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두려울 때, 헤쳐 나가는 법
그렇게 PER의 주말을 떠들썩하게 달군 꼬맹이 녀석이 가고 나니, 다시금 시작된 건 역시 팀 훈련이었다.
다음 경기는 2부의 LTD. 이전 시즌에는 2부에서 4등이었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즌엔 오히려 우리 팀이랑 승점이 비슷하네…….’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대였다.
아마도 내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저 LTD팀에는 1부가 너무 빡세, 잠시 한 숨 돌릴 차원에서 2부에서 감을 되찾는 선수도 있었던 것 같다.
‘헌터스 리그의 1부 리그 경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가 굉장하니까…….’
멘탈관리 겸, 감을 살리기 위한 용도. 일종의 회복, 재활을 위한 팀으로 LTD의 2부가 운영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회귀 전 2부에서 활동했던 팀이 저 팀이었기에 기억이 났다.
그리고 역시 1부에서 최상위권 팀으로 강림하는 LTD인 만큼 2부도 선수 풀이 꽤 넓고, 능력도 굉장히 다채롭다.
흔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나 볼 법한. 능력자 배틀물스러운 능력도 꽤 있었다.
예를 들면, 물을 조종하여 쏘아 낸다던가.
팀일 땐 정말 강력한 편의성과 자유도를 제공하지만, 적으로서는 굉장히 껄끄러울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나름 그것도 자기 컨셉이라고, 일부러 머리도 푸른 색으로 물들이고 다니는 특이한 녀석이었는데……
얼굴이랑 능력은 대충 기억이 나는데, 그 외에 다른 것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이름이라던가, 성격이라던가.
'그 녀석은 2부가 아니라 1부에서 만났었나?'
회귀 전에는, 특히 2부 3부 때에는 팀원들이랑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어차피 다음 시즌이면 내가 콜 업 될 것이기에 만날 일이 없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이게 내 팀을 꾸리는 것과, 단순히 나의 성장을 목표하는 것의 차이인 걸까…….’
아직 어느 것이 더 옳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 팀을 꾸리고 함께 성장하는 것과, 내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올바른 지는, 더 나아가서 1부리그로. 그리고 국제리그에 가서야 알게 되겠지.
그래, 일단은 당장 다음 경기인 LTD와의 경기에 신경 써야 할 때다.
***
“북동쪽으로 30미터…… 아래. 아마…… 그쪽 즈음에 매복한 것 같아.”
이연주가 팀원들에게 빠르게 전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한결이 이연주가 말한 방향으로 돌입했고, 그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랴!!!!!!!!!!!”
“팀원능력에 위치추적이 있는데 매복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냐?”
윤한결이 조종하는 여러 자루의 검이 김도준과 싸우다, 결국은 김도준을 도륙 내버렸다.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었지만, 내일 바로 LTD전을 앞두고 있었기에 별도의 피드백 시간은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하면서, 각자 방으로 돌아가는데……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이연주였다.
표정이 굳어 보이는 것이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었다.
‘흠…… 이번 경기도 특별한 활약을 한 건 아니지만, 이연주가 있는 팀이 이겼는데. 뭔가 켕기는 부분이라도 있나?”
“뭔가 잘 안 되는 부분이라도 있어?”
이럴 땐 먼저 가서 물어봐야 했다. 이연주의 성격이면, 혼자 끙끙 앓으면 앓았지. 절대 먼저 말할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그리고 역시나.
“아…… 아니. 별 거 아니야……”
말만 들으면, 뭐야. 평소의 이연주네.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계속 성장시켜야 하는 팀원들인 만큼. 끝까지 이끌어 주는 것이 맞으리라.
“글쎄…… 나라면 잘 안 되는 부분을 느꼈을 텐데.”
솔직히 뭔지는 잘 모른다. 내가 이연주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이야기를 이끌어내서 느끼는 바를 듣는다면 분명 그것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는 있겠지.
에헴. 지금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무려 국제리그 우승 경력을 가진 선수니까.
“그런 부분은 혼자 고민하는 거보다는 차라리 남한테 말하는 게 낫지. 감독도, 코치도 그러기 위해 있는 거니까.”
생각해 보면, 내가 감독 겸 선수라서 오히려 더 상담하기 어려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쯤 말하니 아무리 이연주라고 하더라도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으. 알고... 있었구나.”
그야 평소에는 이것저것 다 알려 줬으니까 당연히 꿰뚫어본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말문만 터주면 술술 말하게 될 수밖에.
“그…… 꼬마 애랑 싸웠던 게 자꾸 생각이 나서.”
아아. 이정훈을 말하는 건가?
확실히 이정훈이 분전을 하긴 했지만, 이연주가 딱히 못한 건 아닌데.
이연주는 애초에 남이랑 싸울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포지션이니까.
“별다른…… 능력도 없는 꼬맹이였는데…….”
그런 이야기인 건가. 별 다른 능력도 없는 꼬마를, 깔끔하게 이기지 못했다는.
‘…….’
어쩌면. 이건 진짜 순수하게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이연주가 그 꼬맹이와의 승부를 깔끔하게 이기지 못한 걸 더 신경 쓰는 건 아무래도 얼마 전 있었던 정혜연의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잘려 나가는 정혜연을 봤기에.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거겠지.’
이 팀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그렇기에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리라.
특히나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전투요원이 아니기에 더더욱.
물론 여기에 대한 답은 단순했다.
너는 네 역할이 다를 뿐, 전투요원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해 주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걸로 납득할 수 있을지는 개개인마다 다르리라.
가장 좋은 건, 차라리 그 선수의 효용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막 각성한 꼬맹이 하나 이기지 못한 선수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 두려워?”
이연주의 능력은 지금으로도 사실 충분히 아주 강력하다.
그 이점이 분명한 만큼, 단점도 분명할 뿐.
그런데, 이연주가 단점을 메울려고 하면 오히려 더 평범하고 볼품없는. 특색 없는 선수가 될 뿐이다.
차라리. 그 이점이 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답이겠지.
“……조금은. 그래.”
“흐음... 그렇단 말이지.”
지금도 나름대로의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이연주가 ‘특별히 눈에 보일 정도의 활약’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졌다.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전투력으로 무언가를 보여 주는 것은 전혀 불가능.
그렇다고해서 서포팅도 정해진 스킬 밖의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했다.
‘내가 이연주의 스킬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회귀 전. 최정상에서 만났던 다른 선수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최정상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능력이 출중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연주보다 별로인 능력을 가진 녀석도 있었으니.
하지만, 분명히 모두 자신만의 강점으로 무언가 강렬한 존재감을 뿜을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은 뭘로 톱을 찍었더라...'
새록새록 회귀 전, 정상급 선수들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올랐다.
능력 없이, 각성자의 신체능력을 압도적으로 끌어올려 각종 무기술의 달인이 되어 무쌍을 찍었던 선수.
각종 마나장비를 섭렵하고, 끝내는 자신이 마나장비를 개발까지 해 경기에 엄청난 변수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던 뇌지컬 파 선수.
그 외에도 별 것 아닌 능력의 이해도를 극한으로 끌어내 기상천외한 사용방식으로 경기를 주물럭거렸던 선수까지.
정말이지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이 중에 이연주가 쓸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조금 응용해서 이연주의 살릴 수 있는 부분을 살려 본다면?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꽤나.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 경기에서 이긴다면, 이연주가 MVP를 받을 수 있을지도.
물론 이연주는 내가 제시한 전략에 약간의 의문을 품긴 했지만.
“그…… 그래도 되는 건가?”
“안 될 건 없지. 나중엔 파훼 될 수 있겠지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할 일이니까.”
헌터스 리그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선수들과 맵의 조합. 전략의 조합은 종종 그게 최초의 전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낼 필요는 없다.
밤새 하얗게 내려앉은 마당의 눈밭에 발을 내딛을 때,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으니까.
***
팀 LTD의 선수 지도층 사이에서 1부 감독. 이진한이 PER의 이창현 선수를 3부 리그 시절부터 원했다는 건 꽤나 유명한 소문이었다.
그리고 이진한 감독이 점 찍었던 게 틀리지 않았는지, 무서운 속도로 팀을 이끌고 올라가고 있기도 했고.
‘그런 녀석이 이번엔 2부 리그인가…….’
LTD는 3부팀, 2부팀, 1부팀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PER에 대한 정보가 꽤나 잘 공유되고 있긴 했다.
그래서 3부의 그 꼴사나운 감독. 이형근이랬나. 그 감독이 쪽팔리게 한 방 먹은 것도 알고 있고.
“그래서. 전력분석팀에서는 뭐래?”
“지금까지 제공한 보고서를 검토했지만 크게 달라진 거는 없을 거랍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도 내 체면이 있기에, 기왕이면 저 팀에 지고 싶지 않았다.
이형근 감독이 입 털고 저 PER인지 뭐시긴지 하는 팀에 졌다가 LTD 선수 지도층에서 아주 그냥 조리돌림을 당했으니까.
‘그런 것 치고는 요새 경기력을 보면 심상치 않은 게 맞긴 맞아.’
물론 그렇다고 질 수는 없긴 했지만.
“그럼 이번 경기는 1부 대기 선수들을 명단에 조금 포함시켜 볼까요?”
“가능한 대로 해봐. 이번에 지면 너나 나나 전에 이형근 깠었는데, 얼굴 들고 못 다닌다.”
지금 이 LTD팀에는 1부에서의 극심한 피로로 내려와서 폼을 되찾고 있는 뛰어난 선수까지 있었으니, 변명을 할 수도 없으니까.
그렇게 1부 선수까지 동원했는데 패배하면 진짜 변명의 여지 따위는 없으리라.
“그리고 우리 이번에는 특히 조합 신경 써 보라고, 상위 리그 측에서 지원해 준 게 있는데. 한번 보여 줘야지.”
선수 자체로는 그냥 뭐…… 나쁘지는 않은 정도인 선수지만.
그 유혜주라는 신인. 지금 가지고 있는 선수 풀과 시너지를 맞춰 보면 아주 말도 안 되는 전략을 펼칠 수 있으니까.
“근데 솔직히…… 이번 시즌에는 저희 팀이 PSG도 제치고 1등할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까지 그 팀을 경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인드로 하니까 안 되는 거다…… 그 녀석들은 지독한 녀석들이야.”
개막전이 있었던 날, 두 번째 경기 QED와 PER의 경기는 그야말로 어떻게 보면 한 대 때리고 기지에 틀어박혀 농성하는 지독함의 극치였으니까.
졸렬하다. 비겁하다. 그런 말이 절로 나올 수도 있겠지만, 여지를 주지 않는 승리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싸워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그런 거는 팬들이나 좋지.
무조건적으로 별 해프닝 없이 이기는 게 좋은 선수 지도층입장에서는 전혀 좋지 않았다.
‘전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수니까.’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상대의 예기치 못한 능력 풀로 인해 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헌터스 리그에서는 적어도.
치열한 전투를 겪지 않고 이기는 게 분명 최상이리라.
그런 전투를 실제로 해내고야 마는 PER을 짓밟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법.
“어찌되었든. 이번엔 내가 말했던 대로 진행해.”
“후…… 알겠습니다. 근데 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전략은 PER이 아니라 PSG 상대할 때 써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째려보자 코치의 말이 끝으로 갈수록 사그라들었다.
아직도 사태의 중대성을 모르는 녀석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