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전초전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현장이 중계되는 1대1 랭킹전의 대기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뒤로하고, 애써 생각에 잠겼다.
‘저번엔 ‘시각’…… 이번엔 ‘청각’…… 상대의 오감. 감각을 자극해 공략하는 방향성을 생각한 건가.’
확실히 그것이라면 특별한 물건을 준비함으로써 만들어 낼 수 있는 변수 중 하나였다.
아마 필시 처음 성공했던 일종의 ‘눈뽕 전략’의 영향이 아마 저걸 만들어 낸 것이겠지.
보기에는 눈살이 찌푸려지고 우스꽝스럽지만, 놀랍게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전략이기도 했고.
각성자는 시각, 청각 등의 오감이 일반인보다 뛰어나니, 저런 소리를 들으면 일반인보다도 더욱 괴로울 수밖에.
‘문제는 처음에야 민감하지, 갈수록 반응을 할 거라는 건데…….’
일단 당장은 오시환이 창이 칼에 맞대어지지 않으려고 공격 자체를 회피하다 보니 공격을 피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가 되고 있었다.
반면 귀에 이어플러그를 장착한 김도준은 기세등등하게 쾌검으로 몰아붙이고 있었고.
‘여기에 관중이 있어서 이어플러그를 한 번 화면에 잡아 줬더라면, 순식간에 악당 등극인데.’
그런 생각도 잠시.
결국 수세에 몰린 오시환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소음을 각오하고 다시 공세에 나서니, 단번에 다시 김도준 쪽이 밀리는 형세였다.
그런데 역시 공세로 밀어붙이는 가운데에도, 막기에 급급한 김도준보다 오시환의 표정이 더 좋지 않았다.
‘소음의 여파가 생각보다 크긴 큰가 보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쓸 만한 전술이었는지도 모른다. 보기에나 우스꽝스럽지. 사실 실속이 꽤나 좋은 전술일지도.
아니나 다를까, 한 번 크게 공세에 나선 오시환의 창을 김도준이 정확한 타이밍으로 막아 냈고.
이번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다.
끼이이이이이익 ㅡ.
대기실은 사실상 바깥에서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데에도 이 정도 소리면, 안에서 오시환은 대체 얼마나 큰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그런 소리에 사람이라면 당연히 없던 빈틈도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 소음으로 잠깐 괴로워하던 찰나.
그 찰나를 김도준이 쾌검으로 찔러 냈다.
촤악 ㅡ.
집요하게 상대의 정신을 공격해 내던 김도준의 승리.
그야말로 졸렬함의 끝판왕 격인 승리였다.
“EZ ㅡ.”
김도준이 웃으며 대기실을 향해 따봉을 해 보이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PSG의 오시환을 꺾은 건데.
이걸 뭐라 할 수도 없고.
***
“큿……뭐 저런 새끼가. 졸렬한 게 딱 수준이 저급한 녀석들이나 할 법한 짓을 하고. 더 이상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겠군. 퉷…….”
1대1 랭킹전 대기실을 나서는 오시환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뿐만일까. 저런 김도준이 몸담고 있는 PER의 수장격인 나조차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 듯했다.
경멸의 시선으로 나와 김도준을 바라보곤 퇴장하는데 그 모습에 뭔가 공감이 가면서도 의외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복잡하고 복합적인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오시환이 그냥 붙었다면 근접전에서 일대일로는 두 수 이상 위였을 거야.’
그런 상대에게 별 힘도 못 써 보고 졌으니 저런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물론 대기실로 나온 건 오시환뿐만이 아니었다.
“어때, 이제 나도 이번 경기에 에이스로 기용할 생각이 드냐?”
음. 확실히. 평소엔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나름 다 경기에 대해서 생각을 착실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근데 저런 전술을 직접 준비해 왔으면 나한테만 알려 주고 상대한테는 숨길 것이지. 신나서 다 보여 줘 버리면 어쩌냐.”
아마 실제로는 저런 걸 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 알고 있더라도 꽤나 대응이 가능할 텐데.
‘김도준이 얼핏 생각은 없어 보이더라도 그냥 단순히 신나서, 그것도 다음에 직접 상대하게 될 팀을 상대로 저걸 지금 보여 줬을 리는 없는데…….’
“아…… 검에 특수코팅해서 굉장한 소음 만들어 냈던 그거? 그건 당연히 블러핑이지.”
“……블러핑?”
“그렇게 일차원적인 걸 경기에 그대로 쓸 리가 없잖아? 보는 사람들도 별로 즐겁지 않을 테고. 그래, 그건 굳이 따지면 ‘일부러’ 보여 준 거지. 그걸 의식하도록 말이야.”
김도준이 낄낄거리면서 썩은 웃음을 짓는데,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정보를 흘린 거라고? 그럼 본 게임엔 대체 뭘 준비했다는 걸까.
어이가 없어, 물어보려고 김도준을 바라본 순간.
“아아…… 이런 건 비밀로 해 뒀다가 본 게임에서만 슬그머니 보여 주는 거라고? 설령 같은 팀이더라도 말이야.”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하여간 도움은 되는 것 같지만, 같은 팀에 두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지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결국 힘들 것이라 생각되는 PSG와의 경기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올 것인지.
그건 역시 경기 당일이 되어서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별 기대는 안 하긴 하는데……’
재미는 조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편 내일, PER과의 경기를 앞두고 PSG는 때 아닌 뜨거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당연히 가장 뜨거운 주제는 오늘 오후에 있었던 오시환의 1대1 대결이었다.
“뭐? 1대1 랭킹전 룰로 뜨는데 그런 걸 들고 왔다고?”
한지후로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이가 없는 김도준의 행보.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누가 들어도 어이없어할 만한 행동이긴 했다.
“뭐…… 그래도 차라리 먼저 당해서 낫긴 하네. 너는 좀 쪽팔리겠지만 말이야.”
이규진이 오시환을 놀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 규진이 말이 맞아. 어차피 그런 얄팍한 것들은 오래 쓸 만한 거가 아니니까.”
일전에도 번쩍거리는 검을 이용해서 재미를 봤다고 했던가. 하여간 지 팀마냥 얄팍하게 뭔갈 준비해서 상대를 괴롭히는 재주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건방지게…….”
한지후는 오히려 그런 녀석이야말로 PSG같은 “진짜 실력”으로 묵직하게 눌러 버리는 것을 보여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치만 귀가 아플 테니 이어플러그 정도는 경기에 챙겨가겠지만.
“됐다. 어쩌면 저것도 탐색전의 일환인데, 시환이가 졌어도 의미는 충분히 있어. 혹시 녀석이 뭔가 더 다른 걸 들고 나올 수도 있으니 대비할 수 있는 건 더 대비도 해놓으면 좋고.”
“다른 거? 뭐. 눈뽕에 귀갱했으니, 이젠 스컹크마냥 방귀주머니라도 들고 오려나?”
PSG 팀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큭. 뭐 그래. 자기들 마음대로 다 해보라 그러자고.”
한지후도 한바탕 웃더니, 갑작스레 다시 웃음을 멈췄다.
“뭔 헛짓거릴 하든, 그냥 아주 박살을 내줄 테니까.”
1부 선수들이 어떤 스트레스와 싸우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채로 상위리그를 논하고.
막 뜬 신인인 주제에 이근택의 비호를 받고.
끝내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듯한 그 녀석들을.
‘내가 그냥 놔둘 리가 없지.’
이번 경기는 이번 시즌, 2부 리그에서 가장 잔혹한 경기가 되리라.
그렇게 되도록 준비했으니까.
“슬슬 자자. 내일 경기니까.”
PSG의 홈의 불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꺼졌다.
모든 것은 다음날. PER전을 위하여.
***
바로 다음날. PER과 PSG의 경기.
아무래도 2부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빅매치였기에, 이날의 경기는 다른 때의 경기와는 조금 다르긴 했다.
“경기 사전 인터뷰요?”
“예. 그냥 인터뷰는 아니고, 상대 팀원들과 트래쉬토크를 하는 컨셉으로 가볍게. 한번 하는 겁니다.”
이런 걸 2부에서도 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보통 1부에서 빅매치 있을 때나 종종 경기 직전에 했었던 것 같은데.
하긴 뭐, 2부는 회귀 전에도 단 1시즌만 있었기에 짧은 시간이기도 했고. 기억이 나지 않아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런 사전 트래쉬 토크 형식의 인터뷰 소식을 들은 팀원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경기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런 걸…… 해야 해?”
하긴. 이연주의 말도 틀린 건 없다. 하지만, 이 경기라는 게 일종의 쇼맨쉽이고, 보여 주기 위한 거니까.
좀 더 팬들을 보여 주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걸 기억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반면, 이렇게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팀원도 있는 가운데 완전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으니……
“헹…… 이번 경기, 내가 나가는 거에 딱 맞춰서 무대까지 제대로 갖춰 놨구만?”
자신이 이번 경기에 뭔갈 준비해 놨다고 막 티내는 김도준 녀석으로서는 확실히 좋은 무대이리라.
‘물론 이번 경기는 김도준만이 아니라 나도 꽤나 신경을 써서 준비했지만…….’
어떻게 흘러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변수도 많고. 아직 발표되지 않은 맵만 해도 그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경기 시작 전. 촬영장에 PSG와 PER. 두 팀의 팀원들이 들어가 앉았고, 사전 영상 촬영에 들어갔다.
[캐스터] : 네. 이번 경기는 2부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PSG와 PER의 경기입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씩 해 주시자면……
[한지후] : 뭐. 예상된 결과였다고 생각하구요. 오늘 있는 이 경기도 그리 어려울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김도준] : 사실 이미 오늘 경기 전에 PSG의 팀원과 1대1을 한 번 해봤거든요…… 근데 뭐, 저희 쪽도 별로 어려울 거라고 보진 않습니다.
내가 대답하려던 찰나였는데, 김도준이 먼저 그 질문에 치고 들어갔다.
과연 그 대답도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연하게도 PSG의 팀원들이 벌써부터 김도준을 어이없다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캐스터] : 하하…… 좋습니다. 역시 두 팀 다 2부에서 전승을 달리고 있는 만큼, 그런 포부. 자신감도 필요하겠죠.
이번 경기에서 핵심 선수 중 한 명인 이창현 선수의 경우에는 근래 가장 차세대 한국 헌터스 리그의 루키라고 꼽히던 한지후 선수를 매섭게 추격하다 못해, 가장 유명해졌다는 평이 있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
[한지후] : 풋. 그건 다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봅니다. 일단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저는 1부에 올라가지 못한 게 아니라, ‘아직 가지 않은 것뿐’이니까요.
사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번 경기에서 그 부풀려진 소문의 진가가 드러날 거라고 봅니다.
‘부풀려진 소문이라…….’
재미있네.
[이창현] : 세간의 평가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편은 아니지만…… 보통은 이유가 있겠죠. 굳이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한지후도 꽤나 괜찮은 녀석인 건 맞지만, 내 회귀 전 경력까지 따지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인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아꼈는데……
[캐스터] : 아……그래도 많은 팬분들이 또 이 경기를 기대해 주고 있으신데, 그렇게 말을 생략해 버리면 아쉬워하시거든요.
굳이 덧붙이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을, 굳이 말씀해 주신다면……
하여간. 역시 기획을 할 때 주최측에서는 항상 좀 이렇게 달아오르게 하는 면이 있다.
화제성도 있고. 말로 치고 박고 하는 신경전이야말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뭐,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어울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이창현] : 까놓고 말해서 제가 한지후 선수보다 몇 수는 위라고 볼 수 있죠.
커리어만 생각해 봐도 한지후가 평생 따라올 일은 없을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뭐 솔직히 [만개]를 개방하지도 않고, 팀원도 딸리는 지금 시점에서는 좀 쫄리기도 하는데……
‘그런 쫄깃한 맛이야말로 경기의 묘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가운데, PSG 진영 측에서 도저히 이번 말을 두고 들을 수 없었는지, 이를 악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이런 경기는 위험할 것 같으면서도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