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손바닥 안
바깥 관람석, 그리고 커뮤니티의 반응은 그야말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서로 멀쩡한 상태에서 7대 2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일은 그야말로 전례가 없었으니까.
두 명만 차이가 나도 웬만해서는 이기기 힘들다고 보는 헌터스 리그에서, 5명 차이가 나는데 상대만 피해를 입고 빠졌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창현)아빠가 말이야 왕년에, 헌터스 리그에서 7대 2를 했다니까.GIF]
ㄴ 응 구라 치지 마 ㅋㅋㅋ 절대 안믿어
ㄴ fact) 사실이다.
ㄴ 팩트라고 써놓고 옆에 사실이라고 써놓는거 왜캐 웃기냐 ㅋㅋ
ㄴ 근데 내가 그 아들이라고 쳐도 안 믿었을듯
ㄴ ㄹㅇㅋㅋ 직접봤으니까 믿지 그걸 누가 믿냐고.
[비록 2부에서 나왔지만 기념비적인 장면임.real]
ㄴ 왜냐하면 능력의 가짓수나, 전투 인원 수보다, 중요한 게 밝혀졌기 때문임.
ㄴ 그게 뭔데?
ㄴ 실력
ㄴ 뭔 ㅅㅂ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이 하이라이트 장면 하나만으로 커뮤니티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저번에 3부에서도 PER의 경기를 한 번 봤던 김준서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일만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인원수 차이까지는 아니었지만, 저번에 넛튜브에 올렸던 김도준의 투명전술 때에도 인원과 전술적으로 열세인 상태에서 싸웠으니까.
‘이것도 영상각이 멋지게 만들어지긴 하네…….’
한 번 이것도 올려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레이가 환상적이고 멋진 장면이 계속 연출되는 것에 비해, 2부여서인지 많은 사람이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저번 영상처럼 이 영상이 유명해질 수도 있고……
자기가 보고 놀라웠던, 즐거웠던 경험을 남에게 공유해 주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저런 플레이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지금껏 꽤 많이 경기를 봤음에도 저런 파격적인 경기는 그리 본 적이 많지 않았다.
헌터 한 명당, 최소 초능력이 한 개 이상. 많게는 몇 개까지 있으니, 평균적으로는 1팀이 가진 초능력. 스킬의 가짓수는 14개 이상.
반면 PER의 특공대. 이창현과 류재준이 보여 준 능력은 고작해야 세네 가지로 보였다.
스킬이 곱절이상으로 차이 나는데, 어떻게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는지. 봤으면서도 진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가능한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 보았는데……
‘일단 먼저 선빵을 때렸다는 점. 그게 크겠지?’
‘그리고 그게 광역이었다는 점. 이창현도 그 순간에 들어와서 공격했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반격타이밍에 정확히 꽂힌 칼자루에 달린 마나 봄버까지 터뜨리고 빠졌지.’
상대방이 공격할 타이밍조차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전력의 힘을 쏟고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엄밀하게 분석하고 따질수록 놀라움만이 남았다.
‘이번에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올리지 말고 분석 영상도 올려 보자.’
1부와는 달리 2부의 경기는 크게 분석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에,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헌터스 리그.
그 유래가 탑에서 유물을 둘러싸고 헌터들 간 전쟁을 하는 것에서 따온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스포츠화 되었기에 엄연한 규칙이 존재했다.
물론, 그렇게 빡빡하고 복잡한 룰은 없지만, 보통 경기에서 문제가 되는 룰은 보통 이런 것들이었다.
예를들면, 너무 길어지면 관객들이 지루해지기 때문에 경기시간에 제한이 있다던가.
경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맵이 점차 좁아지거나, 인원수가 더 많은 쪽을 판정 승으로 판단하거나.
그런 기타 등등의 룰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역시…… 경기시간이겠지.’
맵이 점차 좁아진다면, 협곡의 중앙. 낭떠러지 아래에 완전히 자리 잡은 PER측의 진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게 된다.
인원 수가 많은 쪽을 판정승으로 한다면 당연히 바로 PER의 승리고.
그러니까 이대로 경기 시간이 끝날 때까지 현상 유지만 하더라도 PER은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상을 입은 데다가, 2명이 죽어 버린 QED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네 전략. 나도 이젠 같은 팀이지만 정말 졸렬하네. 선빵 한 방 기습하고 틀어박혀서 우주방어라니.”
함께 김유현이 준비해 놓았을 PER의 방어진으로 향하던 중, 류재준이 말했다.
“졸렬하다고? 칭찬 고맙다.”
관객들에게 보여 줄 퍼포먼스는 7대2의 과감한 전투 한 번이면 족하다.
그 외에는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지금에야 2부니까 여유가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상대와 나의 차이는 점점 없어진다.
그렇기에 우리 팀원들도 점점 완벽한 승리라는 가치에 익숙해져야 했다.
‘국제리그 쯤 가면, 정말 찰나의 빈틈으로 경기가 뒤집어지는 일도 벌어지니까.’
“그건 그렇고, 이 전략. 꽤 구멍이 있지 않아?”
“구멍?”
어느 부분을 말하는 거지? 생각하지 못했던 빈틈이 있었나?
다른 녀석이면 모르겠지만 류재준은 헌터들끼리의 싸움이라는 거에 꽤나 이해도가 높았으니 들어 두는 게 좋았다.
“유물 말이야. 유물. 경기 시간도 아직 좀 많이 남았는데, 우리 짱 박혀 있는 동안 맵 뒤져서 유물 찾아오면 경기 뒤집히는 거 아니야?”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것도 생각 안 했을까 봐?”
내가 헌터스 리그 짬이 얼만데. 이런 상황 저런 상황, 이런 전술 저런 전술.
솔직히 경험적 측면에서는 지금 시대의 세계 어느 헌터스 리그 선수보다도 뛰어나리라고 생각한다.
“그건 도착하면 알 수 있을걸?”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유현에 의해 만들어진 PER의 방어진. 맵의 정중앙에 도착했다.
“왔어?”
“지루해서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
땅바닥에서 오목하지 말라고 했더니, 누워서 배를 긁고 있네.
순간적으로 살의가 치솟았지만,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하는 것이 먼저 있었다.
“한결아. 다 부숴졌지?”
“응. 아마도.”
“…….”
이 말만으로 류재준은 아마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뭘 부쉈는데?”
“지금 한결이가 날리는 데만 집중하면 조종할 수 있는 검의 갯수가 7개…… 그리고 마나봄버를 단 검은 5개. 남은 2개는 어디에 쓰였을까?”
“설마…….”
류재준이 표정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검을 날려서 ‘무엇’을 부쉈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당연히 유물이지.”
“미친놈.”
하긴. ‘진짜 헌터’인 1세대 헌터인 이근택에게서 배운 류재준 녀석은 이해를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에 들어가 경쟁을 벌이던 그 시대에는 싸우는 이유가 유물을 얻기 위해서인데, 상대를 이기려고 부순다니.
그러면 이겨도 의미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스포츠. 룰만 어기지 않으면 어떤 전략을 써도 상관이 없었다.
“뭐, 그럼 이제. 김도준이랑 땅바닥에 오목이라도 두면서 상대를 기다려 보실까.”
의미 없이 이곳 저곳 뒤지면서 유물이 다 파괴되었다는 걸 깨닫고, 경기 종료 시간에 내몰려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까.
***
한편 팀 QED.
“으으으…….”
“시현아 좀 괜찮아?”
별 생각 없이 합류해서 대규모 한타를 벌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녀석들의 습격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두 명이나 가 버린 건가…….”
“괜찮아. 알잖아 우리 실력. 5명이어도 집중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먼지를 털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분명 그렇긴 했다. QED는 특별한 전술이나 능력. 그런 것들보다는 순수히 교전 중심의 팀.
전 시즌에도 힘든 일도, 함정에 빠지는 일도 있었지만, 결국 그 뛰어난 교전 능력으로 모두 이겨 냈으니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우선은 걔네 수법 알았으니까 이번에는 조심하면서 움직이자. 아까 같은 수법에 또 당해서 선빵 맞았다가는 그 땐 진짜 질 가능성이 너무 크니까.
그리고 어때. 녀석들 어디 즈음에 있는지, 느껴져?”
위치 파악. 섬세한 마나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가능한 기예였다. 모든 사람의 몸에는 마나가 깃들어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초능력으로 그걸 각성한 사람들만큼 민감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지만.
“음…… 정확하진 않은데, 우리를 중심으로 북쪽 방향으로 꽤 느껴지는 것 같아. 가까이에 있는지, 멀리 있는지, 그리고 많이 있는지 적게 있는지는 모르지만…….”
“모르지만?”
“흩어져 있으면 보통 다양한 방향에서 조금씩 느껴지는데, 아닌 거 보니까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까 우릴 습격한 녀석들도 다시 팀에 합류한 건가.
“이상한 점은, 딱히 그 존재감이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고. 방향도 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한 자리에 계속 있는 모양인데?”
‘……!’
그제서야 녀석들의 속셈이 예상이 가기 시작했다.
PER. 이근택이 인정한 녀석의 팀이다 뭐다. 말이 많았지만 결국은 3부에서 올라온 녀석들의 팀이다.
‘생각해 보면 3부에는 그런 수비류 전략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처럼 상대를 습격해서 수를 줄이고 수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수비가 공격에 비해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전략이기도 했다.
함정을 파 놓는다던가, 미리 유리한 지형에 자리를 잡는다던가. 아무튼 좋은 점이 많으니까, 한 자리를 잡아 두고 상대가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2부부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바로 맵에 ‘유물’의 존재 때문에 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팀은 필연적으로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큭…… 큭큭큭. 푸하하하하.”
멍청한 녀석들.
아마 인원수도 줄여 놓았으니, 우리가 초조해져서 경기시간이 종료되기 전에 공격에 나서리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런데 우리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녀석들이 움직이지 않는 만큼, 편하게 맵을 돌아다니며 ‘유물’을 찾고, 전황의 우세를 가져오면서 쉽게 이길 수 있었으니까.
녀석들은 차라리 우리들에게 예상치 못한 폭탄테러를 가했을 때 총 공격을 가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워낙 혼란스러워서 차라리 꽤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교전은 우리 전문이라, 끝까지 싸웠으면 이겼을 테지만…….’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다.
자기네들이 나중에 경기를 돌려보면서 이게 실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릎을 치겠지.
솔직히 2부의 선배로서 좋은 공부를 시켜 준다는 마음이다.
“말뚝 박고,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은 신경 쓸 거 없고. 얘들아. 우린 맵 돌면서 유물부터 찾는다.”
“그런 건가. 큭큭. 그렇게 하자.”
팀원들도 그제서야 내 생각을 알았는지, 시끌벅적하게 웃었다.
“멍청하긴. 3부에서 막 올라온 애들이라 어쩔 수 없긴 하지.”
“맞아. 맞아.”
“어쨌든 첫 경기부터 좀 위험할 뻔 했는데. 갑자기 쉽게 가니까 맥이 탁 풀리네 그래.”
“쟤네는 다 이긴 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겠어? 분해서 어떻게 하냐. 난 저런 날은 잠도 못자겠던데.”
“그렇긴 해. 너 지는 날마다 얼굴 시뻘게져서 무슨 술 마신 사람처럼 되잖아.”
“뭐어?”
“큭큭큭큭큭.”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가며, 유물이 있을법한 흔적을 발견했을 때였다.
“……뭐지 이거? 왜 이렇게 되어 있어?”
처음으로 발견한 유물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유물이 아니었다.
“다 부서져 있잖아?”
그건 개박살 난 유물 쪼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