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의외의 만남
장소는 경기장. 때는 여느 때와 같은 시즌 중. PER과 2부 다른 팀의 경기 중이었다.
[분석가] : 게다가 3부와 2부는 전술과 전략의 큰 차이가 있기에 ‘감독’과 ‘전술분석가’가 중요하거든요.
특히 선수 겸 구단주 겸 감독이라는 특수한 포지션인 ‘이창현’선수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캐스터] : 2부에서 계속 승승장구하면서 그 이야기가 쏙 들어간 것이군요!
[분석가] :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의 경기만 하더라도 그렇고, 다른 팀은 분석가, 전술 코치, 무술 코치 등등을 영입함에도 성과가 PER보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네.’
현재 PER은 QED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연전 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HXG를 비롯한 몇몇 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아 예상하긴 했지만……
한 번쯤은 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다 이기니 다들 자신감도 붙고 분위기도 좋을 수밖에.
“야, 오늘 MVP는 누굴 거 같냐?”
“응. 일단 넌 아님.”
“와…… 이걸 김도준이? 또? 아니 쟤는 인터뷰 담당자한테 뭐 뇌물 먹인 거 아니냐?”
“꼬우면 너도 뇌물 먹여~”
덕분에 팀도 시끌벅적한데, 사실 본게임은 이제부터인 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 주 경기 스케줄이 PER대 2부 LTD. 그리고 PER대 PSG.
2위인 QED를 제외하면 연승의 제물이 된 팀들은 전부 하위권 팀이었다.
‘아무리 2위인 QED를 이겼다고는 해도 쉬워 보이는 팀들은 아니니까…….’
오히려 예상보다 우리 팀이 잘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분명 2부 승강전 때만 하더라도 허우적거리는 게 눈에 보였는데.
한 번 빡세게 하고 나니 실력이 쭉쭉 느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PSG상대로는 승부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경기를 몇 번 했음에도 밑천이랄 만한 걸 보인 적이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PSG를 상대하기에 앞서서 2부 LTD와 경기한다는 점이었다.
2부에선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팀이었지만 최근 팀원이 교체되고 나서 꽤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워밍업으로 폼을 끌어올리기에 좋겠지.’
뿐만 아니라, 2부 LTD…… 회귀 전에 몸담았던 팀이었기에, 기억이 새록새록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1시즌만 몸담았기도 하고, 딱히 팀원이랑 어울려 놀려고 하지 않아서 그리 많은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역시, LTD를 상대로는 몸이 달아오르는 게 있다고 할까.
“다음 주에 상대하는 팀은 좀 빡세니까. 신경 좀 써 보자.”
“안 그래도 다들 그 얘기 하고 있더라.”
“어? 왜. 상대 팀에 아는 녀석들이라도 있어?”
“몰랐어? 이번 시즌 LTD에 슈퍼루키로 유혜주 영입했다고 꽤 난리였잖아.”
아 난 또. 누구라고. 그건 그렇고 유혜주도 이쯤 되면 내적 친밀감까지 들고 그러는 것 같다.
회귀 전에도 꽤나 잘 나갔지만, 매 시즌마다 꾸준히 상위리그의 좋은 팀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역시 한끗이 있나 싶기도 하고.
원래 회귀 전에는 유혜주가 LTD를 가지 않았었던 것 같은데. 내 행동이 달라지면서, 유혜주의 행보도 달라졌나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랬나. 아무튼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자. 인터뷰 끝나면 바로 가게 짐 챙겨.”
“알겠어.”
***
그렇게 주 중 일정을 끝내고, 다시금 주말이 되었다.
PER이 1부였다면, 주말에 경기를 준비하느라 더 분주한 타이밍이었겠지만, 2부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기가 평일이었다.
그나마도 토요일은 연습경기가 있지만, 일요일의 경우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그래서 보통 일요일의 PER 홈은 한산했다.
보통은 쉬거나, 혹은 개인 훈련을 조금 하던가.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게 고요한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창현아. 아래에 누구 와 있는데?”
“나 보러?”
윤한결이 끄덕였다.
딱히 날 보러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부모님은 저번 주말에 찾아뵈러 갔었고…… 이근택 회장님도 최근에 연락했고.
‘직접 찾아올 만한 사람이 있나?’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근데…… 그게 어린애던데.”
어린애? 더더욱 오리무중이었다.
어찌되었든 그 이야기를 듣고,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진짜 윤한결의 말대로 어린 녀석이 떼를 쓰고 있었다.
“제가 3부부터 이창현 감독님 팬인데, 팬사인회 할 때 직접 찾아와도 된다고 말 들었다니깐요?”
“하하…… 이창현 선수는 좀 어려 보이셔도 구단주직도 감독도 맡고 계셔서 많이 바쁘실 텐데.”
김성준이 진땀을 흘리며 상대해 주고 있었다.
‘팬 사인회? 3부였다가 이제 2부 된 팀에 팬 사인회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실제로 회귀 전에나 했지, 회귀 후 팀 PER은 팬 사인회따위는 한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단순하게 만나기 위해 무언가 핑계를 가짜로 만들어 냈을 뿐. 특히 어린아이면 그럴 가능성이 높으리라.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날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려나.’
솔직히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뭐, 선수를 직접 보고 싶어 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면 굳이 이제 막 2부가 된 팀인 PER보다는, 1부 LTD나. 뭐, 한국 국가대표 팀이나.
지금 시점에는 그런 좋은 팀이 있는데 굳이?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무튼 김성준이 버티는 것이 힘들어 보였기에,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제서야 김성준과 꼬마 녀석이 기척을 눈치챘는지 이쪽을 바라봤다.
“감독님……!”
“무슨 일이에요?”
김성준에게 말을 걸던 도중, 김성준이 말을 할 시간도 주지 않고 꼬맹이가 답했다.
“이창현 선수님이시죠? 저 봤어요! 지난 경기랑, 오디션 경기랑, 3부에서의 경기까지 전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겪어 보지 않은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직 2부인 지금에서 벌써부터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는데.
의외이기도 하고, 조금은 뿌듯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옛날 생각이 났다.
회귀 전, 처음으로 헌터가 될 무렵의 일들이.
[만개]를 개방하지도 않은 정말 먼 과거의 시점. 눈에 띄는 선수도 아니고, 막연히 상위 리그의 선수를 동경하면서 눈을 빛내곤 했던 기억들이 생각났다.
‘나도 그 때, 무작정 1부의 에이스 선수들 팬 사인회에 찾아가서 혼자 막 떠들었었는데.’
그 때. 나도 저 꼬마 아이처럼 비춰졌을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왜 찾아왔니. 꼬마야.”
허리를 숙이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웃으며 말했다.
개인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선수를 선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건 결국 팬이었고, 경기를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게…… 경기 봤어요.”
어째 김성준한테 말할 때처럼 말이 술술 나오지는 않나 보다.
“봤는데…… 그 오디션 때 건물 무너뜨리고 막 총 쏘고, 막 혼자 진입해서 다 피하고 총으로 쏴서 죽이고, 와이어 액션처럼 날아다니고. 그리고 막 류재준 선수랑도 호흡 맞추고……!!”
그러다 주체할 수 없는지 갑자기 말이 쏟아 넘쳤다.
“근데 사실 보려면 1부 선수들이 더 유명하고 멋질 텐데. 이거,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네.”
순수한 본심이었다.
“2부 경기장. 맞아요! 그게 제 첫 헌터스 리그 관람이었는데 QED랑 경기할 때! 그때 보고 감동했어요!”
아이가 떠올랐는지 혼자 신나서 떠드는 데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성준에게 다과를 부탁하고, 1층의 로비에서 천천히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대게는 아까처럼 모두 내가 활약했던 이야기, 멋있었다는 거. 형처럼 되고 싶다는 그런, 시답지않으면서도 너무나 고마운 이야기.
“저…… 그래서 형 찾아왔어요. 저도 각성했거든요!”
호오…… 이건 의외였다. 아무래도 찾아온 계기가 된 건 각성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 아이는 운이 참 좋다 싶었다.
원래는 각성하더라도 정확히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능력인지 감을 잡기가 정말 어려운데.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는 나를 찾아오다니…… 이것도 인연이겠지.’
한 번 봐주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래서 단순히 한 번 자신을 봐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녀석이 당돌했다.
“PER에서 팀원 뽑는다면서요! 저도 시험 보러 왔는데, 가능한가요?”
내 생각보다도 너무 과감해서일까, 웃음이 나왔다.
“미안한데, 시험은 2부 리그가 시작하기 전에 끝났어.”
“아…….”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제서야 자신이 제대로 된 정보를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긴, 뭐 적당히 소문만 듣고서 시험 봐서 눈에 들면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린애라면 충분히.
하지만 이렇게 꿈과 희망을 가지고 온 아이를 이야기만 듣고, 적당적당한 조언만 들려주고 돌려보내는 건 예의가 아닐 터.
“근데,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한 번 봐주는 것까지는 해 줄 수 있겠지.”
능력도, 헌터로서의 가능성도. 방향성도.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이건 엄청난 값어치의 서비스였다.
다행히 아이도 그걸 어느 정도 이해했던 걸까.
어두워졌던 표정이 순식간에 다시 활짝 피어났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봐 달라고 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연습실에 가기에 앞서 먼저 [꿰뚫는 눈]을 발동시켰다.
‘스테이터스는 뭐…… 훈련이 중요한 거니까 스킬 위주로 볼까.’
[이정훈]
[스킬]
[천 개의 재능 : A (S+)] : 자극에 의해 재능이 개발되고 생성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스킬. 하지만 보자마자 눈이 크게 뜨일 수밖에 없는 스킬이었다.
지금껏, 본 모든 스킬 중에서도, [만개]를 제외하면 가장 성장성이 큰 스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성장 가치가 높은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녀석을 회귀 전에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 그것도 이 재능 때문이겠지.’
재능이 개발되고 생성될 수 있다는 것. 그건 동시에, 개발하고 생성하지 못한다면, 각성했음에도 아무런 초능력이 없다는 뜻.
C+급의 완력 강화 능력보다도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
특히, 각성했음에도 자신이 무슨 능력이 있는지도, 그리고 개발시킬 수 있는지도 전혀 모른 채로.
회귀 전, 나를 만나지 못했을 때는 그 꿈을 갖고 좌절하고, 스러졌으리라.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현실은 어차피 지금 없다.
지금은 내 앞에 찾아온 것이 현실이니까.
‘내가 모든 걸 해 줄 순 없겠지만…… 조금 큰 선물을 줘 볼까.’
“각성하고 몸은 좀 움직여 봤니?”
“네 이제 막 적응 됐어요.”
“헌터들처럼 움직여 본 적은 있어?”
“잠깐이지만, 헌터 아카데미도 조금…… 아직…… 그 별다른 능력을 발견하지 못하긴 했는데…….”
우물쭈물 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2층에 위치한 PER의 연습실로 향했다.
‘어쩌면 미래에 좋은 팀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단순히, 조금은 과거의 내가 겹쳐 보여서.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