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선제공격
우주방어전략.
흔히 아주 과거에 RTS게임이라는 게 있었을 때 나온 단어였다.
‘난 해본적도 없는 게임들이긴 한데…….’
어찌 되었든, 우주방어전략의 요점은 간단하다.
방어에 유리한 초능력을 가진 팀원들을 이용해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그런 방어자의 이점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필요한 것은 둘.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시간을 끌수록 상대가 불리하게 만들거나, 혹은 방어진지에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
지금의 PER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아니 오히려 더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었다.
‘포탑생성과 지형변화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김유현. 그리고 멀리에 있는 상대에게 정밀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폭격기 전략 트리오.’
그뿐만인가? PER의 팀원은 그때보다 더 보강되었다.
우주방어에 폭격기를 더하고, 거기에 일대 다수 특화의 스페셜리스트.
류재준과 내가 있다.
‘나와 류재준만 특공대로 상대팀을 휘저으면서 치고 빠지고, 나머지 팀원들은 만들어진 방어진형에서 폭격기 전술로 지원한다.’
그게 지금 사용하는 PER의 완성된 전략이었다.
뭐, 솔직히 말하면 취약점. 그니까,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긴 하지만……
그 강점 하나는 솔직히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방어 진형을 꾸리는 것까지 방해 없이 완료했고 말이다.
“전에 말해 둔 대로 가자. 류재준이랑 나를 제외하고, 모두 여기에서 방어 전략을 펼치는 거야.”
“알았어.”
“안전 진형이라고 심심하다면서, 전처럼 흙바닥에 오목 두다가 타이밍 놓치지 말고, 제대로 상대 동향 봐 가면서 대응해라.”
“윽…….”
김도준과 이길한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피했다.
“알겠다.”
하여간. 아무리 전술특성이 특성이라고 해도 긴장감이 없는 녀석들이라니까.
“가자. 재준아.”
“그래.”
이제 진짜로, 2부 헌터스 리그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시간이었다.
***
한편, 경기장 바깥. 중계자의 시점에서는 꽤나 의아한 선택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캐스터] : 합류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PER……! 어떻게 된 일인가요! 다 모였다가 5명을 제외하고 이창현 선수와 류재준 선수만이 상대 쪽으로 향합니다!
[해설자] : 무슨 생각일지 점점 궁금해지는군요. 인원을 나눠 공격하기로 했다면 5명의 선수들도 상대편 쪽으로 향해야 했을 텐데요……!
막 경기를 끝낸 후, 샤워를 마치고 선수 대기실에서 경기를 보고 있던 한지후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이근택 회장님의 후계자라고 해서 무언가 조사를 해 보긴 했지만…… 저럴 때 쓸 만한 능력은 없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조금 지켜보아야 무슨 꿍꿍이일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실에 괜히 불쾌해졌다.
‘저런 잔머리만 굴릴 줄 아는 녀석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다들 집중하는 거야?’
헌터스 리그의 본질은 자고로 싸움이었다. 상대를 때리고, 부수고, 파괴하고. 나도 함께 맞고, 혹은 피하는 혈투. 투쟁 말이다.
저렇게 잔머리를 써서 약삭빠르게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캐스터] : 이게 무슨 일 입니까! PER!! 겨우 2명의 인원으로 상대 팀 전원이 모인 QED에게로 돌진합니다!
‘뭐?’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인가.
캐스터의 머리에 달고 있는 건 눈이 아니라 옹이구멍인가? 잘못 볼 것이 따로 있지.
팀 개인기가 2부에서 극한에 다다른 PSG도 안할 그런 무지성 돌격을 누가……
‘……!’
놀랍게도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싸움을 피하고 약삭빠르게 상대를 함정에 빠뜨릴 생각만 하고 있다고 여겼던 이창현이.
손수 직접 나서서 두 명이서 상대 진영, QED의 품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캐스터] : 무슨 특별한 대책이나 전술이 있는 걸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해설자] : 글쎄요…… 지금 보기엔 별로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무슨 생각으로 갔든, 상대를 너무 가볍게 본 것 같습니다.
아앗……! 말씀드리는 가운데, 류재준 선수! 먼저 돌입합니다!!
비명과 같이 들리는 해설자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PER의 한 신인. 아마 류재준이라고 하는 녀석이 에어앵커를 타고 상공으로 날아갔다.
착지 지점은 다름 아닌 QED의 진영의 한가운데.
그리고……
키이이이잉 ㅡㅡㅡ.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귀가 괴로워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의 파동이 엄청난 속도로 그 지역을 훑었다.
콰ㅡ쾅.
준비 시간이 크게 필요 없는 능력인지, 아니면 미리 준비를 하면서 온 것인지.
‘빠르다……!’
능력의 범위와 효과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마나 실드를 펼친 녀석들에게도 상관없이 똑같은 충격을 주었으니까.
‘확실히 뛰어난 능력이군…… 하지만, 헌터는 각성자. 일반인이라면 저걸로 죽음이나 기절에 이르는 상황까지 갈지도 모르지만, 헌터는 저 정도로는 흔들릴 수는 있어도 치명적으로 까지는 가지 않아.’
하지만 그때.
[해설자] : 굉장한 능력입니다. 아직 QED에서 반격을 하기 전이긴 하지만, 7명을 상대로 선수를 잡았어요! 그런 와중에 이창현 선수!!
[캐스터] : 이 창 현!!!!!
이근택 회장이 꼽았던 그 녀석. 이창현이 QED 녀석들이 타격을 입은 찰나에 바로 진입해 쌍권총을 난사했다.
타타타타타타탕!!
그야말로 권총 연사의 한계가 느껴질 정도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채팅창도, 해설자도 모두 이창현을 연호하는 상황.
하지만 냉정히 바라봤을 때, 뛰어나긴 하지만 베스트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꽤나 뛰어나다는 전술인 건 인정하겠어. 그런 기상천외한 방법이 있다니.’
다른 암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투사체의 속도를 지닌 ‘총’의 특성. 그리고 빠른 캐스팅으로 광역으로 상대에게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파동’.
하지만 저 자리에 만약 이창현이 아니라 내가 들어갔더라면……
‘마나실드를 펼친 녀석이고 뭐고, 칼로 다 썰어 버렸겠지.’
그리고 그건 최소한 3명 이상이리라.
지금 화면에서도 둘 이상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지만. 저 뛰어난 능력으로 급습해내 만들어낸 최적의 타이밍이었음에도 생각보다 큰 피해는 아니었다.
적어도 한지후의 시점에서는.
실제로도 마무리가 꽤나 허술하다고 느꼈다.
[캐스터] : 공중에서 계속 대응사격을 하면서 멋진 플레이를 이어나가고 있는 이창현 선수입니다만…… 상대는 QED.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반격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거의 죽음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녀석도 있고, 몇 명은 중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녀석들은 자기들의 몇 배에 다다르는 가짓수의 능력으로부터 버텨 내야겠지.’
자살 폭탄 테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것도 겨우 에이스를 던져서 상대팀의 몇 명과 동수교환하는.
그런데.
[캐스터] : 어…… 근데 저게 뭐죠?
[해설자] : 아…… 혹시! 저건! 마나 봄버입니다! 마나 봄버를 단 검들이 QED를 향해 날아오고 있어요!
QED 진영의 중앙에서 온갖 시선을 집중시켜, 마나 실드를 이창현과 류재준 콤비를 향하게 해 둔 상황에서.
그들의 뒤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마나봄버를 단 검들이 폭탄을 투하했다.
콰콰콰쾅!
‘파동’의 파열음과, 쌍권총의 총구가 불을 뿜는 소리. 마나봄버가 폭발하는 소리까지.
예상치 못한 일의 연타가, 그 데미지가 어느 순간인가 QED에게는 누적되어 있었다.
난장판 속 마나봄버가 터져 먼지구름이 강하게 일었다.
[캐스터] : 상황은 어떻게…….
모두가 먼지구름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사건의 결과가 뚜렷이 드러나며, 상황이 정리되었다.
‘…….’
화면에 비춰진 것은,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바닥의 거대한 크레이터.
……그리고 어떻게 해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마나봄버의 폭발로부터 살아남은 ‘일부’의 QED 팀원들.
……그게 끝이었다.
[캐스터] : 팀 PER……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상대팀을 완벽하게 뒤집어 놓는데 성공합니다!
관객석의 환호성이 대기실까지 들려왔다.
[해설자] : 살아남은 5명의 QED 선수들을 내버려두고, 이창현 선수와 류재준 선수는 완전히 빠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능력을 난사해서 금방 마나가 떨어져 QED에게 역습을 맞을 수 있다는 것까지 고려한 건가…….’
결국, 모두가 무모하고 미련하다고 했던 7대 2의 난입.
그 난입의 끝은 모두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
한편, PER의 진영에는 류재준과 이창현을 제외한 모든 팀원이 있었다.
검을 날리고, 위치와 방향을 지정해 주고, 폭탄을 떨어뜨리는 트리오를 제외하고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김도준은 김유현이 능력으로 만들어 낸 방어진영 안에 누워 배를 긁고 있었다.
“거, 경기 시작했는데 할 게 없네. 내가 이럴려고 헌터되었나 자괴감들고 괴로워~”
하품을 쩍쩍 해대며 아무 이야기나 해대는 것이, 그야말로 날백수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조금 근질거리는 것 같기도. 어릴 때 축구 골키퍼 해서 공 한번 못차 본 거 기억나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도 잠시.
콰 ㅡ 쾅.
“작전대로 됐어. 곧 그리로 갈 거야.”
직.지직 ㅡ.
이어폰에 이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여기서 보낸 이기어검이 도달한 것인지, 막 폭발음에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아무래도 전에 말했던 계획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어험. 이제 우리가 활약할 차롄가.”
누워있던 김도준이 일어나며 말했다.
“활약은 무슨. 네가 직접 싸우기 보다는 저 포탑들이 활약해 줄 텐데.”
윤한결이 설치된 포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쩝…….”
뭐,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아마 직접 전원이 부딪히는 전면전보다는, 먼저 방어 진영을 만들어 둔 PER의 방어전이었으니까.
“야, 근데 진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전에 3부에서도 이렇게까진 잘 안했잖아.
이제 쟤네 완전 만신창이일 텐데, 그냥 나가서 전면전으로 해도 이길걸?”
“그렇긴한데……음”
윤한결이 김도준말이 약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머뭇거렸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걸 기억하는 게 있긴 하냐?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지.”
그러던 중 평소엔 별 말 안하던 한지수가 입을 열었다.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100% 이길 싸움이 있는데, 힘 들여가면서까지 이길 확률을 낮추는 사람이 있겠냐?
알겠어? 여기선 ‘추잡하다’, ‘더럽게 한다’ 오히려 이런 말을 듣는 게 극찬이라는 거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앞으로의 경기의 향방은 분명……그런 이야기가 나오도록 진행될 테니까.
이창현과 류재준이 돌입, 그리고 폭격기전술의 합으로 상대를 뒤흔들어 놓은 후.
그 경기를 마무리 짓는 완벽한 방법이.