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23화 (123/270)

123. 흑과 백

트래쉬토크에서 이창현의 말을 들은 한지후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3부에서부터 승승장구하면서 올라오고 있는 신성 같은 팀이긴 하지만, 1부 리거랑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 팀. 나를 상대로 뭐……?

내가 자기보다 몇 수 아래라고?

‘하…….’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 이근택이 인정해 줬다고 한들 그건 앞으로의 성장성에 관한 것. 녀석의 경기를 한지후로서도 보았지만, 결코 자신보다 앞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창현] : 까놓고 말해서 제가 한지후 선수보다 몇 수는 위라고 볼 수 있죠.

[한지후] : 재미있네요…… 뭐, 그치만 제가 대인배처럼 넘어가 줄 수밖에요. 원래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수준인지 모르니까. 그걸 우매함의 봉우리라고 하나요?

어딜 감히.

이번 경기에서는 기어코 본 때를 보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트래쉬토크가 끝났고. 슬슬 경기 준비를 위해 다시금 선수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결전의 때였다.

***

반면 트래쉬토크 촬영이 끝난 후 PER측에서는……

“근데 이번 경기는 진짜 따로 뭔가 특별한 전술을 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너도 이번 경기는 어렵다고 말 했었잖아.”

한지수가 대기실에서 경기 시작 전 중얼거리는데, 반만 맞는 말이었다.

“매번 특별한 걸 준비할 수는 없어. 능력이라는 걸 바꿀 수도 없는거고, 선수 풀이 적은 저희 팀 특성상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까.”

그것도 가능한 팀이나 가능한 거지. 우리팀으로서는 무리였다.

‘물론 팀 전략적으로 무리라는 것 뿐…….’

생각해 둔 바가 있긴 했다.

‘그것만으로는 솔직히 PSG를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한데…….’

원래 인생이란 게, 경기라는 게 그런 거다. 항상 불확실성에서 살아가니까.

다만, 경기전까지 최선을 다했을 팀원과 자신을 믿는 것뿐.

“그리고 지금까지 저희가 썼던 모든 전략. 그게 헛된 게 아니니까, 기본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가자.”

“그래.”

그리고 이제 선수들이 대열에 맞춰 경기장에 들어가고 대망의 PER대 PSG전의 경기 맵이 발표되었다.

‘몽환의 궁전…….’

아무래도 어지러운 경기가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맵이 호재로 작용될지, 악재로 작용될지는 미지수인 채로. 그렇게 그 날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

[캐스터] : 네. 이번 PER대 PSG전. 경기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중요한 경기라 그런지 선수들이 많이 긴장한 모양인데요…….

이번 경기의 예상 흐름. 분석 부탁드립니다

[해설자] : 이번 경기는 우선 ‘가장 강력한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PSG. 그리고 ‘팀 단위의 전략에서 기상천외한 모습’을 보여 주는 PER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PSG가 개개인이 강하지만, 팀 단위의 전투에서도 약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강하게 우세를 쥘 거라 예측됩니다.

[캐스터] : 호오…… 그렇군요. 개개인이 강한 만큼, 합쳐도 강할 거라는 건 사실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그건 순수 팀의 전력을 비교한 것뿐이고, 헌터스 리그에는 변수가 많죠. 이번 맵은 어떻습니까?

[해설자] : ‘몽환의 궁전’……사실 헌터스 리그를 즐겨보는 분들은 알 만큼 꽤나 유명하고 등장 빈도수도 꽤 있는 맵입니다만……

기믹이 많고 기괴하기로 유명하죠. 그런 특수성으로 악명이 자자한 맵 중 하나입니다.

저번 국제 리그에서도 등장해 화제가 된 맵이기도 하죠.

기본적으로는 궁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입장한 선수들의 도플갱어가 생겨나 공격하거든요. 그게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캐스터] : 도플갱어요? 그건 또 뭡니까.

[해설자] : 다른 맵으로 따지면 가디언 같은 것들에 가깝습니다. 모습이 선수들과 똑같고 지능이 아주 높다는 차이점이 있죠.

그래도 결국은 이 맵을 수호하는 수호자인지라... 입장한 선수들의 외형, 능력 등이 무작위로 섞여 생성하여 진입한 선수들을 공격한다고 하더군요.

또,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특수한 기믹.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만……그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죠.

경기가 시작하고, 아직 팀원들이 전투를 벌이지 않고 분주하게 진영을 짜거나, 합류를 선택하는 시점.

중계진의 해설이 쏟아져나왔다.

이런 활발하게 이뤄지는 2부의 중계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이 아니라 이창현에게 투자를 결정했었던 레만이었다.

“흠……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음…… 맵은 확실히 재미있는 맵이 뽑히긴 했군요. 하지만 솔직히 풋내기들의 싸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걸 왜 굳이 보여 주시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그래……? 확실히 실적만 보면 애송이들이긴 하니까. 그래도 저기 저 녀석. 이번 경기에서 어떤지 한 번 봐보게. 어쩌면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저 검은 옷을 두르고 저격총을 든 녀석 말입니까?”

“그래. 내가 보기에는 좀 미묘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이근택이 점찍은 녀석이니 말이야.”

“하필 총이라니…… 재수없는 에단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에 필적할 리는 당연히 없겠고. 솔직히 다른 원거리 딜러들이 그리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없어서 말입니다.”

거대한 화면의 티비가 작아보일만큼, 거구의 흑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끌끌…… 사실 나도 그렇긴 해. 이근택이 아니었다면 아마 찾아볼 선수도 아니었겠지. 하지만 이근택 녀석에 대해 좀 아는 너라면, 좀 흥미가 가지 않나?”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그 분이 미국에 오셔서 가르쳐주셨을 때는, 후계자는 커녕 칭찬도 한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 걸 고작 한국의 2부 리그 선수에게 거론을 하니, 당황한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거구의 흑인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레만이 나지막히 웃었다.

“어지간히도 그랬나보구나. 근데 나는 솔직히 극찬을 했다고 하기에 저 녀석의 경기를 조금 봤는데도 여전히 모르겠더군. 혹시 자네가 이번 경기에서 발견하면 말해 주게나.”

“뭐…… 지금까지 봐서는 별 거 없는 녀석인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하지요.”

의외의 거물들이, 별 볼일없는 국제적으로 변방 리그인 한국 헌터스 리그 2부를 보고 있었다.

***

지나치게 넓어,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는 보랏빛 컬러감의 궁전.

그 안에는 기기묘묘한 장식물들, 그리고 마치 중세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고풍스러운 장식물들이 존재했다.

‘몽환의 궁전이라…… 확실히 오랜만이네.’

나로서는 꽤나 익숙한 맵이기도 했다.

맵의 기믹이나, 특수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기도 했고, 회귀 전에 경기를 치러 보기도 한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아마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적으로는 PSG도 알고있을 가능성이 컸다.

‘국제 리그에서 몇 번 등장했던 맵이었으니까……그 악랄한 기믹까지도.’

하필이면 직관적으로 기믹을 이용해 상대만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쉽지 않은 맵이었기에.

이번 경기는 아마 꽤나 난잡해지리라는 예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이어폰 너머로 한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현아, 3층 로비 구역이라는 게…… 이거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건 맞아?”

“연주가 계속 길 안내 1대1로 찾아주고 있잖아.”

“그게 근데, 계속 똑같은 곳 같아서 돌고 있자니 내가 몇 층에 있는지, 어느 쪽이 맞는 방향인지도 모르겠어서…… 어? 근데 도준이는 발견했다.”

‘불안 중 다행이긴 한데…… 김도준은 그나마 길치끼가 덜했었던가?’

경기 시작 후 합류부터 생각보다 난항이었다.

비슷비슷한 곳이 많고 워낙 넓기에 길을 찾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었지만, 이연주가 있었기에 금방 모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길을 이연주가 읊어 줘도 못찾으니 원……

“못 찾겠으면 그냥, 근처에 있는 방이라도 들어가서 짱박혀 있어.”

“엥? 합류하는 게 아니라 짱박혀 있으라고?”

어휴…… 이 녀석들은 이 맵이 나왔던 국제전 경기도 안 봤나.

‘몽환의 궁전’의 기믹 중 하나. 그건 진입한 사람들의 모든 특성과 외형을 무작위로 복사하여 도플갱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도플갱어는 침입자를 공격하니까…….’

운이 안 좋으면 PSG팀의 상대방도 아니고, 맵에서 자동생성된 그 무언가. 도플갱어로 인해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런 도플갱어랑은 마주치지 않는다는 점이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대방과 마주쳤을 때 퇴로가 없다는 위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단 하나.

PSG보다 먼저 PER의 팀원들과 합류하는 것. 이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도플갱어의 위협으로부터도, PSG 상대의 위협으로부터도 한결 수월해지니까.

다행히도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의 진행은 나쁘지 않았다.

한지수와 김도준을 제외하고는 이연주의 능력을 통해 모일 수 있었으니.

“이 보랏빛…… 계속 보니까…… 뭔가 으슬으슬하네.”

“뭐 여기 인원이 5명이나 있는데 뭐. 창현이도 있고 말이야. 그냥 담력훈련 같은 걸로 생각하지 그래?”

윤한결이 이연주와는 다르게 꽤나 쾌활하고, 가볍게 말했다.

‘확실히 이 맵이 담력훈련을 하는 것처럼, 으슬으슬한하고 유령이 나오는 저택에서 돌아다니는 느낌이긴 하지…….’

“담력훈련이라…… 그런가. 난 무서운 건 딱 질색인데.”

류재준이 이연주의 말에 얹어 말했다.

‘류재준이 무서운 걸 별로 안 좋아했었나. 외모랑 별로 안어울리게시리. 생긴 건 상남자인데 의외네…….’

회귀 전의 류재준에게는 듣지 못한 말이었기에 좀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 후 할 말이 별로 없었는지, 일행 사이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보랏빛으로 가득한 저택.

우리의 발걸음 소리를 제외하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

정적이 길어지고, 반복적으로 뚜벅이는 소리만 나자, 그것을 버틸 수 없었던 것일까.

“으으…….”

이연주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 그런데…… 지수랑 도준이가 고립된거나 마찬가지니까. 우리 되도록이면 빠르게 달려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느긋하게 걸어가는 거야?”

류재준이 문득 물었다.

‘…….’

뭐지?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순간적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맞아맞아. 창현아. 나도 좀 이해가 안 되긴 해. 근데 내가 그런 건 국제 리그 경기를 안 봤어서 이 맵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이길한이 머리를 긁적이며 류재준의 말에 동의했다.

‘이길한은 국제리그 경기를 확실히 안 봤을수도 있어서 모를 수도 있는데…….’

생각해보면, 류재준이 모른다는 건 조금 이상한데……

갑작스레 묘한 느낌이 엄습했다.

조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 말에 태클을 걸 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빠르게 달려서 합류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애초에 빠르게 합류해야 하는데, 달리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마치 이 맵에 대한 지식.

아니, 헌터스 리그의 전술적인 지식조차도 없는 듯한 발언이었다.

다행히도 이길한이나 이연주. 윤한결은 그거에 대해 별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이거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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