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속는 자와 속이는 자
경기 내에서는 막 PER 팀원들이 서로 합류를 하기 위해 의사소통을 나누고 있는 과정.
그 과정을 보는 바깥 중계진과 시청자들의 반응은 진중한 선수들과는 정반대였다.
침착하고, 경계심 많게 앞으로 내딛는 선수들과 달리, 시청자들은 곧 일어날 일에 대해 기대하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경기장 바깥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류재준이 가짜라는 것을 옵저버로 보아 알고 있었다.
때는, PER의 본대 선수들의 합류가 끝나기 전.
합류를 위해 어슬렁거리는 류재준을 향해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급습을 가했다.
[캐스터] : 아니……!!! PER의 에이스 중 한 명인 류재준 선수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나요? 너무 무력합니다!
[해설자] : 아닙니다……! 전에 설명했다시피 도플갱어는 진입한 사람들의 능력을 복사하기 때문에... 선공을 허락하면 저렇게 당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캐스터] : 그럼 저 능력은 역시 PSG의……!
중계진의 반응뿐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반응까지도 달아올랐다.
싸움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PSG 선수의 능력을 지니고, 선공을 취한 도플갱어가 류재준을 손쉽게 압살해 버린 것이었다.
[도플갱어 >>> 원본 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진짜 왜캐 세냐?]
ㄴ 일단 선빵을 도플갱어가 친 것도 있고, 외형은 같은데 능력은 다름.
ㄴ 아 그럼? 어쩐지…… 능력이 평소랑 다르게 휘황찬란하더라.
ㄴ 몰랐음?? 저거 선빵친거 한지후 능력이잖아.
ㄴ 와…… 진짜 개쩌네. 이번 시즌에 본 적 한번도 없는 것 같은데 어케암;
ㄴ 저번 시즌인가 한번 썼었음 ㄷ
그런데 놀라움은 그 도플갱어가 이기는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원래의 류재준. 그러니까 원본이 끼고 있었던 이어폰이 어떤 용도의 물건인지 아는 듯. 자연스럽게 가져간 것이었다.
[이창현] : 뭐야? 지금 누구 이어폰에서 뭔 소리 난 것 같은데. 누구 무슨 일 있어? 급한 상황이야?
이어폰에서 당연히 이창현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동시에 여러 명이 통신하고 있었으므로, 누구의 보이스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 소리가 별로 크지도 않기도 했고.
그저 류재준을 급습해 암살시킨 도플갱어가 웃으며 이어폰을 집어들 뿐이었다.
[와 ㅋㅋ 개소름 진짜. 아니 탑에는 저런게 살고있는거냐?]
ㄴ 1세대 헌터한테 압도적 존경을 ㅋㅋㅋ
ㄴ 저기 들어갔던 1세대 헌터는 진짜 여럿 죽었겠네
ㄴ 아니 근데 진짜 개소름돋는다……
ㄴ 와 근데 저거 이제 이어폰 뺏더니 진짜 행세까지 하겠는데?
심지어 이어폰을 빼앗은 녀석은 이창현과 합류하기까지 했다.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PER의 본대에는 이창현과 윤한결이 먼저 모여 있었고, 도플갱어가 도착한 후 이길한과 이연주가 다음으로 도착했다.
처음 합류할 때에도 두 명 이상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평소에 경계가 심한 이창현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이에 숨어든 도플갱어는 쉽사리 살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저 류재준을 연기했을 뿐.
“담력훈련이라…… 그런가. 난 무서운 건 딱 질색인데.”
“아, 그런데…… 지수랑 도준이가 고립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우리 되도록이면 빠르게 달려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느긋하게 걸어가는 거야?”
[캐스터] : 아아…… 섞여든 도플갱어가 류재준 선수를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알아채지 못하면... 이거. 분명히 대참사가 날 것 같거든요?
[해설자] : 지금 도플갱어의 저 말부터가 그렇습니다. “빠르게 달려서 가야 하는거 아니야?” 이거... 안 그래도 정신없는 PER의 상황인데, 빠르게 달려가던 도중 뒤쪽에서 가면서 한 명씩 제거해 버리겠다. 제겐 그렇게도 들리거든요…….
그렇게 긴장감이 계속 솟아오르는 가운데, 이창현에게로 결단의 순간이 다가왔다.
***
“이대로 지금처럼 걸어가는 게 좋겠다고?”
“응. 내가 알고 있는 PSG의 팀원들은 너희 생각보다 더 위험해. 빠르게 달려가면서 접근했다가 경계가 늦춰져 자칫 맞붙으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어.
연주야 상대 위치는 계속 파악하고 있지?”
“어…… 어…… 지수 쪽으로 제대로 가고 있어……상대측이랑은 거리가 좀 있고…….”
……원래 가장 큰 이유가 PSG때문은 아니었지만. 그 진짜 이유를 지금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거…… 류재준이 아닌 것 같은데.’
괜히 벌집을 건드렸다가 쏘일 수 있었으니까.
류재준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헌터라면 당연히 빠르게 접근하자고 한다면 응당,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에어앵커’나 ‘에어비트’를 사용해서 날아가자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헌터가 아닌 막 생성된 도플갱어 녀석은 아직 그걸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워낙 사소한 거라 이것만으로 판단하긴 힘들긴 한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더해서 헌터로서의 지식이 많은 류재준이 이 맵에 대해 모를 리 없었는데, 맵에 대해 안다면 빠르게 합류하자고 할 리가 없었으니까.
‘이근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을 텐데, 이런 맵에서 도플갱어를 경계하기도 바쁜데 빠른 합류에 집중을 하자고 해?’
말도 안 되지.
최대한 신중하게, 경계태세를 하면서 가야 한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의문점이 있다.
‘그렇게 경계태세를 펼치면서, 조심하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단말마도 내지 못하게 류재준을 죽였는가…….’
일단 당연한 것이지만, PER선수들 중에선 류재준을 단말마도, 소리도 없이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남은 건, 녀석이 끔찍한 혼종으로 PSG 선수들 중 한 명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녀석이 눈치챌까 봐 마나를 써서 [꿰뚫는 눈]으로 보기도 좀 그렇고…….’
생각이 이어지고 있던 도중. 아마도 짝퉁일 류재준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무 늦어서 지수네가 당하면 경기가 넘어갈 텐데…….”
‘……경기가 ……넘어가? 뭐지? 이게 경기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건가? 도플갱어가?’
아까 빠르게 달려서 합류한다. 그 이야기를 한 것 때문에 도플갱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빠르게 가는 걸 빠르게 ‘달린다’고 표현한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이게 헌터스 리그라는 경기라는 걸 알고 있는데 마나장비를 모를 리는 없으니까.
그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이 옆에 류재준이 도플갱어가 아니라, 단지 나와 판단이 달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재준이라고 항상 옳은 판단을 하는 건 아니니까…….’
나에 비하면 많이 판단력이 미숙하기도 하고. 물론 완전히 의심을 거둘 수는 없기는 한데……
그 다음 말이 더 핵심적이었다.
“내가 위험을 감수하고 빨리 가자고 했던 건, 그…… 지수는 이어폰으로 우리한테 연락을 했는데, 왜 도준이는 이어폰으로 연락을 안 하는 게 약간 수상해서 그랬어.”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지금 당장 PER의 팀원들과 합류해야 했기에, 혹시 모를 도플갱어의 위협 때문에 한지수 쪽에는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는데……
어찌 보면 류재준 이상으로 수상한 게 김도준이기도 했다.
‘그 뺀질뺀질한 녀석이 지금까지 경기를 시작하고 이어폰에 한 마디를 안 한다고?’
그뿐만인가. 생각해 보면 ‘몽환의 궁전’의 방에는 도플갱어가 굳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지수가 김도준과 합류한 건 복도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어쩌면 류재준의 빨리 합류해야 한다는 말의 의도도 이해가 갔다.
‘이를 어쩐다…….’
만약 김도준이 진짜가 아니라고 치면, 그것 또한 큰 위기였다.
그렇게 되면 진짜 김도준은 당하고, 한지수도 당할 가능성이 큰데…… 그럼 7대5의 경기가 시작된다.
아무래도 불리한 이 상황에.
‘게다가 개개인의 무력이 특출 난 PSG는 인원 손실 없이 우리와 대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
이러다가 제대로 한 판 붙어 보기도 전에 경기가 망가질 판이다.
그래도.
“아마 도준이가 도플갱어라면, 어차피 지금 와서 지수를 구하기는 힘들 거야. 그러니 계획은 수정하지 않을게.”
판단은 바꿀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내친김에.”
“…….”
“한결이 너. 저번에 에어비트 쓰는데 연결이 아직도 매끄럽지 못하더라.”
“지금 와서 그걸……?”
“어차피 거북이걸음 수준으로 느리게 걷고 있는데. 이런 거라도 점검하면서 시간 효율 높여야지.”
윤한결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건넸다.
그리곤 윤한결이 다가오자, 내 손이 빛나며 윤한결의 머리와 맞닿았다.
[만개 - 재능개화 : 이상동몽(異床同夢)의 지휘관] : 이미지하는 것을 온전하게 상대와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일전에 각성해, 녀석들을 훈련시키는 데 자주 쓰는 능력이었다.
“이렇게. 알겠지?”
“……알겠어.”
“뭘 그리 멀뚱멀뚱 보고 있어. 나머지도 똑같아. 이근택 회장님한테 배운 재준이 빼고.”
“허……참. 그렇긴 해.”
이번엔 이연주와 이길한이 다가왔고, 똑같은 능력을 사용했다.
“…….”
“……뭐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연주. 그리고 이길한은 약간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뭐긴 뭐야. 특훈이지. 그러게 에어앵커랑 에어비트는 하루 이틀에 안 된다고 했지? 그럼 다시 집중하고. 어디서 도플갱어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경계하면서 그쪽으로 가자.”
“응.”
***
한편, 경기를 대기실에서 지켜보고 있는 레만과 거구의 흑인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저거 저놈…… 대화를 많이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눈치 못 챈 것 같지?”
“눈치를 못 채는 게 정상이긴 합니다. 직접 싸워 봐서 다른 능력이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에야.
괜히 저 ‘몽환의 궁전’에서 헌터가 수 없이 죽어 나갔겠습니까.”
“쯧쯔…… 저대로면 경기는 필패겠군.”
레만이 한숨을 쉬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힘든 경기라는 건 알지만, 내심 어찌되었든 믿고 투자한 만큼 이겨 주기를 바랐거늘.
그것도 하필이면 이 녀석에게 경기를 같이 보자고 부른 날에 지다니. 폼이 안 사는 것도 그만한 게 없으리라.
“그런데 어떻게 자네들은 매일 옆을 지키던 선수 하나 진짠지 가짠지 구분을 못하나. 허 참. 어이가 없군.”
“레만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단순한 게 아닙니다. 저것들은 기본적인 지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뿐만 아니라?”
거구의 흑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직접 헌터를 죽인 경우에는, 그 헌터의 기억마저 일부를 흡수합니다.”
“허어…….”
기억마저 흡수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경우엔 확실히 둘만 아는 정보 같은 것으로 확인하려 해도 오히려 확인이 아니라 확실하게 속여 넘길 수 있게 되리라.
그야말로 악독하다고까지 느껴지는 함정이었다.
“그래서…… 놈이 녀석을 눈치채지 못한 거구만…….”
레만과 거구의 흑인도 이미 중계를 통해 보아서 알고 있었다.
류재준의 도플갱어가, 류재준을 죽였다는 사실을.
녀석은 단순히 이어폰만 집어간 것도 아니었고, 어설프게 류재준을 흉내 내는 멍청한 생물도 아니었다.
눈치챌 수 있는 틈이라고 한다면……
흡수한 기억이 불완전해서 빈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것뿐인데……
대화만 하는 것도 아니고, 경기 중인 이 지금…… 알아채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
“레만 선생님도 너무 낙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 맵은…… 그런 맵이니까요. 무력이 부족한 팀이라면 필시 압도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게 되는 그런…….”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한지수가 있던 곳에 PER의 본대가 가까워졌을 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