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급격한 변화
헌터스 리그를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헌터스 리그는 감독과 코치. 선수진의 능력 놀음이라고.
‘생각해 보면 딱 2부 LTD에 있었을 때 그런 말을 하던 녀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경기 외부에서 보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만한 부분이 많다.
팀원의 시너지로 특별한 전술을 구성해서 상대를 압살할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니까.
상대 팀의 능력을 분석해 파훼할 팀원을 짜 넣고. 그렇게 싸움을 붙이면 이기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만약 이번 경기만 하더라도, 전장이 “생명의 동굴” 같이 마나가 지나치게 충만한 곳이었다면 이준서의 [정적인 마나] 스킬로 제어가 힘들었을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공허의 전장] 정도만 되었어도, 타쿠미에게 보였었던 것처럼 나의 저격 원맨쇼로 급소를 노려 LTD를 상대로 차력쇼를 보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맵도. 유물도. 그리고 예상치 못했었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스킬의 의외성도. 모두 변수 덩어리니까.
그렇기에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헌터스 리그는 완전히 선수놀음이라고.
천변의 상황 속에서. 제아무리 뛰어난 감독과 전술가. 분석가. 기술코치가 있어도 의미가 없다.
‘믿을 건 자신의 판단과 지식 뿐…….’
우릴 완전히 분석해 왔다고 생각한 LTD에게 제대로 쓴 맛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
***
“아 뭐야. 저 녀석들…… 다 도망가 버렸네요.”
“그 때까지 잠잠했던 포탑이 그 타이밍에 딱 한꺼번에 작동할 줄이야…….”
“아니, 그 포탑. 어차피 내 능력이 안 통했어.”
“네?”
PER의 팀원들이 내뺀 후. 이길한을 쓰러뜨리고 LTD 팀원들은 잠시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가끔 있어. 그런 능력들이.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여기 주장이 누구냐?”
“아. 접니다. 선배. 아마 유물 찾아서 뒤집어 보겠다고 간 것 같은데…… 전술코치님이 이럴 때는 상대랑 유물 갯수 맞춰서 싸우면 최소한 질 일은 없을 거라 하시긴 했습니다.”
‘유물 갯수를 맞춰서 싸운다라…….’
PER녀석들이 유물을 찾으러 간 시간만큼, 우리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니 정공법이긴 했다.
그래도 역시 베스트는 아까 다 치워 버리는 거였는데…….
‘그 이기어검 쓰는 녀석에게 여유를 부리면 안 됐어.’
물론 상황은 아직도 7대 5. 상대방의 능력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
분명 압도적으로 유리한 건 맞는데, 변수가 생기는 것 자체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뭐 어차피 녀석들이 꽤나 좋은 유물을 찾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긴 하다.
“야. 방어막쟁이랑 힐쟁이. 마나 충분하지?”
“네…… 네? 힐쟁이요?”
“그래. 너 말고 또 누구 있냐?”
지금까지 나름 엘리트 취급을 받고 초고속으로 올라가는 중인 유혜주였지만, 이준서가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유혜주는 자신을 취급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는지,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듯 보였지만 이준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 네. 충분해요.”
“저두요!”
이건 단순히 그냥 체크한 거고, 지금 중요한 건 이 다음이니까.
“오케이. 그러면 주장. 어떻게 할지는 정했어?”
“네. 역시 상대에 맞춰서, 비슷하게 모으는 대로 격퇴를 목표로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남은 일은 하나였다.
상대 팀 PER의 위치. 방향을 측정하는 것과, 유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이연주가 있는 PER처럼 정확하고 쉽게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마나 감응 능력은 모든 헌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으므로, 방향을 찾아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오…… 마침 북서쪽 방향에 유물이 있네요. 거기서 더 가면 PER이 있는 것 같구요.”
“PER이랑 우리랑 어느 쪽이 유물에 더 가까울 것 같아?”
“아마 저희 팀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여기서 먼 거리도 아니고…… 얻은 다음에 바로 교전을 하는 쪽으로 하면 되겠군요.”
“음…… 그래.”
PER녀석들도 돌아다닌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직 유물을 취하지 못했거나, 많아도 한 개이리라.
그럼 우리 팀도 역시 가는 길에 하나를 취하면 적어도 크게 불리하지는 않을 텐데……
자꾸만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어차피 한 방에만 안 죽으면 상대가 어떤 유물이어도, 한 다발로 들고 와도 상관없어.’
이쪽엔 성역과 방어막이 있으니까.
“북서쪽으로 가자!”
“네 선배님.”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PER의 숨통을 끊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유물은 헌터스 리그에서 가장 큰 변수이자, 일종의 복권이기도 했다.
맵 별로 나오는 유물의 종류나 위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했지만, 맵의 종류가 너무 많아 그걸 다 외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통 마나감응으로나 유물을 찾는 게 보통이었다.
“근데 유물이 그렇게 좋으면 시작하자마자 유물 찾는 게 좋았던 거 아니야 우리? 그런 거 치고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야…… 유물을 찾는 건 너무 운에 기대는 면이 많으니까.”
어마어마하게 좋은 유물도 있는 만큼, 이게? 같은 수준의 별 것 아닌 유물도 많았다.
끊기지 않는 실 같은 유물을 찾아보았자, 굳이 쓸 때도 없는 것이다.
‘반면, 팀원이 합류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물을 찾는 다는 것 자체는 리스크가 꽤 크니까.’
그렇게 쓸 때 없는 게 나올 수도 있는데, 시작하자마자 유물 찾겠다고 뿔뿔이 흩어져서 움직였다가는, 먼저 합류해서 뭉쳐 다니는 팀에게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음…… 아무튼 말하려는 건 알겠어. 그래서 원하는 건 찾았어?”
한지수가 나와, 막 합류한 이연주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말한 대로…… 찾긴…… 했는데…….”
“아니 유물 찾는 거 맡겨 놨다면서, 왜 이걸?”
약간 푸르스름한 돌을 건네는 이연주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는 류재준.
“저희…… 이길 수 있는 것 맞죠?”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김유현.
“왜 그래. 이게 사람들이 잘 안 쓰긴 해도 꽤 쓸모가 있는 유물이야.”
“뭐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려러니 하긴 하는데…… 진짜. 그건…….”
내가 이연주에게 부탁한 것. 그건 유물, 아니. 유물이라고 하기엔 조금 힘들 수도 있을 만큼 흔한 것이었으니까.
“안티 마나 스톤은 대체 어디에 쓸라고…….”
마나를 흐트러트리는 성질을 가진 돌.
그건 유물이되, 유물취급은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가치가 있으려면 바위처럼 거대한 크기여야만 했으니까.
그에 반해 이연주가 모아온 것은 모래알갱이처럼 작은 부스러기들뿐이었다.
모으면 조막만 한 돌 정도의 크기는 될지도?
“어차피 다른 유물들은 연주가 다 확인했어.”
“근데 대체 왜 이것만 가져온 거야…….”
팀원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야 당연히 전세를 뒤집을 만한 게 없기도 했고…….”
“그리고?”
대답 대신에 어깨에 걸치고 있던 저격총을 들어 보였다.
“안티 마나 스톤을…… 넣어서 쏘기라도 하게? ……하. 그래서 그게 날아가긴 하냐? 마나 다 흩어져서 탄에 마나도 제대로 안 실릴 거 같은데.”
아무렴 너희들이 생각했던 걸 내가 고려 못했을 리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수다 떨 시간은 없었다.
남동쪽에서 상대팀. LTD의 인원이 다수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으므로.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빠를 터였다.
물론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일 순위이니 애들은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키고……
“연주 빼고, 유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여봐 좀.”
“뭐어?”
한지수는 표정이 썩었지만, 류재준은 별 말없이 내 말을 따랐다.
아마 뭐 때문에 그러는지 정확히 캐치했기 때문이리라.
“상대가 마나감응으로 우리를 체크하고 있을 수도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아…….”
그래야 아무래도 최대한 방심하도록 만들 수 있겠지.
이연주와 나는 진작에 마나감응 차단기를 착용해 잡히지 않았을 터였다.
“연주는 전에 말했던 대로 가자. 알았지? 그리고 나머지는 아예 샛길로 내려가서 계속 유물 쪽으로 향해 봐.”
이연주가 슬쩍. 혼자 뒤로 빠져나갔다.
“너네 둘 빼고 우리 셋만…….”
“응. 근데 죽진 말고. 위험하면 도망쳐. 자연스럽게.”
“거 참 요구사항 많네.”
한지수가 툴툴거리면서 류재준, 김유현과 유물 쪽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물을 중간에 두고 LTD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유물도 LTD가 더 가깝고, 상대는 7명에 유물 쪽으로 나선 PER의 팀원은 겨우 3명.
‘이거 뭐지…… 그냥 자살하라는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유물을 취한 LTD측에서 여러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이를 악물고 어찌되었든 이창현이 시키는 거니까, 피해서 살아남으려는데.
어찌된 것이 에어비트로 거리를 벌리고, 에어앵커로 코너를 돌아도 화살이 마치 인공지능 미사일처럼 쫓아오는 것이었다.
“아…… 참고로…… 저기 있던 유물은…… 명사수의 고글…… 이었어…… 쓰고 쏘면 공격이 자동으로 추적이 된다던데…….”
“아이…… 씨! 그걸 왜 지금 말해!”
한지수가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연주의 대답은 없었다.
“야! 이창현! 너 뭐 한다는 거 아니었어?”
“조금만…….”
“뭘 조금만이야! 나 죽게 생겼는데 미쳤어?”
과거에 한 성깔했던 한지수였기에 그랬던 걸까. 정찰 코앞까지 따라온 화살. 급하게 피하고 막아 보아도 마나가 담긴 화살이었기에 막아 낸 것들이 다 부서졌다.
그리고 진짜 화살이 한지수를 꿰뚫으려던 찰나.
타앙 ㅡ.
침묵하고 있던 이창현 측. 잠자코 숨어 매복하고 있었던 이창현 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뭐야…… 그냥 저격하려던 거였어? 근데 저거…… 방어막에 다 막히지 않나? 게다가 조금이라도 빗나가서 한 번에 안 죽으면 성역 스킬이…….’
눈앞에서 날아오는 화살도 잊고 잠시 생각하던 때.
갑작스레 날아오던 화살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단 1킬.”
‘…… 뭐지? 어떻게? 이렇게 간단히?’
한지수의 머리 속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방어막은 어떻게 뚫었으며, 성역의 회복효과는……
그래. 만약 안티 마나 스톤으로 어떻게든 방어막을 뚫은 건가?
혹시 그걸 총알에 달아서?
아니 근데 그걸 총알에 맞대면 마나가 흩어져 제대로 된 살상력을 발휘하지 못할 텐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는 가운데.
“한지수! 정신 차려!! 집중해!”
옆쪽에서 류재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화살이 아니라, LTD의 근접 딜러들이었다.
아주 화려한 무기들을 지니고 있는 걸 보아 딱 봐도 싸우면 지겠다는 생각이 들 만한 그런.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류재준, 김유현처럼 도망가기 시작하는데.
다시금 또 총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였다.
타탕 ㅡ. 털썩.
“이걸로 2킬.”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시간 도망치고 있으니, 또 다른 방향에서 또 총소리가 들렸다.
타탕 ㅡ. 콰쾅!
이번에는 단순한 총성이 아니라, 무언가 터지는 소리까지 들렸는데?
한지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뒤를 돌아보니 쫓아오는 LTD의 팀원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