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무한한 가능성
에단 호크. 헌터스 리그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선수이자, 가장 강력한 선수로 꼽히는 헌터.
또한, 나를 제외하고 총을 쓰는 단 하나의 선수 중 하나였다.
‘물론 나랑 쓰는 방법은 전혀 다르지만.’
에단이 총을 쏘는 방법은 단순했다.
일반 헌터랑은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의 어마어마한 마나량. 세간에서는 탑에 나오는 드래곤에 비할 법한 마나량이라고 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마나량을 싣고 총을 쏘아 낸다면, 아무리 쏜 후 마나가 순식간에 뿜어져 흩어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마나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에단이 쏘는 총은 사실상 총이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마나를 흩어내며 쏘아지는 것이라, 거의 레일건 같은 현대 병기에 가까웠다.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쏘아지는 강력한 병기.
하지만, 나는 에단과 사용하는 방향성이 완전히 달랐다.
[만개 - 재능개화 : 에테르(증강)] 능력을 이용해 에테르로 탄을 만들어 마나가 흩어지지 않도록 해 쏘는 방식이었다.
‘그만큼 마나가 덜 들지만…… 파괴력도 약할 수밖에.’
그래서 마나실드도 뚫지 못하고, 방어막에도, 성역에도 막혔다.
만약 내가 에단이었으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쏘는 대로 모든 것이 재로 변했으리라.
하지만.
이 방식은 이 방식만의 장점이 따로 있었다.
어떤 형질의 물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가변적이고 특별한 성질을 가진 에테르를 이용하는 만큼 그 응용방법이 무궁무진했으니까.
‘지금까지는 단순하게 마나탄을 만들 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능력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꿰뚫는 눈]이 있는 한. 더 고차원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에테르로 우선 평소보다 작은 마나탄을 만든다. 하지만 이 에테르에 바로 안티 마나스톤이 닿으면, 에테르에 마나가 사라져 버리니 곧바로 덧붙이지는 않는다.
대신 에테르를 이용해 또 하나의 물체를 만들어 낸다.
‘그게 바로 안티 마나스톤과 에테르 마나탄의 완충장치가 되는 거지.’
안티 마나스톤과 직접 맞닿았기에, 그 완충장치는 마나가 흩어지지만…… 직접 맞닿지 않은 에테르 마나탄 부분의 경우는 완전히 그대로였다.
‘이렇게 하면 안티 마나스톤과 마나탄을 동시에 쓸 수 있다는 거지.’
이건 사실 [만개 - 재능개화 : 에테르(증강)] 이었기에 가능한 변화이기도 했다.
기존처럼 간접적으로. 마나로 에테르를 간접적으로 구현한 것이었다면, 안티 마나스톤에 닿으면서 에테르도 사라졌겠지만……
오디션 당시 각성하면서 직접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재능개화의 능력이 증강되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안티 마나스톤 - 마나탄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지면 당연하게도……
이렇게 된다.
타앙 ㅡ.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LTD에서는 총알이 닿기보다 빠르게 방어막을 펼쳐 내었다. 그러나.
슈웅 ㅡ.
안티 마나스톤이 탄의 끝에 달려 있었기에.
초능력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이 마치 아무것도 없다는 듯. 총알이 매끈하게 통과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뻔히 아는 대로였다.
사람의 급소에 정확하게 총을 맞으면?
“일단 1킬.”
현대병기의 시대에 아직도 화살을 쏘는 불쌍한 중생이 첫 번째 희생자였다.
그리고 그 다음 타겟은 우리 PER의 팀원을 노리고 달려드는 LTD의 팀원 일동.
‘저 녀석들도 불쌍하게도…….’
너클, 해머 등 아직도 냉병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나를 실어 파괴력은 어마무시하겠지만 그래 봤자 구시대의 병기.
화살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딱한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생각은 그만하고……슬슬 경기를 끝내 볼까.’
이미 총성이 한 번 크게 울려 퍼졌으므로, 빠르게 저격지점을 옮긴 후. 다시금 저격이 이어졌다.
타당 ㅡ. 털썩
“이걸로 2킬.”
순식간에 2명이 당한 상황. LTD측에서도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자기들끼리 이어폰으로 통신할 테니, 듣진 못했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방어막으로 왜 못 막았어? 성역으로 치료는 안 돼?”
“그…… 그게. 한 번에 죽어서…… 방어막은 잘 모르겠어요. 분명 막아 낸 것 같았는데……”
“제기랄……!”
“안 되겠다. 내가 직접 간다.”
뭐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뭐, 내가 이렇게 당해 본 적은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지, 당황스럽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는 상황이겠지.’
이렇게 되면 상대측에서 나설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나를 잡거나, 혹은 도망가거나.
하지만, 도망은 필연적으로 큰 손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퇴각할 때 남겨진 이길한이 바로 아웃되어 버린 것처럼.
게다가 이번엔 총으로 정확히 저격해 보내 버리는 나를 상대로 등을 보이고 도망?
‘그때야말로 전멸이라고 생각하겠지.’
이렇게 소거하면. 당연히. 그래, 이준서라면 반드시 나를 노리리라.
자신만만한 수준의 무기술. 그리고, 마나사용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 그걸로 나를 잡기 위해 어떻게든 찾아내겠지.
‘설령 내가 지금 마나차단기를 입고 있더라도.’
1부 헌터들은 그리 녹록한 녀석들이 아니니까.
발자국의 미세한 흔적을 뒤지든, 마나차단기의 미세한 마나흔적을 잡든.
“그래,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어.”
“오냐. 제대로 저질러 줬던데.”
건너편에는 꽤나 살기가 등등한 이준서가 서 있었다.
***
한 편, 아직 PER이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는 때의 모습을 보고 있는 바깥은 잠잠했다.
PER의 패퇴와 도망. 이길한의 탈락까지. 그야말로 PER의 상황은 암울하다고 여겨졌으니까.
먼저 탈락해 대기실에서 경기를 보고 있던 이길한과 윤한결. 그리고 이번 경기는 참가하지 않은 김도준의 안색이 어두웠다.
“와…… 근데 진짜 잘하네 쟤네.”
“내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1대 1은 웬만하면 이길 거라 생각해서 의식하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나 때문이야…… 제기랄.”
이길한은 상대 팀에 대한 감탄을. 그리고 윤한결은 조금 더 신중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먼저 탈락했더라도, 어차피 경기는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여유가 만만했을 텐데.
지금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이렇게 몰린 적이 없었으니 당연했었던 걸까.
물론, 김도준은 평소와는 또 다른 결로 아쉬워 보였지만.
“인정~ 한결이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그냥 빛나는 검으로 와다다 해서 처리해 버렸지. 저번에 그거 막히고 새로운 장비랑 마나장비 구해서 또 새로운 거 짜왔는데…… 쩝~ 그거 있었으면 내가 이겼다~“
무언가 후비적거리면서 자기가 나갔으면 이겼을 거라는 것을 전력으로 어필하고 있는 김도준.
이 자리에 제동을 걸 만한 사람이 없어서였을지,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그러던 도중.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캐스터] : 아…… 결국 PER이 퇴각을 택하는군요. 어떻습니까. 퇴각을 택했는데, 재정비를 거친다면 무언가 승산은 있을까요?
[해설자] : 보통은 퇴각을 택한 후, 유물을 찾는다던지, 혹은 중립몬스터를 이용해 새로운 전술을 짠다던지 하는데……솔직히 이번 게임은 어려워 보입니다.
PER에서 준비한 새로운 능력이라도 없는 이상, 이길 구멍이 보이지 않는군요.
모두가 암울한 PER의 미래를 점치는 가운데, PER이 지금껏 화면에 비춰지지 않은 이연주와 합류한 것이었다.
[캐스터] : 이연주 선수……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전투에 이연주 선수가 없었어요! 특유의 [속박] 능력을 사용해서 지원하는 모습도 없었거든요……그럼 다른 것에 집중했다는 말일 텐데. 이건 혹시?
[해설자] : 간혹 나오는 ‘유물 찾는 별동대’를 운영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만…… 하지만 솔직히 지금 조합이나 능력적으로 너무 카운터라 무언가 아주 특별한 유물을 찾은 게 아닌 이상은……
해설자가 말을 잇던 도중에 화면이 확대되어 이연주가 이창현에게 건네는 물건이 포착되었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새까만 알갱이들이었다.
[해설자] : 아아……그 런 특별한 유물도 찾지 못한 모양이군요……
[캐스터] : 저건 뭐죠?? 유물인가요? 저는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만……
[해설자] : 아무래도 ‘안티 마나스톤’의 조각들인 것 같습니다만…… 마나를 흐트러트려 무효화시키는 효능이 있는 돌입니다.
[캐스터] : 오…… 그럼 저게 저희가 평소에 보던 거대한 돌덩어리 같은 그거군요. 저걸 이용하면 성역이나 방어막의 무효화가 가능한 게 아닌가요?
[해설자]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캐스터님도 아시다시피, ‘안티 마나스톤’을 거대한 것만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렇게 알갱이가 작아서야……마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반경이……
중계진의 비관적인 전망이 계속 쏟아지는 가운데. 이연주가 저걸 굳이 구해왔다는 걸 듣고, PER의 대기실에 있는 팀원들은 표정이 바뀌었다.
“저거…… 혹시 창현이가 연주한테 구해 오라고 한 거 아니야?”
“그렇담 혹시…….”
무언가 쓸 수 있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정말 예상치 못한 쓰임으로,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특별한 결과를 만들었던 이창현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화면이 전환되고 난 후 중계진에게서 탄성이 들려왔다.
[해설자] : 아아아아앗……
연일 불리한 전황만 이야기하던 도중, LTD가 PER쪽으로 공습을 가했는데, 이창현의 총탄이 방어막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방어막 안에 완벽히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LTD 원거리 딜러 궁사의 머리를.
[캐스터] : 이게 무슨 일이죠!!! 이창현 선수의 탄알이 방어막을 통과해 LTD를 꿰뚫었습니다!!
중간에 옵저버가 PER에서 PER을 습격하려고 출발하는 LTD로 돌아갔기에 시청자들은 알 턱이 없었다.
그 탄알이, 방어막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렇기에 온갖 추측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창현의 쇼가 시작되었다.
아니, 학살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몰랐다.
[캐스터] : 아아…… 방어막이 지켜 주지 못하는 LTD는 이창현 선수의 저격으로부터 전혀 안전하지 못하거든요……
성역은 치유효과가 탁월하지만, 이창현의 마나탄 사격은 사람을 한 번에 죽일 수가 있습니다! 성역만으로는 막지 못해요!!
한 번에 급소를 맞아 죽어 버린다면, 성역의 치유효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타앙ㅡ.
[캐스터] : 활을 쏘는 LTD의 원거리 딜러가……
타당 ㅡ. 털썩.
[캐스터] : PER의 한지수 선수를 쫓던 LTD의 근거리 딜러가……
하나. 둘.
[캐스터] : 쇼! 이건 쇼입니다! 이창현 선수가 혼자서 매드무비를 찍고 있어요!!
지금까지 철옹성같이 단단한 모습을 보여 주던 LTD가, 별 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마나실드도 방어막도 아무런 효과를 보여 주지 못한 채로, 사냥당하고 있었다.
“아자아자!!”
대기실에서 함께 경기를 보던 이길한이 포효했다.
윤한결은 그저 감탄하고 있었을 뿐.
한편, 김도준은 짧게 한 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