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피날레
전황이 완전히 180도 뒤바뀌는 것은 정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평소 PER의 에이스. 이창현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상대의 방어를 뚫어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마나실드나 방어막 같은 능력으로 충분히 총알을 막아 낼 수 있었기에, 사격이 큰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총알이 안티 마나스톤과 결합되어 마나로 이루어진 방어장치를 뚫어내는 순간……
상대방은 총에 대한 저항력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케이크 먹는 것 보다 쉽게 상대를 잡는 법.GIF]
ㄴ 와 ㅋㅋㅋ 이거 뭐임? 버그임? 왜 총알 하나도 못막음?
ㄴ 이창현이 뭔가 총알에 수를 쓴것 같은데?
ㄴ 진짜 개사기네
ㄴ 총 개사긴거 지금알았냐? 괜히 에단이 세계 1위가 아님.
ㄴ LTD갈들 개같이 멸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창현이 상대 편을 그렇게 두 명쯤 잡았을 즈음, 리플레이로 인해 그 사격의 정체가 밝혀졌다.
LTD가 도착하기 전. 잠깐의 시간동안 이창현이 안티 마나스톤을 받아 총알에 끼워 넣어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해설자] : 아앗……! 저걸 저렇게! 상상도 못한 활용법입니다. 안티 마나스톤을 일부로 모래만한 작은 알갱이를 써서 총탄의 끝부분에 활용했어요!
[캐스터] : 아니 근데, 저렇게 하면 저 부분에 총탄이 닿아 마나가 다 흩어져 파괴력을 잃는 거 아닙니까?
[해설자] : 보통이면 그렇겠지만, 지금 보시면 그걸 고려해서 파츠를 나눠 구성한 것 같군요.
아마 이창현 선수가 마나탄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데, 그것과 관련된 능력으로 보입니다……! 이거 놀랍군요.
그리고 해설자는 헌터스 리그를 많이 봐 오고 분석하는 전문가답게, 그 가치를 일반인보다 어느 정도 확실하게 꿰뚫고 있었다.
[해설자] : 곰곰이 곱씹어볼수록 굉장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티 마나스톤’의 경우에는 탑 모든 층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유물이라, 사실 찾을 시간만 있으면 어느 맵에서나 대부분 찾을 수 있거든요.
앞으로 PER을 상대하는 팀은 굉장히 고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나실드‘에 막히지 않으면서도 투사체의 속도가 굉장한 원거리 딜러. 이창현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총 하나로 2부 개같이 평정 ㅋㅋ]
ㄴ 암 ㅋㅋ 활이나 칼 같은 걸로 총쏘는 애는 못이기지~
ㄴ 억울해? 억울하면 능력 좋은 거 가지고 태어나시던가~
ㄴ LTD ^2부딱^ 3부 출신 팀한테 멸망
ㄴ 와 근데……저거 이번에야 안티마나스톤인데, 다른 유물 쓰면 또 다르게 변형시킬 수 있는 거 아니냐?
ㄴ ㄹㅇ 저 무기만으로 변수가 엄청난 듯.
하지만 그렇게 이창현의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지는 가운데,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준서였다.
[해설자] : 아……! 맞아요! 아직 LTD에는 에이스 스트라이커인 이준서 선수가 있거든요! 게다가 거리가 짧습니다. 원거리 딜러보다 근거리 딜러의 거리에요!
[캐스터] : 여기에서 승부의 분기점이 갈리겠군요! 에이스 대 에이스의 매치!
어찌되었든, 이창현이 잡은 사람은 아직도 겨우 LTD 팀원 두 명.
상대의 스킬을 무효화 시키는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지금 시점에 이창현이 이준서에게 진다면 게임은 이대로 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에이스 간 대결에 열기가 달아오르는데……
[캐스터] : 어…… 어어? 이창현 선수! 이준서 선수를 눈앞에 두고 에어비트로 거리를 벌립니다! 그랬다가는 이준서 선수가 쫓아가면서 일격을 가할 텐데요!!
과거, 이창현이 3부에서 류재준을 상대할 때 벌어졌던 일이 재현되었다.
[해설자] : 이 중요한 순간에 이걸 이렇게…… 어디까지 내다 본 건 건가요 이창현 선수!
타당 ㅡ. 콰쾅!
화면 너머는 폭발로 인해 먼지구름이 크게 일어나며 화면을 메워 버린 채였다.
***
마나차단기를 입고 있었지만, 역시나 1부 리거쯤 되면 모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가.
누군가는 각자 다른 마나의 성질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마나의 잔향을 따라가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탐색가의 기질로, 굉장한 관찰력을 발휘해 흔적을 쫓기도 한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그래,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어.”
“오냐. 제대로 저질러 줬던데.”
LTD의 팀원 두 명을 순식간에, 그리고 무력하게 처치했다고는 하나, 이제야 5대5 동률이 된 상황.
더는 지켜볼 수 없었는지 이준서가 나를 쫓아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고 일부러 계속 위치를 바꾸고, 이동하면서 사격했는데.
‘역시 기본기가 꽤 괜찮은 녀석이네.’
“원래 아까 거기에서 끝났어야 하는 경기인데…… 질질 끌고 가는 실력이 아주 좋네.”
“질질 끌고 간다니. 이젠 우리가 LTD의 멱살을 잡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나한테 따라잡히지 말았어야지.”
이준서가 칼을 기세등등하게 뽑아내며 말했다.
[정적인 마나]로 마나를 쓸 수 없게 만들고, 자신의 장기인 근접전. 무기술로 싸움을 보려고 하는 듯 했다.
“2부라고 약간 무시하고 있구나?”
“그럴 리가. 오히려 굳이 말하면 놀라고 있는 편인데. 뭐, 여기까지 끌고 온 걸 칭찬해 주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구나.
아니면 한국 리그라 이렇게 상대할 수 있는 원거리 딜러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네가 지금 이렇게 1대1로 나를 잡겠다고 나온 순간 끝인 걸. 눈치채지 못했다니. 다른 1부 선수들이 같은 취급하면 억울해하겠어.”
“…….”
이준서가 그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사실 원래 경험이라는 게 그렇다. 당해 보기 전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여전히 이준서를 바라본 채로, 에어비트를 밟고 뒤로 뛰어올랐다.
“어딜……”
단순히 거리를 벌리려는 줄 알았나 보지?
에어대시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도망가려고 뛰어오르면 그걸로 따라붙을 거라는 것도 당연히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조언 하나 해 줄까?”
“?”
“뛰어난 헌터가 되려면, 상대한테 다음 행동을 뻔히 읽히면 안 돼. 안 그러면. 그렇게 되거든.”
이준서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는 나를 따라잡기 위해 에어대시를 쓰려는 순간.
스르륵.
어둠에서 무언가가 갑작스레 새어나와 이준서를 속박하고 있었다.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상대는 초인적인 각성자. 그것도 1부의 선수였으므로.
겨우 1초 남짓 할까 말까 한 시간.
“잘했어. 이연주.”
하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그 시간이면, 이준서의 거리에서 벗어나 방아쇠를 당기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으니까.
이준서는 1부 선수니, 특별히 마나봄버 탄으로 준비했다.
딸깍.
타당 ㅡ. 콰광!
이준서. 정말이지 전이나 지금이나, 능력은 좋지만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첫째는 [정적인 마나]가 닿지 않는 사거리에서 공격하는 원거리 딜러에게 취약하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뭐 여기까지 해 둘까.
‘사실 좀 더 쉽게 갈 순 있었지만, 그걸 숨기는 게 PSG 전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 테니.’
“이준서 처리했어. 다른 녀석들은?”
“당한 걸…… 확인했는지, 일단…… 도망치려는 모양이야…….”
“전에 이야기했던 것. 준비 됐지?”
“……응”
“미끼들은 수고했어.”
“뭐어? 화살 맞고 골로 갈 뻔 했는데 지금 그 말이 끝이야? 아니 진짜 내가 억울하고…….”
한지수가 많이 억울한가 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꺼 버렸다.
지금은 이연주의 말만 들으면 됐으니까.
“사냥 시작하자.”
“……응.”
경기의 피날레. 마무리였다.
***
이준서가 이연주의 속박으로 잠깐 멈춰선 동안 이창현의 총을 맞고 쓰러지자, 경기장에 함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마치, 지난 3부 리그에서의 경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콤비였다.
[캐스터] : 아아……! 이렇게 이준서 선수가 가 버리는군요. 엎치락뒤치락 하던 경기가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LTD선수는 반격할 수단이 별로 없어요!
아……! 역시 일단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퇴각을 선택하네요.
하지만 그 퇴각마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안티 마나스톤 알갱이를 이창현에게 전해 준 후, 인비저블 클록으로 한 자리에 계속 숨어 있던 이연주가 마침내 활약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마나차단기로 마나의 흔적을 지운 후, 인비저블 클록을 입고 가만히 한 자리에 숨어 있었다.
그렇게, 아무도 자신을 찾아올 수 없고,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확신한 순간.
이연주의 [속박]이 LTD의 적 한 명 한 명에게 작렬했다.
이창현과 합을 맞춘 상태로.
그 첫 희생양은 이준서. 그리고 그 다음은, 도망치기 시작한 LTD의 다른 팀원.
거리제한 없이 상대방을 옭아매는 이연주의 [속박] 극악무도함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와 ㅋㅋㅋㅋㅋㅋ 저거 뭐냐? 그냥 개사기 아니냐?]
ㄴ ㄹㅇㅋㅋ 숨어서 한 명씩 속박 후 총질. 개끔찍하네.
ㄴ 심지어 이제 마나실드로 막지도 못함ㅋㅋ
ㄴ PER의 ‘가불기’
ㄴ 응 난 때릴게. 넌 맞아~
ㄴ 연쇄 폭력 강요단 PER ㄷㄷㄷㄷㄷ
[해설자] : 아아……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연주 선수의 개별 전투능력을 생각해 보면 원래 같이 팀이라고 붙어서 전투를 치룰 필요는 없습니다!
[캐스터] : 그래서 아예 아무도 없는 곳에 짱박혀 숨어 버리고, 스킬만 난사하는 거군요!
[해설자] : 네. 아예 발상의 전환입니다. 같이 싸우는 팀원이라는 느낌보다는 아예 숨어 버리고 “속박 머신”같은 느낌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바꾼 듯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약점은 사라지면서 강점만 부각되게 된다.
거리제한이 없는 스킬. [속박]이라는 스킬의 강점이.
그리고 당연하게도, 잠깐이나마 붙잡아 두면 투사체가 가장 빠른 원거리 딜러. 이창현의 총구가 불을 뿜으며 마무리를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해설자] : 말도 안 나오는 콤비입니다…… 마나실드랑 방어막도 안 먹히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하나요?
PER……이렇게 말하는 것 같군요. “다음 누구야. PSG! 너 나와!!”
[캐스터] : 짜릿한 승부였습니다. 사실 PER도 위험한 순간이 꽤나 많았거든요.
[해설자] : 네 맞습니다. 사실, 승부의 분수령은 이 때.
LTD와 PER의 첫 교전 때였네요. 억지를 써서라도, 포탑을 맞아가면서라도 PER의 발목을 붙잡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은 드는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복기해 보면 안티 마나 스톤도 없었고, 밀어 붙이면 LTD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캐스터] : 아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오늘 멋진 경기 보여준 PER선수들. 표정이 좋네요.
MVP는 누구로 예상하십니까?
[해설자] : 사실 이창현 선수를 꼽는 게 보통이겠지만…… 이창현 선수는 사실 상수로 잘해 준다는 느낌이 강하고. 오늘 경기는 숨은 주역인 선수를 꼽고 싶네요.
관객의 환호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MVP가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