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계획된 경기의 끝
“다 부서져 있잖아?”
QED의 팀원이 찾은 첫 유물은 마치 칼로 난자당한 듯.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불안한 상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일단 다른 유물을 찾아보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은 다른 유물의 흔적.
그 흔적 끝에 있는 것 또한……
“이것도??”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안한 상상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녀석들 설마…….”
칼로 난자당한 듯한, 유물의 흔적.
녀석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많이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면……
‘설마 처음부터 틀어박힐 작정을 하고, 유물을 다 부숴 버린 거냐……!’
아마 사용한 것은 폭탄을 매달았던, 그 날아다니는 검을 이용한 것이리라.
그렇게 하면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검을 날려 유물을 부술 수 있으니까.
그 순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유물을 찾는 건 그만한다.”
“그래도 혹시 멀쩡한 게 남아 있을지도…….”
“그런 불확실한 것에 시간을 끌기에는 이미……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어.”
유물을 찾는다는 건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 마나의 근원을 느끼기 위해 계속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했고, 그런 상태로 넓은 이 맵들을 둘러봐야 했다.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상은 말이지…….’
짧은 시간에 이런 일들을 벌인 것을 보면, 녀석들은 무언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팀에 있으리라.
아무튼, 유물을 찾느라 긴 시간을 보낸 QED에는 이제 별로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싸우지 않으면, 그대로 인원 수가 적은 QED의 패배니까.
“……어쩔 수 없어. 우리의 전투력을 믿는다. 그것밖에.”
본래라면 상대가 파 둔 함정 속으로 들어가는 선택은 하지 않겠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가자.”
***
한편, 경기 안에서 직접 움직이는 선수가 아닌 외부인의 시점에서 이 경기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캐스터] :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경기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 하나도 없이 모두 PER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말씀이군요.
[해설자] : 그렇습니다. PER이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합류입니다.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함이었죠. 재미있는 점은 방어진지를 구축한 후, 먼저 사거리에 제한이 없는 윤한결 선수의 이기어검으로 유물을 모두 부숴버리죠.
아마 한 자리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움직이지 않았을 때 생길, 유물로 인한 문제를 사전에 제거해버린 겁니다.
그 후에서야 이창현 선수와 류재준 선수의 특공대가 투입. 나머지 검에는 마나봄버를 달아 폭격해서 특공대를 도와줍니다.
하하... 그야말로 이건 완전히 PER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였던 경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QED는 유물을 찾아 헤매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결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PER의 준비된 판에 들어올 수밖에 없게 되는 건가.’
한지후가 혀를 찼다.
치밀하다 못해, 집요하게까지 느껴지는 전술이었다.
보통 일반적인 수준이라면 첫 공세에 폭격까지 가하고, 2명을 줄였으면 7대5이니. 인원 수의 이점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전면전을 걸었을 텐데.
‘영악한 새끼.’
더. 더. 더.
적어도 이 경기에 한해서는 탐욕스러운 수준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해설자] : QED…… 결국 이렇게 된 겁니다. 아. 이제 PER이 파둔 함정으로 직접 걸어들어가는군요! 하지만 QED의 교전 저력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PER도 긴장해야 합니다!!
해설자가 열띤 목소리로 해설을 이어 나갔지만, 적어도 한지후의 눈에는 이 경기는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팀과의 경기도 조금은 경계할 필요가 있겠군.’
아무래도 더 헌터스 데이 때도 그렇고. 인정하긴 싫지만. 한 끝은 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한명 한명이 2부 최강의 전력이라고 일컬어지는 PSG에는 안되겠지만.
***
바깥에서는 경기 내 외적으로 이렇게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정작 경기의 중심. PER이 쌓아 올린 방어진에는 전혀 다른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야. 네 차례야. 뭐하고 있어.”
“몇 초 안에 둬야 한다는 룰은 없었잖아. 닦달하지 마라.”
“아 그러셔? 그럼 내 차례 오면 한 번 한 시간 버텨 봐?”
“넌 일부러 그러는 거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랑 같냐?”
‘어휴…….’
PER의 팀원들을 보는데 한숨이 나왔지만, 뭐. 앉아서 흙에다 저런 걸 끄적이고 있을 만큼 할 일이 없는 것도 맞다.
흙 위에 선을 그어 두고, 마나로 만든 형태로 돌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이제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요.”
‘눈치챈 건가…….’
솔직히 좀 빨리 알아차려 줬으면 했는데.
나라면 솔직히 유물 박살 났을 때부터 대충 눈치를 챘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이런 방어 위주 전략을 짜면서, 유물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아닌가? 일반적인 3부 선수는 고려 못 했으려나?’
뭐, 아무튼. 난 일반적인 선수도, 3부 선수도 아니니까 상관이 없겠지.
어찌되었든 이젠 슬슬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김도준이 두고 있는 오목판(?)을 신발로 긁어 지워 버렸다.
“아 왜~ 모처럼 내가 압살하고 있었는데.”
“슬슬 일할 시간이다.”
그렇게 말하자 김도준이 씨익 웃었다.
“아…… 길었다. 이 싸움.”
지는 경기 시작하고 여기 와서 한 발도 꿈쩍 안했으면서 뭐가 길어. 길기는. 하여간.
그렇게 팀원들이 각자 정해 두었던 위치로 향했다.
광역 공격을 대비한, 약간은 산개해 있는 진영이었다.
빈 곳은 김유현의 ‘포탑’이 위치해 어느 곳에 있는 팀원도 지원사격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뿐만인가, 애초에 지형 자체가 원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수비하는 사람이 유리하도록 바뀌어 있었다.
맞이할 준비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상대가 돌입했다.
QED였다.
탕 ㅡ. 타앙!!
가장 먼저 QED를 맞이한 건 당연하게도 내 저격이었다.
‘아껴둔 내 마나봄버를 이렇게 저격에 사용하면…….’
콰쾅!
놀라운 속도로 상대방이 저격에 반응해 마나 실드를 작동시켰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건 그냥 저격이 아니었기에 마나 실드는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한 명 줄이고 시작할 수 있지.’
그렇게 가장 가장자리에 있던, QED의 팀원 중 한 명이 제대로 진입하기도 전에 마나봄버 저격에 폭사했다.
남은 QED의 팀원은 4명. 그마저도 아까 류재준과의 습격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는지, 상태가 완전하지 않았다.
“졸렬한 새끼들…….”
QED가 입술을 짓씹으며 돌입했지만, PER엔 별다른 긴장감이 없었다.
어떻게 할지. 이미지 트레이닝은 물론, 그 방법까지도 세세하게 짜여 있었으니까.
우선 침입한 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단연 김유현의 포탑이었다.
퉁 투퉁 퉁!
몇 개인지 모를 포탑의 자동 사격.
그와 동시에 나의 핀 포인트 지원 사격.
QED는 돌입과 동시에 바로 쫓길 수밖에 없었다.
쳐들어왔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드디어 왔구나! 악당 놈들……! 으랴!!”
그러던 중 QED의 팀원 중 하나가 김도준과 마주쳤다.
김도준이 먼저 검을 번뜩이며 급습을 가했는데, 놀랍게도 상대는 그걸 막아 냈다.
챙!
거대한 건틀릿으로 팔을 들어 손쉽게 막아 냈다.
역시나, 아직 개인기로는 QED를 이기기 힘든 수준이었던 탓이리라.
그래서 그 QED의 팀원이 팔을 들면서 막아 낸 후 연속동작으로 김도준의 빈 몸쪽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지만,
퉁 투퉁 퉁!
이쪽은 한 명을 만났더라도 그 상대가 결코 한 명이 아니었다.
“큿……!”
눈 앞에 보이는 상대가 한 명이더라도 지원사격을 하는 사람 하나. 거기에 포탑. 인원의 불균형으로 더 많은 팀원이 빈틈을 노릴 수 있기까지.
결코 모든 걸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흩어져서 싸우지 말고, 모여!! 평소처럼 흩어져서 싸우면 전멸이다!”
‘호오…….’
저 녀석이 QED의 중심인가.
아무래도 호랑이한테 물려왔어도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궁지에 몰려서도 의지를 잃지 않는 건 칭찬해 주고 싶군…… 하지만.’
QED의 팀원이 소리친 녀석을 중심으로 다시 진을 짜고 마나실드를 올린 순간.
잘 보이지 않는 구조물 뒤에 숨어 잠자코 있던 류재준이 다시 포탑의 발포 소리에 기척을 묻어가며, 위에서 강습했다.
그야말로 화려한 등장.
그러면서도 데쟈뷰를 일으키는 듯한 장면이었다.
“준비됐냐?”
나를 향한 말이었다.
“물론이지.”
경기 초반.
7대2로 상대를 휩쓸었던 모습이, 다시금 완전히 뒤바뀐 입장에서 재현되었다.
키이이이잉 ㅡ.
그 날의 경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
그 날 경기의 반응은 그야말로 굉장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 예상했던 PSG와 TAK전보다도 훨씬.
[QED 그냥 개불쌍하네 ㅋㅋ 응~ 거기에 유물없어~]
ㄴ 옛날 옛적에 부숴 둔 거 엉금엉금 돌아다니면서 계속 찾고있어……개불쌍하네
ㄴ ㄹㅇㅋㅋ 멍청하면 몸이 고생해야지~
ㄴ 근데 멍청하다기보단 PER이 진짜……하.
ㄴ 야……진짜 오늘 경기는 대 서사시였다.
[근데 진짜 죽을 걸 알면서도 거기에 기어 들어가는 게 보기 짠하더라.]
ㄴ 짠할 게 뭐가 있어. 그냥 선수가 승부수 던진 거지.
ㄴ 보통 승부수는 던질 때 결정할 권리라도 있지. 이건 그냥 권리를 뺏어버렸자너 ㅋㅋ
ㄴ 그건 그렇긴 함.
ㄴ 게다가 마지막에 다시 교전 한번 일으켜볼려고 모였다가 초반 장면 데쟈뷰에 그냥 지려버림.
비극은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딱 그 꼴이었다.
어찌되었든 관중들의 환호가 엄청났기에, 다른 팀원들도 표정이 꽤 좋아보였다.
아예 덩달아 커뮤니티 반응을 체크하려고 하는 녀석도 있었고……
“아…… 이번에 솔직히 MVP는 나겠지?”
류재준 녀석이 특히 이번 경기가 만족스러워 보였다.
MVP는 뭐…… 류재준이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긴 했다.
워낙 중요 장면마다 임팩트 있는 모습을 다 가져가서. 그 임팩트뿐만 아니라, 나랑 같이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고.
그리고 실제로 그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스태프에게 MVP가 류재준임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부분도 하나 있었다.
“네? MVP는 전데 인터뷰는 제가 아니라구요?”
류재준이 스태프에게 반문하곤 나를 쳐다보았다. 뭐지? 시즌 첫 경기라 내가 나가나?
아무래도 시즌 첫 경기이기도 하고, 나도 꽤나 활약했기에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스태프에게 나온 말은 정말 의외의 말이었다.
“커뮤니티와 관중, 캐스터 측에서 강한 요청이 있어 김도준 선수가 하게 되었습니다.”
“???”
김도준이? 이번 경기에선 시작부터 끝까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왜? 왜 굳이 이 녀석을 인터뷰한다고 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럽냐? 부러우면 말을 해. 야. 형 다녀온다.”
김도준이 다른 녀석들을 약 올리며, 스태프를 따라 나갔다.
그 때, 문득.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김도준을 부른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