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25화 (125/270)

125. 처단

한편, PER의 대기실.

먼저 경기에서 탈락해 코치진과 함께 경기를 보고 있는 류재준으로서는 분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경계를 한다고는 했는데, 이렇게 당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으므로.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았을 때, 류재준이 당한 건 방심이라던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도플갱어가 랜덤하게 복사한 침입자의 능력이 너무 강력했을 뿐.

‘…… 다시 싸운다고 하더라도, 선공을 양보한다면 똑같이 또 질 테니까.’

그리고 선공을 양보한다면 아무리 그 상대가 이창현이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도플갱어가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이래서는 마치 나 때문에 망하는 것 같잖아…….’

속으로는 계속 눈치채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경기는 졌구나. 하고 마음 속으로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저 도플갱어가 기회를 틈타 부정적인 변수를 만들어 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도중.

와아아아아아아!!!

바깥, 관중석에서 굉장한 환호가 울려 퍼졌다.

‘설마……!’

‘몽환의 궁전’의 한 방으로 들어가던 PER에 변화가 생겨났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런 변화가.

***

탑의 맵은 정말 다양하고, 그중의 상당 수는 선수에게 굉장한 불리함과 변수를 제공한다.

그 중에서도 몽환의 궁전은 그중 한 손에 꼽히는 변수를 제공했다.

그렇기에……

‘의심이 생겼는데, 어중간하게 지나갈 수는 없다는 거지.’

지금 저 류재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위험을 부담하더라도 확인해야 한다는 것.

내부의 적 1명은 외부의 적 1명과는 차원이 다른 파장을 낳으니까.

그러던 와중 ‘몽환의 궁전’의 한 방 앞에 섰다.

“여긴……?”

이연주가 반문했지만, 나는 그걸 얼버무렸다. 대신, 재촉할 뿐이었다.

“지수가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니까, 빨리 들어가 보자.”

그렇게 벌컥 열고 들어간 방. 그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그건 옆 방이니까.’

김도준도 어쩌면 도플갱어일지도 모르는 지금. 류재준에 대해서 빨리 짚고 넘어가야 했다.

“창현아? 이 방엔 아무도 없는데?”

류재준, 아니. 도플갱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

그저, 침묵만이 감돌 뿐.

그리고 도플갱어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채려는 무렵.

이연주의 [속박]이, 윤한결의 [이기어검]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봉쇄했다.

마치 류재준이 도플갱어라는 것을 알고있는 듯한, 짜둔 듯한 움직임으로.

타앙 ㅡ.

그리고 마지막 순간.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는 찰나에, 이창현의 총성이 들려왔다. 이미 몸이 총에 꿰뚫린 후였다.

“큿……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 알 거 없어.”

총에 몸이 꿰뚫린 녀석은 서서히 형체가 액체화되어 녹아내리더니, 이윽고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후…… 진짜 소름 돋네. 이런 던전이라면 직접 탑을 올랐던 헌터들은 숱하게 죽었겠어.”

‘뭐…… 실제로 이 ‘몽환의 궁전’은 1세대 헌터들에게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던전 중 하나긴 하지.’

“근데…… 창현아. 저 녀석…… 어떻게 안 거야?”

이제 슬슬 도플갱어도 잡았겠다. PER의 일행들은 다시금 한지수를 찾으러 가면서 말했다.

“맞아. 그 이미지 공유하는 능력으로 페이크까지 쳐 가면서, 알려줬잖아. 신호하면 동시에 공격하는 이미지를 공유해 가면서까지. 확신하고 있었던 것 아니야?”

뭐…… 솔직히 말하면, 확신한 건 마지막에 이길한에게 이미지를 능력으로 전달해 줄 때였다.

이연주나, 윤한결에게 전달해 줄 때는 계속 긴가민가 했으니까.

“뭐…… 나름 오래 보던 녀석인데, 습관이라던가. 하는 말이라던가. 딱 보면 딱 알지.”

“오…… 그런가. 난 전혀 모르겠던데. 옷 같은 거도 다 똑같고.”

물론 그건 구라였다.

기억을 흡수했는지, 실제 류재준과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이번에 진짜 류재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꿰뚫는 눈]덕분이었으니까.

마나를 뜬금없이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류재준이 도플갱어일 경우 쉽게 처리 할 수 있도록 [만개 - 재능개화 : 이상동몽(異床同夢)의 지휘관]을 사용했다.

요컨데, 이상동몽의 지휘관을 사용해 신호하면 류재준을 죽이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동시에 그 능력을 사용함으로서 마나를 사용하는 걸 당연한 환경을 조성. [꿰뚫는 눈] 같은 감지계열 스킬을 사용하는 걸 가리는 거지.

그리고 그건 분명히 통했다.

‘만약 [꿰뚫는 눈]만 사용했다면, 눈에 마나가 집중되어서 녀석이 의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페이크가 너무 몸에 익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자. 어찌되었든 정신 차리고. 한지수 옆에 붙어 있는 게 도플갱어일 수도 있으니까 정신 차리고. 가 보자고.”

그렇게 거의 도착해 있었던, 방의 문. 한지수가 위치한 곳의 방을 열었다.

***

이렇듯 경기 안에서는 꽤나 무덤덤하게. 그리고 별 일 없이 배신자를 처단하고 지나갔지만,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바깥에서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이창현이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신호를 주자, 한꺼번에 다 같이 달려들어 도플갱어를 처단하는 모습.

그 모습에,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계진은 계속해서 부정적인 전망. 알아내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는데, 보기 좋게 알아냈기 때문이리라.

[캐스터] : 아니……! 류재준 선수가 도플갱어로 대체되었다는 걸 어떻게 눈치 챈 거죠?? 그것도 이창현 선수만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분석가] : 아아…… 이창현 선수는 헌터스 리그 오디션 때부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추정되고 있거든요. 그런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능력을 사용한다면, 도플갱어도 마나의 흐름을 읽어 눈치챘을 겁니다. 그럼 나름 대비를 해서 저렇게 쉽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중계를 보던 거구의 흑인은 믿기 힘들었는지, 연일 반문을 했지만. 결국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었다.

그 말에 레만은 그저 웃을 뿐. 그리곤 그저 한 마디를 얹었다.

“자네는 승부의 세계를 알고 있나?”

“그걸 제게 묻는 겁니까? 그거야 당연히…….”

거구의 사내는 어이가 없었는지, 당연히 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레만은 그 말을 끊어 버렸다.

“기업사냥꾼들의 물밑에서 이뤄지는 수없는 작업과 책략, 그 비열한 짓거리들이. 바깥에선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가?”

“…….”

“결판이 난 후, 딱 신문에 한 줄. 이렇게 나올 뿐이지. XX사 YY사를 인수, 앞으로 시너지를 통한 ZZ분야에서의 선전 기대돼. 뭐 이런.”

레만은 그 말을 하고는 크게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긴지 모를 만큼.

“싸움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게야. 보이지 않는 심리전, 수없는 수싸움들이 겉으론 한 번의 합을 주고 받는 걸로 끝나는 것이지.”

“레만! 그런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저건 저도 저 맵을 겪어 본 입장에서 분명히 이상한…….”

“쯧쯔…… 나름 성공한 헌터라는 녀석이 아직도 모르는 게냐. 그 도플갱어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이상한,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취한 것 자체가 물 밑에서 무언가 수가 오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

“…….”

그제야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사내는 털썩 앉았다.

나름 굉장한 헌터인 자신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꽤나 충격이었으니.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을 찾아냈구나 이근택…….’

레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생겨났다.

***

달칵 ㅡ.

끼이이……

보랏빛으로 도배된 ‘몽환의 궁전’ 이젠 4명의 인원이 남은 PER의 팀원들이, 한지수가 있는 위치의 방 문을 열었다.

건물 자체가 세련되고 웅장한 디자인을 가진 것과는 다르게, 무언가 긴장감을 일으키는. 그런 경첩소리였다.

하지만 그 불길한 소리와는 다르게, 문은 금방 열렸고. 안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지수, 도준아!”

김도준의 경우 도플갱어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반갑다는 듯, 윤한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무래도 이 기묘하고, 보랏빛에, 반복되는 느낌이 강한, 아무도 없는 궁전에서 아는 사람을 보니 반가웠던 게 아닐까.

‘나도 이 맵은 토악질이 나오긴 해.’

정말이지 악의가 그득그득 꾹꾹 눌러 담긴 맵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 맵이니까.

하지만 지금 신경 쓸 건 당연하게도 그 쪽이 아니었다.

당장 신경이 쓰이는 건, 김도준 쪽.

‘류재준의 경우, 도플갱어도 이어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어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수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지금껏 그 시끄러운 떠벌이인 김도준이 이어폰으로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건 진짜로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까처럼 당장에 티를 낼 생각은 없었다.

가능하면, 아까처럼 한 번에 일격으로. 반항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보내 버리는 것이야말로, 최선이었으니까.

“그래서 좀 어때? 우리가 올 동안 별 일은 없었어?”

특히, 김도준의 이상행동이 있었는지 확인할 심산으로 한지수에게 물었다.

“별 일……? 별 일이라…….”

한지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장 생각해서 생각날 만한 일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눈에 띄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는 일이겠지.

하지만, 이미 확인했다시피, 이 맵의 도플갱어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저걸로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

“뭐, 이렇게 둘 밖에 없는데 별 일이랄 게 있겠어? 그냥 조용하게 둘이 기다리고 있었지.”

‘조용하게……?’

평소의 김도준을 생각하면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근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거 서울 시립 아카데미 시절, 김도준이랑 한지수가 사이가 안 좋긴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또 말을 많이 안 하는 게 정상일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고민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겠다 싶었다.

‘어차피 김도준은 도플갱어일 수도 있다고, 애들한테 다 말했었지? 신호 주면 바로 선공하기로 했으니까…… 직접적으로 떠 볼까?’

어느새 슬금슬금 자리가 바뀌어, 김도준을 둘러싼 진영으로 바뀌고……

“뭐…… 뭐야?”

당연하지만 김도준은 그 이변을 눈치채고,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나한테 왜 그러는데? 말로 하자 말로.”

그런데도 변하지 않고 다들 팀원들이 둘러 싸서 노려보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는 걸 눈치 챘는지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헛소리를 작작 내뱉는 걸 보니 김도준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일순간 들었지만.

그래도 이건 물어봐야지.

“너. 이어폰은 어디 갔냐?”

“아 그거? 그것 때문에 그런 거였으면 진작 이야기 했어야지. 그건…….”

김도준이 갑작스레 몸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벗었다.

곤충따위가 탈피하듯, 무언가 허연 막 같은 것이었다.

“새로 들고 온 마나장비를 끼려면 이어폰을 낄 수가 없어서…….”

이딴 게 김도준 녀석이 전에 준비했다던 비장의 무기?

녀석이 벗어둔 허물 같은 투명한 것을 보고 진짜 김도준인 것 같다는 묘한 현실감에, 어이가 없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