리고 김도준이 준비해 온 특수한 이어폰.

반 정도만 알고, 나머지는 무슨 꿍꿍이를 지니고 있는지 어렴풋이 예상만 했을 따름이었는데.

각각의 장비로 할 수 있는 전술이, 하나의 선이 되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다 보여 준 것들의 조합이었달까.

‘재미있네.’

내 반응을 보고, 김도준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 확실히 이쪽으로는 난 놈이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악!”

나는 감탄하고 웃으면서도, 웃는 얼굴로 김도준의 머리를 쪼개 버릴 듯 꿀밤을 먹였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 안하고 하면 경기에서 그대로 빼 버릴 줄 알아.”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는 발언.

이번에야 개별로 다 알고 있는 장비였고, 어떻게 사용할지 반쯤은 예측한 상황이었으니 그나마 괜찮았지만……

다음엔 또 어떨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분명 긍정적 변수를 불러왔고, 경기에서 특별하게 작용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때도 있어.’

지난 3부 리그에서 갑작스레 말도 하지 않고 들고 나와 윤한결과 이길한에게까지 폐를 끼쳤던 빛나는 검도 마찬가지였다.

헌터스 리그는 분명, 아무리 팀원이라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오픈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았다.

팀을 옮길 경우까지 생각해야 하고, 그 능력이야말로 자신의 밑천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전술’을 준비할 경우. 팀원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제대로 된 전술 구사를 위해 정보를 공유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을 기회삼아 따끔하게 말할 수밖에.

“알겠어?”

“……알았어.”

어쩌면, 예상치 못한 활약. 그것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이런 특수한 장비를 이용한 전술은 저번에도 느꼈다시피, 굳이 김도준 자신을 내보내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었기에.

그렇기에 더욱 선수이지만 감독인. 나에게 말하지 않고 경기에서 깜작 이벤트처럼 사용하려고 한 것이겠지.

‘자신이 경기에 나갔을 때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선수로서만 살았던 회귀 전 삶으로서는 눈치채지 못했을 부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야가 넓어진 지금에서는 선수의 입장도. 감독의 입장도 알았기 때문일까.

김도준이라는 녀석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완전히 이해가 갔다.

‘뭐. 못한 부분은 못했다고 해도, 잘한 부분은 칭찬해 줘야겠지.’

“굳이 깜짝 이벤트 같은 거 안 해도, 꾸준하게 경기에서만 잘해도 경기 나올 수 있으니까.”

김도준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아. 그리고. 이번 전략은 어찌되었든 네가 준비한 대로 가자.”

“그게 뭔데?”

당연히 그 내용을 모르는 나머지 PER선수들은 궁금해 했지만, 사실 녀석이 가져온 저 이어폰을 끼는 것 외에는 다른 PER팀원들이 해 줄 일은 없었다.

‘나랑 김도준만 알아도 되는 전략이니까.’

아마 말을 안 하고 혼자 몰래 했던 것도, 아마 경기 안에서 말해도 자신에게 내가 맞춰 줄 거라는 자신이 있었으니 그런 것이겠지.

‘물론 반쯤은 알고 있었으니, 완전히 몰래 한 것도 아니긴 한데…….’

한편으로는 괘씸하면서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는 생각도 드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

한편, 검에 묻은 도플갱어의 액체를 털어 내며 복도에서 걸어다니는 일행이 있었다.

바로, PSG였다.

“귀찮긴. 하필 이런 맵이 나올 줄이야.”

“확실히. 뭐,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런 위협도 안 되지만.”

PSG일행은 상대적으로 아무런 위험 없이 ‘몽환의 궁전‘을 활보하고 있었다.

개개인이 지닌 강력한 무력. 그 무력에서 나오는 힘으로, 애초에 통신기기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그래서 도플갱어가 섞여 혼선이 생기는 일도 없었다.

‘어차피 이 맵은 팀원이 도플갱어에 당하지만 않으면 꽤나 간단하게 클리어가 가능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네. 우리보다 열세인 팀이라.’

“그런데 그쪽 녀석들은, 아마 우리 팀 애들 도플갱어를 만났을 텐데. 진작에 몇 명 죽은 거 아니야?”

모여서 걸어다니는 PSG팀원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킥킥킥. 그러게 말이야. 재미없게 될지도 모르겠네 이번 경기는.”

“죽어 봤자 한두 명이겠지. 도플갱어가 막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녀석은…… 아마 도플갱어한테 죽진 않을 거다.”

“아, 그 이근택 회장이 꼽은 PER의 주장이라는 녀석?”

그 녀석은 꽤나 진짜배기라고 보아도 좋았으니까.

물론, 약간은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놈이었다.

사전인터뷰에서 건방지게 자기보다 몇 수 아래라고 깔보던 녀석.

“그래. 그 녀석. 알고 있지? 그 녀석은 내가 처리한다.”

“응 그래~. 그렇게 하던 말던 알아서 해. 솔직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고~.”

껄렁껄렁하긴. 2부에서 고인물처럼 오래지내서 그런가 리그가 참 편한가 싶었다.

그래봤자, 1부에서 못 견뎌서 내려온 녀석들 주제에 한심하긴.

같은 팀원들이고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함에도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슬슬 본편이 시작되리라.

“느껴지는 걸 보면 거의 가까워진 것 같은데.”

“시작해 보실까.”

어차피 거쳐 가는 경기일 뿐. 이 경기도 빠르게 끝내고 가서 다른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제 저기서 코너만 돌면…… 상대 팀원들이 모여 있을 거야……. 저쪽도 다같이…… 걷고 있으니까…… 준비해…….”

이연주가 작은 소리로 이어폰에 말했다.

분위기는 그야말로 폭풍전야.

아까 전, 김도준의 마나장비를 보고 한순간 분위기가 묘해지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이 가져온 마나장비의 장비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 대부분의 팀원들이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서 그걸로 어쩐다?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창현도 김도준도 분명 공유하고 있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했던 대로, 길한이랑 나랑 윤한결. 이렇게 쓰리톱으로 진입. 한결이는 검 세 개만 쓰면서, 나머지 네개로는 폭격기 전술로 서포트. 연주랑 지수도 뒤에서 서포트하는 걸로.”

이창현이 다시금 준비한 기본 진형을 말했다. 아까 방에서 팀원과 공유한 내용이라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슉. 슈슉 슉 ㅡ.

꽤나 떨어져 있던, PSG진영 측에서 갑작스레 속도를 내며 진입하는 선수가 있었다.

챙!

쌍수에 단검을 지닌. 전형적인 신속특화, 암살자형 딜러로 보였다.

물론 이창현이 길다란 저격총으로 빠르게 막았기에 피해는 없었지만……

“빠르다……”

PER의 팀원 누군가가 나지막히 감탄할 정도로 빠른 속공이었다.

“오…… 뭐야. 막네?”

튕겨 내자, 이번엔 다른 PSG의 팀원들이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순간이동 같은 스킬로 빠르게 뒤를 잡아낸 한지후가 이창현의 뒤를 노렸고, 오시환 역시 함께 진입해 검이 닿을 만한 지근거리에서 마나가 담긴 암기를 뿌렸다.

물론 그 공격에 PER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선두 대열에서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는 사람 중엔 누구보다도, 대인전에 강한 윤한결이 있었으니까.

“큿……확실히 저건 까다롭구만.”

이창현의 뒤를 노리는 한지후에게도,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여럿 암기를 뿌리는 오시환에게도

동시 다발적으로 윤한결의 이기어검이 달려들어 견제하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윤한결을 데려온 게 잘한 일이긴 했어.’

나로써도 새삼 저 능력이 참 좋다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윤한결에게 모두 맡겨 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순식간에 저격총에서 쌍권총으로 변환되는 무기.

그 무기로, 이기어검을 쳐내는 상대방에게 견제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오시환이라는 녀석 먼저 봐.”

이길한에게 순간적으로 내린 오더였다.

한지후는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가진 저 순간이동 능력 덕분에 먼저 점사를 하기에 좋지는 않은 상대.

그렇다면, 당연히 같이 딸려온 저 녀석이 타겟이었다.

“알았 ㅡ 수 다.”

PER의 현 전위. 나와 윤한결이 여러 명을 동시에 견제하는 특성상. 순간적으로 연타를 날리기에 좋은 건 우리 쪽이었다.

그런 견제가 가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길한이 한 녀석에게 돌진한다면.

‘적어도 혼자서는 절대 못 피하지.’

물론, 상대도 혼자가 아니긴 했다.

순식간에 어디선가 날라온, 커버용 에어비트 하나가, 오시환을 엉뚱한 방향으로 날려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서 이길한의 돌진을 피해 낸 것이었다.

“아 뭐하는데. 제대로 안 던지냐?”

“애초에 맞을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옥신각신 싸우는 PSG의 오시환과 뒤에 서포터 한 녀석.

꽤 괜찮은 콤비였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이 정도로도 괜찮지, 어차피 이건 밑밥깔기였으니까.’

메인디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한결아.”

그 말과 함께 손짓하자, 윤한결이 끄덕이며, 남겨두었던 남은 4 자루의 마나봄버를 단 검.

그 검이 한꺼번에 오시환에게 쇄도했다.

“어…… 어어?”

“한심한 녀석.”

폭발 직전, 오시환의 당황하는 소리. 그리고 한지후의 한숨 내쉬는 소리가 짤막하게 들려왔다.

콰 콰콰쾅!

한 번에 4개의 마나봄버가 터졌으니 당연히 ‘몽환의 궁전’이 방과 복도. 층계가 박살 나는 건 둘째 치고, 소리도 어마어마했다.

뭉게구름이 솟아나 지근거리도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 작전 시작이야.”

그리고 그 뭉게구름 속 전장으로, 한 명의 선수가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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